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웅

 




'''대한민국 제39대 국방부 장관
윤광웅
尹光雄 | Yoon Kwang-ung
'''
<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출생'''
1942년 10월 13일 (81세)
경상남도 부산부 (現 부산광역시)
'''재임기간'''
제12대 국방부 장관
2004년 7월 29일 ~ 2006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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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학력'''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경력'''
제39대 국방부 장관
대통령 국방담당특별보좌관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
해양연맹 부총재
'''가족'''
아내 권영기, 슬하 2남
'''군사 경력'''
'''임관'''
해군사관학교 (20기)
'''복무'''
대한민국 해군
1966년 3월~1999년 3월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해군)
'''최종 보직'''
해군작전사령관
'''주요 보직'''
해군 제2함대사령관
해군참모차장
해군작전사령관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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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해군 출신의 군인, 관료. 해군 출신으로는 두번째 국방장관.[1]

2. 생애


1942년 10월 13일 부산부에서 태어났다. 1961년 부산상고[2]를 졸업했고 재수를 하여 1962년해군사관학교 20기로 입학했다. 1966년에 해군 소위임관했고 대령 시절에는 합참 등에서 근무했고 제2함대 사령관을 지냈다. 해군작전사령관해군참모차장을 지낸 뒤에 중장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원태호 중장과의 차이점이라면 원태호가 해군사관학교장을 지낸 정도로 둘의 보직이 비슷하다.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이라는 책에 의하면 현역시절 민병돈과 엄청난 알력을 주고 받은 사이로 이 책에서는 민병돈을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으로 묘사하고 있다.[3]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39대 국방부장관을 지냈는데 손원일 이후 간만에 나온 해군 출신 국방장관이었고 포스타가 아닌 쓰리스타 출신이었다.[4] 2005년 530GP 사건 당시에 처음으로 합동분향소를 도입했다.[5] 당시 국방관료들이 가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직접 분향소를 찾아가 분노한 유족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국방장관이 참여하니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도 분향을 가야 했다. 이 때문에 육군 출신들은 그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반대로 문민 관료들에겐 그나마 문민통제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6]
아무래도 군부에서 거부감이 심했던[7]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냈다보니 단지 그 이유로 평가절하당하기도 하긴 하지만 군에 대한 민간의 견제의 수단을 만들려고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만 하다. 2005년 9월의 국방개혁 2020도 그의 장관 재임 시절에 수립, 발표된 것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 국방정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인물.
2017년, 다시 해군출신 국방장관이 임명되면서 일부 매체는 윤광웅을 빼놓고 카운트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존재감이 옅다. 현직을 포함해 비육군출신 국방장관들은 "육군중심주의를 타파한다"[8]는 해공군의 희망을 안고 취임했지만 어째선지 임명될 때나 퇴임한 뒤 추문으로 기억된 사람들이 있어서, 윤광웅씨는 눈에 띄지 않으니 그런 듯.
해군인 것은 둘째 치고 '''최종 계급이 중장'''이니 그런 사람이 국방장관을 했다고 하니까 그래서 역대 국방장관 중 존재감이 희미할 수밖에 없다. 다른 국방장관들은 거의 전부 예비역 대장들이다.

[1] 최초의 해군 출신 국방장관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던 손원일 제독이다. 역시 해군의 지휘를 받고 있는 해병대 출신의 김성은 전 장관까지 포함하면 3번째가 된다.[2] 48회 졸업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53회, 김응룡 해태 타이거즈 감독은 47회,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강병철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52회 졸업생이다.[3] 민병돈은 2004년과 2005년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윤광웅 신임 국방부 장관을 비판하고 있다.전문가인 국방장관이 非전문가인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가왜 軍과 국민을 이간시키려 하는가?[4] 간간이 중장 출신 정치인을 앉히는 경우가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천용택이나 김영삼 정부 시절에 이병태 등이 있다.[5] 그 전에는 각 국군병원에 시신을 산재 배치했고 유족들도 제각각으로 흩어졌는데 합동분향소를 만들면서 유족들이 공동 대응 등을 할 수 있는 게 가능해졌다.[6] 전역 후 5년 뒤에 장관이 됐기 때문에 합동참모의장 퇴임 후 바로 장관이 되거나 1-2년 내로 장관이 된 사람들보단 문민통제에 가깝긴 하지만, 완벽한 문민통제라기 하기는 곤란. 참고로 미 국방부에서 직업군인 출신으로 장관이 되려면 퇴역 후 10년은 경과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에 와서 이 관례(그러니까 법령은 아니었다)는 깨져서 우리와 도긴개긴이다.[7] 정확히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단이다. 해군이나 공군은 장교단도 작고 군 내에서 별 힘이 없으니 육군의 견해가 강하게 군심(軍心)을 결정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해공군의 장교단이 노무현 정권에 딱히 우호적이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은기 장군이 그나마 우호적이었는데,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 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보고 무기 사달라고 졸라대는 식으로 짤방이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다.[8] 원래, 군사정부시절 군벌화된 군 내부에서 주 세력인 육군 육사 계보가 합참의장과 장관자리를 독점했기에 비육사, 그리고 비육군 고위급에서 저런 불만이 나왔는데, 그런 게 아니라도 지금의 장관 후보자들 세대까지는 사관학교시절부터 타군 지휘까지 염두에 두고 교육받거나 교류를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고급 지휘관이 되며 맛보기한 정도. 삼군의 사관학교 등 장교양성과정을 통합하자거나 미군처럼 통합군 체제로 가자는 얘기가 나오면 비중이 큰 육군이 해공군을 흡수하거나 지휘하는 형국이 된다며 반대하는 게 해공군의 실정이다. 즉, 육군 특정 계보의 고위직 독점 폐습과 해공군의 밥그릇 투정은 구분해야 한다. 이게 근거없는 불평은 아닌데, 육군 안에서만 봐도 특전사와 인연이 전혀 없는 보직만 전전한 사람이 특전사령관이 되어 부적절한 지시를 했다는 얘기도 있고, 하나회가 극성일 때는 만들어진 경력으로 떡칠해 실무에 무능한 자들이 주요 군사령관을 독점했다는 얘기도 있다. 군인사 전반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