노무현/유서
1. 개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남긴 유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하여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고,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된 상태였다. 이 유서에는 당시 그가 겪고 있던 힘든 심정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측근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다는 자책감을 담고 있다.
2. 내용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5.23 새벽
3. 논란 및 음모론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대한민국 대통령답게 유서는 아래아 한글 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서는 자필로 기재한 이름, 날짜, 주소와 도장이 찍혀 있어야 효력이 인정되므로 법적 효력은 없다. #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이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유서를 남겼다는 점'''에서 잠시 타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잠정적으로 노무현이 직접 쓴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엄밀히 말해 노무현의 유서는 법률 관계에 대한 의사 표시(예컨대 유증이나 사인증여와 같은 재산의 이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함과 동시에 대국민담화문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법적 효력이 있는 방식인지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유서가 공개되었을 당시 네티즌이 봉하마을 주민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한 유서의 앞부분에 대한 음모론이 퍼졌다. 유서에 대해 음모론자들이 퍼뜨려주세요 식으로 주장했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군말 없고 간결한 뒷부분과 달리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앞부분은 나는 억울하다며 한탄하는 내용이 있고, 문장 구조도 복잡해서 간결하고 담담한 어조로 쓴 진짜 유서와 조합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애초 변호사 경력이 풍부하고 달변가로 알려진 노무현의 면모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쓰지 않았다는 걸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결정적으로 노무현재단에서 노무현의 유서는 내용 문단에 있는 내용이 진짜라고 발표, 조작으로 밝혀졌다. 아래의 기사 링크에 노무현재단 측 입장이 포함되어 있다.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 노무현 4주기, 가짜 유서 범람…“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
- [전문] 노무현 4주기 가짜유서 급속 유포, “누군가 고의로 구차한 변명 덧붙인 듯”
- <노무현 서거 7주기>가짜 유서 또 기승…이미 조작 밝혀진 유서 재탕
4. 영향
유서의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단 노무현은 유언대로 화장되어 집 가까운 곳에 묻혔다. 수원연화장에서 화장했고, 수원시는 3주기인 2012년에 노무현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세웠다. 국립현충원에 묻히지 않은 대통령으로는 가족묘지에 묻힌 윤보선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1]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달라는 유언 내용에 따라 무덤 자체는 봉분 없이 남방식 고인돌 형태에서 따 온 평범한 비석 하나만 세웠다. 하지만 지지자 등 타의에 의해 무덤 주변에 추모공원 겸 묘역이 크게 조성되어서, 삼각지대 형태의 묘역 전체로 따지면 2021년 현재 역대 대통령 묘역 중 가장 큰 묘역이 되었다.[2]
이후 노무현이 생전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사후 평전인 '성공과 좌절', '운명이다'가 출판되었다. 한편 그의 절친이자 제 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은 노무현 사후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출판했으며, 유서의 "운명이다"와 관련지어 이러한 내용을 썼다.
책의 흥행으로 문재인은 이해찬의 제안으로 전국으로 북콘서트를 다니기 시작했고, 노무현 살아생전에 정치를 거부하던 문재인이[3] 중앙정치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해당 유서를 패러디한 주데텐란트의 체코군이라는 시를 올렸다. 해당 글은 일베 유저가 기갑 갤러리에 올린 것이 시초이나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올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1] 다만 대통령이 묻힌 묘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국가보존묘지로 지정돼 있어 사실상의 국립묘지나 다름없다.[2] 정식으로 가꿔진 봉분과 묘역 전체로 따지면 국립서울현충원 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 규모가 가장 크다.[3] 2003년 민정수석 취임 기자회견 때부터 그는 민정수석으로 끝내고 정치 활동은 안 할 것이라고 못박았고, 2004년 총선 때는 출마를 권유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피해 도피성으로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히말라야로 떠나기도 했다. 2008년 2월 퇴임 후에는 양산으로 가서 칩거하여 기성 정치인들의 방문을 차단할 정도로 정치 활동에 부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