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レイジ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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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
'''팀명'''
LAZY
'''국가'''
일본
'''멤버'''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타나카 히로유키
이노우에 슌지
히구치 무네타카
'''레이블'''
RCA → 에어즈 → 란티스
'''활동시기'''
1977년 ~ 1981년
1997년 ~ 현재
'''음악 장르'''

'''영향을 받은 밴드'''
딥 퍼플, UFO 등
'''관련 뮤지션'''
LOUDNESS
JAM Project
오쿠이 마사미
오쿠다 타미오
1. 개요
1.1. 결성~해체
1.2. 재결성 이후~현재
2. 멤버
3. 앨범
3.1. 정규 앨범
3.1.1. 초기 활동
3.1.2. 재결성 후
3.2. 베스트 앨범
3.3. 권리 문제에 관하여


1. 개요


70년 후반에 결성했다가 한 차례 해체한 후 90년대 후반에 재결성해 현재까지 활동하는 일본의 '''전설적''' 하드록 밴드. 동시에 LOUDNESS잼 프로젝트의 출신 밴드이기도 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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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지구호 2 자켓. 왼쪽부터 타나카 히로유키, 히구치 무네타카, 카게야마 히로노부, 이노우에 슌지, 타가사키 아키라 순이다. 레이지 2002년 라이브 DVD의 부록에 있는 다큐멘터리에도 비슷한 구도의 사진이 나온다.
1977년에 데뷔, 1981년에 해체, 1998년에 재결성해[4] 2007년으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2017년'''에 '''데뷔 40주년'''을 맞는다.[5]
최초 구성원은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이노우에 슌지, 타나카 히로유키, 히구치 무네타카로 구성되었지만 현재 살아있는사람은 카게야마, 타카사키, 이노우에 이 3명. 원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시절 동창인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카사키 아키라, 타나카 히로유키가 그들의 고향인 오사카에서 1973년에 처음 결성했다가 이후 고교시절에 히구치 무네타카, 이노우에 슌지가 합류하면서 5인조로 메이저 데뷔. 밴드명은 딥 퍼플의 동명의 곡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타카사키 아키라의 집에 모여 딥 퍼플, 레인보우 등 당시 유행한 브리티시 록밴드의 테이프를 느리게 재생하여 구석부터 구석까지 카피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이노우에 슌지는 후에 닛케이 신문에 투고한 칼럼에서 연주 스킬을 높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독자적인 곡을 작곡하지 않은 것이 이후 밴드의 오리지널 곡의 부재로 인한 슬럼프에 빠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1977년 2월 오사카 아사히 TV(오사카 ABC)의 헬로 영이란 프로그램에서 딥 퍼플의 BURN을 연주[6], 카마야츠 히로시의 눈에 띄면서 1977년 7월에 싱글 Hey, I Love You로 데뷔하게 된다. 원래 이들의 취향은 하드록쪽에 가까웠으나 당시 기획사에서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계 밴드였던 스코틀랜드의 베이시티 롤러스를 모티브로 한 프로모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따라서 기획사의 의도로 아이돌 성향의 팝 밴드로 데뷔를 하게 된다. 상경하자 마자 머리를 자르고 옷을 사 입히게 하는 탓에 최초에는 반감도 심했지만, 자리를 잡게 되면 원하는 음악을 하게 해 주겠다는 소속사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카게야마는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보지만 그때는 쇼크가 컸다' 라고 말했고, 타카사키 아키라 또한 '장래를 위해 음악성을 넓히려 진지하게 연습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했다' 라고 말했다.[7]
하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서양의 하드록을 추구하는 성향 덕에 당라이브에서는 서양 록의 커버를 라이브로 보여주고는 했다.특이한 것은 하드록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록음악을 커버했다는 것이다. 사이키델릭 성향의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라든가 하드록이라 볼 수 없는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등등.물론 당시 인기 하드록 밴드였던 UFO,딥 퍼플 같은 밴드의 음악도 연주했다.
이 결과 3집인 Dream a Dream부터 조금씩 록 분위기의 곡들이 수록되었으며 4집인 Rock Diamond는 다수의 곡을 직접 본인들이 작곡하기도 하고, 한곡씩 리드보컬을 하기도 하는 등 음악성의 폭을 넓혀갔다.
1980년 도메스틱 라이브 투어 이후 '''헤비메탈 선언'''을 발표하면서 확실하게 하드록 적 성향이 드러난 앨범 우주선 지구호를 발표하지만 멤버들간의 음악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결국 해체가 결정된다. 해체 선언일은 1981년 2월 18일,[8] 도쿄 쵸후시에서의 라이브에서 해체를 선언하고, 이들의 고향이던 오사카에서의 라이브를 마친 후인 같은해 5월 말에 해체를 하게 되는데 해체 후의 이들의 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카게야마 히로노부 : 솔로로 데뷔, 이후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뛰어듬. 간간히 밴드 활동 참가.
