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
錦南路 / Geumnam-ro
1. 개요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5.18 민주광장부터 북구 발산교까지 이어지는 도로. 길이 약 2.6㎞, 왕복 5~6차로인 도로이자 광주의 전통적인 도심 중앙 도로 역할을 하여 왔다. 즉, 광주광역시 원도심의 핵심도로인 셈. '금남'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때 활약한 정충신(鄭忠信)의 군호(금남군, 錦南君)에서 유래되었다. 이 도로에서 유래된 법정동명인 금남로1~5가가 있으며 행정동 충장동이 관할한다.
1.1. 경로
본래 5.18민주광장~금남로공원사거리~금남로5가사거리~금남로5가역사거리~유동사거리[2] 구간만을 일컬었으나 90년대에 유동사거리~임동오거리~발산교 구간을 연장하여 지금에 이른다. 발산교 이후로는 천변우로로 직결되며, 광천1교를 지나 무진대로로 이어진다. 천변우로의 해당 구간은 사실상 금남로 취급으로 왕복 9차로로 확장되어있다.
충장로와는 문화전당에서 금남로5가역까지 평행으로 이어진다.
첨단09와 518이 금남로 전 구간을 경유한다. 이외에 광주 도시철도 1호선과 다른 온갖 버스 노선이 경유하여 문화전당-금남로4가역-충파(광주세무서) 구역은 주요 환승 거점 중 하나다.
2. 특이사항
충장로가 과거 상권의 중심지 기능을 해왔다면, 도심 기능이 상무지구로 옮겨지기 전까지 금남로는 행정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일부 기능이 남아있다. 덕분에 2004년 광주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금남로는 전국적 차원의 만성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구간이었고, 광주광역시 시내버스 대부분의 노선들이 금남로를 경유했다. 특히 대인동에 광주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시절에는 교통사정이 그야말로 더 지옥이었다. 이에 대인동 시외터미널은 중흥동 광주고속터미널, 신안동 중앙고속터미널과 함께 1991년 서구 광천동에 광천터미널로 통합 이전하게 되었고 교통난을 그나마 덜게 된다.
버스 터미널 이전과 함께 지하철 개통까지는 여러모로 좋았으나, 금남로를 지키고 있던 역사유적이자 행정기관의 최종보스 노릇을 하던 전남도청이 남악신도시로 이전해 가고, 역시 인근에 있던 광주광역시청과 시의회, 그리고 주요 공공기관 및 금융회사들의 호남본부나 광주광역시 사무소들 역시 대부분 신도심인 상무지구로 이전하면서 예전에 비해 상권이 쇠퇴한 상태. 하지만 도청 자리에 호남의 최대 규모 문화 컨텐츠 시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행정기관들의 복잡했던 거리 느낌의 시절과는 달리 '''문화적'''인 거리 느낌으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5.18 관련 행사나 '7080 광주충장축제'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포함한 기타 컨텐츠 행사들과 지역 행사들이 잡히는 경우 5.18 민주광장부터 금남로공원까지의 구간의 교통이 통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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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클린로드'라는 물 분사 장치를 전일빌딩 앞부터 금남로5가교차로까지 구간의 중앙선에 설치했다. 여기에 사용되는 물은 지하철역에서 발생되는 유출 지하수를 저장했다가 사용한다고 한다. 매일 오전 4시 30분마다 도로 위에 지하수를 분사하고 폭염특보와 미세먼지주의보 발령시 하루 최대 4회까지 작동하도록 운영하고 있으며 운전자가 가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각 시작점에 전광판도 설치되었다.
2.1. 5.18 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의 주요 장소이며, 항쟁기간 동안 가장 시민들이 모여든 거점 역할을 수행했었기 때문에 비극적인 사건이 많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금남로1가의 옛 전남도청에서 옛 광주은행 사거리 518m는 2011년 8월 30일 광주광역시에 의하여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었다고한다.참고. 5.18 사적지 중 4, 5, 6호가 이 곳에 몰려있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금남로의 상권이 다소 쇠퇴한 이후에도 광주광역시에서 각종 대규모 정치 집회가 벌어질 때는 이 금남로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 2008년 촛불집회와 2016~7년 박근혜 퇴진 집회 역시 이 금남로 광장에서 열렸다. 마침 문화전당 조성 이후로 분수대 주위가 광화문광장처럼 보행자 공간이 되어 집회를 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 되었다.
2.2. 도시철도
광주의 대표적인 번화가답게 금남로4가역, 금남로5가역, 문화전당역까지 3개의 역을 지나며, 역마다 거리도 가깝다.
2.3. 지하상가
금남로4가역과 문화전당역 사이에 충금지하상가와 금남로지하상가가 서로 연결되어있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지하상가를 통해서 두 역 사이를 왕래할 수 있다.
3. 광주프린지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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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본격적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되고 난후, 2015년부터 처음 시작된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은 장르나 형식,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아마추어·전문 예술인과 시민이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 토요일의 유쾌한 문화난장, 광주 대표 브랜드'광장문화축제'이다.
매주 토요일 2시부터 7시까지 5.18광장 및 금남로 일대에서 진행되며, 매월 넷째주 토요일은 차없는 거리를 만들어 규모를 확대하여 진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명 ''''제2의 충장로축제''''로 불리울 정도로 성공하고 있다.
4. 시
이곳을 소재로 한 시들도 있다. 다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 참고로 아래의 작품들은 모두 5.18 관련 문학작품 선집인 <5월문학총서>에 실려 있는 시들이기도 하다.
1984년 시집 <국밥과 희망>에 수록.
오월육필시집 <가난한 찔레꽃>(2006년)수록.
1984년 시집 <조국의 별>에 수록.
1993년 시집<딸에게 주는 사랑 노래>에 수록.
2000년 시집 <바람도서관>에 수록.
5.18 32주년 기념 '오월시화전'에서 발표.
[1] 사진 속에 보이는 회전교차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로 인해 기능을 잃고, 지금은 사진 우측 도로만 이용 가능하다.[2] 발산교~유동 구간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당연히 '유동삼거리'였다.[3] 1948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69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1995년 <문예중앙>에 중편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선보이며 소설도 함께 쓰고 있다. 시집으로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칼과 흙> <지평선에 서서>등이 있다. 조선대 초빙교수,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4] 193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전남일보 창간 1주년 기념 현상공모에 장편소설 <산화>가 당선되기도 했다. 소설집으로 <효녀무> <황토빛 추억> 장편소설로 <달 뜨면 가오리다> <춘추전국시대>등이 있고, 시집으로 <새벽 백두 정상에서>가 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상임고문 역임.[5] 1958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83년 <시조문학>과 1985년 무크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눈물의 옷고름 깃발 삼아> <딸에게 주는 사랑 노래> <빈들에 혼자인 사람일수록> 등이 있다.[6] 광주에서 태어나 1999년 <시와사람>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의 도서관>이 있다.[7] 1957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988년 시집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