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 브루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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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과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이 사용한 열차포.
2. 개발 역사
대부분의 독일군 열차포가 그렇듯, 레인지 브루노 역시 크루프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레인지 브루노의 함포는 '''전함의 함포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틀란트 해전 이후 훈련함으로 전환된 도이칠란트급 전함이나 브라운슈바이크급 전함 구식 전노급 함선들의 함포를 가져다 쓴 것이다. 결과적으로 총 7척의 전함들의 주포가 해체되었고, 그 결과 독일 제국군은 28cm SK L/40 함포 20여문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해체된 함포들은 독일 군부의 요구에 따라 서부전선의 기나긴 참호전을 타파하기 위한 열차포 제작에 사용되었다.[1] 어쨌든 그렇게 크루프 사는 해체된 주포들을 가지고 1916년부터 열차포 제작에 들어간다. 그 결과, 1918년까지 총 22-24문의 레인지 브루노 열차포가 완성되었다.
3. 실전투입
3.1. 1차 세계 대전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적 참호 포격이나 화력 지원, 심지어는 해군이 가져가서[2] 해안포로 사용하기도 했다.
다만 원본이 전함 주포였기 때문에, 사거리가 20km-27km 정도로 짧은 편에 속했고,[3] 따라서 지상에서의 화력 지원보다는 전술했듯이 해군이 가져가 해안 방어용으로 더 선호되었다고 한다. 사실 해군 입장에선 이동이 가능한 해안포이니 매력적일 만도 했을것이다.
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레인지 브루노들 중 4대는 벨기에가 전리품 형식으로 가져갔다. 또한 6대는 독일에 진주한 협상국이 폐차시켜 버렸다.
3.2. 2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시점에서 독일에는 총 2대의 레인지 브루노가 남아 있었다. 이들은 프랑스 침공에 동원되어 브히몽과 라임스를 포격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한 대가 장약이 포신 안에서 폭발하는 사고로 파괴되었다.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하자, 남은 한 대의 레인지 브루노는 프랑스 중남부의 지롱드강 일대에 주둔했다.
특이하게도 남은 레인지 브루노 한 대는 레닌그라드 공방전이나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동원되지 않았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추측상 '''너무 낡아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레인지 브루노는 1차 세계대전 물건이었으니.[4] 게다가 열차포로서 가장 중요한 수치 중 하나인 구경 또한 28cm로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기에[5] 굳이 동부전선으로 가져갈 필요를 못 느낀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든 한 대의 레인지 브루노는 프랑스에 남았다. 그러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벌어지자, 이 레인지 브루노는 독일 본토로 후퇴하였고,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6]
4. 여담
중국의 한 브릭회사에서 선보인 구스타프 열차포 제품에 (구스타프 열차포 문서에 나온 그 제품 맞다.) 이 녀석도 포함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3 in 1 시리즈이기 때문에 다른 독일군 열차포인 구스타프 열차포, 크루프 K5 또는 레인지 브루노 중에서 한 개를 선택해 조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참호를 돌파할 수 있는 공군이나 전차가 겨우 걸음마 단계였고, 그랬기 때문에 열차포가 가장 실용적인 참호 돌파 수단으로 사용되었다.[2] 원본이 전함 주포였기 때문에 열차포임에도 불구하고 해군이 운용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3] 이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주포를 이용한 지크프리트 열차포에서도 나타난 문제였다. 물론 레인지 브루노도 개량된 포탄을 사용하면 최대 27km까지 불을 뿜을 수 있긴 했지만.[4] 물론 Obusier de 520 modèle 1916 같이 1차 세계대전 열차포임에도 동부전선에 동원된 경우는 존재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놈 구경이 52cm에 달했기 때문이었다.[5] 당시 독일군에게는 28cm 구경을 가진 신식 열차포 크루프 K5가 20여대정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레인지 브루노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6] 아마도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되거나 독일군이 자폭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