  • 이노우에 슌지 : 타나카 히로유키와 함께 네버랜드, AIRBLANCA로 활동, 이후 음악 프로듀서로 전업.
  • 타나카 히로유키 : 이노우에 슌지와 함께 활동, 이후 음악 외적인 개인 활동 전념.
  • 타카사키 아키라&히구치 무네타카 : 니이하라 미노루, 야마시타 마사요시와 함께 LOUDNESS로 활동, 히구치는 1993년에 LOUDNESS를 탈퇴하고 한동한 니이하라 미노루와 SLY로 활동하다가 2001년부터 잠시 야마시타 마사요시와 Blood Circus라는 밴드 활동도 겸임했다.
'''결론적으로 이 해체 자체가 일본 록/메탈계와 애니송계에 메가톤급 폭풍을 불러왔으니, 바로 애니송계의 슈퍼 보컬리스트인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일본 메탈계의 거물 밴드인 LOUDNESS가 나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후 1997년에 전격 부활을 결정[9], 이듬해 3월에 울트라맨 다이나의 두번째 엔딩곡인 ULTRA HIGH[10]로 복귀하면서 애니메이션 방면으로 영역을 확대했으며[11] 1999년 11월 에어즈의 파산 이후 시부야에서의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멤버인 이노우에 슌지가 사장으로 있는 란티스로 이적한다.[12] 란티스에서 두장의 싱글과 한장의 정규 앨범 및 라이브 DVD를 냈지만 멤버들이 다른 쪽에서 활동을 겸업하면서 주로 팬 미팅과 라이브 활동에 중심을 두게 된다.
이런 와중에 2006년 9월에 타나카 히로유키가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으며 2008년 11월 30일에는 밴드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인 히구치 무네타카가 간암으로 사망해 현재 멤버는 3명으로 줄었다.
2008년, 오사카 ABC 홀이 문을 닫게 될 당시 그들이 마지막 라이브를 열창했는데 이는 사이토 카즈요시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이유로는 LAZY의 메이저 데뷔가 이루어진 곳이 바로 그 오사카 ABC 홀이었기 때문. 자신들의 시작을 알렸던 곳에서 그들의 현재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찾았을 정도로 공연은 크게 화제를 모았다.[13]
2009년 란티스 마츠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막판에 뒤집어 엎고[14] 레이지 명의로 등장해 당시 공연장에 있던 오쿠이 마사미를 울렸다. 공연장에서 Burn을 피로했고[15] 잼 프로젝트의 서포트를 받아 진 마징가 충격! Z편의 첫 주제가인 感じてKnight를 열창했다.[16] 또 2009년 나카노 선플라자에서 있었던 히구치의 추모 공연해서도 연주했는데 이 때 참가 아티스트 라인업은 히구치 무네타카의 인덕을 반영하듯 무척 화려했다. 다만 히구치의 추모 라이브에서 LAZY의 곡은 기본적으로 밴드 멤버였던 이노우에 슌지가 맡았으나 라이브 중간에 나온 딥 퍼플의 Burn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Lazy의 멤버인 이노우에 슌지 대신에 무라사키(紫)의 조지 무라사키가 키보드를 연주했다. 그 외에도 라우드니스니이하라 미노루, 유니콘의 오쿠다 타미오, 클라우드 나인의 야즈가 보컬로 서포트 했으며 베이스는 라우드니스의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은 니이하라 미노루의 데드 채플린에서 활동했던 스가누마 코조가 담당했다. 유투브에도 이 영상은 게재되어 있다.
2009년 LOUDNESS의 히구치 무네타카 추모 공연에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이노우에 슌지가 특별 게스트로 참가해 타가사키 아키라와 함께 라이브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또 오쿠다 타미오가 있어서 난리가 아니었다는데.......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오쿠다 타미오, 니이하라 미노루가 한 자리에 선 모습. 오쿠다는 기타를 메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이들이 처음 활동할 당시 그들의 팬들이 지금 40이 넘은 중년이다. 이 가운데는 오쿠이 마사미나 이이지마 나오코 같은 인물이 있을 정도. 아이돌 활동 시절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도 흑역사로 치부하는 듯 싶지만[17]위에서 언급한 이이지마 나오코는 아이돌 시절의 레이지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들로서도 당혹스러울 듯 싶다.
또한 재결성 이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활동 내용을 보면 은근히 코믹함도 늘어났다는 것이 들리는 듯. 멤버 전원이 간사이 지방 출신이며[18] 히구치 무네타카를 제외하고 나머지 4인이 사일런트 뫼비우스 이미지 앨범이 참가한 전력이 있다.[19]
2011년에 개봉되는 토와노쿠온의 주제가인 Reckless를 담당했다.
2014년 5월 25일, 란티스 마츠리 2014 간사이 공연 1일차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번엔 이노우에가 직접 나선것 같다. 2009년에 대박을 보더니 정말로?
한국에 LAZY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 한 시기는 사이버 포뮬러 SIN의 오프닝곡인 Pray를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
JAM Project의 멤버이기도 한 오쿠이 마사미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LAZY의 팬이다. 2016년 7월 25일 그녀의 트위터를 통해 메이져 데뷔 39주년을 축하하기도.##
2017년에 데뷔 40주년을 맞아 기념 라이브 및 신곡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신곡이 들어간 싱글 앨범 Slow and Steady는 2017년 12월 6일 발매 됐으며, 특이하게 앨범 제목과 곡들 중 맞는 이름이 없다. 1번 곡과 2번 곡의 작사는 유명 작사가인 모리 유키노조. 라이브는 12월 17일, 오사카에서, 12월 27일 도쿄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1.1. 결성~해체


