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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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울산 장날
1. 개요
2. 역사
2.1. 근대 이전
2.2. 근대
2.3. 현대
3. 오늘날
4. 가난해서 입었다?
5. 기타
6. 둘러보기


1. 개요


흰옷을 자주 입었다는 점에서 유래한 한민족별칭.

2. 역사



2.1. 근대 이전


3세기 삼국지 위서 동이전고구려인들과 부여인들이 백의(白衣)를 즐겨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도 중국에서는 고려인들은 흰 옷을 즐겨입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다만 고구려의 경우 무용총 등 고분 벽화를 보면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 역시 서긍고려도경에 따르면 여성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노란색 옷을 많이 입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백의의 비율이 늘어났다. 백색은 빛의 색이고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빛, 태양, 하늘을 숭배하는 사상의 실천으로 흰옷을 입었다고 한다. 또 감정을 즉각적으로 나타내는 색은 점잖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부도덕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흰색은 자연과 동화된 색이라고 여겨졌고 이는 채색을 금하고 흰색을 좋아하는 사고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중기에 사림파들이 정치로 진출하면서 유교 이념이 강화된 것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송시열의 초상화 중에는 송시열이 백의를 입은 모습이 있는 초상화도 있을 정도다.
오죽이나 좋아했으면 조선의 왕들은 태조 #, 태종 #, 세종 #, 연산군 #, 인조 #, 현종 #, #, 숙종 #, #, 영조 #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파란색 옷을 권장하였고[1]숙종은 아예 파란색 옷을 입으라고 국명을 내리기까지 했으며 현종 때에는 흰옷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2.2. 근대


19세기에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남녀를 막론하고 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오페르트는 그의 조선기행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종 시기 세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광무개혁 때 색옷을 장려하였고, 1906년엔 흰옷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유독 흰옷만 선호하는 경향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 뒤 일제 강점하에도 총독부는 색의착용을 계속해서 권장하였으나 1920년대에도 백의의 습속은 여전하여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1930년대 신문을 보면 전국에서 색의착용좌담·협의·통첩을 통한 색의착복선전이 많았고 색의착용실행회 결성 등을 통한 색복장려운동백의폐지운동을 위시한 색의장려가 빈번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하얀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색의선전원이 먹물을 뿌리고 폭행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제의 색복강요는 1930년대 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자력갱생운동/각지진흥운동의 일환으로 색의착용이 들어가면서 각종 법제화로 이어졌다. 1929년에는 음력 1월 5일을 색의착용데이(day)로 지정하기도 하고 1933~1934년부터는 흰옷을 입은 자에게 먹물을 뿌리고, 색의불착인의 시장출입을 금(禁)하거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제강점하의 색의 선전은 백의숭상의 풍습을 비하하기도 하였는데 백의와 색의 착용의 이해득실대조라는 사설을 쓴다든가백의와 단발을 사회적 손실을 근거로 권하는 사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제의 지속적인 색의 강요는 도리어 백의가 민족의 얼로 강조되는 반작용을 일으켰다.

2.3. 현대


흰옷을 입는 관습은 현대에 이르러 점차 주춤하기 시작한다. 경제 발전 등의 영향도 크지만 서양 문물 유입이 큰 영향을 끼쳤다. 다만 일제에 항거하는 상징성도 있었고, 해방 이후에도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4.19 혁명이나 6.3 항쟁, 한일협정 반대투쟁,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민주화 투쟁에서는 백의가 많이 쓰였다. 그래도 현대를 거치면서 흰옷이 주류인 관습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3. 오늘날


오늘날 한국에서 흰옷을 입는 관습은 찾기 어려우나 유사한 현상은 발견된다.
흰색만 있는 옷을 입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흰색이 대부분인 옷에 약간의 색깔 장식이 있거나, 색옷에 흰 줄무늬ㆍ글씨가 있는 옷을 입는 사람들은 많다. 여전히 무채색(흰색ㆍ회색ㆍ검은색)의 라운드 티나 면바지 등을 입는 경우는 훨씬 많다. 알록달록한 원색 옷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선호되지 않는 편이다.
다른 경우에도 흰색이나 무채색을 선호하는 현상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흰색 실내화, 흰색 줄이 들어간 신발, 흰색 롱패딩, 흰색 전자제품 , 흰색 자동차,[2] 피부를 뽀얗게 만들어 주는 화장품/화장[3]이나 카메라 필터 등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
다만 요즘 들어서서 젊은층에서는 다채로운 원색옷을 선호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4. 가난해서 입었다?


