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시비르스크 제도

 


노보시비르스크 제도의 위치.


지도에서 오른쪽 위.[1]
러시아어: Новосиби́рские острова
영어: New Siberian islands
1. 개요
2. 상세 정보
2.1. 기후
2.2. 역사
3. 구성
4. 기타
5. 한민족 진출 기록


1. 개요


러시아사하 공화국에 속해 있는 북극해의 제도. 영구빙의 한계[2] 근방에 있어 이 제도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꽁꽁 얼어 있는 사진이다. 이 제도의 서쪽에는 북극해의 일부인 랍테프 해가 있고 동쪽에는 동시베리아 해가 있다.
이 제도는 3개의 커다란 섬과 나머지 10여 개의 조그마한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약 35,095km²[3]로 경상도보다 조금 더 크다. 더 세분화하여 안주 제도와 랴홉스키 제도로 나누기도 한다. 가장 큰 섬은 코텔니 섬이다. 자료에 따라 노보시비르스키 제도, 노보시비르스키예 제도라고 하기도 한다.
시베리아의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와는 관련 없다.

2. 상세 정보



2.1. 기후


기후는 매우 척박한 편으로, 7월 평균 기온이 단 3℃라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한대기후(ET)에 속한다. 강수량도 낮아서 77mm에 불과하다.

2.2. 역사


코사크 탐험가 야코프 페르먀코프(Яков Пермаков/Yakov Permakov)가 18세기 전반 발견하였으며, 19세기 대 코사크의 탐험가들에 의해 북부 섬들까지 발견되었다.
한편 19세기 경 러시아의 탐험가들이 주장하길, 노보시비르스크 제도 북부 바다 건너에 또 다른 섬인 사니코프의 땅(Земля Санникова)이 존재했다고 한다. 1809년부터 1년간 이 섬을 탐험했던 야코프 사니코프와 마트베이 게덴슈트롬이 보고했던 섬이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섬이지만, 노보시비르스크 제도 북부의 조그만 섬들을 보고 이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고 한다.(관련글)
그 후 1886년 독일 출신 탐험가 에드워드 폰 톨은 뼈, 상아, 나무 등등의 화석을 코텔니 섬 남부에서 발견하였다. 적백내전 때는 백군이 이 곳을 점령했다가 타이미르 반도, 세베르나야젬랴와 같이 너무 척박하고 쓸모없는 땅이라 버려졌으며(...) 1923년 적백내전이 끝나고 1924년 소련이 모두 수복했다. 그 후 소련이 이 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곳에 해양 기지를 설치했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 1993년 버려졌다고 한다. 현재는 기상관측소가 코텔니 섬에 설치되어 있다.

3. 구성


하나의 제도가 2개의 작은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 안주 제도: 북쪽에 위치한 제도로 4개의 큰 섬과 1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큰 섬 3개는 다음과 같다.
    • 노바야시비리 섬
    • 코텔니 섬
    • 파데옙스키 섬
    • 벨콥스키 섬
  • 랴홉스키 제도: 남쪽에 위치한 제도이다.
    • 볼쇼이랴홉스키 섬
    • 말리랴홉스키 섬

4. 기타


이 제도는 너무 척박한 탓에 사람이 살지 않으며, 과학자들이 가끔씩 와서 머무르는 것이 전부다.
이 제도에서 매머드화석이 출토되기도 했다.
물론 이곳도 고위도에 위치한 만큼 '''춥다.''' 하지만 위도에 비해 그렇게 춥진 않은 편으로 1월 평균 기온은 -32.6°C 정도이다. 틱시와 비슷한 수준.

5. 한민족 진출 기록


체코인 얀 벨츨(Jan Welzl)이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1932년 간행된 단행본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에 따르면 저자 본인이 안주 제도의 4개의 큰 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노바야시비리에 있을 때 7년 동안 '''한국인 여성과 함께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서술 순서로 보아 '''1909년 이전'''에 만나 함께 지낸 것으로 보이며, 여성은 동아시아 3국 중 한 곳에서 배를 타고 북극해까지 도달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책에서 여성에 대해 'Korean'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중국·일본과 조선을 명확하게 분리하여 설명하는 데다가 여성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흰 머리띠'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 여성인 것은 확실한 듯.
이 내용이 사실일 경우 '''한민족 최초로 북극해에 진출한 사례'''[4]가 되며, 시기는 구한말 즈음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벨츨이 노바야시비리를 떠날 즈음 한국인 여성은 그 섬이 마음에 들어 떠나지 않고 그곳에 남았다고 전해진다.

[1] 붉게 표시된 부분은 Bulunsky 구이며 구역의 중심은 틱시이다. 레나 강의 하구를 차지하고 있다.[2] 계절에 상관없이 얼어 있는 빙하의 한계, 완전히 다 얼어있는 빙하의 한계이다. 빙하가 잘게 잘라져 덩어리 진 빙하들이 떠다니는 곳은 유빙의 한계이다.[3] 북쪽의 안주 제도는 면적 29,000km², 남쪽의 랴홉스키 제도는 면적 6,095km²다.[4] 한민족 최초로 시베리아에 진출한 사례가 되기도 한다. 연해주까지 시베리아의 일부로 본다면 한민족은 이미 오래 전 발해를 통해 시베리아에 진출한 이력이 있으나, 지리적으로는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별개의 지역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