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포

 

1. 개요
2. 목적
3. 장점
4. 단점
5. 역사
6.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열차포
6.1. 실존한 열차포
6.2. 대중문화에서의 열차포
7. 관련 문서


1. 개요


[image]
가장 유명한 열차포이자, 실전에서 투입되어 운용된 대포로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구경의 거포구스타프 열차포
Railway Gun 또는 Railroad Gun.
이걸 레일건으로 줄여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혼동하는 경우는 매우 많다. 말 그대로 열차에 대구경 중포를 설치한 것이다. 남북전쟁무렵 처음 등장해서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명맥을 유지한 화포며 현재는 항공병기의 발달과 각종 대체 수단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 목적


대포의 역사 자체가 기본적으로 공성전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하는 만큼 원래부터 열차포는 요새 공격을 위한 '''차륜형 이동식 공성포'''로서 개발되었다. 19세기 들어서 축성기술의 발달로 요새의 방어력이 극단적으로 상승하면서, 요새의 벽을 부수고 함락시키기위한 공성포 역시 거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를 제때 이동시키고 전개해서 사용하려면, 부득이하게 포를 자주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의 기술로 선택 가능한 자주화 수단, 즉 동력은 증기기관뿐이었고 포를 열차에 싣게 된 것은 이런 기술적 제약 때문이었다.
주로 무거운 중량물을 운송하는게 목적인 열차의 특성상, 포의 대구경화는 매우 유리했다. 이는 사실상 현대의 기준으로도 다른 방식의 육상형 자주화 방식을 사용하면 비용대 효과면에서 매우 불리하거나 아예 불가능한 수준인 거포들을 탑재 및 사용가능하다는 이야기다.[1] 당장 24cm 이상 중포, 그것도 구포 따위가 아니라 장포신의 평사포조차 신속전개 및 발포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와 그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많은 나라에서 열차포를 최소한 작전술 차원의 중요한 지원화력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고급 무기체계로 인식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전에 쓰이기 시작한 혁신적인 장거리 타격 병기 체계인 공군이 열차포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극소수가 이동식 해안포로 운용되기는 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존재 의미를 잃고 완전히 사장되었다.

3. 장점


열차로 운반하는 만큼 중량 제한이 비교적 적기에 크기와 구경을 대폭 키울 수 있어서. 대부분의 열차포는 구경이 최소 150mm 이상, 보통은 200~300mm고 드물게 400mm를 넘어가는 거포도 있는 등 말 그대로 괴물같은 수준의 화력을 낼 수 있었다. 위에 사진이 게시된 구스타프 열차포는 무려 800mm 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가진다. 이게 감이 잘 안잡힌다면 현대전에서 사용하는 포병용 야포는 105mm과 155mm가 대세라는 것과 전차포는 105mm이나 120mm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된다. 당장 강력한 화력으로 유명한 미국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가 406mm다.
물론 아래에 언급하는 것처럼 엄청난 단점이 있고, 그 정도까지 큰 열차포를 쓸 일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업인 공성전에 한해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지형이 좋을 경우에 한정되지만, 터널을 이용해서 적의 공습이 있을 때는 터널 안으로 피하고 없으면 터널 밖에 나와서 치는 전술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역시 고육지책에 지나지 않는다.

4. 단점


하지만 열차포에는 다음과 같은 골때리는 단점이 많다. 그래서 대체재가 개발되자 급속히 사장된 것이다.
  • 소수의 기종을 제외하면[2] 포신의 상하각도, 좌우각도, 선회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안그래도 무거운 중포를 열차에 올려놓은 형태라서 목표를 조준하기 위해 포를 조금이라도 기울여서 쏘면 열차째로 뒤집어진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운송중에는 발포가 불가능하고, 현지에 와서 완충장치등을 추가로 설치해야 발포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덕분에 제대로 사용하고 싶다면 거대한 원형을 이루는 철도를 방렬하는 곳 근처에 가설해야 한다.
  • 막대한 인원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단순한 각도조절에도 철도를 따로 부설해야 하는 판국이니 건설노동자가 다수 필요하며, 중포를 관리하는 요원, 열차를 관리하는 기술자, 열차포를 경비하는 경비요원, 특성상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야 하니 보급요원도 다수 따라붙게 된다. 심하면 이런 인원을 다 합치면 수천명에 육박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례로 구스타프 열차포는 포 자체의 조작인원만 '최소' 250명 이상이 필요했고 발포나 뒷처리를 위한 철도 관련 인원도 2000여명을 요구하는 비효율과 인력낭비의 극치였다.
  • 각종 기술자가 많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인원을 초짜로만 모아도 답이 안나오는데, 철도를 건설하는 것도, 중포를 손보는 것도, 열차를 정비하는 것도 다 기술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기술자는 다른 분야에도 매우 필요하다는 점으로, 심하면 1개 야전군단급 병력에 부속될 수준과 인원의 기술자가 몽땅 열차포 1문에 달라붙게 된다.
  • 적의 습격에 취약하다. 아무리 경비인원을 많이 깔아놓아도 태생이 철도 차량이기에 적군이 맘먹고 열차포를 조지려고 공격해오면 탈출할 길이 방열지까지 깔린 철도밖에 없으므로 탈출도 힘들다. 그래서 구원군이 올 때까지 항전하려고 해도 보통 이런 포는 너무 강력한 위력과 함께 부각 조절이 안되는 관계로 근거리 목표에 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쏘더라도 발사속도가 느려서 적을 저지하기 힘들다. 특히 공군의 공습에는 그야말로 밥이다.
  • 생산비용 및 유지비가 비싸다. 중포 자체의 제작도 힘들고 어려우며, 이걸 열차에 적재해야 하니 열차에도 돈을 투자해서 특별히 개조해야 한다. 여기에 제대로 쏘려고 할때마다 철도로 부설해야 하고, 포탄도 특수형을 따로 제작해야 하고, 앞서 언급한 기술자급 인원을 육성하는 비용, 수천명에 이르는 전체 인원의 인건비 등등을 따지면 비용이 안드로메다로 가기 딱 좋다.
  • 무엇보다도 선로가 열차포의 격발시 충격에 취약하다. 한 장소에서 여려발 사격시 선로가 더 이상 열차운행이 어려울만큼 손상된다. 구스타프 열차포는 발포 한 번 할때마다 선로가 파괴되었다.

