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요구자
1. 개요
왕위 요구자란 왕위 계승의 법칙에 따라 군주(임금)의 자리를 계승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2. 분석
원어인 영단어 프리텐더(pretender)는 반드시 '왕' 또는 '황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봉건제 논리 하에서는 왕과 봉신계약을 맺은 '''봉작의 상속''' 과정에서도 적용되며, 유목생활이나 수렵생활을 하는 원시 부족의 추장 또한 선출직이 아닌 세습직인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왕위 요구자 또한 반드시 '왕' 또는 '황제위'의 프리텐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백작령, 공작령 등 영주가 다스리는 영지나 국가 단위가 아닌 원시 부족 추장의 프리텐더도 해당된다.[1] 오히려 이런 것을 감안하면 프리텐더는 '왕위 요구자' 라기보다는 '작위 요구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후대에는 프리텐더라는 단어에 '정당한 소유권이 없거나 소유권을 잃었음에도 주장하는 자', '~인 척하는 사람' 등 '가짜'나 '부당함'을 암시하는 뉘앙스가 붙기도 했지만[2] 원래의 뜻은 단순히 '요구하는 자'이다.[3] 작위를 상속받는 과정에서 그 작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자신이라며 작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중립적인 '작위 요구자'라는 뜻으로는 프리텐더 대신 같은 의미의 클레이먼트(claimant)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프리텐더 또한 아직도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다.
특정한 상속법 아래서 작위를 계승한 인물과 가까운(계승 순위가 높은) 인물일수록 상속을 받을 명분은 강해지고, 반대로 계승 순위가 끄트머리에 있는 먼 친척들은 요구의 명분을 거의 갖지 않는다. 계승 명분을 가짜로 만들어내 왕위를 사칭하는 경우까지도 왕위 요구자에 포함된다. 장미 전쟁 이후 요크 왕조의 후계자임을 자칭해 반란을 일으켰던 램버트 심넬이나 퍼킨 워벡은 정황상 가짜임이 거의 확실했지만 프리텐더로 불렸다. 물론 이들은 프리텐더를 넘어 사기꾼(imposter)으로 취급받았다.
대립왕이나 대립교황처럼 작위의 상속을 주장하면 당연히 작위 요구자로 불리겠지만, 본인이 작위를 요구하지는 않아도 계승권에 들어있는 인물도 프리텐더의 범위에 들어간다. 작위가 폐지되어 사라졌어도 '만약 왕조가 계속 이어졌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작위를 상속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프리텐더가 된다. 브라질의 페드루 카를루스 같은 경우 공화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왕위 요구자로 불린다. 작위의 폐지로 작위 요구자가 된 경우, 계승 1순위인 인물이 작위 요구자로 있게 되므로 대부분 일가의 수장의 자리를 겸한다.
이들 요구자들의 존재는 왕위 등 작위를 가진 쪽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으며, 작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은 형제 사이에 가족 살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적장자의 계승이 원칙인 종법제 아래서 우여곡절 끝에 작위를 계승한 서자인 차남이 자신의 왕위에 위협이 되는 적자인 동생을 제거한다던가, 모반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먼 종실 친척이나 이전 왕조의 후손들을 죽이는 것은 동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유럽의 경우 왕위 요구자가 갖는 의미는 다른 지역과 다르다. 여러 왕가가 혼인으로 이어져 있고, 한 왕가가 여러 나라의 왕위를 갖기 때문에 A국의 왕위 요구자이면서 B국의 왕위 계승권 순위에 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4] 보르본 왕조 스페인 국왕이 프랑스 부르봉 왕조 왕위 요구자를 만찬에 초대하는 등 귀족이 있는 나라에서는 왕위 요구자를 귀족과 같은 급으로 대우한다.[6][7]
실제 재위 중인 군주가 명목상 다른 칭호의 왕위 요구자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스페인 국왕의 전체 칭호를 보면 현재 스페인 국왕이 지배하지 못하는 나라의 군주를 자칭하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왕위 요구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칭호들은 폼으로만 쓰고 있을 뿐이라 실제로 진지하게 해당 왕위를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8] . 영국 국왕도 1799년까지 프랑스 국왕의 칭호를 썼으니[9] 명목상 프랑스 국왕의 왕위 요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바부르를 포함한 역대 무굴 제국 황제들은 티무르 제국 아미르가의 후예였으며 그에 따라 무굴 제국이 티무르 제국의 후신을 칭했던 관계로 역대 무굴 제국 황제들은 모두 티무르 제국의 왕위 요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실제 군주가 다른 칭호의 왕위 요구자였다가 쫓겨날 경우 실제로 요구하는 칭호와 폼으로만 달고 있는 칭호가 공존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과거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들은 선조가 썼던 대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아일랜드[10] 의 국왕을 사칭했지만 실제 진지하게 요구한 왕위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국왕[11] 이었고 프랑스 국왕은 폼으로 달고 있는 칭호였다.
3. 생활
왕위 요구자들 중의 상당수는 물려받는 재산도 꽤 있고 해서 그럭저럭 유력인사로 살아가는 듯하다. 재산의 대부분은 선조 때부터 물려 받은 부동산이다. 독일 호엔촐레른 황가처럼 폴란드에 성, 영토 및 각종 부동산을 몰수당한 이들조차도 사촌들과 저 유명한 호엔촐레른 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빼도 독일 황실 수장의 총재산은 약 5천만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역사책에 들어봤을 법한 왕가나 귀족 가문 혹은 선제후 가문은 지금도 대부분 그럭저럭 잘 먹고 잘 산다. 옛 하와이 왕실도 하와이 주 최고의 땅부자들이며, 만일 이들이 다시 왕위를 인정받을 경우, 엄청난 면적의 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므로 미국 정부에 하와이 주 한정으로 입헌군주제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귀족 제도를 불인정하는 미국 헌법의 조항 때문에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하와이 왕실을 우대하는 대신, 입헌군주제 도입은 결사반대하고 있다.[12] 물론 하와이 주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왕실에 대해선 아오안이라서, 연방 정부의 반응과는 별개로 왕실 부활의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13]
지방 정부의 군주위 요구자들은 자신의 원래 영토에서 실권없는 실질적인 군주로 살기도 하는데, 이는 중앙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것으로, 대개 중앙 정부가 공화정을 택한 경우에 귀족 계급을 폐지하고 그 특권을 박탈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그 대신 현지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왕위 요구자가 된 지역 번왕에게 현지의 얼굴 마담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14]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나 인도, 파키스탄 및 네팔,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왕위 요구자였던 오스만 바예지트는 터키 공화국 출범 이후로 브라질과 터키를 오가면서 살았는데, 그동안 택시 기사등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왕위 요구자 황사손 이원의 경우 각종 제례에서 활동하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대동종약원에서 활동비는 나온다고 하나 구체적인 경제적 상황이 어떤지는 불명. 황사손이 되기 전에 홈쇼핑 및 광고업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현재도 관련 회사들의 컨설팅을 도와주는 일을 겸업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또다른 왕위 요구자였던 이해원#s-2의 경우는 6.25 전쟁이나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군사독재자들의 폭정 등으로 점철된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많은 재산을 잃은 뒤에, 그 재산을 반환해내라는 소송을 정부로부터 수도 없이 제기했지만, 번번히 패소하면서 그나마 남은 재산마저 소송비로 몽땅 잃어서 월세방에서 비루하게 살다가[15]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다른 나라로 망명생활을 전전하는 사람도 있다. 본국의 정부와 마찰이 빚어지는 여러 왕위 요구자는 입국이 불허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본국 정부가 공화국일 경우라면, 공화정 체제를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자국의 군주위 요구자를 받아주기도 하며[16] , 왕정복고의 여론이 높고 실제로도 정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발칸 반도의 공화국들[17] 은 아예 자국의 왕위 요구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자국의 국가원수로 대우하기도 하지만, 직접 국왕을 혁명으로 몰아내었거나 왕위 요구자가 공화국 정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우라면 그대로 왕위 요구자를 추방해버리기도 한다.
본국 정부도 군주제 국가고 그 군주가 왕위 요구자와는 다른 계파 출신인 경우, 즉, 같은 가문 내의 다른 계파나[18] , 아예 다른 가문일 경우[19] 라면 자국의 왕권에 도전할 위험성 때문에 국외 추방해버린 후에 입국을 불허하는 경우도 많다. 입국을 허용하더라도 왕위를 요구하는 순간, 도로 추방해버리는 조건을 달아놓기도 한다. 드물게도 왕위 요구자가 내국인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모국 내부의 작위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보니, 잘못하면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의심받아 제거될 수도 있다. 조선 초기에 이성계가 개성 왕씨 사람들을 대거 학살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작위 요구를 공식화하지만 않으면, 무난하게 살기도 한다.[20] 영국의 애브니-헤이스팅스 가문은 요크 공작 가문의 먼 후손이라서 현재 영국 국왕이 겸임하는 요크 공작위의 요구자이고, 동시에 요크 공가 자체가 장미 전쟁의 종전 이전까지 잉글랜드의 왕을 배출한 가문인지라, 이 가문은 잉글랜드 왕위의 요구자이기도 하다. 만일 이 가문이 노골적으로 잉글랜드의 왕위를 노리고 공작을 벌였다면 영국 정부에 의해 가문 전체가 테러 조직으로 몰려서 토벌되었겠지만[21] , 애브니-헤이스팅스 가문은 자신들이 한때 잉글랜드의 왕가였다는 역사적 사실만 기억할 뿐 직접 왕위 탈환을 위해 나서지 않으므로, 2020년 현재까지도 영국 왕실과 무난하게 공존하고 있다.
한편 본인이 왕가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본인이 모를 정도면 타인도 알지 못하고 기록도 실전돼 영원히 밝혀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멸망한 지 오래 된 한국사의 백제, 발해, 신라, 고려 같은 왕조의 경우가 중간에 사고로 혈통이 끊기지 않았다면 이에 해당할 것이다.[22]
어차피 웬만한 나라들의 경우, 정세가 급변하지 않는 한 진지하게 왕실이 복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1990년대 혼란스러웠던 편인 동유럽 국가들도 왕정복고 이야기가 나왔으나 끝내 실패했을 정도였다. 물론, 왕위 요구자가 실제로 즉위한 사례도 있는데 그게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경우 프란시스코 프랑코라는 독재자가 즉위시켰는데 이후 개념있는 행동으로 인정을 받은 매우 운이 좋은 사례다. 대개 독재자가 쫓겨나더라도 왕이 복위하는 게 아니라, 실무자들이 자기들끼리 협의해서 다른 사람을 지도자에 앉히고 과두정 형태로 통치를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경우는 왕실이 그대로 복귀한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23] 그래서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군주위 요구의 대부분은 해당 군주위를 명목상으로 보유한 가문 측에서 자신들에게 기존에 행사하던 재산권을 인정해달라고 시위하는 데에 명분을 삼은 것에 불과하며[24] , 진짜로 군주위를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 동유럽 쪽의 일부 구 왕국 출신의 공화국들은 사실상 왕가를 인정하고는 있는데, 이 나라들이 대체로 아직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보니 공식적으로는 왕정복고에 대한 논의를 뒷전으로 미루어 둔 상태다. 대표적인 나라가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등.
