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

 


[image]
사건 공개에 불을 지핀 훈련병의 편지.
[image]
현장조사를 위해 육군훈련소에 방문한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1. 개요
2. 발생 후
3. 영향


1. 개요


2005년 1월 10일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한 육군훈련소 29연대 11중대의 중대장학사장교 35기 이경진 대위[1]가 야간 점호 준비 도중 화변기에 대변이 그대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훈련병들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분노하여 의무경찰 훈련병 192명에게 변기에 남은 인분을 먹도록 강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발생 10일 후 모 훈련병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사건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국방일보는 사건이 외부에 공개된 20일로부터 4일이 지난 24일에야 특별기고에서 잠시 언급할 뿐 알리려고 하지 않아 군의 폐쇄성과 제 식구 감싸기 행동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2. 발생 후


훈련병의 편지를 받은 제보자는 편지를 MBC 소속 기자 백승규에게 전달하면서 사건을 널리 알려달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하였다. 편지를 받고 사건을 취재한 백승규 기자는 육군훈련소에서 일부 사실을 알고 있는 정훈참모의 증언을 확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평환 당시 육군훈련소장으로부터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애국이다. 군이 많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청탁을 받는다. 하지만 백승규 기자는 "이 사건을 알리는 것이 오히려 애국이다."라는 말과 함께 허평환 소장의 청탁을 거절하고는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건을 보도한다.
사건이 보도된 후 군 내외부가 발칵 뒤집혀버린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도 훈련병이 사망하는 등 당시의 육군훈련소는 여러모로 대형 사건이 많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중대장이 병사들에게 인분을 강제로 먹이는 사건이 벌어지자 온 사회가 충격에 휩싸인다. 국민들에게서 분노의 여론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사건의 주범인 이경진 대위는 구속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부조리와 지나친 군기에 대해 무감각하던 예비역들도 이 사건을 듣고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아무리 한국군이 부조리가 많다고 하더라도 병사들의 부조리를 막아야 하는 장교가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도록 강요한 것은 도를 넘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3. 영향


2005년 2월 3일에 육군본부는 인분 사건의 특감결과를 발표하고 책임을 묻기로 결정한다. 남재준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육군훈련소장인 허평환 소장에게 경고조치를 내리고 연대장, 교육대장, 지원과장, 교육과장, 분대장, 교관 등 14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시켰다. 이후 육군훈련소장에 당시 사단장으로 제32보병사단에서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일명 상준배 운동)' 캠페인을 통해 사단내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바 있던 정두근 소장을 임명하여 육군훈련소의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훈련소 내 헌병대 파견대장과 수사관을 일괄 교체하였다. 하지만 가혹행위의 당사자인 중대장보다 하급자인 분대장을 징계한 것은 하급자의 반대가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 내부사정을 감안한다면 과한 징계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사건이 발생한 후 노후된 육군훈련소의 시설들이 대대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화장실 변기가 종전 화변기에서 양변기로 바뀌고 비데를 설치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범국민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신뢰도가 바닥을 기게 된 육군은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몇 개월 뒤 530GP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쌓인 병폐가 또 다시 터지는 바람에 육군은 다시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 대형 사건이 연달아 2개나 발생한 육군이 대대적인 병영 문화 개선에 나서면서 육군의 문화가 많이 개선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90년대에 군 복무를 한 예비역의 증언에 따르면 자대 배치를 받고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을 몇 차례 겪은 바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다뤄진 이유는 육군훈련소라는 초대형 시설에서 훈련병을 대상으로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훈련병들의 상처는 컸지만 인분 사건을 계기로 지휘부가 군대는 당연히 사람을 괴롭히는 장소라는 잘못된 사고 방식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병영 문화를 개선하게 된다. 훈련병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던 분위기의 국군 훈련소의 모든 교관과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문화가 생겨난다. 아직 국군에서 구타, 가혹행위, 폭언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국군에서 행해지던 부조리가 이 시기부터 순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국군의 공식적인 태도가 훈련병들을 비롯한 병사들을 인간으로 존중한다고 변경된 것이 가장 긍정적인 변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인분 사건 이후로 한국군의 모든 훈련소에서 교관들과 조교들이 훈련병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또한 원칙적으로 당시 훈련병들은 훈련소 입소 기간에는 전화를 할 수 없었으나 사건 발생 후 전국의 모든 훈련병들은 분대장의 통솔 하에 의무적으로 부모형제 등 가족들에게 자신은 무사하다는 안부전화를 한다. 인분 사건이 발생한 육군훈련소의 29연대와 인근의 28연대는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막사가 다시 건축된다.

[1] 박찬석 당시 열린우리당 비례 대표는 이경진 대위를 옹호해 비난을 받았다.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