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건설

 

'''기업개요'''
[image]
'''정식명칭'''
대주건설주식회사 (大洲建設株式會社)
'''영문명칭'''
DAEJU Construction Co., Ltd.
'''설립일'''
2001년 6월 1일[1]
'''업종명'''
건물 건설업
'''브랜드'''
피오레(Fiore)
'''기업규모'''
중견기업
'''대표이사'''
허진우
[2]
1. 개요
2. 역사
2.1. 설립과 전성기
2.2. 몰락과 퇴출
3. 주택브랜드
4. 역대 임원
4.1. 대주건설
5. 계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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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주건설'''은 전남 광양 출신 체신부 공무원이었던 허재호 회장이 1981년 5월 설립한 대주종합건설이 모태이며 사옥은 광주광역시 북구 금남로 146(누문동)에 있었다.

2. 역사



2.1. 설립과 전성기


1981년 5월 설립된 후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광주 전남지역에 아파트를 건설하면서[3] 빠른 속도로 광주지역 도급 순위 2위까지 규모가 커졌지만 1995년 일어난 불법대출 사건으로 인해 자금난에 빠지면서 인수 기업을 물색하는 처지가 되었고, 마침 방송사업에 관심이 있었고 건설 및 아파트 분양 사업도 키우고 있던 나산그룹kbc광주방송 지분과 함께 대주건설을 넘겼고 허재호 회장은 자회사였던 대주주택의 이름을 대주건설로 바꾸고 아파트 건설업을 계속했다.[4]
사실상 전부나 마찬가지인 대주건설과 광주방송 지분을 매각한게 어찌보면 지역 방송국까지 보유했던 사업가의 몰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IMF사태 직전에 적자에 허덕이던 대주건설을 나산에 떠넘긴 것은 허재호 회장 입장에서는 IMF를 순조롭게 넘길 수 있었던 신의 한수였고, 나산그룹 입장에서는 그룹 해체의 원인이 되었다.
허재호 회장은 대주건설과 kbc광주방송 지분을 매각해서 얻은 돈을 통해 광주 전역과 수도권에 부지를 대거 매입해서 '대주파크빌'이라는 브랜드로 아파트를 지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파트 사업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토대로 2000년부터 본격적인 인수합병에 뛰어들어서 두림제지, 대한화재, 대한조선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단순 건설사 집단이 아닌 건설-제조-금융 3각 체제를 확립했다. 2005년부터는 대주피오레 브랜드를 내세워서 본격적으로 전국 주택시장에 뛰어들면서 매년 약 1만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하며 승승장구했다. 2006년에는 당시 시공능력 1위였던 '''대우건설'''의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화제를 일으켰지만 결국 실패했고[5] 그 다음으로 노린 것이 동아건설이었는데 이 역시도 근소한 차이로 낙찰에 실패하면서 대형건설사 인수전은 포기했지만 이후에도 쌍용건설, 광주은행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고래를 삼키려는 새우같은 대주의 행보는 재계의 눈길을 끌었다.

2.2. 몰락과 퇴출


타오르는 건설 경기에 대주건설이 제대로 호황세를 타면서 건설부문외 다른 사업도 확장하게 되며 추후 그룹의 중심 사업 분야를 조선업으로 정하면서 대한조선에 올인하다시피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다. 하지만 늘어난 아파트 공급만큼 미분양이 계속해서 쌓이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결국 대한화재롯데에 매각하고 아파트 사업부지도 일부 매물로 내놓았고 유동성 위기설이 돌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허재호 회장이 무려 500억원의 탈세와 100억원의 횡령 혐의로 검찰에 조사를 받으면서 대주그룹의 이미지는 매우 나빠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조선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었고 결국 그룹 전체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면서 그룹의 모태나 마찬가지인 대주건설이 맡은 아파트 공사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입주가 안되니 분양대금을 받을수가 없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결정적으로 2008년 일어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자금조달이 힘든 상황에서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이던 대한조선은 대주그룹 전체를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게 되었고, 2008년 기준 시공능력평가 전국 52위, 전남 6위까지 올라갔던 대주건설은 2009년 1월 건설회사 중에는 유일하게 퇴출 대상에 포함되면서 손발이 모두 묶이게 되었으며 2010년 10월에 광주은행이 제시한 어음 1,496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결국 부도 처리되었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퇴출 이후 모든 현장이 공사가 사실상 멈춘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그나마 거의 완공된 몇몇 현장은 입주민들이 직접 공사비를 지불해서 공사를 마무리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부도 이후 모든 현장이 매각되었다. 7개 현장이 있었던 광주 수완지구의 대방노블랜드2차, 3차, 5차, 6차와 수완지구 호반베르디움 1차가 대표적 사례. 이 외에도 전국 수십개의 현장이 다른 건설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허재호 회장은 이후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난 후 2010년 1월 뉴질랜드로 도피해서 체류하다가 2014년 귀국후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벌금을 강제노역형으로 탕감하는 처분을 받았는데 하루에 5억원씩 탕감하는 조건으로 황제노역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황제노역 사건 문서 참조.
허재호 회장은 뉴질랜드에서 KNC라는 건설회사를 차려 운영 중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쓰던 피오레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3. 주택브랜드


[image]
대주피오레(Fiore)
대주파크빌(PARKVill)


4. 역대 임원



4.1. 대주건설


  • 대표이사 회장
    • 허재호 (1981~2010 )
  • 대표이사 사장
    • 허진우

5. 계열사


  • 건설
    • 대주건설
    • 대주주택
    • 대한건설(구 두림건설)
  • 조선
    • 대한조선
    • 대한중공업
  • 해운
    • 대한상선
  • 제조
    • 대한시멘트
    • 대한기초소재
    • 대한페이퍼텍(구 두림제지)
  • 기타
    • 함평다이너스티컨트리클럽
    • 동두천다이너스티컨트리클럽
    • 광주일보
    • 리빙TV
    • [6]
    • 대주문화재단

[1] 신 법인 기준[2] 현재 사이트 폐쇄[3] 광주에는 9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 중에 대주아파트가 가장 많을 정도다.[4] 이후 역사가 좀 복잡한데, 나산그룹에 인수된 대주건설은 사명을 (주)송산으로 변경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나산그룹이 1997년 외환 위기로 공중분해되면서 대신그룹 양재봉 회장의 장남인 양회천씨가 인수하면서 이름을 송촌건설로 또 바꾸었다. 이후 송촌그룹의 경영난으로 광주방송 지분과 따로 매각되면서 송촌건설은 삼능건설에 인수되게 된다. 2009년 모회사인 삼능건설이 대침체의 타격으로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같이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즉, 1981년 설립된 대주건설과 2010년 부도난 대주건설이 다른 회사라는 것이다.[5] 이때 대우건설을 인수한 곳이 바로 '''금호그룹'''이다. 하지만 인수 이후 금호그룹에 엄청난 유동성 위기가 닥쳤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는 것을 볼때, 자산 규모가 금호그룹과 비교도 안되는 대주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면 아마 금방 쓰러졌을 것이다.[6] 1996년 매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