4. 현재 왕위 요구자 목록
4.1. 등재 기준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 국가를 인정한 경우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왕위 요구자는 '요구하는 사람'보다는 '요구가 가능한 사람'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실제 왕위 요구를 위한 활동의 여부와 별개로 '해당 작위가 실질적으로 계속 유지되었다면 누가 해당 정권을 이어받게 되는가'에 가깝다. 따라서 원론적으로는 세습직이 아닌 경우라도 해당이 되지만, 세습직이 아닌 선출직인 경우엔 기본적으로 '만약 계속 이어졌다면 누가 해당 정권을 이어받게 되는지'에 대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2.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정권이 중간에 국가체계/작위 등 '국체'자체를 바꿔버린 경우엔 이전의 체제에 대한 작위 요구는 등재하지 않는다(예 → 조선 왕실이 '''스스로''' '대한 제국'으로 바꾼 다음 멸망하였기 때문에, 조선 왕실의 후손에서 나올 수 있는 왕위 요구자는 '조선국'이 아닌 '대한제국'의 황제위요구자를 적고, 위안스카이는 중화제국을 설립한 이후 스스로 군주를 칭한 다음 스스로 중화제국과 왕위를 포기하고 중화민국 총통직 만이라도 유지하고자 했으므로 중화제국의 왕위 요구자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왕위 요구자/유럽 문서의 세르비아 왕국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왕위 요구자는 본래 유고슬라비아 왕국 왕위 요구자였지만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재건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자, 그 대안으로 과거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성립으로 폐지되었던 세르비아 국왕 칭호를 명목상 부활시킨 케이스이므로 예외로 한다.
4.2. 아시아
4.3. 유럽
4.4. 아프리카
4.5. 아메리카
4.5.1. 멕시코
멕시코의 여러 왕위 요구자들.
4.5.1.1.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아노 1세가 처형당하고 프랑스의 괴뢰국 멕시코 제2제국이 멸망했다. 막시밀리아노는 멕시코 제1제국 황제 아구스틴 1세의 손자 아구스틴과 살바도르를 입양했는데, 장남 아구스틴이 왕위 요구자가 되었다. 아구스틴 사후 살바도르의 장녀 마리아, 손녀들인 여남작 마리아 안나와 마리아 지셀라[25] 가 순서대로 왕위 요구자가 되었다. 현 왕위 요구자 막시밀리안 백작은 여남작 마리아 지셀라의 장남이다. 다만 아구스틴과 살바도르는 혈통상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 아닌 관계로 멕시코 제2제국의 황제위 계승권자가 아니었으므로 막시밀리안 백작은 멕시코 제2제국이 아닌 멕시코 제1제국의 왕위 요구자로 간주되며, 막시밀리아노 1세의 동생 카를 루트비히의 아들이 멕시코 제2제국 황제위를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므로 그의 후손인 카를 필리프가 멕시코 제2제국 왕위 요구자이긴 한데, 문제는 이게 또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자손[26] 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4.5.1.2. 테노치티틀란 틀라토아니
아즈텍 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군주 몬테수마 2세[29] 의 후손은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적통인 남계후손은 아즈텍 제국이 멸망한지 약 300년 후인 1836년에 대가 끊어졌으며, 몬테수마 2세의 딸 테추키포와 스페인 남성 사이에서 생겨난 여계후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몬테수마 2세의 후손은 모두 이 여계후손들이다.
아즈텍 황실의 후손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목테수마 데 툴텡고 공작' 작위를 받는다. 역대 목테수마 데 툴렝고 공작들은 아즈텍 황실의 일원이었던 벨라스케스 틀라코친이 조상이다. 하지만 벨라스케스 틀라코친은 아즈텍 황실의 적통이 아니라 몬테수마 1세의 형제였던 틀라카렐리친의 손자, 즉 방계인 데다가 스페인 치하 아즈텍의 초대 총독이었던 관계로 멕시코인들에게는 매국노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의 후손인 목테수마 데 툴렝고 공작이 틀라토아니로 추대되어 멕시코에서 군주정이 부활할 가능성은 0%다.[30]
4.5.1.3. 틀락스칼텍 국왕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으로 고통받던 틀락스칼텍인들은 멕시코 땅을 침략한 스페인군을 도와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그 공으로 틀락스칼텍은 스페인 치하에서 단순한 식민지가 아닌 자치령이 되어 스페인 왕실에 의해 극진한 대접과 엄청난 자치권을 받고 심지어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옛 치치멕족 거주지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개척하기도 하는 등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34] 그러나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통치가 끝나고 멕시코가 멕시코 제1제국으로 독립하면서 틀락스칼텍은 멕시코에 합병되어 멸망하고 오늘날 멕시코 틀락스칼라 주로 이어지게 되었다. 본 문단의 왕위 요구자들은 스페인 본토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며, 스페인 왕실은 1836년에 멕시코의 독립을 승인함으로써 틀락스칼텍 자치령 국가원수 칭호도 포기하였고 현재도 멕시코 관련 칭호를 쓰지 않는데, 압스부르고 왕조가 단절된 1700년과 페르난도 7세가 살리카법을 폐지하고 자기 딸 이사벨 2세를 후계자로 정한 1830년 그리고 이사벨 2세가 스페인 여왕으로 즉위한 1833년은 스페인 왕실이 멕시코의 독립을 승인한 1836년보다 앞선 시대이므로 본 문단의 왕위 요구자들은 멕시코의 틀락스칼텍 합병 또한 인정할 이유가 없다. 이들의 입장에서 멕시코를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멕시코 지배 및 틀락스칼텍의 빽 역할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건 '여자 주제에 왕이 된(보르본 왕조 왕위 요구자 입장)/정통성이 없는 보르본 왕조의(압스부르고 왕조 왕위 요구자 입장)' 이사벨 2세가 제멋대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즈텍 제국과 틀락스칼텍의 악연으로 인한 영향 때문에, 테노치티틀란의 후신인 멕시코 시티의 주민들과 틀락스칼텍의 후신인 틀락스칼라 주의 주민들은 현재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아즈텍 제국의 후신을 칭한 현대 멕시코의 입장에서 틀락스칼텍은 매국노 집단으로 여겨지며, 특히 멕시코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은 틀락스칼라 주민들을 매국노의 후손이라고 멸시한다.[35] 하지만 틀락스칼라 주민들은 멕시코 극우민족주의자들의 매국노 후손 취급이 아무리 싫어도 조상들처럼 멕시코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깝다. 만약 틀락스칼라 주가 독립한다면 스페인의 도움을 받아 아즈텍 제국에 복수한 역사적 인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친스페인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데, 무력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가 과연 자국민들 중 스페인의 지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멕시코 영토 내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는 걸 용납할까? 특히 틀락스칼라 주가 스페인과의 동군연합이 되어 스페인 국왕을 섬기거나[36] 본 문단의 왕위 요구자들 중 1명을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하여 독립하려 한다면, 멕시코 정부는 틀락스칼라 주의 이러한 모습을 스페인의 멕시코 재침략을 유도하는 매국행위로 간주하여 틀락스칼라 주민들을 무력으로 응징할 것이다. 그리고 틀락스칼라 주민들을 제외한 현대 멕시코인들이 멕시코 제1제국의 틀락스칼텍 합병을 매국노들의 자업자득이라며 통쾌하게 여기는 현 상황에서 틀락스칼라 주는 공화정으로 독립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의 멕시코는 아즈텍 제국만큼 악랄한 침략자가 아니었고 적어도 식인풍습은 스페인 치하에서 진작에 근절되어 틀락스칼라 주민들을 가축으로 취급하는 막장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37] , 아즈텍 제국의 인간목장이던 시절의 틀락스칼텍에 비하면 독립할 명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틀락스칼라 주가 스페인과 힘을 합쳐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릴 당시의 틀락스칼텍처럼 멕시코로부터 해방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4.5.2. 미스키토족 추장
미스키토족은 벨리즈와 온두라스 일대에 걸쳐 사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으로, 두 나라의 역사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었다.[38] 한때 이들은 다양한 민족들을 자기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세를 키우고[39] , 중앙아메리카의 강국으로 부상하기도 했으나, 계속되는 백인들의 침탈로 인해 끝내 몰락하고 말았다. 1894년에는 마지막 정통 추장인 로버트 헨리 클래런스가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사망하면서 추장 가문의 직계 혈통이 단절되었고, 1977년에 그의 후손인 노턴 커스버트 클래런스가 미스키토족 추장 직위 계승에 대한 명분은 자신에게 있다는 선언을 한 뒤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4.5.3. 브라질 황제
페드루 2세는 브라질 의회의 제정 폐지 결정에 따라 포르투갈로 망명, 객사한다.[42] 페드루 2세보다 오래 산 딸 이자베우가 뒤를 이어 왕위 요구자가 되었고, 여계 계승으로 왕가의 이름은 오를레앙스-브라간사로 바뀌었다. 이자베우 사후에는 차남 루이스 마리아 필리프의 아들인 페드루 엔히키가, 페드루 엔히키 사후에는 그 아들 루이스 가스탕이 뒤를 이었다. 루이스 가스탕에게는 후사가 없고 동생만 여럿 있다.
한편 이자베우의 장남인 페드루 드 알칸타라의 아들인 페드루 가스탕이 5촌 조카에 맞서 황위를 요구했다. 페드루 가스탕은 2007년에 죽고, 그 아들인 페드루 카를루스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드루 카를루스는 공화주의적 성향을 가졌다고 한다.
4.5.4.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국왕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은 마푸체족이 프랑스의 법조인이자 모험가인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을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하여 세운 왕국이었으며 지금의 칠레 중부 지역과 아르헨티나 남부 지역을 영토로 하였다.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은 자신이 세운 해당 국가가 국제적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이내 칠레군의 침략으로 왕국이 멸망했으며, 마푸체족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분할점령당하여 오늘날까지도 극심한 탄압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은 칠레와 아르헨티나로부터 정신병자처럼 다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문이나 형벌은 받지 않고 칠레의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1878년에 죽었다. 현재 그의 후손인 프레데리크 뤼가 명목상의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 왕위를 요구하고 있다.
4.5.5. 아이티 황제
4.5.6. 캐나다 국왕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때부터 영국 왕족임을 자칭하면서[44]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하노버 왕조의 작위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자치령이 막 수립될 당시 영국은 아직 하노버 왕조였으므로 캐나다 국왕 칭호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4.5.7. 타완틴수유 사파 잉카
1572년에 잉카 제국(타완틴수유)의 황실이 폐지되고, 안데스 산맥에 있던 빌카밤바 망명 정부도 패망하면서 잉카 황족들은 스페인으로 끌려왔는데, 이들의 후손들 중의 한 사람인 아나 마리아 로렌사 데 로욜라 이 코야[48] 가 산티아고 데 오로페사 후작 작위를 받은 뒤로, 오늘날까지 잉카 황손의 가문이 이어지고 있다.
4.6. 오세아니아
4.6.1. 라파누이 국왕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국제 사회에 칠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다. 만약 이스터 섬이 독립하게 된다면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섬 의회가 옹립한 마지막 국왕의 손자 발렌티노는 2011년 왕위 요구자임을 선포했다.
4.6.2. 아베마마 국왕
아베마마는 키리바시를 구성하는 섬들 중의 하나로, 과거 키리바시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아베마마 섬이 키리바시에 병합되면서 아베마마의 왕위가 폐지되었다. 현재는 아베마마의 마지막 군주인 템 비노카[49] 의 후손인 템 토카타케가 명목상의 아베마마 국왕의 지위를 이어가고 있다.
4.6.3. 타히티 국왕
오늘날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지역에는 타히티 섬을 중심으로 한 타히티 왕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이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전체를 타히티라고 부르는 이유가 되었다.[51] 문제는 1842년에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던 프랑스에 의해 타히티 왕국이 패망해 버렸다는 점이며, 이 때문에 타히티 왕족들은 프랑스로 귀화해 살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내에서는 독립에 대한 여론이 드높지만[52] , 왕정복고 문제에는 관심이 모이질 않아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가 독립하더라도 왕실이 부활할 가능성이 없어서 전망이 밝지 못하다. 당장 주민들의 절대 다수가 공화정을 희망하고 있다.
