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카 1세

 

'''역대 알바니아 왕위 요구자 겸 (명목상)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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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2대

3대
조구 1세
'''레카 1세'''
레카 2세
[image]
'''칭호'''
레카 1세
Leka I, Crown Prince of Albania
'''본명'''
레카 조구(Leka Zog)
'''출생'''
1939년 4월 5일, 알바니아 왕국 티라나 왕궁(Pallati Presidencial)
'''사망'''
2011년 11월 30일, 알바니아 티라나(72세)
'''부모'''
부친 조구 1세, 모친 제랄디네 왕비
'''배우자'''
수잔 컬렌-워드(Susan Cullen-Ward, 1941~2004)
'''자녀'''
레카 2세(레카 조구 2세)
'''종교'''
이슬람교(?)[1]
'''재위기간'''
(왕실 수장)
1961년 4월 9일~2011년 11월 30일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알바니아의 전 왕세자이자 왕위 요구자.

2. 생애


조구 1세의 외아들이자 레카 2세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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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망명 시절 아버지 조구 1세 국왕과 어머니 제랄디네 왕비와 함께.
1939년 출생 '''이틀'''만에 추축국의 알바니아 침공으로 인하여 알바니아를 떠나 실질적으로 알바니아를 방문한 건 공산 정권이 붕괴된 이후, '''54세'''였던 1993년이 처음이다. 1961년 조구 1세의 사망 직후 망명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고[2] 이후 계속 자신의 왕위 계승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75년 호주 출신의 수잔 컬렌 워드(Susan Cullen-Ward, 1941~2004)와 결혼해 1982년 외아들 레카 2세를 낳았다.
공산 정권 붕괴 이후 두차례 알바니아를 방문했는데 당시 극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레카 왕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상당히 높은 것에 불안감을 느낀 정부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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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 당시 알바니아를 다시 방문해 수도 한복판에서 지지자들과 왕정 복고를 주장하며 무력 시위를 벌여 6월 29일에 왕정복고 국민투표가 있었다. 이에 33.3%의 지지밖에 얻지 못하여 복고는 좌절되었으나, 레카 1세는 65.7%의 찬성으로 나왔어야 할 투표결과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4] 아무튼 이 때 알바니아 정부에 의해 폭동 교사죄로 기소되자 다시 남아공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2002년 사면되어 알바니아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정계에서 활동하였으나, 2006년 모든 정계 활동을 중단했다. 2011년 티라나에서 향년 72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명목상 알바니아 국왕 겸 왕위 요구자 자리는 외아들 레카 2세에게 넘어갔다.

3. 여담


  • 키가 196cm나 되는 거인이었다. 위 사진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게 나온다.

[1] 아버지 조구 1세가 생전 이슬람교 신자였기에 이 추측이 있으나, 인구 수의 절대 다수가 이슬람 신자인것치고는 알바니아가 매우 강력한 세속주의 국가인데다, 오랫동안 기독교 인구가 대다수인 영국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오가면서 살았고, 결정적으로 이슬람교 신자의 수가 거의 없는 헝가리 출신자를 어머니로, 호주 출신자를 부인으로 뒀으니, 성인이 돼서도 이슬람 신앙을 유지했는지는 의문이다.[2] 사실 제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잠깐 존재했던 알바니아 공국의 초대 대공인 비디(Vidi : 독일 슈탄데스헤어 중 하나인 비트(Wied) 가문의 빌헬름)가 있었고, 조그 1세의 통치기간 동안 알바니아의 진정한 왕은 자신이라며 왕위요구를 했지만 실제 통치기간은 고작 6개월에 불과하고 그 이후로는 명목상으로만 군주일뿐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외국인이었던데다가 아들인 카롤 빅토르가 자식없이 1974년 사망하며 분쟁의 여지가 사라져버렸다.[3] 가운데에 군복입은 남자가 레카 1세이다.[4] 영문위키에 따르면 2011년 레카 1세의 별세 이후, 국민투표 당시 알바니아 대통령이자 2011년 당시 총리였던 살리 베리샤는 '공산주의 반란 우려 때문에' 투표가 조작된 것이 사실이며 이 때 왕실이 복고되었어야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