데뷔 초기에는 아이돌적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팀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고뇌가 있었다고 한다. 카게야마 히로노부에 따르면 당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과 괴리가 있다고 할 정도. 이 때문에 3집부터는 록/메탈적 이미지를 내기 시작했고 라이브에서도 서양 록을 커버링 하는 경우가 많았다.[21]
특히 3집 이후에는 멤버들이 각자 보컬을 맡기도 하면서 록적인 이미지를 드러냈지만 역시나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회귀 선언이 필요했기에 그 뒤에 바로 헤비메탈 선언이 나오게 되었다.
우주선지구호(宇宙船地球号)를 통해 확실히 헤비메탈적 이미지를 드러내긴 했지만 곧 이어서 멤버들 간의 음악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이들 멤버들이 팀을 해체한 이후 LOUDNESS, 네버랜드 등을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된다.
이 당시의 대표곡은 DREAMER, 感じてナイト, EARTH ARK(宇宙船地球号)로 대표, 특히 EARTH ARK는 후기에 리메이크 된다.

1.2. 재결성 이후~현재


1997년 재결성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싱글 ULTRA HIGH(울트라맨 다이나 2기 엔딩곡)[22]을 통해 진정한 헤비메탈적 요소를 드러내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레이지는 자신들이 인기를 끌게 만들었던 빨간두건양 조심해(赤頭巾ちゃん御用心)[23][24]의 분위기를 뒤집어 버리는 흑두건(黒頭巾)이라는 곡을 내면서 확실히 헤비메탈적 스타일로 고쳤다.[25]
후기에는 에어즈-란티스를 소속사로 한 만큼 애니메이션 음악도 관여하게 되는데,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SIN의 주제가를 맡아 후기 팬들 사이에 확실하게 이름을 박게 된다. 이후 ZOE 돌로리스 I의 주제가를 맡는 등 확연히 헤비메탈적 성향을 보인다.
2010년 현재 최신은 1980년에 발매된 感じてナイト를 리메이크한 感じてKnight이지만 2011년 7월 13일에 토와노쿠온의 주제가인 Reckless가 발매되었다. Reckless는 다나카 히로유키와 히구치 무네타카 사후 LAZY라는 이름으로 내는 제 1호 싱글로 바로 전 싱글인 感じてKnight와 달리 서포트 멤버가 없이 나올 예정이나 베이스와 드럼 한정으로 세션을 채용했다.[26]
이 시기의 곡을 꼽자면 ULTRA HIGH, 흑두건, Pray[27], Zone of the Enders[28], 感じてKnight, 그리고 2011년에 발매된 Reckless가 있다. 2017년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모리 유키노조의 가사를 받아서 곡을 쓴 신곡 2곡과 카게야마가 작사와 작곡을 모두 한 신곡 1곡을 더한 싱글 Slow and Steady를 발표했다. 타이틀 곡은 모리 유키노조 작사, 이노우에 슌지가 작곡한 Wandering Soul.
2017년 12월에는 결성 4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드러머로는 무라이시 마사유키, 베이시스트로는 야마모토 나오야가 참가하였다. 도쿄 공연의 경우에는 헤비메탈 밴드 ANTHEM의 리더 시바타 나오토가 특별 게스트로 참여하였다.