5. 역사



5.1. 시작


남북전쟁때 처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요새를 공격할 중포를 운송하는 수단은 열차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무거운 중포를 열차에 싣고 와서 토대를 다진 다음, 중포를 설치하고 사격한 후, 다시 분해해서 열차에 싣는 작업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진 사람들이 열차포를 개발한 것이다.
개인화기 및 공용화기의 발달로 공성전의 의미가 없다고 여겨진 19세기 후반 한때 즉, 기관총이 공격력을 강화하는 데만 의미가 있고 방어력의 강화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던 1차 세계 대전 개전 전의 망상이 판을 치던 시기에는 열차포를 포함한 각종 중포는 별볼일 없어 보였으나, 당연히 기존의 요새도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이런 요새를 처리할 용도로 각종 중포를 비롯한 열차포도 개발 및 보유하고 있었다.

5.2. 제1차 세계 대전


참호전 양상 때문에 요새공격과 장거리에서의 포격 등이 중시되어 1차 세계 대전 내내 적지 않은 열차포가 실전에 투입되었다. 게다가 참호전의 특성상 전선이 대규모로 급작스럽게 변경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차포를 편리하게 운영하기 쉬웠다. 물론 상대방도 거대한 포탄을 계속 맞을 수는 없으니 반격을 해야 하지만, 당시의 사정으로는 아직 항공기의 성능이 미약하고 개념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 정밀폭격이나 융단폭격등이 불가능하며, 일반 야포로는 사정거리 문제로 인해 응사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열차포에 대응하는 입장에서도 역시 대구경의 열차포를 사용해야 했다.
독일군은 파리 대포라는 거포를 제작해 실전투입시켰는데, 특히 심리전에서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파리 대포는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군이 스스로 해체시켰다.

5.3.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을 살려 프랑스독일은 2차 세계 대전 전 기간에 걸쳐 적지 않은 열차포를 보유했는데, 시대가 변했기에 그다지 유용하게 쓰이지 못했다.
특히 Obusier de 520 modèle 1916 같은 프랑스의 열차포는 독일과의 전쟁에서는 거의 쓰이지 못한 채 독일군에 노획당했고, 노획품으로 독일군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모자라 연합군을 상대로 그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그냥 소모되는 안구에 습기가 차는 기록만 남겼다. 소련군을 상대로는 간혹 쓰인 편이지만, 서부전선의 해안방어를 위해 해안포로 전용된 노획 프랑스 열차포들은 도버 해협 건너편의 영국 해안 요새의 요새포 직사를 맞고 박살나는 등 말 그대로 안습.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일정 크기를 넘거나 일정 사거리를 넘는 화포를 보유할 수 없어 열차포 역시 개발 및 보유가 금지돼 있었고, 조약을 파기한 후 프랑스의 마지노 선을 목표로 단기간에 대량의 열차포를 개발해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상 최대의 열차포인 800mm의 구경을 자랑하는 구스타프 열차포, 그 외에도 15cm에서 40.6cm에 이르는 다양한 열차포가 존재했으나, 몇몇 포를 제외하면 대부분 1차 세계 대전 때 개발했던 구형 대구경 함포의 설계를 유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88mm 대공포같은 만능포를 제작한 독일이 더 큰 대포를 제대로 제작하지 못한 것이 아니러니 같지만, 이는 비단 열차포뿐 아니라 전함 등 독일의 무기체계 전반에 해당되는 사항으로써, 베르사유 조항에 의해 개발이 금지된 일부 병기은 조약 파기 이전에는 손도 대지 못했고. 기껏 조약을 파기하고 새로 개발을 시작하려 하는 시점에는 이미 앞서있던 기술력은 다 잃어버리고 퇴보한 안습한 상태였다. 이런 예는 전함이 대표적이다.
1942년 봄에 독일군은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이 열차포를 운용하였다. 세바스토폴은 당시 세계 최고의 요새도시라고 알려져 있었으며 소련 흑해함대의 본거지였기 때문에 스탈린그라드를 거쳐 카프카즈로 진격하려던 독일군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세바스토폴의 요새포는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이에 맞서 독일군도 열차포를 사용했다.
또한 미국러시아도 열차포를 운용했는데, 이 두 나라의 열차포는 다른 나라가 주로 공성포로서 열차포를 운용한 것과 달리, 광활한 영토 안에서 신속하게 전개 가능한 요새포해안포로서의 기능을 더욱 중시했다. 특히 미국의 열차포는 해안포로서의 운용을 기본으로 했으며, 이 때문에 몇몇 열차포는 해군이 운용했다. 러시아도 비슷한 목적으로 전함 함포를 유용한 열차포를 소수 제조했으며, 이때 제조된 열차포 3문은 1989년까지 해군 소속으로 현역이었다.
일본군도 환경이 불편한 태평양등에서 전투한 이미지가 커 없을것 같지만 열차포를 소수 운용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러시아 같은 본격적인 열차포는 아니었지만 중포나 대공포등을 올려서 운용했다.[3] 주로 일본 본토의 해안 요새나 만주국관동군 국경 요새에서 사용했는데 자세한 것은 만주 작전을 참조. 다만 일본 내부의 철로는 독일, 미국, 러시아보다 궤간이 좁고 선로 축중(선로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이 너무 낮았기에 일본 국내에서는 전용 선로가 깔린 곳 근처에서만 사용되었다. 반면 좀 더 튼튼한 표준궤 선로가 깔린 만주에서는 어느 정도 요새와 요새를 전전하면서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5.4. 종말