4.6.4. 피지 대추장
피지 대추장 직위가 없어진 데에는 굉장히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과거 영국이 피지를 식민지배할 당시에 당국이 피지 원주민들을 게으르다고 멸시해서[56] 그들의 관점에서 부지런하다고 여긴 인도계 주민들을 대거 이주시켰던데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57] 결국 인도계가 피지의 경제를 완전히 틀어쥐게 되자, 분노한 원주민계에 의해 폭동이 발생하는 등, 나라 전체가 개막장이 되었다. 이런 갈등이 독립 이후까지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인도계 주민들은 영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피지의 군주임을 부정하고 공화국을 선포했으나, 정작 영국 왕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원주민들도 왕실을 지지하여 영연방 입헌군주제의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58] 따라서 피지의 대추장이라는 지위는 피지의 정치 상황이 변함에 따라 언제든 부활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도 인도계 주민들의 기득권이 견고한지라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윈저 왕조(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이전의 하노버 왕조에서도 피지 대추장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는데 이쪽은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때부터 영국 하노버 왕조의 작위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피지 원주민들에게는 무시당하고 있지만...
4.6.5. 하와이 국왕
현재 하와이 왕국의 왕위 요구자는 총 3명으로 하와이의 마지막 왕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양자[59] 데이비드 카와나나코아의 후손인 애비게일과 쿠엔틴 그리고 카메하메하 1세의 이복형제 칼로쿠오카마일레의 후손인 오와나가 명목상의 왕위 계승자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 애비게일은 1926년 생인데, 2017년에 오랜 동성 연인과 결혼했다.
미국의 힘이 대단하여 하와이가 독립할 가능성은 없어보이나, 하와이의 왕으로 인정되면 지금까지 내려오는 하와이 각 왕가 방계들이 가진 엄청난 부동산들의 소유권을 독식할 수 있게 된다.[60] 그래서 현재 하와이 왕실은 하와이를 미 연방 산하의 입헌군주제 자치주로 만들어주길 원하고 있으나, 현행 미국 헌법 상 귀족 신분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왕실이 공인받을 길은 마냥 요원하기만 하다.[61][62] 과거 스위스의 주들 중 하나인 루체른 주가 프로이센과의 동군연합 형식으로서 스위스 연방 산하의 입헌군주제 자치주로 존재했던 것처럼[63] 해달라는 주장인데, 처음부터 군주제 국가인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으로 역사를 시작하는 등[64] , 귀족주의적인 요소에 대해선 초기부터 히스테리적으로 배척해왔던 미국이 이를 승인해줄 리가 만무하여[65] 현실은 시궁창이다. 다만, 연방 정부와 하와이 주 정부는 구(舊) 왕실 측에게 옛 왕궁인 이올라니 궁전을 포함한 왕실 관련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부분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4.6.6. 호주
호주의 여러 왕위 요구자들.
4.6.6.1. 코코스 제도 영주
원래 코코스 제도는 19세기 초반까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으나, 알렉산더 헤어라는 무역상이 불법으로 납치해서 데려온 노예들[67][68] 과 함께 처음으로 정착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역시 무역상이던 존 클루니스-로스가 노예들을 빼앗고 헤어를 추방해버린 뒤에 코코스 제도의 영주를 자칭했다.[69] 이후로 클루니스-로스 가에 의해 헤어에게서 빼앗은 노예와 그 후손들로 이루어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비인간적인 폭정이 실시되었다.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주민 전체가 클루니스-로스 가의 소유물인 농노가 되어 오랫동안 엄청난 착취에 시달려야 했고, 영주의 폭정을 피해 달아나는 것도 엄금되었다. 결국 이런 꼬라지를 보다 못한 UN에서 명목상 코코스 제도를 속령으로 두고 있던 호주 정부에게 클루니스-로스 가를 축출하고 직할 통치를 하라는 권고를 내렸고, 호주 측이 이를 받아들여서 결국 1978년에 마지막 영주인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에게 625만 호주 달러를 주고 코코스 제도에서 내쫓아버렸다.[70] 그 이후로 코코스 제도는 2018년 현재까지 호주 정부의 직할 속령으로 남아있다. 현재는 마지막 영주인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의 아들인 존 조지 클루니스-로스가 이 섬에 다시 정착했고, 조개 양식을 하면서 펑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호주 정부가 이곳을 자국령으로 합병하기만 했을 뿐, 철저하게 개무시하고 있는 중이라서 현지인들 중 소수가 존 조지 클루니스-로스를 다시금 이곳의 영주로 추대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공식적으로 영주 직위를 포기하지만 않았을 뿐, 이곳을 자기 가문이 재통치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마 조상들의 원죄 때문에 영주직의 수행을 꺼리는 것일 수도 있고, 속 편하게 누가 태클걸 일도 없는 왕위 요구자 신세로 명목상의 영주로만 남는 것에 그냥 만족하는 듯하다.[71] 어찌보면 그렇게 나름 양심이 있는 모습을 보인 덕분에 일부에게나마 영주로 추대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존 조지 클루니스-로스가 현지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현지 여론은 클루니스-로스 가문의 영주위 요구를 결사반대하는 상황이다.
4.6.6.2. 헛리버 공작
호주 정부에 의해 반쯤 국가로 인정받기까지 하며 명맥을 이어나갔던 헛리버 공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관광객 감소 및 농작물 수익성 악화에 따른 경제적 타격 탓에 결국 해체되어 호주의 일부로 완전히 흡수되었다.[72] 21세기에 멸망한 마이크로네이션이라서 원래대로라면 등재되지 않을 법도 하지만, 몬테비데오 협약에서 국가 승인을 받았고 영국의 봉신국인 공국으로 승인되기도 했으며 앞서 설명한 것처럼 호주 정부에 의해 반쯤 국가로 인정받은 바 있기 때문에 여기에 등재하였다.
위의 코코스 제도와 달리 역대 군주들이 현지 주민들과 외국인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헛리버 공국의 전성기에는 헛리버 공국의 존재가 호주 서부로 많은 관광객이 오게 하였기 때문에[73] , 헛리버 공국의 멸망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레너드 1세가 헛리버 공국을 세운 것 자체는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74]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종식되어 구 헛리버 공국 영지를 포함한 호주 서부 지역으로 오는 관광객이 다시 늘어나고 구 헛리버 공국 영지의 농작물 수익성이 다시 좋아진다 해도, 헛리버 공국이 재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캐슬리 가문에서 명목상의 헛리버 공위가 계속 이어지고 헛리버 공궁을 포함한 헛리버 공국의 유적이 지속적으로 보전됨으로써, 헛리버 공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차원에서 구 헛리버 공국 지역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생겨날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이렇게 된다 해도 헛리버 공국 땅이 이미 호주 정부로 넘어갔을 뿐더러 헛리버 공국이 있었던 곳은 헛리버 공국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캐슬리 가문의 사유지인 점을 제외하면 엄연히 호주의 영토였기 때문에, 헛리버 공국이 재건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물론 이 나라가 세금 관련 분쟁 때문에 건설되었던 걸 생각하면, 헛리버 공국의 실제 재건 가능성과 별개로 이후의 공위 요구자들이 작위 요구 주장을 호주 정부를 상대로 경제적 문제와 관련해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레토릭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예를 들면, 헛리버 공국 건설의 배경이 된 밀 농사와 관련해서 세금 감면을 요구하거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범유행으로 인해 입었던 경제적 피해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헛리버 재독립이라는 떡밥을 끌고 올 수도 있다. 마침 건국 당시에도 써먹었던 수법으로, 영국 국왕의 신하라면, 국왕과 대적한 전적이 있어도 반역으로 간주하지 않는 법[75] 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으니, 영국 정부가 이 법을 폐지하지 않는 이상에야[76]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4.6.6.3. 호주 국왕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때부터 영국 왕족임을 자칭하면서[78]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하노버 왕조의 작위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호주 연방이 막 수립될 당시 영국은 아직 하노버 왕조였으므로 호주 국왕 칭호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호주 연방은 1901년 1월 1일에 수립되었는데, 영국 하노버 왕조의 마지막 왕인 빅토리아 여왕은 같은 해 1월 22일에 서거했으므로, 호주 연방은 하노버 왕조였던 시기가 겨우 22일인 셈이다(...).
5. 가상의 왕위 요구자
많은 가공매체에서도 '멸망한 왕국의 왕자/공주' 비슷한 내용은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이며, 이러한 캐릭터들 또한 '가상의 왕위 요구자'로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단은 단순히 '망국의 왕자와 공주' 리스트가 아니라, 상기한 등재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왕위 계승자라 불릴 수 있는 캐릭터'만을 등재함을 원칙으로 한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 절대다수가 외계에 존재하는 특정 행성이 지구와 달리 행성 전체가 한 나라인 것으로 묘사되므로, 멸망한 행성의 왕위 요구자가 나오기도 한다.
- 가면라이더 키바 - 팡가이아 킹
- 노보리 타이가
- 선대 킹
- 계승 실패 사유: 각각 가면라이더 다크 키바와 가면라이더 키바 엠페러 폼으로 변신한 쿠레나이 오토야와 쿠레나이 와타루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이후 마야를 죽이려 하다가 노보리 타이가가 만든 방어막에 자신이 쏜 빔이 반사되어 그 빔을 맞고 사망하였으며 세월이 흘러 2008년에 비숍에 의해 부활함.
- 팡가이아 한정으로 부활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본작 세계관 특성상 사망한 군주 당사자가 훗날 부활을 통해 왕위 요구자가 된 특이케이스. 비숍은 킹인 타이가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반역죄로 퀸인 스즈키 미오를 처형하였으나 이에 분노한 타이가에게 얻어터졌다. 이후 비숍은 타이가가 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선대 킹을 부활시켜 타이가를 몰아내고 선대 킹을 킹 자리에 앉히기 위해 대량의 라이프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이후 나고 케이스케가 변신한 라이징 이크사에게 죽은 후 자신의 라이프 에너지가 완전 부활 직전의 선대 킹에게 흡수되어 선대 킹이 완전히 부활했다.[79] 이후 선대 킹은 와타루와 타이가를 공격하여 이들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이내 이들에게 역관광을 당하여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 근육맨 - 근육별 왕위: 호르몬 야키
- 꼬마공주 유시 - 마법계 왕위: 대마법사 마가제렌트
- 계승 실패 사유: 마법계의 멸망으로 대마법사 마가제렌트 본인을 제외한 마법계 주민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함.
- 마가제렌트는 본래 마법계의 공주이자 플라티나 프린세스 후보였으나, 자신이 이터널 티아라의 주인이 될 경우 함께 경쟁하던 다른 세계들의 플라티나 프린세스 후보들이 모두 소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플라티나 프린세스가 되기를 거부했다가 그 여파로 마법계가 멸망하여 절망에 빠졌다. 1,000년 후 유시는 마가제렌트의 절망한 마음을 움직인 후 마법계의 크리스탈 플라워를 발견하여 자신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그렌다, 코코루, 에르미나, 베스를 모두 부활시켰으며, 이후 마가제렌트가 폐허가 된 마법계와 함께 소멸하면서 마법계의 왕통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 대마법고개 - 마법나라 왕위: 마법나라 선대 국왕
- 계승 실패 사유: 타나카 에스메랄다의 쿠데타로 마법나라의 왕조가 교체됨.
- 타나카 왕조 이전의 마법나라는 매우 평화로웠으나 타나카 왕조가 들어서면서 마법나라가 막나가는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타나카 왕조 이전 마법나라의 마지막 공주 엘리제는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아드리기 위해 타나카 푸니에를 공격했지만 결국 역관광을 당했다.
- 대왕 세종 - 고려 왕위: 옥환(왕명)
- 계승 실패 사유: 조선 태조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가 멸망함.
- 본작에 등장하는 가상의 고려 왕족 왕명(王明)은 조선 건국 직후 일어난 왕씨 몰살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이후 자신의 성을 왕(王)씨에서 옥(玉)씨로 바꾸어 옥환(玉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처럼 성을 바꾸어 살아남은 다른 고려 왕족들과 손을 잡고 비밀리에 고려 부흥 운동을 진행하였다. 중반부에 그는 자신이 모은 고려 부흥 세력을 총동원하여 경복궁에 쳐들어가 태종 이방원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내 진압되어 실패하였으며 결국 직접 태종 앞에 나타나 패배를 시인하고 자결하였다.
