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석(정치인)
1. 개요
'''경북대학교 최초 직선제 연임 총장'''[2]
1940년 9월 5일에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봉계마을에서 박명순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정치인으로 경북대학교 제13·14대 총장(1994~2002년)과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을 역임하였다.
2. 생애
- 산청 단계초등학교, 산청 신등중학교, 진주농림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1967년 동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72년 네덜란드 국립사회과학대학원에서 지역개발 과정을 수료, 뒤이어 1981년 미국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주요 연구 분야는 주요 연구 분야는 도시지리학, 지역개발론, 경제지리, GIS 등이다. 단행본으로『계량지리학』(형설출판사, 1992), 『박찬석의 세계지리 산책』 전2권 (이신, 2014) 등을 출간하였고, 많은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 전국 국립대학교 교수협의회 의장,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회장, 교육인적자원부 지방대학육성위원회 위원장, 대구.경북지역 정보화추진협의회 의장, 방송위원회 대구지역 방송자문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3. 총장 재임기 행적
- 1994~2002년 경북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한다. 1990년 ‘총장직선제’가 도입된 시기 유일한 재선 총장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총장 재임 시절 영호남 교류학생 제도를 도입하고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3]
- 국립대 자율화, 지방인재 채용 목표제, 지역대학간 공동사업 추진, 대학의 ‘세계적 표준’에 맞추는 정책 등을 추진했다.
- 1997년 대학 정보화 평가 순위에서 6위에 오르기도 했고 이 시기에 종합정보시스템, 학사행정, 시설관리, 도서관, 각종 통신시설,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전산화하였다. 교내의 모든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경북대학교 종합정보시스템(KNUGIS)을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들이 직접 제작 설치하였다. KNUGIS는 총무처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97 민관 경영 사무혁신사례 발표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 1998년 교육개혁 연구부문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어 교육부로부터 지원금 5억 4000만원을 받기도 하였다.
- 1999년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Post-doc'제도를 도입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생들에게 연구비 지원을을 해주는 제도이다.
- 경북대학교 테크노파크를 건립하였다.
4. 정치 활동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줄곧 교육부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열린우리당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5]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6번으로 공천되어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대구시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5. 사건
논산훈련소에서 중대장이 훈련병의 화장실 청소 상태 미흡을 지적하며 변기의 똥을 먹인 논산훈련소 인분사건 당시 '''훈련병에게 똥을 먹도록 강요한 중대장을 두둔한 적이 있다.''' 심지어 이를 비난 받고 사과문을 작성하면서 다시 비호하고 중대장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사과문에서 교사의 학생 체벌도 잘 가르치려다 하는 실수라고 두둔하였다.[6] 박찬석이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되던 사람인걸 생각하면 교육부 장관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
2014년 아들의 공공기관 부당채용 및 재심사에 개입하여 계속 근무하게 한 사실이 감사원에 의해 적발되었다.
6. 여담
- 교수, 대학총장, 국회의원 시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수성구 지산동에서 북구에 있는 경북대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국회의원이 되어서 서울에 살 때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25㎞ 떨어진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자전거로 오갔다고 전한다. ‘자전거 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자전거와 관련한 법안을 만드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대학, 교육문제에 대해서 많은 목소리를 내왔다.
-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일화가 감동적이다. 중학생 박찬석은 부모님의 기대속에서 대구로 유학을 갔으나, 성적이 나빠서 성적표가 나오고 성적표를 조작해서 아버지에게 가져갔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1등을 했다고, 아무것도 모른채 집의 유일한 재산인 돼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고, 이에 충격을 받은 본인은 각성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교수가 되고 몇 년이 지나서 아버지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니, 아버지는 아들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 주었다고 밝혔던 훈훈한 미담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아들을 편법으로 임용하는 짓을 하면서 이 일화도 빛이 바랬다.
7. 둘러보기
[1] 26세손 찬(贊)◯ 항렬[2] 초대·2대 고병간 총장과 제6·7대 김영희 총장이 연임했지만 직선제 연임 총장은 아니었다.[3] 1997년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가 경북대학교를 방문했었는데, 당시 박찬석 총장이 김대중 후보자와의 면담 자리에서 ‘지역인재할당제’를 제안했었고, 김대중 후보가 이를 대선공약으로 삼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다.[4] 이인제 후원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중립 논란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5] 실제로 교육부총리 제안을 받았으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자리라고 판단하여 고사했다는 후문이 있다.[6]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16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