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가렛

 


[image]
이름
데이비드 가렛/David Garrett
본명
다비트 본가르츠/David Bongartz
출생
1980년 9월 4일 (44세)
서독 아헨
(現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아헨)
국적

소속사
Decca Music Group
링크

1. 개요
2. 음악 경력
3. 기타 경력
4. 대표 앨범
5. 시선과 평가


1. 개요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2. 음악 경력


4세때 형이 배우던 바이올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바이올린을 배운지 1년만에 놀라운 천재성으로 예후디 메뉴힌 이후 가장 주목받는 신동으로 재능을 드러낸다.
7세 부터는 뤼벡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며 홈스쿨링을 하였고, 1990년 게르트 알브레흐트의 지휘로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열 살에 첫 공식 연주회를 가졌다.
1991년에는 독일 대통령 Richard von Weizscker의 특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였는데, 가렛의 연주에 큰 감명을 받은 대통령으로 부터 11세의 나이로 생애 첫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물 받는다. 이 바이올린은 '황금시대' 중 가장 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인 '산 로렌조' 라는 유명한 물건이다.
12세 부터는 폴란드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다 헨델(Ida Haendel)이 가렛의 스승이 되었고, 이후에도 영국의 예후디 메뉴힌(Yirudi Menuhin)과 미국의 아이작 스턴(Isaac Stern)등 이름만 들어도 전설적인 거장들을 사사하며 이들의 아낌없는 칭찬 아래 천재성의 화려한 면모를 뽐내 나가게 된다.
13세에는 최연소의 나이로 도이치 그라모폰(Deutche Grammophon)과 '바이올린 솔리스트'로써 음반 발매 독점계약을 체결 하였다.
14세에는 파가니니의 전곡을 연주하며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콘서트를 열었고, 그의 야외 공연은 언제나 매진을 기록했다.
1996년 영국 런던의 왕립 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 입학하였으나, 자신의 음악 활동과 학교의 학업 방식이 잘 맞지 않다고 판단, 학교측과의 협의를 거쳐 첫 학기를 끝으로 자퇴를 하게 된다.
이후 스승이자 최고의 거장 예후디 메뉴힌 (Yirudi Menuhin)과 '엘가 협주곡' 을 함께 협연하였고, 교황의 '성직 50주년 기념 콘서트'에도 연주에 오르며 또 한번 큰 화제를 모았다.
1997년 '인도 독립 50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린 4월 16일 '델피'와 '봄베이'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의 지휘 하에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당시 데이비드는 40도의 고열과 계속되는 구토 증세로 연주 불가의 상태에 처해 있었으나, 아스피린 두 알로 버티며 무대에 올라 놀라운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완벽한 연주를 해냈다. 그리고 같은해 바이올린 대신 비올라 독주를 맡아 스승인 아이다 헨델(Ida Haendel)과 Bournemouth Symphony 와의 협연을 통해 나란히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98년에도 거장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수단트(Herbert Soudant)가 지휘하는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시노폴리(Guiseppe Sinopoli)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국립 실내악단 등과 함께 협연을 했다.
19세에는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의 지휘로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루푸르크-심포네르)와 함께 베를린에서 데뷔 연주를 가졌는데, 이 연주는 비평가들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연주의 호평은 2000년 하노버 엑스포 행사 까지도 이어져 특별 초청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 줄리어드 스쿨에 입학하였고, 입학생 중 수석의 자격으로 이작 펄만 (Itzhak Perlman)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는 줄리어드에서 이작 펄만이 받은 최초의 제자였다.
그러나 클래식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일찌감치 대성한 아들이 이미 실력과 경력에서 줄리어드 정도의 배움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의 반대와는 달리, 자신의 테크닉과 연주를 한 번 더 가다듬고 이작 펄만도 꼭 사사하고 싶어한 가렛의 의견이 상충한다. 결국 누구보다 아낌없는 지원을 하던 가렛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의절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학비 지원이 끊긴 가렛은 줄리어드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3살 때부터 이미 훌륭한 프로 연주가가 되어 있었지만, 줄리어드에 재학 중에는 펄만의 수제자로써 학업에 전력을 다 하였다. 복잡 난해한 긴 연주와 악보도 어릴때부터 바로 암기해 버리기로 유명한 가렛은 줄리어드 재학 시기에는 독주자로써 자신이 협연의 오케스트라까지 전부 완벽히 이해하고 이끌어 나가기를 원했고, 협연의 연주까지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는 수업을 펄만을 통해 중점적으로 배워나갔다.
또한 펄만 뿐만 아니라 작곡으로 유명한 줄리어드의 에릭 에바즌(Eric Ewazen)에게도 사사를 받으며 연주 및 작곡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펄만은 자신과 에릭 에바즌 모두 가렛의 스펙타클하고 진정성 있는 연주가 제자였을때 조차 이미 놀라웠으며, 가렛을 가르치면서 두 사람이 큰 기쁨을 얻었고, 그의 비범하고 놀라운 재능에 대해 입을 모았다고 했다.
2003년, 데이비드 가렛은 줄리어드 요한 세바스찬 바흐 작곡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년 줄리어드를 졸업한다.
졸업 후 가렛이 사용했던 악기는 1772년에 제작된 죠반니 바띠스타 과다니니(Giovanni Battista Guadagnini)로, 스트라디 바리우스에도 뒤지지 않는 15억 상당의 소중한 세계적 명기였다. 그러나 2007년 연주용 신발을 신은 채 계단을 오르다 빗물에 미끄러지는 불운의 사고를 당하며 파손되고 만다. 그 뒤로는 스트라디바리우스(A.Busch.1716)를 사용하고 있다. 황금기 시대의 Stradivarius로 300살이 넘는 60억대의 악기이다.
2006년은 유니버설 DECCA 레이블로 소속사를 바꾸고 크로스 오버에도 본격적인 눈을 돌린다. 그러나 가렛은 자신의 클래식 경력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공연의 2/3는 여전히 클래식 공연이다. 또한 기존의 크로스오버와 달리 자신의 크로스오버 활동 중에도 전자바이올린을 사용하지 않는다.
본래 크로스오버 연주에는 클래식 바이올린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자바이올린을 쥐어야 하지만, 가렛은 클래식 바이올린으로도 다양한 곡들의 연주를 가능하게 하기위해 연주 기법과 협연과 배경의 세밀한 편곡까지 모두 스스로 한다. 그러면서 클래식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도 그대로 사용 중이다.
그동안 정통 클래식으로는 특별한 성과가 없던 연주가들이 크로스 오버로 눈을 돌렸던 것과는 달리, 가렛은 클래식계에서 어릴때부터 화려한 실력으로 초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크로스오버로의 전향과 활동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크로스오버 후의 락과 접목시킨 그의 음반 또한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줄리어드에서 익힌 작곡 실력을 바탕으로 완성도 측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데뷔 이후 클래식 음반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 음반 또한 발표하는 앨범마다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클래식크로스오버의 두 마리 토끼 모두를 거머쥔 데이비드 가렛은 자신의 음악 활동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도 보다 가깝게 클래식을 전해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반 대중들을 크로스오버에서 시작해 전통 클래식의 세계까지 이끌고 싶다는 것이 그의 목표인 셈이다.
2013년엔 '''떼창으로 유명한 영국 락밴드의 명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버젼을 보여줬다.