- 디스아너드 시리즈 - 군도 제국 황제위
- 에밀리 콜드윈
- 계승 실패 사유: 1편 - 전 황제의 암살 / 2편 - 딜라일라 코퍼스푼의 반란에 의해 황제위를 잃고 쫓겨나거나 돌로 변함
- 이 문서에 등재된 '가상의 왕위 요구자'들 중, 유일하게 스토리 상 두 번이나 왕위 요구자 신세였던 캐릭터이다. 1편의 경우, 에밀리 콜드윈은 선대 황제 재스민 콜드윈의 친딸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이지만, 디스아너드 1편 스토리 상 여제가 암살당하고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본인은 이리저리 납치당하는 등 정상적으로 황제위를 계승해 즉위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위 요구자인 신세이며, 2편의 경우에도 기껏 자기 아빠가 에밀리를 구출하고 황제위에 올려 놓았더니 딜라일라 코퍼스푼이라는 마녀가 반란을 일으켜 자기 또는 코르보를 석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석상이 되지 않은 쪽이 다시 제국의 정당한 황제를 돌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 딜라일라 코퍼스푼 / 딜라일라 콜드윈
- 계승 실패 사유: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이 군도 제국 황제의 딸이기 때문에 정당한 계승권을 가지지만, 유혼 콜드윈 황제가 자신을 황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재스민 콜드윈이 왕위를 계승하게 함.
- 바로 위 '에밀리 콜드윈' 대목에서 설명한, 디스아너드 2편에서 일으킨 딜라일라의 반란이 바로 이 명목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작중 스토리 상으로 딜라일라의 이야기가 명백한 사실이라고 못박지는 않기에 이 이야기의 진위는 불분명하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딜라일라 코퍼스푼 / 딜라일라 콜드윈(본인이 주장하는 본명)은 왕위 요구자가 아니라 단지 거짓말을 한 반란자일 뿐이다.
- 에밀리 콜드윈
- 디아블로 시리즈 - 칸두라스 왕위: 레아(디아블로 3)
- 라스트 사무라이 - 사쓰마 카츠모토 가문 영지 다이묘: 카츠모토 모리츠구
- 계승 실패 사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봉건제가 폐지되면서 일본 정부로부터 자신의 다이묘 신분을 부정당함.
- 라스트 사무라이의 서브 주인공 카츠모토 모리츠구는 작중에서 다이묘로 묘사되는데, 라스트 사무라이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봉건제가 폐지되어 다이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다. 따라서 본편 시점에서 카츠모토는 법적으로 더 이상 현직 다이묘가 아니므로 다이묘직 요구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 르브바하프 왕위: 반 로뎀하윈즈 차미도르 구뜨 릴리 루미안 르브바하프
- 계승 실패 사유: 비센하르 왕국의 침략으로 르브바하프 왕국이 멸망함.
- 르브바하프 왕국이 재건되는 과정은 원작과 애니판에서 완전히 다르게 묘사되었다. 원작은 그냥 신하들의 노력으로 재건된 것으로 나오고 그 상태에서 저절로 반이 왕위에 올랐지만 애니판은 반이 비센하르에 붙잡힌 유리엘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비센하르 왕국에 처들어가서 르브바하프 왕국을 재건한 것으로 나온다.
- 마운트 앤 블레이드 - 6개 왕국의 왕위 요구자들
- 계승 실패 사유: 여성이라서, 왕 작고 시 부재중이었어서, 부친이 암살된 뒤 숙부가 왕위를 찬탈해서 등 다양.
- 아예 게임상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다.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 명성을 쌓으면 각 국가의 왕위 요구자 중 한 명에게 접촉해 그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멀쩡한 국가 하나와 적대적이 되며 그와 맞서 왕위를 되찾으려는 반정의 고생길이 시작된다. 세력으로 간주되기에 심지어 다른 국가에게서도 선전포고를 당할 수 있다.
- 마징가 시리즈
- 그레이트 마징가 - 미케네 왕국 왕위: 케르비니우스
- 계승 실패 사유: 어둠의 제왕의 미케네 왕국 장악
- 케르비니우스는 미케네 왕국이 어둠의 제왕에 의해 장악되면서 어둠의 제왕의 명령을 받은 암흑대장군과 그가 대동한 전투병에 의해 체포된 후 전투수로 개조되었다.
- UFO로보 그렌다이저 - 프리드 별 왕위: 듀크 프리드
- 계승 실패 사유: 베가성 연합군의 공격으로 프리드 별 멸망
- 베가성 연합군으로 프리드 별이 멸망하면서 듀크 프리드는 지구로 망명하였다. 듀크 프리드는 베가성 연합군으로부터 자신의 제2의 고향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되었다.
- 그레이트 마징가 - 미케네 왕국 왕위: 케르비니우스
- 메칸더 V - 가니메데 행성 왕위: 메두사 → 지미 오리온
- 계승 실패 사유: 지미 오리온을 제외한 가니메데 성인들이 헤드론 황제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되고 콩키스타 군단이 되어 가니메데 행성이 헤드론 황제의 지배 하에 놓임.
- 가니메데 행성의 여왕 메두사는 아들인 지미 오리온을 몰래 숨겨서 사이보그가 되지 않게 만들었으나 본인은 결국 가니메데 행성의 일반 백성들처럼 사이보그화되고 말았다. 메두사 사후 가니메데 행성 왕위 요구권은 지미 오리온에게 넘어갔다.
- 명군이 되어보세!
- 오와리 번주 및 오다 정권 수장: 오다 히데노부
- 계승 실패 사유: 후견인으로 지목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사실상 권력을 빼앗김.
- 이 대체역사소설에서, 미래인이 연산군의 몸에 빙의해 역사를 바꾸고, 그 연산군이 죽은 뒤 다시 미래의 조선 왕이 된 가상의 왕족 '경성군'에 빙의하며 역사를 바꾼 탓에, 오다 노부나가는 혼노지의 변에서 죽지 않고 생존하였다. 그리고 역사가 바뀐 탓에 1590년 경인년에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경인왜란이 발발하지만, 실제 역사보다 몇 배나 강해진 조선의 국력에 의해 조선은 실제보다 훨씬 적은 피해를 입고 일본군을 막아냈으며, 오다 노부나가는 전사하고 만다. 그가 죽기 직전에 그의 손자였던 오다 히데노부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후견인으로 지정한다.[81]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명한 유서는 조선이 입수하여 일본에 전해지지 않고, 히데요시를 지명한 유언장만이 일본에 정해지게 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린 오다 히데노부의 섭정 명목으로 사실상의 일본의 지배자가 된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유지를 따라 히데노부에게 정권을 넘기지 않고, 실제 역사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를 자신의 양자로 입적해 '도요토미 히데토시'로 만들고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함으로써, 사실상 오다 히데노부가 계승에 실패하고 왕위 요구자 신세가 된 것이다. 오다 히데노부가 왕위 요구자로 전락한 것 자체는 실제 역사이지만, 본작 자체가 대체역사물이다 보니 여기에 등재되었다.
- 일기도 도주: 원균
- 계승 실패 사유: '을미동정' 중 조선군에 사로잡히고, 대남도에 노예로 팔려가게 됨.
- 이 대체 역사에서 원균은 주인공인 조선 왕의 명령으로 일본으로 보내졌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조선 침공 때 아예 일본 측으로 배신하여 조선군과 싸웠다. 비록 경인왜란은 실패하였으나 원균은 살아남았고, 일본의 수장이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기도 도주로 봉해졌다. 그러나 몇 년 후 조선의 보복전쟁인 '을미동정' 때 원균은 생포되었고, 조선의 원래 계획은 원균을 처형하는 것이었으나, 을미동정에 참전한 원연(원균의 동생)이 혈육으로서의 마지막 정으로 인해 죽는 것만은 면하고[82] 원균 본인은 진짜 정체는 숨겨진 채 대남도에 노예로 팔려가 남은 생을 비참하게 살게 되었다.
- 오와리 번주 및 오다 정권 수장: 오다 히데노부
- 반지의 제왕
- 곤도르 왕위: 아라고른 2세
- 계승 실패 사유: 곤도르 왕국의 마지막 왕이 사망한 후, 적법한 계승자가 약 천 년 동안 나타나지 않음.
- 이 때문에 반지의 제왕 작품 내내 곤도르 왕국에는 왕이 없이 섭정들이 거의 천 년 동안 왕위를 대행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서야 아라고른이 곤도르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인정받고 스스로를 엘렛사르 텔콘타르로 개명, 텔콘타르 왕조를 열게 된다.
- 곤도르 통치 섭정: 파라미르
- 계승 실패 사유: 곤도르 왕국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가 다시 나타난 후 곤도르는 섭정이 끝나고 다시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됨.
- 말 그대로 왕이 아닌 섭정일 뿐더러 통치권도 반납했으니 뭔 왕위 요구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왕, 황제, 대공 등의 공식적인 군주가 아닌 세습직 실권자 자리의 요구자도 왕위 요구자로 간주되며, 비록 마지막 통치 섭정인 파라미르는 아라고른 2세에게 통치권을 반납했지만 명목상으로나마 섭정 지위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사실상 섭정 지위의 요구자라고 볼 수 있다.
- 곤도르 왕위: 아라고른 2세
-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
- 중국 모 왕조 군주: 왕푸
- 계승 실패 사유: 왕푸의 조상 대에 해당 왕조가 멸망함.
- 왕푸는 과거에 멸망했던 중국 왕조의 후손이라는 설정인데, 정확히 어느 왕조의 후손인지는 설정 자체가 없다. 그래서 그 왕조가 중국의 실존 왕조들 중 하나인지, 가상의 왕조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 점은 사실상 맥거핀이라고 볼 수 있다.
- 레스피아 왕위: 스즈히메
- 계승 실패 사유: 삼촌 고르바의 쿠데타로 스즈히메의 가족이 스즈히메 본인을 제외하면 모두 몰살되고 고르바가 왕위에 오름.
- 스즈히메는 가상의 서양 국가인 레스피아 왕국의 공주이며, 고르바의 쿠데타로 가족을 잃은 후 일본 아모리의 번주에게 입양되었다. 서양인이기 때문에 스즈히메라는 이름은 당연히 입양된 후의 이름이지만, 레스피아인으로서의 본명은 설정되어 있지 않아서 사실상 맥거핀에 가깝다.
- 중국 모 왕조 군주: 왕푸
- 선덕여왕 - 신라 왕위: 진지왕 → 김용수 → 김춘추
- 계승 실패 사유: 미실에 의해 진지왕이 폐위되면서 진지왕계 혈통이 성골에서 진골로 강등되어 왕위 계승권을 상실함.
- 미실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진지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미실을 정치에서 배제하려 했으나,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인 미실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로 인해 진지왕계 혈통이 성골 지위를 잃고 진골 귀족으로 전락하면서 진지왕의 후손이 왕위를 잇는 일은 없을 것처럼 보였으나, 진지왕의 손자이자 김용수의 아들인 김춘추가 비록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성골 혈통 단절 이후 신라의 왕이 된다. 김춘추가 왕이 되는 것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고 진지왕, 김용수, 김춘추 3대가 모두 실존인물이지만, 진지왕의 폐위 과정에 픽션이 많이 들어갔으므로[83] 여기에 기재한다.
- 슈퍼전대 시리즈
- 광전대 마스크맨 - 지저왕국 왕위: 지제왕자 이가무 → 이아루 공주
- 계승 실패 사유: 지저제국 츄브에 의해 지저왕국이 멸망함.
