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평환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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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허평환
'''출생일'''
1949년 8월 2일 (74세)
'''출생지'''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임포리
'''최종 학력'''
동국대학교 행정학 석사
'''소속 정당'''

'''현직'''
우리공화당 전국대의원대회 의장
우리공화당 서울시당위원장
평화통일국민연합 회장

'''경력'''
육군훈련소
국군기무사령부 기무사령관
국민행복당 대표
대한애국당 공동대표
천만인무죄석방본부 공동대표
1. 개요
2. 생애
3. 저서
4. 선거 이력
5. 소속 정당
6.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으로 참여정부 시기 37대 기무사령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평화통일국민연합의 회장이다.

2. 생애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30기)를 졸업하고 1974년 임관하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1년간 파병생활을 했다. 전체 군생활 중 8년간을 기무부대에서 복무하면서 경험을 쌓았으며 제 6보병사단 사단장 , 육군훈련소장 등을 맡았고 2007년 37대 기무사령관에 임명된다. 기무사령관을 지낸 후 육군교육사령부로 옮겼으며 2008년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2011년 국민행복당을 창당하여 총선에 출마하였다. 하지만 원내정당이 되는 것에 실패하고 당이 해산했다.
그 유명한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발생 당시 육군훈련소장이었고 당시 기자에게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애국이다. 군이 많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청탁을 하는 막장짓을 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경고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 진급하여 기무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기무사령관은 중장 서열2위의 최고 요직이며 서열 1위인 해병대사령관은 육군이 임명될 수 없기 때문에 육군출신 중장으로서는 가장 서열이 높은 직위이다.
그리고 18대 대선 때에는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에게 특보로 위촉되었지만 종북좌파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위촉된 지 3시간 30분 만에 국민행복당 당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기사 대선 뒤에는 여러 강연을 하며 우리나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엔 여러 보수단체의 집회에 참가하였으며 태극기 집회에도 참가하였다. 그 후 새누리당을 창당해 대선 후보 경선에도 참여하려 했지만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한 조원진의 입당으로 무산되었다. 대선 후 새누리당에 내분이 일어나자 조원진, 변희재, 정미홍 등과 함께 대한애국당[1] 창당에 참여하였고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친조계와 비조계 간의 당내 갈등으로 인해 공동대표 직에서 사퇴하였으나 아직도 우리공화당에 머무르고 있다.

3. 저서


<<빠른 통일이 행복하게 사는 길>>
<<허평환 장군의 성공리더십>>
<<승리하는 강군>>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국민행복당
'''0.16%'''
낙선(비례대표)
정당 해산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11 - 2012
정계 입문

2012
정당 해산

2012 - 2017
입당

2017
당명 변경

201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7
창당

2017
탈당

2017 - 2019
창당

2019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2]

2020 -
당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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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우리공화당으로 개명.[2] 자유통일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