제2차 세계 대전 무렵 대형 폭격기가 나타나면서 열차포는 명백하게 열등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비록 열차포가 수십km의 사거리를 지니고 있다고 하나, 폭격기는 수백km 거리에 있는 적도 어렵지 않게 폭격할 수 있기 때문에 열차포의 사거리는 폭격기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또한 폭격기는 자체적으로 대량의 폭탄을 목표까지 운반이 가능하고, 설령 폭탄 1발이 빗나가더라도 나머지 폭탄을 쏟아부으면서 공격할 수 있는데 반해, 열차포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목표 근처에 방열한 다음에야 사격이 가능하니, 포탄 한 발의 위력은 열차포가 높아도 종합적인 파괴능력은 폭격기가 열차포를 훨씬 능가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열차포의 유일한 장점인 대요새 공격력 마저도, 현대의 벙커버스터같은 폭탄의 조상격이 되는 암반관통용 중폭탄인 지진폭탄들이 개발되면서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비행기가 가지고 있는 1km 이상의 높이에서 나오는 위치에너지에 폭격기의 폭장량을 최대로 활용한 대형 폭탄의 무게를 '''곱했으니''' 열차포를 가볍게 쌈싸먹는 관통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열차포의 막대한 운용비용을 폭격기에 투자하면 열차포 한대를 만들 자원과 인력으로 10대 이상의 폭격기를 돌릴 수 있었다. 결국, 정신나간 철덕후+포덕후가 아닌 다음에야 열차포를 운용할 자원과 인력을 폭격기 생산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유용한 셈이다.
이렇게 공군이 열차포보다 우월한 장거리 타격수단임이 증명되면서 사장되게 된다. 안그래도 단점이 많았는데 가성비까지 떨어지니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6.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열차포



6.1. 실존한 열차포


  • 구스타프 열차포
  • 파리 대포
  • 크루프 K5
  • 1916년형 곡사포 520
  • 16인치 열차포[4]

6.2. 대중문화에서의 열차포



7. 관련 문서


[1] 물론 차르 대포(890mm)나 리틀 데이비드(914mm, 36인치)나 빅 바빌론(1,000mm) 같은, 열차포가 아님에도 미친 구경을 지닌 화기들은 존재하긴했다.[2] 정밀한 발사각 조절을 위해 포신을 좌우로 미세하게 돌릴 수 있게 만든 기종도 일부 있다. 그 밖에 영국의 BL 12 inch Mk-V#와 같이, 포신의 선회가 자유로운 기종도 있기는 하다.[3] 240mm열차포와 16인치 구경의 대구경 열차포도 딱 한대씩 운용했었다. 16인치 열차포는 일본 육군 기준에서는 최강의 포였지만 한대밖에 없어서 전황에는 별 영향을 못미쳤다. 이 열차포가 운용된 만주 전선은 45년 대전말 소련군에게 완전히 박살나기 전까지 별다른 전투가 없었기에 특히 그러했다. 열차포의 제한된 기동성이 발목을 잡은 사례로, 동일 구경이면서도 철로 관계없이 운송할수 있었던 45식 중포가 차라리 훨씬 많은 역할을 했었다.[4] 관동군에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