- 지저왕국의 공주였던 이가무는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지저왕국의 왕위 계승법 때문에 남장여자가 되어 지저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얻었다. 지저왕국의 왕가였던 이가무 가문의 재건을 조건으로 지저제국 츄브의 간부이자 고위귀족이 된 이가무는 지제왕 제바가 이가무 왕조의 숙적인 리살 도그라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츄브를 배신했으며, 최종결전이 끝난 뒤에는 왕족 지위를 버리고 속죄를 위해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 순례 여행을 떠났다. 그로 인해 지저왕국의 또다른 공주이자 이가무의 쌍둥이 동생인 이아루가 지저왕국 왕위 요구자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이아루는 지저왕국의 왕위 계승법을 바꾸어 여성의 왕위 계승을 허용함으로써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이아루는 지저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연인이었던 타케루와 작별한다.
- 사무라이전대 신켄저 - 시바 가문 다이묘: 시바 카오루 → 시바 타케루
- 해적전대 고카이저 - 파미유 행성 왕위: 아임 드 파미유
- 계승 실패 사유: 우주제국 잔갸크에 의해 파미유 행성이 멸망함.
- 파미유 행성 멸망 후 아임 드 파미유는 고카이저에 합류하였다. 아임의 부모(잔갸크의 침략으로 사망) 외에 파미유 행성의 다른 왕족들이 언급되지 않는 걸로 보아 아임이 파미유 행성의 왕위 요구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 광전대 마스크맨 - 지저왕국 왕위: 지제왕자 이가무 → 이아루 공주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 타르테소스#s-2 왕위: 네모 선장 → 나디아 라 아르월
- 계승 실패 사유: 타르테소스의 재상 네메시스 라 아르골이 일으킨 쿠데타가 원인이 되어 타르테소스가 멸망함.
- 네모 선장의 정체는 멸망한 국가인 타르테소스의 마지막 국왕 엘시스 라 아르월이었다. 타르테소스가 물에 잠겨 멸망한 후 간신히 목숨을 건진 엘시스는 네모라는 가명을 쓰면서 네메시스(가고일)의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네모가 사망한 후 이론상의 타르테소스 왕위 요구권은 딸인 나디아 라 아르월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 얼음과 불의 노래
- 칠왕국의 철왕좌
-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 타르가르옌 가문
- 스타니스 바라테온과 렌리 바라테온 - 바라테온 가문
- 계승 실패 사유: 바라테온 가문의 공식적인 계승자 조프리 바라테온의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스포일러1] 가 있어 정당한 계승자라고 간주할 수 없음.
- 드라마판, 소설판 공통으로 렌리 바라테온은 사망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왕위 요구를 할 가능성이 없고, 스타니스의 경우 드라마판에서는 역시 사망함으로서 왕위 계승에서 탈락하였으나 소설판에서는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철왕좌(바라테온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면)의 왕위 요구자이다. 그리고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역시 드라마판 오리지널 진행 기준으로, 바라테온 왕가가 모두 사망하고 로버트 바라테온의 아내였던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스스로 여왕을 자칭(또는 찬탈) 하였는데, 바라테온 계보의 정통 계승자를 찾다 보면, 바라테온 가문 관점에서도 로버트 바라테온의 먼 친척뻘인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바라테온 왕조의 철왕자 왕위 요구자"가 된다는 것.
- 북부의 관리자이자 윈터펠의 영주: 존 스노우 / 브랜 스타크와 리콘 스타크
- 계승 실패 사유: 마지막 북부의 영주인 롭 스타크가 피의 결혼식에서 살해당하고, 칠왕국 북부의 대영주 자리가 볼턴 가문으로 넘어감
- 작중에서는 롭 스타크가 마지막 명령으로 존 스노우의 사생아 대우를 철폐하고 북부의 관리자 자리를 계승하라는 명령을 남겼으므로, 이에 따르면 존 스노우가 북부의 대영주 자리를 요구하는 왕위 요구자이지만, 해당 명령을 전달하려던 자들이 모두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에 작중의 계승 법칙에 따른다면 롭 스타크의 동복형제인 브랜 스타크와 리콘 스타크 순으로 계승권을 가지게 된다. 드라마판에서는 윈터펠 탈환전을 통하여 스타크 가문이 북부의 대영주 자리를 되찾았고, 존 스노우가 북부의 영주들의 추대로 '북부의 왕'에 올랐으며 윈터펠의 영주는 산사 스타크가 계승하게 되었다.[84]
- 강철 군도의 대영주: 테온 그레이조이
- 계승 실패 사유: 전임 대영주인 발론 그레이조이의 사망 후 유론 그레이조이가 킹스무트 관습으로 새 대영주로 선출됨.
- 형식상으로는 발론 그레이조이의 형제인 유론이 킹스무트라는 강철 군도의 고대 계승의식을 통하여 선거를 통해 군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정당한 계승이라고 간주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작중 시점에서는 킹스무트는 단지 고대의 관습이었을 뿐 현 시점에서는 선거제가 아니라 장자 상속방식으로 강철 군도의 대영주 작위를 계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유지되고 있던 일반적인 상속법에 따르면 발론 그레이조이의 적자인 테온 그레이조이가 강철 군도의 대영주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이 맞으나, 유론 그레이조이가 뜬금없이 고대의 잊혀진 관습으로 대영주 작위를 얻은 것은 편법적인 방법을 통한 찬탈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왕위 요구자/유럽에 있는 스페인 왕국의 '카를로스주의자' 계열의 왕위 요구자도, 명목상으로는 스페인 왕 페르난도 7세가 죽고 그 딸 이사벨 2세가 작위를 상속받았으나, 페르난도 7세가 자신의 딸에게 왕위를 넘기기 위해 임의로 계승법을 변경하였으므로, 새로운 왕위 계승법이 무효이며 직전의 계승법에 따라 자신이 정당한 스페인 왕임을 주장한 세력의 후손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테온 그레이조이가 왕위 요구자로 간주됨에 있어 충분하다.
- 칠왕국의 철왕좌
- 에이스 컴뱃 7 - 실라지 대공국 대공: 미하이 A. 실라지
- 계승 실패 사유: 실라지 대공국 내 정변으로 군주정의 붕괴, 이후 국가가 에루지아에 합병됨.
- 에이스 컴뱃 7 스토리가 후반부로 갈수록 에루지아 내부가 개판이 되어가고, 이에 과거 에루지아에 병합되었던 여러 지역 출신의 군인들이 모국을 독립시키려고 하면서, 미하이가 소속된 솔 편대 역시 실라지 대공국의 독립을 시도한다(미션 18 내용). 그러나 실라지 대공이었던 미하이 본인은 자신의 복위나 실라지 대공국 복원에는 별 관심이 없이 단지 하늘을 날고 싶어할 뿐이다. 에컴 7의 엔딩에서 결국 연로한 몸에 고된 비행을 한 후유증으로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걸 보면 실라지 대공국의 부흥은 물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해당 미션에서 적군들이 '보스루지 공화국 군'을 자청하는데, 이쪽은 실라지 대공국의 이웃나라였으며 역시 에루지아에 합병된 국가다.
- 울트라맨 레오 - L-77성 왕위: 레오(오오토리 겐)
- 계승 실패 사유: 사벨폭군 마그마 성인과 쌍둥이괴수에 의해 L-77성이 멸망함.
- 레오는 본래 L-77성의 왕자였으나, 사벨폭군 마그마 성인과 쌍둥이괴수에 의해 L-77성이 멸망한 후 지구로 와서 오오토리 겐이라는 가명을 쓰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 외에도 다른 요소들까지 더해지면서 울트라 시리즈 사상 가장 불행한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
- 워크래프트 시리즈
- 로데론 왕위: 칼리아 메네실
- 계승 실패 사유: 국왕이 정당한 계승자에게 살해당한 이후, 왕국 멸망.
- 더미 데이터에는 칼리아 메네실 본인이 '자신은 로데론 왕국과 더이상 연관이 없다'고 발언하여, 이에 따르면 '계승권자 스스로가 작위를 부정한 경우'에 해당한다 볼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더미 데이터로 남았기에 공식 설정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로데론 왕위를 여성이 계승할 수 있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는데, 블리자드는 '정치적 올바름' 집착이라고 비꼼을 당할지언정 성평등적 요소를 반영하고, 실제로 여러 종족 수장들 중에 여성들도 존재하므로, 로데론의 왕위를 여성이 계승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보아 왕위 요구자로 간주할 수 있다.
- 길니아스 왕위: 겐 그레이메인
- 계승 실패 사유: 대격변과 뒤이은 포세이큰의 침입에 의하여 왕국 영토 상실과 사실상의 왕국 붕괴
- 비록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길니아스인으로 이루어진 늑대인간(워크래프트 시리즈) 종족이 멀쩡히 존재하고, 길니아스의 국왕인 겐 그레이메인이 멀쩡히 살아 있기 때문에 잘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왕이 길니아스 왕국의 영토가 아닌 스톰윈드에 있다는 것 자체가[85] 길니아스 왕국 영토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국왕이 타국으로 망명했다는 것이고, 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인 영토가 사라짐으로서 길니아스 왕국이 멸망하였고, 겐 그레이메인이 현재는 길니아스의 왕위 요구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 만일 스토리상에서 겐 그레이메인이 사망한다면, 현재까지 알려진 겐 그레이메인의 자녀인 테스 그레이메인이 다음 왕위 요구자가 된다.
- 검은용군단의 용의 위상: 래시온, 에비시안, 사벨리안
- 테라모어의 여군주: 제이나 프라우드무어
- 로데론 왕위: 칼리아 메네실
- 워해머 시리즈
- 하이 엘프(Warhammer)의 피닉스 킹: 말레키스(Warhammer)
- 계승 실패 사유: 다음 문단에서 서술
- 워해머 시리즈의 하이 엘프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대륙 울쑤안 내에서 여러 공국들로 나누어져 살아가고 있으나, 이들 중에서 모든 하이 엘프들의 수장인 피닉스 킹을 선출하고, 그 절차의 마지막으로서 엘프들의 신 아슈리안의 신전에 있는 불꽃에 몸을 던졌다가 나오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절차가 생기게 된 것은 초대 피닉스 킹인 아에나리온이 카오스의 침략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자,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 아슈리안의 불꽃에 몸을 던졌다가 무사히 나오고, 이런 전설적인 위업에 의해 최초의 피닉스 킹이 된 것이다. 본래 워해머 설정에서 다크 엘프(Warhammer)의 수장인 말레키스는 아에나리온의 아들로서 자격 없는 자가 피닉스 킹을 노리고 불꽃에 몸을 던졌다가 오히려 자기 몸을 태워먹기만 하고 도망쳤다는 것이 공식적인 설정이었으나, 엔드 타임이라는 워해머의 마지막 스토리에서 사실 말레키스가 진정한 피닉스 킹의 계승자이며, 불꽃에서 조금만 더 버텼다면 완전한 선택을 받았을 것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그동안 있었던 피닉스 킹들은 실은 진정한 계승자가 아니며 불꽃을 막는 마법을 통해 거짓과 기만을 부렸다고 대놓고 공표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왕위 계승의 법칙은 아니지만, '신들의 선택'으로서 해당 작위가 계승된다는 관점에서는, '신들이 점지한 진정한 피닉스 킹 후보'라는 점에서 왕위 요구자로 간주할 수 있다.
- 카락 여덟 봉우리의 왕: 벨레가르
- 계승 실패 사유: 카락 여덟 봉우리의 소실
- 여러 드워프들의 영지 중에서 가장 큰 영지 중 하나였던 카락 여덟 봉우리는 마지막 왕이 사망한 이후로 스케이븐과 오크 & 고블린들이 들끓는 소굴로 전락했으며, 여덟 봉우리를 지배했던 왕의 후손인 벨레가르는 워해머의 스토리 내내 이곳을 되찾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나, 카락 여덟 봉우리 지역의 상층부만을 간신히 수복했을 뿐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엔드 타임에서 사망하였다. 토탈 워: 워해머 게임에서도 드워프 종족의 전설적인 군주로서 벨레가르가 존재하며, 벨레가르가 지배하는 클랜 안그룬드 세력을 플레이할 시에는 대놓고 카락 여덟 봉우리를 되찾는 것이 메인 퀘스트 중 하나이다. 최소한 게임 내에서는 벨레가르가 단지 왕위를 요구하는 신세를 넘어서 정당한 왕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일지도.
