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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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前군인, 최종계급 중장, 최종보직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現'''상호존중과 배려 운동본부''' 명예총재.
2. 생애
1952년 9월 5일,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출생했다. 진주시의 대아고등학교(3회)를 졸업하고 1971년 1월 육군3사관학교(7기)에 입교하여, 1972년 12월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소위 임관 후 첫 보직으로 동해안방어사령부 예하 제9대대 제1중대 제1소대장을 맡았다. 1974년 6월, 중위로 진급하였다. 동년 12월, 당시 제2군단장이던 김종수 중장의 전속부관이 되었다. 1976년 6월, 대위로 진급하여 대위 지휘참모과정[1] 을 최상위권으로 이수했다. 고군반을 이수하고 제5보병사단 제36연대 제2대대 제7중대장으로 부임해 임관후 첫 '''지휘관'''이 되었다. 이후 육군3사관학교에서 경계 담당 교관으로서 자신의 후배들을 훈육했다.
임관 후 첫 진급 6년만인 1980년 6월, 소령으로 진급하여 육군3사관학교 훈육대장을 거쳐 육군대학 정규과정을 이수하고 제7기동군단 작전참모처 작전연습장교, 작전계획장교를 지냈다. 1985년 6월, 중령으로 진급하여 제8기동사단 제21연대 제3대대장과 제6군단 작전참모처 교육과장을 지냈고, 국방대학원을 이수했다. 이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교리훈련부 교리발전·합동작전교리담당관을 지내며 국방참모대학[2] 창설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때 1차 대령 진급 심사에서 고배를 마시고 (구)제70동원보병사단 작전참모로 근무하게 된다. (구)제70보병사단 작전참모로 재직하던 시절 동기들 중 2차로 대령 진급하였고, 대령 1차 보직으로 동사단 제198연대장, 2차 보직으로 (구)제11군단 민심참모, 3차 보직으로 제11사단 제13연대장, 4차 보직으로 제2작전사령부[3] 본부사령, 5차 보직으로 (구)제11군단 교육훈련평가단장, 6차 보직으로 (구)제11군단 작전참모, 7차 보직으로는 합참 작전본부 통합방위과장을 역임했다.
길고 긴 대령으로서의 복무기간을 거쳐 마침내 준장으로 진급 후에는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4] , 육군본부 정보작전지원참모부 부대훈련처장을 지냈다. 2003년 10월,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2보병사단장[5] 과 육군훈련소장[6] 을 역임했다. 2006년 12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6군단장과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사단장 재직시절, 윗선으로부터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사들의 인권증진을 위하여 상존배운동을 계속 추진했고, 이는 그의 대장진급에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보통 대장급 정기 인사에서 비육사출신 중장 중 한명을 육사출신 다수와 함께 대장으로 진급시키는데, 이 때는 정두근 장군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7] 정 장군은 사실상 '상존배 운동을 그만 두면 대장으로 진급된다'는 제의까지 우회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두근 장군은 상존배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이로 인한 인사보복조치로 실권 없는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2년이 넘도록 묶여있었다.[8] 결국 대장 진급은 군단장 임기중이던 이철휘 중장(학군사관 13기)에게 돌아갔다. 결국, 자신의 '''대장진급'''과 장병인권을 향한 노력을 맞바꾼 셈. 역으로 말하면 병영문화 개선에는 병사 개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지휘관의 노력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정두근 장군이 증명한 셈이 되었다.[9]
2010년 12월 28일, 장병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온 힘을 다 쏟았다는 이유로 육사출신 장군들의 음해에 시달리던 정두근 장군은 전역식에서 임석상관조차 없이 홀대받으며 전역하였다.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한 3사 후배 이순진 육군대장의 전역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친히 참석해, 이임하고 전역하는 이순진 장군의 명예로운 군생활의 마지막을 빛내준 것과 대조되는 바이다.
전역 후에는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본부'''를 창립해 초대 총재로서 우리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과 미덕을 가꾸는 일에 매진하였다. 군내 장병 인권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각종 방송매체와 인터넷매체, 신문매체 등에서 앞다투어 정 총재에게 군 인권의 미래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이는 그가 군시절 보여준 장병 인권향상을 위한 노력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시대를 앞서간 깨어있는 지휘관의 모습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후 2018년 3월 29일, 총재직을 박호군 前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이임하고 명예총재가 되었다.
그를 지휘관과 상관으로 모셨던 이, 사회운동가로서 그의 모습을 보아온 이 등 그를 겪어본 많은 이들은 그를 '''장병 인권향상과 복지증진에 온 힘을 다 써온,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군인'''으로 평한다.
[1] 구.고등군사반[2] 現 합동참모대학[3] 구.제2군사령부[4] 보통 생도대장은, 보통 해당 사관학교 출신 중 인격적으로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준장을 임명한다.[5]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을 처음 도입하여 사단내 사건사고를 혁신적으로 줄였다.[6] 당시 육군훈련소는 육군훈련소 인분사건으로 개판이 된 상황이었는데, 정두근 장군이 육군훈련소를 제2의 창설이라고 불릴만큼 혁신했다. 제32보병사단에서 병영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성과를 거둔 정 장군을 육군훈련소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고 육군훈련소장으로 임명한 것.[7] 군단장 재임기, 상호 존중과 배려 운동의 결과 부대내 각종 형사처벌 및 영창 발생률 감소, 지휘검열 우수부대로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는 등 각종 성과를 내고 있었다.[8] 부지휘관은 보통 전역대기 혹은 다른 보직으로 옮기기 전에 6달~1년간 거치는 보직[9] 실제로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찰청장 재임기 본인이 앞장 서 전의경 내무부조리를 척결하였고, 그 결과 의경지원률이 상승하는 결과를 내었다. 조 청장의 여러 논란 때문에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조 청장의 전의경 내무부조리 척결 업적 자체는 인정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