3. 기타 경력


1.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2014년 탁월한 외모와 빼어난 연주 실력으로 영화에 캐스팅 되었고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영화 음악을 만들고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을 비롯한 파가니니의 곡들을 모두 직접 연주하였다.
파가니니의 곡들은 당대에는 파가니니 외에는 누구도 연주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저런 연주가 가능 했다고 이야기 되었을 만큼 뛰어난 테크닉과 고난도 기교가 주를 이루는데, 후대에도 연주불가 판정이 될 만큼 극악한 난이도로 바이올린 거장들 조차 긴장하고 꺼리게 만든다. 콩쿨곡이 아닌 정식 공연을 올리는 일은 여전히 매우 드문 일이며,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경우는 전무한 수준이다.
가장 대표적인 Caprice24는 오늘날 어설픈 연주와 흉내를 내는 정도에도 관심을 받는 연주자들도 있을 만큼 어려운 곡이지만, 어설픈 흉내는 안하느니만 못할 만큼 세기의 명장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곡이기도 하다.
10도화음 /각종 더블스탑 /하모닉스/자연음과 플래절렛의 혼용/2중 트릴/왼손 피치카토/양손 피치카토/도펠 그리프/스타카토/불꽃튀듯 긋는 활의 궁주/끊임없이 현을 넘나드는 활의 보잉등... 숨막힐 정도의 주요 테마 및 열 한 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이올린 독주곡으로서 초인적이고 다양한 기교들이 집약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비드 가렛이 보여준 Caprice24의 신들린 듯한 연주 모습은 마치 파가니니가 재현한 듯 개봉 당시 전세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국내에서도 '꼭 한 번은 봐야 할' 명연주, 명장면 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파가니니의 4번 2악장을 편곡해 직접 아름다운 가사를 붙이고 니콜 셰르징거에게 부탁한 이오 티 펜소 아모레(Io Ti Penso Amore )는 카프리스24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2. 모델 활동 : 줄리어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모델일을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보충했다. 패션지 보그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리고 바나나 리퍼블릭의 모델로도 활동을 하였고 패션쇼 무대에도 올랐다. 당시 그에게는 단순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일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의 존재감을 더욱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바이올리니스트- 왕벌의 비행: 2008년 가장 빠르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정확한 연주를 보여주며 세계 공식기록에도 올라 큰 화제를 모았다.
4. 2012년 5월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오프닝 세레모니에 출연하여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협연했다.