- 하이 엘프(Warhammer)의 피닉스 킹: 말레키스(Warhammer)
- 원피스
- 드레스로자 왕위
- 리쿠 돌드 3세 - 리쿠 왕조
- 계승 실패 사유: 국왕이 폭정을 일으켜 백성을 살해하는 등 극도의 탄압을 벌였으며, 끝내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에 의해 폐위되고 도플라밍고가 왕이 됨.
- 그러나 상기한 계승 실패 사유는 진실이 아니다. 이는 모두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능력으로 국왕을 조종하여 벌인 일이고 그는 정말로 국민을 위하는 성군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밀짚모자 일당에 의해 도플라밍고는 패배하고 해군에 체포되었으며, 드레스로자 편 결말에서 리쿠 돌드 3세는 드레스로자의 왕위를 되찾았다.
-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 돈키호테 왕조
- 계승 실패 사유: 밀짚모자 일당에 의해 패배하고 해군에 체포되어, 리쿠 돌드 3세로부터 찬탈했던 드레스로자 왕위에서 사실상 쫓겨남.
- 상술한 것처럼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가 매우 추악한 방법으로 드레스로자 왕위를 찬탈했으므로, 그가 드레스로자 왕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물론 도플라밍고 본인은 드레스로자의 이전 왕조인 돈키호테 왕조의 후손이지만 돈키호테 왕가가 왕위를 버리고 드레스로자를 떠난 게 세계정부 수립 직후인 800년 전의 일이라, 드레스로자를 잘만 다스리던 리쿠 왕조를 무너뜨리고 돈키호테 왕조를 재건한 것 자체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다.
- 리쿠 돌드 3세 - 리쿠 왕조
- 와노쿠니 쇼군, 쿠리 다이묘: 코즈키 모모노스케
- 드레스로자 왕위
- 은하영웅전설 -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황제위: 에르빈 요제프 2세
- 계승 실패 사유: 제국의 모든 실권을 쥔 권신에 의해 강제로 폐위됨.
- 형식적으로는 골덴바움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카타린 케트헨 1세가 라인하르트에게 선양함으로서 골덴바움 왕조가 끝났으므로, 왕위 요구자에 등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나,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한 문벌귀족들이 망명지에서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왕위 요구자로 볼 수 있다. 다만 에르빈 요제프 2세가 폐위된 사유 자체가 바로 그 문벌귀족 잔당들이 유제 납치사건을 벌인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작중에서 골덴바움 왕조 말기와 문벌귀족들은 극도로 부정적인 적폐나 마찬가지로 묘사되고, 오히려 라인하르트가 로엔그람 왕조를 개창한 것이 새로운 개혁적인 행보라고 긍정적으로 묘사되지만, '왕위 계승의 법칙'으로만 놓고 평가하면 찬탈인 것은 맞다.
- 이나즈마 일레븐 GO 갤럭시 - 키에르 왕위: 카트라 페이지
- 이누야샤 - 수신: 진짜 수신
- 인형공주 리카 - 인형 나라 왕위: 카야마 리카의 할아버지
- 계승 실패 사유: 데보르가 야에를 조종하여 카야마 리카의 할아버지를 쫓아내고 야에 본인이 여왕이 되게 함.
- 주인공 카야마 리카의 할아버지는 본래 인형 나라의 국왕이었으나, 자신의 처형이자 나나에(카야마 리카의 할머니)의 언니인 야에가 데보르에게 조종당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여왕이 되었다. 마지막에 데보르가 쓰러진 후 야에는 데보르의 조종에서 풀려나 본래의 선한 마음을 되찾았다.
- 제로의 사역마 - 갈리아 왕위: 타바사(샤를로트 엘레느 오를레앙)
- 계승 실패 사유: 로말리아 성국의 음모로 인해 쌍둥이 동생 조제트와 바꿔치기됨.
- 로말리아 성국의 음모로 인해 갈리아의 여왕으로 즉위한 타바사는 로말리아 성국에 의해 자신의 쌍둥이 동생 조제트와 바꿔치기를 당했다. 결말에서는 조제트가 줄리오와 함께 있기 위해 왕위를 포기함에 따라 타바사가 여왕 자리에 복귀한다.
- 지구용사 벡터맨 - 비너스 별 왕위: 레디아 공주 → 라디아 공주
- 계승 실패 사유: 사탄 제국에 의해 비너스 별이 멸망함.
- 비너스 별의 레디아 공주는 동면 캡슐에서 깨어난 후 본격적으로 벡터맨의 조력자가 되었으나, 1기 마지막회에서 위기에 처한 벡터맨을 돕기 위해 벡터맨에게 힘을 준 후 기력이 소모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동생인 라디아 공주는 사탄 제국에 의해 세뇌되어 사탄 제국의 전사가 되었으나, 메두사의 계략에 속아 사탄 몬스터가 된 상태에서 벡터맨에게 패한 후 벡터맨 버지니아의 초생명 에너지에 의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사실상 언니로부터 비너스 별 왕위 요구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2기 마지막회에서 라디아 공주가 우주선을 타고 사탄 제국 거대 비행선으로 돌진하여 자폭함에 따라 비너스 별 왕가는 단절되었다.
- 천사와 악마 - 가톨릭 교황: 카를로 벤트레스카
- 계승 실패 사유: 본래는 바티칸의 궁무처장으로 교황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전무함[91] . 작중의 전임 교황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음[스포일러2] .
- 바티칸의 궁무처장인 카를로 벤트레스카는 평소 교황이 과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에 불만을 품었는데, 강경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그는 결국 교황을 비밀리에 독살하였다. 그리고는 일루미나티를 이용해 CERN에서 반물질을 보관하는 장치를 훔쳐내서 가짜로 바티칸에 폭탄 테러를 하려는 것처럼 위장한 뒤, 추기경단의 이목을 끌어서 스스로 교황이 되고자했다. 문제는 교황이 되어서 강력한 근본주의 정책을 세워서 사람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고자 했으나, 교황으로 선출된 지 고작 17분만에 엄청난 비밀[스포일러3] 을 듣고는 충격을 받아 분신자살하면서, 그의 원대한 꿈은 일장춘몽이 되었다.
해당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행적 및 AI의 행동에 따라 게임에 존재하던 군주국이 멸망하면 그 곳의 군주도 왕위 요구자라 간주할 수 있지만[93] , 게임 시작 시점에서의 왕위 요구자만 기재한다.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왕위: 조지 5세 → 에드워드 8세
- 계승 실패 사유: 1926년 영국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구정부 붕괴, 윈저 왕가의 캐나다 도주
- 카이저리이히는 Heart of Iron 시리즈의 인기 대체역사 Mod로서 1차 대전의 승리자가 독일과 그 동맹국이라는 설정이다. 이로 인하여 프랑스도 1921년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붕괴하고 구 정부는 알제리로 도망갔으며, 1926년에는 영국도 사회주의 혁명을 맞아 왕실이 도망가고 말았다. 플레이어의 개입 여부에 따라 영국 왕실이 다시 요구하는 왕위를 찾을 수도 있지만 기본 국력 자체가 약소하기 때문에 본토 수복은 암울하기 그지 없다. 이 모드에서는 조지 5세 사후 영국의 왕위 요구자(캐나다의 국가원수) 자리를 에드워드 8세가 승계하나, 이벤트 선택지에 따라 왕실 스캔들에 의해 에드워드 8세가 사실상 사임을 강요받고 조지 5세의 다른 자식이 앨버트 국왕이나 조지 왕(현실의 조지 6세가 아닌, 조지 6세의 동생이었던 조지 왕자)가 캐나다의 왕이자 영국의 왕위 요구자가 될 수 있다.
- 벨기에 왕위: 레오폴드 3세
- 계승 실패 사유: 독일의 1차세계대전 승리로 인해 벨기에 왕국 멸망
- 독일은 승전 이후 이곳에 친독일 정부인 '플란데런-우알로니' 국가를 세우고 독일계 왕족을 왕으로 임명했다.[94] 그러나 플랑드르, 왈롱 양쪽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이벤트로 정부가 붕괴하고 벨기에가 재건될 수도 있다.
- 이탈리아 왕국 왕위 + 사르데냐 피에몬테 왕위: 아마데오 1세
- 계승 실패 사유: 이탈리아의 1차대전 패전 +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혁명
- 이탈리아가 1차대전에서 패전한 직후, 전후 협상에서 이탈리아 반도를 이탈리아 통일 전쟁 이전으로 되돌리기로 합의되었다. 이에 따라 사보이아 왕가는 이탈리아 왕국을 상실하고 사르데냐-피에몬테 시절로 되돌아갔는데, 북이탈리아 지방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북이탈리아 지역이 '이탈리아 사회주의공화국' 으로 넘어감으로서 사보이아 왕가는 피에몬테 지역도 상실하고 사르데냐 섬에서만 틀어박힌 꼴이 된 것이 게임 시작시의 형국이다.
- 룩셈부르크 대공위: 샤를로트(룩셈부르크)
- 계승 실패 사유: 1차대전에 의해 대공국 멸망, 독일 제국에 합병
- 실제로도 1차 대전 승리시 독일은 룩셈부르크를 병합할 생각이 있었다.
- 루마니아 왕위: 카롤 1세
- 계승 실패 사유: 루마니아 철위대의 쿠데타로 왕실 철폐
- 단, 카이저라이히 제작진의 업데이트 계획에 따르면 현 설정인 루마니아 철위대의 파시즘적 공화제 체제에서, 루마니아 왕실이 유지된 상태에서 철위대가 정권을 접수하고, 왕실-철위대간 권력 다툼이 일어난다는 설정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 일본 천황위: 스메라기 카구야
- 계승 실패 사유: 일본이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함.
- 본작 세계관에서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황실이 해체되어 현실의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카구야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황실 정통 후계자로 설정된 걸로 보아 본작 세계관의 일본은 현실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의 일본처럼 여성의 황위 계승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
- 유럽의 중세시대를 다루는 시점에서, 수많은 백작, 공작, 왕, 황제들이 개별적인 플레이 가능 인물로 나오는 이 게임에서 어떠한 이유로든[95] 플레이어를 포함한 누군가가 타 작위 소유자의 영토를 침공한 다음 빼앗아서 해당 캐릭터의 작위를 빼앗는다면, 작위를 잃어버린 해당 캐릭터는 그 시점에서 그 작위에 대한 왕위 요구자가 되어버린다. 물론 플레이어가 앞서 말한 이유에 당해버려서, 플레이어가 졸지에 왕위 요구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 청나라의 황제, 몽골 제국의 대칸, 티베트의 전륜성왕, 서남부 토사들의 수장 등 기타 작위[96] : 동치제
- 계승 실패 사유: 미래인이 고종의 몸에 빙의하게 되어, 개변된 역사에 의해 조선군이 청군 대파, 서태후와 황제의 외국 도주
- 이로 인하여 청나라는 황제가 도망가버린 채 공친왕이 섭정을 대행하였으며, 미래의 인물이 빙의한 주인공 고종의 영향력에 의해 착실히 청나라의 중원 영향력은 상실되고, 끝내 청나라는 천자국이 아닌 중국의 번국으로 강등되었고, 공친왕이 '제국의 섭정'이 아니라 '번국 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종의 복안은 최종적으론 '번국이 되어버린 청나라'마저 대한제국에 병합하려는 속셈이므로, 작중 전개에 따라 청 제국의 황제위 요구자와 번국 청나라의 왕위 요구자가 나란히 등재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 햄릿 - 덴마크 왕위: 햄릿 왕자
- 계승 실패 사유: 전 국왕이 시해당한 이후, 국왕 살해자가 불법적으로 왕위를 찬탈함.