2. 멤버


괄호 안에 있는 이름은 아이돌 활동 당시의 별칭이다.
  • 보컬 : 카게야마 히로노부(미쉘)
  • 기타 : 타가사키 아키라(수지)
  • 베이스 : 타나카 히로유키(퍼니)(2006년 9월 별세)
  • 키보드 : 이노우에 슌지(포키) - 2012년 현재 리더 겸 프로듀서[29][30]
  • 드럼 : 히구치 무네타카(데이비)(2008년 11월 별세)

3. 앨범



3.1. 정규 앨범



3.1.1. 초기 활동


RCA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앨범들. 1990년대 이후 리마스터링 되었고 일부 싱글곡들을 포함해 다시 나온바 있다. 초기에는 LP판으로 낸 앨범들이다.
  • This is the LAZY
  • 레이지를 뒤쫓아라(レイジーを追いかけろ)
  • Dream a Dream
  • Rock Diamond
  • LAZY V
  • 우주선 지구호(宇宙船地球号)
  • 타오르는 청춘(燃えつきた青春)

3.1.2. 재결성 후


소속은 에어즈 - 란티스. 이 중 우주선 지구호 2를 제외한 나머지 두 앨범은 2001년 경에 토쿠마 저팬을 통해 다시 발매되었다.
  • Happy Time
  • Happy Time Tour '98~흑두건이 하는 대로~(HAPPY TIME TOUR '98〜黒頭巾のなすがまま〜)
  • 우주선 지구호 2(宇宙船地球号II)

3.2. 베스트 앨범


전곡은 처음에 소속된 RCA(현 BMG 재팬) 시절의 음원이다.
  • Collection~정열의 청춘(Collection〜情熱の青春)
  • 베스트 히트 레이지(ベスト・ヒット・レイジー)
  • 베스트(ベスト)
  • 베스트 콜렉션 1977-1981(ベストコレクション 1977-1981)
  • 히트 콜렉션(ヒット・コレクション)
  • GOLDEN☆BEST

3.3. 권리 문제에 관하여


1999년 에어즈 해체 이후 음반 권리가 상당히 꼬여버린 상태이다. 1998년에 발매되었던 앨범 Happy Time은 에어즈[31] 해체 이후 토쿠마재팬의 계열사인 트라이엠에서 발매했는데, 이는 에어즈의 판매위탁원이던 반다이 뮤직이 해체된 이후 일본 크라운이 아뮤즈로부터 에어즈 레이블을 인수받았으나, 일본 크라운의 모기업이 미츠비시계열에서 다이이치 흥업으로 바뀌면서 레이블이 폐지, 이후 트라이엠 역시 토쿠마로 넘어가는 등 복잡한 상황을 보여줬다.
그런데 여기에 더 나아가서 ULTRA HIGH의 경우 2004년 이후에는 일본 콜롬비아 계열의 회사인 프리즘에서 권리를 소유한 것으로 나와 한 곡의 권리를 2개의 회사가 가지고 있는 판국이다. 여기에 츠부라야 음악출판마저 이 곡의 권리를 주장하는 등, 권리문제는 상당히 꼬여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원곡 가수진은 현재 란티스 소속이란 것이 아이러니. 즉 가수들에게 저작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 음반에 4개 회사가 권리를 갖는 꼴이다.