간혹 조선인들이 너무 빈곤하게 사는 나머지 염료를 구매할 돈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흰옷을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익성호사설에서 “옷 한 벌을 염색하려면 그 남을 심는 밭이 네 식구가 한 달 먹을 곡식이 나는 땅을 버리는 것이 되니, 국내 전체를 계산한다면 손실이 매우 많다.”고 했을 정도로 염색은 비용이 든다. 때문에 너무 가난하다면 염색 옷을 입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흰색 자체가 원래 염료로 물들여서 만드는 색이다. 일반적으로 직물을 염색하지 않았을 때의 색은 결코 흰색이 아니고 누리끼리한 상아색이다. 이걸 완전한 흰색으로 염색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구한말이나 일제시대의 사진이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인들의 의복은 염색하지 않았을 때의 누리끼리한 색이 아니라 그냥 완전한 백색임을 알 수 있다.[4][5] 그리고 흰색 옷은 쉽게 더럽혀지기 때문에 현대에는 위생에 철저해야 하는 직종(의사, 요리사 등)에서 자주 쓰는 색이다. 당장 흰 티 입고 떡볶이나 짜장면을 먹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만큼 다른 색과는 달리 조금만 더러워져도 관리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더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구한말 한국을 여행하고 남긴 기록을 보면 백의를 고집하는 풍습 때문에 여인들이 빨래하느라 엄청 고생한다는 지적을 볼 수 있다.[6] 물론 가난한 천민들은 의복의 세탁 및 다시 흰색으로 염색하는 작업을 자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오염에 취약한 백의 특성상 상당히 옷이 빠르게 지저분해졌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조선의 사대부들도 흰옷을 즐겨 입었고, 고려시대의 임금들도 평상복으로 흰옷을 즐겨입었다. 심지어 고려사의 1253년 기록에는 백은 1근을 갖고도 20승 백저포 1필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비록 이 기록이 특별한 상황이기에 기록된 것이겠지만, 흰옷 가운데 값비싼 옷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만큼 부유층 사이에서도 흰색이 인기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5. 기타


발음이 비슷한 100 과 합쳐 말장난 소재로도 쓰인다. 몸무게를 물어보면 100의 민족이라고 답하는 등...
고증에는 잘 반영되지 못하고 조선시대 배경 매체에서도 색의가 자주 나온다.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아니면 알록달록한 것이 현대의 미감에 잘 맞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다.[7]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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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이 중국의 동방에 위치했기 때문에, 오방색 중 동방의 색인 청색을 권하였다.[2] 사실 전세계적으로 흰색이 많이 팔리고 한국에서도 흰색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지만, 중국에 비해 검은색, 은색, 회색의 비율이 많다.#[3] 사실 90년대까진 한국도 짙은 색화장이 대세였지만, 2010년대 들어서 최대한 민낯에 가까운 쌩얼 화장법이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하얀 피부라는 것도 백인의 하얀 피부라기 보다는 좀 더 본질적으로 순수한 백옥같은 피부를 일컫는 것.[4] 한국 빨래의 흰색은 항상 나로 하여금 현성축일(顯聖祝日: the Ttansfiguration)에 나타난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聖) 마가가 언급한 ‘세상의 어떤 빨래집도 그것을 그토록 희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게 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p.393)[5] 조선 사람의 옷 빛 색깔은 남자나 여자나 대개가 다 희다. 저고리의 빛깔이 맑고 푸른 빛깔일 때도 있지만 바지 빛깔이 그럴 때는 없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도리어 가지각색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데, 가장 흔히 입는 옷 빛깔은 맑고 푸른색이 아니면 진홍빛이며, 잡색이나 검정색 옷을 입는 일은 매우 드물다. 대중이나 시민 층이 입는 의복의 재료는 국내에서 산출된 직물을 다소간 보기 좋게 바래서 만든 무명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성글게 짠 일종의 삼베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나라 사람들이 더 좋고 곱게 손질한 옷감을 만들어낼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중략) … 먼 곳에서 보면 그들의 흰 의복은 사랑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에른스트 오페르트, 조선기행. (p90~92)[6] 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냄새 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중략)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p.60)[7] 다른 나라 드라마도 현대 감각에 안 맞는 과거의 패션, 풍습은 윤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중국 드라마에 전족한 여자가 안 나오고, 일본 드라마에 주인공 캐릭터는 머리를 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