- 클로디어스가 아버지 햄릿 왕이 죽은 이유를 '뱀에 물려 죽었다'고 거짓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클로디어스가 전 왕을 살해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자 찬탈이므로, 햄릿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햄릿 왕자가 작중 덴마크의 왕위 요구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
- 혁명기 발브레이브 - 도르시아 왕위: 도르시아 마지막 국왕
- 황제의 귀환 - 동로마 제국 황제위: 콘스탄티노스 11세
- 계승 실패 사유: 콘스탄티노스 11세 본인은 오스만 술탄국의 침략을 피해 하기아 소피아의 바닥 속에 빠져들어 오랜 세월 동안 잠들었으며, 그 사이에 오스만 술탄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옛 동로마 제국 영토를 정복하여 오스만 제국으로 격상됨.
- 본작은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순간에 죽지 않고 하기아 소피아의 바닥 속에 빠져들어 오랫동안 잠들었다는 전설을 따랐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2003년에 깨어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본작의 대체역사에서 공산화된 그리스[97] 의 그리스군 분대장에게 자신의 황제위를 되찾겠다고 말했다가 그에게 그리스에 더 이상 전제군주는 필요없다는 말을 듣고 사살당했다.
- RPG전설 헤포이 - 드라고니아 왕위: 류토
- 계승 실패 사유: 드라크네스 군에 의해 부모가 죽음을 맞이하고 류토 본인 또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채 도망침.
- 최종 보스인 마왕 드라크네스를 쓰러뜨린 후 류토는 드라고니아 왕위에 올랐지만 이내 주인공 일행과 함께 다시 모험을 떠났으며, 분자에몽이 드라고니아의 섭정을 맡게 되었다.
[1] 실제로 유럽의 왕위 요구자 문서들에는 각종 백작이나 공작위의 요구자 그리고 카자크 대족장위 요구자도 등재되어 있으며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왕위 요구자 문단에는 각각 미스키토족 추장위 요구자와 코코스 제도 영주위 요구자, 피지 대추장위 요구자도 등재되어 있다.[2] 현재 집권중인 왕이나 권력자의 경우 프리텐더가 아무리 강력한 상속 근거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이상 부당한 가짜 취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 프랑스어 어원인 prétendre와 라틴어 praetendo는 '주장하다' 정도만을 원래 뜻으로 포함했다.[4] 아시아에서도 한 왕위 요구자가 둘 이상 국가의 왕위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유럽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나마 아시아의 동군연합 끝판왕격인 청나라의 왕위 요구자가 대표적이었지만(청나라 황제위+몽골 제국 대칸위+전륜성왕 칭호) 현재는 합의에 따라 하위 항목인 왕위 요구자/아시아에서 청나라의 왕위 요구자가 삭제된 상태다.[5] 펠리페 6세의 할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이 루이스 알폰소의 할아버지인 인판테 하이메의 동생으로 루이스 알폰소와 펠리페 6세는 증조할아버지가 같다.[6] 참고로 現 프랑스 왕위 요구자이자 부르봉 왕가를 비롯한 전 카페 왕조(Dynastie des Capetiéns)의 수장인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자칭 루이 20세)은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의 6촌 동생[5] 이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프랑스 왕위 요구자가 스페인 국왕의 만찬에 초대된 것이나 실제로는 친척 모임을 가진 셈이다.[7] 왕위 요구자의 사례는 아니지만, 멸망한 하와이 왕국의 왕족인 로버트 윌콕스가 왕국이었을 당시의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당시의 국왕이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로부터 귀족으로 대우받은 바가 있었다.[8] 현재 스페인 국왕이 자칭하는 작위는 예루살렘 국왕, 알가르브 국왕, 에트루리아 국왕, 파르마 피아첸차 공작인데, 각각의 작위에 해당하는 영토는 순서대로 이스라엘, 포르투갈의 알가르브 지방,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해당한다. 근데, 만약에 스페인 정부가 이를 핑계삼아서 정말로 이 지역들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당장 이들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특히 포르투갈, 이탈리아, 이스라엘은 전부 친미 국가인 관계로 군주의 왕위 요구를 들먹여서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간 미국한테 깨강정이 나도록 두들겨 맞는 수도 있다(...). 그래서 각국의 군주나 왕위 요구자들이 특정 작위를 자칭하는 것은 오랜 전통에서 기인한 외교적 관례로 간주할 뿐, 국제 사회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9] 백년전쟁 이후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제1공화국에서 영국 국왕더러 프랑스 국왕 칭호를 쓰지 말고 문장(紋章)에서도 프랑스 왕국을 상징하는 백합을 삭제하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이에 영국은 종전 프랑스 국왕들도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간 관행이라며 그냥 씹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외교적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혁명 세력이 끝까지 걸고 넘어졌다. 혁명 세력의 입장에선 기껏 왕의 목을 쳤는데 영국 국왕이 버젓이 자신들의 왕이라고 행세하는 격이었기 때문. 그래서 결국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영국이 프랑스 국왕 칭호와 문장의 사용을 포기했다. 영국 왕실이 프랑스의 상징인 백합을 다시 쓰게 된 건 프랑스계 주민들이 최대 소수민족인 캐나다가 세워지면서부터였는데, 이마저도 프랑스 국왕 칭호가 부활한 건 아니고 그저 캐나다의 국왕으로서만 백합을 쓰는 정도다.[10] 실제로 이 네 나라의 국호는 항상 이 순서대로 표기했다. 실제로 의미가 있던 국가 중 가장 강하고 실제 국왕 본인이 거주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잉글랜드''', 잉글랜드보다는 약하지만 어쨌든 독립국이라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진 '''스코틀랜드''', 그리고 실제 지배하는 건 아니었고 명목상으로만 왕위를 주장했지만 멋있는(...) '''프랑스''', 그리고 그냥 잉글랜드의 덤(...)이라 별 신경 안 썼던 '''아일랜드''' 순으로 적은 것.[11] 근데 영국 현지에서는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돼 그레이트브리튼 국왕으로 칭호가 병합됐고, 1800년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가 통합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으로 병합되면서 프랑스 국왕 칭호는 버렸다. 하지만 이건 자코바이트 입장에선 '가짜' 국왕에 의해 불법적으로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계속 옛날처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아일랜드 국왕을 자칭했다. 물론 시간이 오래되면서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가 후손은 남겼어도 그들이 더 이상 영국 왕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별 의미 없다.[12] 사실 그것 이외에도 하와이 주 한정으로 입헌군주제를 인정하면 부동산 소유권 문제로 인해 왕실이 실권을 가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입헌군주제 도입을 더더욱 인정해줄 리가 없다.[13] 하와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 하와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은 한국계, 일본계 등의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원주민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다. 백인들이 기득권을 차지했던 옛날에는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왕실 부흥 운동이 일어났나 싶어도, 백인들이 기득권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인종차별까지 당하는(...) 작금의 현실에선 더 이상 왕정복고를 희망하는 여론은 전무한 상황이다.[14] 물론 드물기는 하나, 번왕들이 실권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왕위 자체는 인정이 안 되는 대신 국회의원 선거구나 현지 지방관 직위를 세습하는 것을 중앙 정부로부터 묵인받은 경우에 속한다. 이런 경우는 이미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경우이므로, 왕위 요구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의 발리와 욕야카르타가 있다. 이 두 곳은 왕이 주지사직을 겸하며, 인도네시아 정부도 발리와 욕야카르타의 주지사직을 세습직으로 공인했다. 다만 이 경우 주지사직이 모종의 이유로 세습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어버리거나 정통 후계자가 아닌 방계에서 쿠데타로 세습주지사직을 찬탈한다면 그 때부터는 왕위 요구자로 간주될 것이다.[15] 안습하게도 큰아들과 셋째 아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 그곳에서 택시 기사 노릇을 하면서 근근히 살고 있고, 둘째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함께 소송전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그나마 막내딸이 정신을 차리고 경제 활동에 뛰어들었지만, 90년대에 사망하고 말았다.[16] 신해혁명 이후에 청나라가 해체되면서, 자금성 내에서만 한정적으로 구 황실의 관련 칭호를 인정하고 우대했던 것이 대표적이다.[17]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과 루마니아가 대표적이다. 특히 몬테네그로와 루마니아는 자국의 왕위 요구자를 비공식적인 국가원수로 대우하는 등, 이미 '실질적인' 왕정복고는 이루어졌고, 이제 헌법 단계에서 왕정복고를 공식화하는 논의에 돌입한 상황이다.[18] 스페인 왕실의 카를리스타 세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19] 옛날 루이 필리프 1세 시절의 부르봉 가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루이 필리프의 출신 가문인 오를레앙 가문도 넓게 보면 부르봉 가문의 일원이지만, 먼 방계 가문이라서 사실상 관련없는 남남으로 취급했다. 분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가문인 케이스로는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가 교체되는 케이스들이 대표적이다.[20] 다만 앞서 말한 개성 왕씨의 경우 본인들은 고려 왕위 요구를 공식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정통성 부족에 따른 자신의 불안함을 참지 못한 나머지 대거 학살해버린 극단적인 케이스다.[21] 동남아시아의 술루 술탄국 왕실이 실제로 이런 이유로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주적 1호로 꼽힌 상황이다.[22] 특히 고려는 조선 왕조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까지 존속한 왕조인 만큼, 왕위 요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특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계와 이방원이 개성 왕씨들을 색출해서 죽인 까닭에 대다수가 성씨를 갈아버리거나, 조상 대에서 개성 왕씨를 사성받은 사람들은 원래의 성씨로 되돌아가면서 왕씨 자체도 보기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고려 왕실의 정통 후계자라고 특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만일 개성 왕씨의 정통 종가의 계보가 계속 이어졌으면, 그 사람을 고려 왕조의 왕위 요구자로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개성 왕씨 중 누군가가 족보를 가지고 있거나 스스로 고려 왕위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고려 왕위 요구자를 특정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23] 실제로 나치 독일이 붕괴되고 나서, 독일 제국의 황가였던 호엔촐레른 가문을 복고시키자는 주장이 일부 있었으나 연합국 측은 이를 무시했고, 독일 내에서도 제정복고를 지지하는 여론은 전무했다. 결국에는 공화국인 서독과 동독이 출범하고 독일 재통일 또한 제정복고를 통해 독일 제국을 재건하는 형식이 아니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제정복고는 시도조차 못하고 무산됐다.[24] 인도의 무굴 제국 황실 가문과 미국의 하와이 왕국 왕실 가문이 대표적이다. 대한제국의 황위 요구자도 실은 이쪽에 가깝다.[25] 마리아와 체코인 모라비아 귀족 툰클로베 사이의 딸들.[26] 귀천상혼으로 오스트리아 황제 자리는 될 수 없으나 멕시코 제국의 제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조건은 없다.[27] 제6대 목테수마 데 툴텡고 공작[28] 제5대 목테수마 데 툴렝고 공작[29] 그가 죽은 후에도 쿠이틀라왁과 쿠아우테목 2명이 차례대로 즉위했지만 모두 얼마 안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30] 사실 본 문서에 나온 멕시코의 여러 왕위 요구자들은 현대 멕시코인들이 봤을 때 하나 같이 조상 세대에서 각 군주국이 재건될 명분이 부족할 만큼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중 누가 군주가 되더라도 멕시코인들은 전혀 반기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 제국의 경우 멕시코 제1제국의 아구스틴 1세는 부정부패와 독재로 인기를 잃고 퇴위했으며, 멕시코 제2제국의 막시밀리아노 1세는 비록 본인은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와 달리 충분히 명군으로서의 자질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멕시코 제2제국이 프랑스 제2제국의 괴뢰국이었던 탓에 멕시코 현지인들에게 군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끝내 사형에 처해졌다. 