4. 대표 앨범


  • 정통클래식/도이치 그라모폰
1995 : Mozart Violin Concertos
1995 : Violin Sonata
1997 : Ncolo Paganini Caprices24
1997 : Tchaikovsky Conus Violin Concertos
2002 : Pure Classics
2004 : Night of the Proms
  • 크로스오버/클래식락/데카레코드
2007 Free - 경계없는 클래식상 수상
2007 Virtuoso -Free 유럽판
2008 Encore- Free와 함께 100만장 이상 판매
(2009 Virtuoso,Encore 두개의 앨범 모두 골든 디스크 수상.Berlin Tempodrom에서 8개 골든 앨범을 수상)
2010 Clsssic Romance- 올해의 베스트셀러
2011 Rock Symphony- 올해의 베스트셀러.빌보드 클래식 1위/전체9위. 에코 클래식 락 팝부분 수상
2012 Music- 에코 클래식 락.팝부분 수상
2013 14(*정통 클래식)- 도이치 그라모폰
2013[Caprice - 영화 '파가니니' 발매 앨범
2013 Garrett vs Paganini- 올해의 베스트셀러
2014[Timeless(*정통 클래식)- 올해의 베스트셀러
2015 Explosive
2017 Rock Revoluthion

5. 시선과 평가


예후디 메뉴인 이래의 가장 화려한 신동으로 불리며 초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데이비드 가렛.
그러나 클래식계의 미래이자 재목으로 어릴때부터 기대와 아낌을 한몸에 받았던 그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크로스 오버로의 길을 들어섰을때 정통 클래식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정말로 뛰어난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고전 음악에 대한 희망은 죽었다..."
하지만 이러한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가렛의 대중적 인기는 보란듯이 치솟았고, 직접 만들고 내어놓는 음악들 또한 그동안 미흡했던 크로스오버 시장의 연주 수준과 음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려 놓았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들에게는 친근한 클래식과 빼어난 연주 실력으로 큰 인기와 열광을 이끌어냈다.
또한 클래식계에서도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지 않은채 계속해서 지속적인 활동을 고수해온 가렛은 이제 자유로운 복장으로도 정통 클래식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가 되었고, 그의 일반 공연은 물론 클래식 공연까지 언제나 매진을 기록중에 있다.
하지만 그에게로 향하는 일부 부정적이고 따가운 시선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순수 클래식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있는 부정적 평론가와 대중들은, 정통의 길만을 걷지 않는 그의 외도적인 모습과 행보에 대해 더 이상의 찬란했던 천재는 없다라며 실망과 안타까움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천재적인 실력과 가치를 Money와 맞바꾸었다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짧은 인생에서 남들의 의견을 신경쓰고 살고 싶지 않다고 가렛은 말한다. 또한 클래식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로써 활동 역시 얼마든지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임을 증명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아이다 헨델, 예후디 메뉴인, 이자크 펄만, 주빈메타, 에릭 에바즌등 어릴적부터 가렛의 재능을 이끌고 지켜봐 온 세계적인 거장들은 데이비드의 이러한 행보와 그의 재능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작 펄만(Itzhak Perlman)'''

"1980년 이래 줄리어드 작곡 교사이신, 존경받는 작곡가 에릭 에바즌(Eric Ewazen)씨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를 가르치면서 큰 기쁨을 얻었던 우리에게, 데이비드는 제자 였을때 조차 바이올리니스트로써 스펙타클함, 진정성과 표현력 있는 연주는 이미 눈이 부셨고, 우리는 그의 엄청난 능력과 놀라운 재능을 알아봤었다 라구요"

"열린 마음으로 듣고 그것이 여러분의 취향에 맞지 않게 들린다면 당연히 다른 곳으로 가서 음악적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를 비난하려는 분들은 조용히 해주세요. 아무도 당신들의 비아냥이나 냉소를 전문적 비판이나 객관적 평가로 착각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여러분이 하는 말들이 당신을 우월하거나 박식하게 보이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반대죠."

"그리고 냉소를 위해 얼마나 바이올린을 했고 어느 출신이라는 것도 들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럴 실력이 있었다면, 세상은 분명 당신에 대해 들어봤을 겁니다."

"David는 눈부신 테크닉과 천부적 연주력이 있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언제나 예술적인 솜씨로 연주를 해나갈 겁니다 "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나는 David Garrett이 그의 세대에서 가장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여깁니다"

'''주빈 메타(zhubin metha)'''

"가렛의 연주에 대한 진정성에 정말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데이빗이 모든 세대를 클래식 홀로 데려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

'''아이다 헨델(Ida Hendel)'''

"가렛은 그의 재능을 어디서 얻는 걸까요?" 아마도 하느님께나 물어봐야 할거예요. 나는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어떤 신비로운 무엇이라고 믿거든요."

"재능은 가지고 있을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어요. 하지만 재능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재능을 가르쳐 줄 수는 없어요."

"마음이 그렇게 말한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해요. 그가 좋다면,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데이비드는 훌륭한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를 할 수도 있고 또한 락 음악도 할 수도 있어요. 만약 이것이 그에게 기쁨을 준다면, 왜 안되죠? 락 또한 예술이고, 난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내게도 그의 재능이 있었다면, 나도 락을 연주했을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