[1] 데뷔 40주년 기념 로고이다.[2] 사진은 란티스 특설 사이트에 헤더그림으로 올라간 사진이다.[3]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설이 된다.[4] 실질적으로 재결성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5] 멤버들의 활동 경력도 이 시점을 기점으로 기산하기 때문에 현재 생존한 카게야마, 타카사키, 이노우에는 50대에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케이스가 된다.[6] 본 곡의 일본 현지 명은 자주색 불꽃(紫の炎)이었다.[7] 사실 카마야츠 히로시 자신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있었다고 한다.[8] 그런데, 이 날은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생일이다. [9] 이노우에 슌지의 제안, 당시 고민하던 타카사키 아키라에게 복귀의 쐐기를 박은 것은 그와 같은 wiki:"LOUDNESS" 에 몸담고 있던 야마시타 마사요시였다.[10] 울트라맨 다이나는 1997년 9월부터 방송. 본 곡이 처음 방송에 뜬 것은 1998년 3월 14일에 방송된 울트라맨 다이나 27화다.[11] 참고로 완전 부활은 앨범 HAPPY TIME이 나올 당시. ULTRA HIGH 싱글 당시에는 다나카 히로유키가 참가하지 못해 타카사키 아키라가 베이스 연주를 대신 했다고 한다.[12] 참고로 부활하게 되는 1997년을 기해 후기로 보는데 이 당시의 레이지는 키보드인 이노우에 슌지가 중심이었다. 당시 이노우에 슌지는 프로듀싱도 겸한 상황.[13] 다만 이 라이브 당시 타나카 히로유키는 사망한 상태였고 히구치 무네타카는 사실상 활동 중단인지라 베이스와 드럼에 서포트 멤버를 썼다는 아쉬움이 남았다.[14] 실제로도 공연 며칠 전까지 이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란티스에서 앨범을 낸 시기가 대체적으로 초기에 있었다는 것과 멤버 2명이 현재 고인이 된 것을 생각하면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았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후에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이야기하기를 자신이 타카사키 아키라에게 전화를 걸어 란티스 마츠리에 레이지 명의로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타카사키 아키라는 라우드니스의 활동에 집중하고 레이지로서의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었기 때문에 란티스 마츠리가 애니송 페스티벌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고.그러니까 친구 말듣고 엉겁결에 나가게 된 것. 그럼에도 공연 끝나고 좋아했다.[15] 그들의 첫 방송 출장이던 헬로 영!에서 그들이 부른 곡이다!![16] 2009년 4월 4일 ULTIMATE LAZY For MAZIGNER로 발매된 싱글로 레이지 멤버 3인을 주로 하고 사이토 카즈요시, 오쿠다 타미오, 잼 프로젝트의 서포트를 받아 발매되었다.[17] 아래에 나오겠지만 특히 타카사키 아키라와 히구치 무네타카는 그런 아이돌 노선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18] 히구치 무네타카를 뺀 4인이 오사카출신이며 히구치 무네타카만 나라 출신이다.[19] 히구치 무네타카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쪽도 어떤 경로로든 참가했거나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20] 실제로 당시에는 Pray가 카게야마의 솔로곡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21] 77년에 발매한 라이브 앨범인 レイジーを追いかけろ(레이지를 뒤쫓아라)를 들어보면 비틀즈나 스테판 울프,UFO 같은 서양 록밴드나 가수들의 커버곡이 절반 가량 수록되어 있다.[22] 참고로 이 곡의 작곡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1998년 8월호 Young Guitar와의 인터뷰에서 타카사키 아키라는 아들과 함께 전자전대 메가레인저성수전대 긴가맨 등을 보고 있었기에 그런 애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23] 사실 이 곡 자체는 레이지 멤버들(특히 히구치 무네타카와 타카사키 아키라)이 싫어하는 곡으로 웬만한 라이브에서는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근데 또 타가사키 아키라가 없는 곳에서는 연주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 실제로 재결성의 조건이 저것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타카사키 아키라가 레이지의 재결성 이듬해인 99년 기타플레이어지 일본판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했다.[24] 참고로 재결성 후 본 곡이 연주된 사례는 2008년 애니파라 음악관 Extream Live 2008에서 연주된 것으로 이 때에는 타카사키 아키라와 히구치 무네타카와는 무관하게 애니파라 음악관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25] 보컬은 타카사키 아키라로 그의 목소리는마치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나 악셉트의 우도 딕슈나이더의 거친 쇳소리를 연상시킨다. 가사의 내용은 소속사 때문에 아이돌 밴드로 활동해야 했던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빨간두건양 조심해(赤頭巾ちゃん御用心)에 빗대어 냉소적으로 풍자한 것.[26] 베이시스트 : 야마모토 나오야, 현 애니파라 음악관 베이스 세션./드럼 : 무라이시 마사유키, 80년대 일본 프로그레시브 록씬에서 유명했던 밴드 Kenso출신으로 잼 프로젝트 이외에도 바우와우의 히토미 겐키 솔로 라이브, 마츠토야 유미의 콘서트에서 세션으로 참여했다.[27] 사이버 포뮬러 SIN의 주제가[28] ZOE 돌로리스 I의 주제가[29]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자신의 사이트 블로그를 통해 이노우에 슌지가 리더라고 발언했다. http://airblanca.com/wp/?m=20120201[30] 참고로 저 일기에서 레코드 회사 사장직이 부업이라고 적었다. 정말 부업 맞을까?[31] 에어즈 자체가 아뮤즈와 반다이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합작으로 세워진 회사였다. 현재도 법인은 존속 중이나 자사의 음악 판권만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