틀락스칼텍의 경우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으로 자국민들이 학살당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페인에 협력한 거였지만 현대 멕시코가 아즈텍 제국의 후신을 칭한 탓에 현대 멕시코인들에게 매국노 집단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틀락스칼텍 국왕 칭호는 애초에 틀락스칼텍이 누에바에스파냐의 자치령이었던 관계로 스페인 국왕 칭호에 종속된 칭호일 뿐더러, 틀락스칼텍인들은 자신들이 스페인인들의 도움을 받아 아즈텍 제국에 복수하고 더 나아가 스페인인들에게 매우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것 때문에 멕시코의 독립에 강하게 반대했으므로, 멕시코인들에게 진정한 독립을 위한 길은 멕시코 내 친스페인파의 구심점이었던 틀락스칼텍을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본 문서에 왕위 요구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타라스칸 또한 왕실의 후손이 왕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0%인데, 아즈텍 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에 필사적으로 저항한 것과 달리 이쪽은 지형적 이점 덕에 스페인의 침략을 더 잘 막아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아즈텍 제국의 전철을 밟아 비참하게 멸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허무하게 스페인에 항복한 탓에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지배를 더욱 가속화시켰으므로, 틀락스칼텍만큼은 아니어도 현대 멕시코인들에게는 그다지 인상이 좋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다.[31]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데 브라간사[32] 하비에르의 장남. 카를로스 하비에르의 아버지.[33]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34] 스페인 치하의 틀락스칼텍인들은 자신들만의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으며, 스페인 국왕을 자신들의 군주로 섬긴다는 점과 유럽식 봉건 영지(이마저도 틀락스칼텍을 구성하던 4개의 도시국가들을 그대로 계승한 4개의 영지였음)가 생겨난 점을 제외하면 스페인의 멕시코 침략 이전 자신들만의 통치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이 점에서 틀락스칼텍은 누에바에스파냐의 다른 지역들이 전형적인 식민지였던 것과 달리 사실상 스페인과의 동군연합이나 다름없었으며, 자신들만의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는 오늘날의 영연방 왕국들과도 비슷했다. 자체적인 외교권의 경우 일단 사방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그렇게까지 큰 의미는 없었겠지만, 단순히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을 돕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식민지를 거느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틀락스칼텍은 스페인의 철저한 속국으로 보기 어려웠다.[35] 틀락스칼라 주민들은 반대로 멕시코 시티 주민들을 식인종의 후손이라고 깐다. 멕시코 원주민의 인신공양 풍습은 아즈텍 제국, 틀락스칼텍, 마야 문명, 타라스칸 등을 가리지 않고 대체로 널리 퍼져 있었지만, 아즈텍 제국만큼 대규모로 심각한 인신공양은 아즈텍 제국 지배층 본인들을 제외한 멕시코의 어떤 원주민들도 하지 않았다.[36] 대한민국으로 치면 친일파의 후손들이나 종북주의자들이 각각 일본의 천황과 북한의 국가원수를 섬기는 동군연합 형식의 국가를 남한 영토 내에 건국하는 격이다.[37] 물론 그것과 별개로 현 멕시코 정부가 문화상대주의를 내세우며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을 정당화하고 있어서 이것 때문에 틀락스칼라 주민들과 갈등하기도 한다.[38] 벨리즈 및 온두라스 현지에서는 거의 미국의 이로쿼이 연맹이나 수족의 포지션에 가까운 이들이 바로 미스키토족이다.[39] 개중에는 탈주한 흑인 노예나,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도 있었다.[40] 루이스 가스탕의 동생[41] 페드루 카를루의 장남[42] 페드루 2세 문서를 가보면 알겠지만 이 자는 절대 암군이나 폭군이 아니였다. 오히려 명군이었고 노예제 폐지에 반발한 지주들이 반대로 황제를 쫓아내버린 것. 노예제를 폐지한 페드루 2세가 브라질 흑인 인권 신장의 선구자라는 점 때문에 브라질의 흑인들과 물라토들은 현재까지도 브라질 제국의 멸망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43]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44] 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Großbritannien und Irland를 추가했다.[45] 케추아어로 '위대한 자'라는 뜻으로, 잉카 제국(타완틴수유)의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다.[46] 제8대 산티아고 데 오로페사 후작[47] 제7대 산티아고 데 오로페사 후작[48] 이름에 있는 코야는 잉카 제국의 황후를 뜻한다.[49] 여담으로 이 사람은 보물섬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과도 인연이 있던 사람이었다.[50] 레오폴과 주앵빌 모두 마지막 왕인 포마레 4세 여왕의 후손들이다.[51] 이는 하와이 섬이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때 하와이 왕국이라는 단일 국가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이유로, 하와이 제도 전체를 하와이라고 부르게 된 것과 같은 이유다.[52] 1993년에 프랑스 정부가 이곳에서의 핵실험을 강행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당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대통령인 테마루가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를 핵에 미친 놈이라며 조롱한 일도 있었다. 당연히 시라크는 방방 뛰었지만 현지에서는 테마루의 인기가 드높아지고 반프랑스 여론이 부쩍 늘어났다.[53] 영국의 국왕은 피지 대추장이라는 작위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 국왕 및 뉴질랜드 국왕, 자메이카 국왕, 도미니카 연방 국왕, 세인트키츠 네비스 국왕 및 맨 섬의 영주, 노르망디 공작, 앤티가 바부다 국왕, 캐나다 국왕 등의 작위를 칭하고 있는데, 현재 공식적으로 칭하는 작위 중에서 명목 상의 작위가 된 건, 이 피지 대추장 작위와 노르망디 공작 뿐이다.[54] 현재 영국의 여왕이다.[55]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56] 피지와 같은 열대 지방에서는 과중한 노동을 하다가는 금방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는다. 이걸 원주민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휴식을 취했는데 영국의 백인들은 이를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게으르다고 임의로 단정한 것이다.[57] 미얀마도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에 이런 이유로 인도계 주민들이 대거 이주해와서 대지주나 상인, 공무원 등으로 성공해 배를 불린 이들의 후손들이 오늘날의 로힝야족이 되었다. 그러나, 미얀마는 피지와 달리 대륙에 위치해 있는 나라라서 타국의 국경을 넘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운지라, 2011년 이후 미얀마가 군사 정권에서 명목상의 민주주의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거릴 것 없이 이들을 전부 이웃나라이자 동족 격 국가인 방글라데시나 인도로 내쫓고 남아있는 나머지 로힝야 구성원들도 국제사회의 비난까지 무시하고 군대를 파병해 학살하거나 추방하였다.[58] 정작 인도계 주민들의 쿠데타 자체가 인도인들을 피지로 데려온 영국이 자초한 일일 뿐더러, 피지가 영연방 입헌군주국이 되기 전, 그러니까 전형적인 식민지였을 때 상술한 것처럼 종주국인 영국이 피지 원주민들을 게으르다고 멸시했음을 감안하면, 피지 원주민들이 영연방 입헌군주제 부활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쩌면 인도계 주민들의 횡포 때문에 피지 원주민들의 대영감정이 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피지의 공화정 개헌이 인도계가 아닌 피지 원주민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면 피지 원주민들은 피지가 영연방에 잔류하는 것에는 찬성할지언정 영연방 입헌군주제로 돌아가는 것에는 반대했을 것이다.[59] 릴리우오칼라니는 출산한 적이 없다.[60] 이런 현상을 단편적으로 그린 영화로 디센던트가 있다.[61] 미국 헌법 제1조 10절 1항: 어느 주라도 조약, 동맹 또는 연합을 체결하거나, 나포 허가장을 수여하거나, 화폐를 주조하거나, 신용 증권을 발행하거나, 금화 및 은화 이외의 것으로써 채무 지불의 법정 수단으로 삼거나, 사권 박탈법, 소급절차법 또는 계약상의 채무에 해를 주는 법률 등을 제정하거나, 또는 '''귀족의 칭호를 수여할 수 없다'''.[62] 만일 헌법 개정으로 하와이 왕실이 연방정부의 공인을 받게 되면, 이 항목에서 빠지게 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이미 하와이가 정식 주로 승격받으면서 원주민들이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권리를 모두 찾은지라 왕실을 인정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령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더라도 왕실 후손을 제외한 다른 원주민들은 타히티 원주민들처럼 공화정으로 독립하는 걸 원할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 원주민들이 딱히 차별을 받거나 착취를 당하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원주민들이 하와이의 몰락한 백인 기득권 세력을 대신하여 인종차별의 새로운 가해자가 된 상황),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한 주로 남는 것이 매우 이득이라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와는 달리 하와이는 독립 여론이 전무한 편이며, 간간히 제기되는 독립 떡밥도 그냥 연방정부한테 잘 좀 도와달라는 시위용에 불과한 상황이다. 캘리포니아나 텍사스에서 연방정부를 상대로 떼쓰기를 시전할 때 독립국 드립치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고, 따라서 진지하게 하와이의 독립을 주장하는 여론은 거의 없다.[63] 참고로 현행 스위스 헌법에서는 군주제, 신분제가 완전히 폐지돼서 이런 식으로 군주제 자치주를 두는 게 불가능하다.[64] 그것도 그냥 평화롭게 독립한 게 아니라, 영국을 상대로 전쟁까지 치르고서 독립했다.[65] 미국 헌법에서 신분제 자체가 금지돼 있으므로 하와이를 미국의 입헌군주제 자치주로 인정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미국 정치인들이 건국 정신을 거스르는 개헌에 선뜻 나설 리가 없다.[66] 코코스 제도 최후의 영주인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의 아들.[67] 대부분이 말레이계 사람들이었다.[68] 사족으로 헤어가 뭣 때문에 노예들을 데려왔느냐면, 바로 '''자기만의 하렘을 건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데려온 노예들은 잡일을 맡기거나 다른 노예를 감시할 목적으로 데려온 극소수의 남자들을 빼면, 전원이 여자들이었다.[69] 아이러니하게도 헤어를 처음 코코스 제도에 데려다 준 배의 선장이 존 클루니스-로스의 남동생이었다.[70] 오랫동안 실시해 온 폭정에 대한 인과응보였는지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는 이때 호주 정부로부터 받은 돈도 얼마 못 가 탕진하고 가난뱅이로 전락했다.[71] 위의 개요 항목을 봤으면 알겠지만, 왕위 요구자라는 신분은 진짜로 그 작위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지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래서 공화주의자거나 왕위 요구 문제에 대해 아오안인 사람도 공식적으로 왕위 요구권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 한 일단은 왕위 요구자로 분류되는 거다.[72] 공가 스스로 헛리버 공국 해체를 결정한 것이지만 헛리버 공작 칭호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았다.[73] 현 이탈리아 공화국 정부가 이탈리아 통일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산마리노를 자국령으로 합병하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산마리노도 산악 지대에 위치한 미니 국가라는 점이 관광객들의 관심을 불러모았기 때문에, 이 자체를 관광 자원으로 쓰고자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다.[74] 물론 캐슬리 가문을 지나치게 몰아붙인 호주 정부의 책임이 크긴 하지만, 레너드 1세 또한 편법적인 방법을 썼으며, 당시 기준으로 보면 호주의 어느 농민이 뜬금없이 자기가 군주라고 우겨댄 것이었기 때문에 헛리버 공국 건국 자체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75] 실제로는 현대적인 입헌군주제 체제 하에서 사문화된 법이지만, 어쨌든 영국 정부가 이 법을 폐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법을 어떤 식으로든 들먹이면 분명히 법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초대 공작인 레너드 1세도 본인이 변호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법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일부러 엘리자베스 2세에게 칭신하고 공작을 자칭한 것이다.[76] 이 법을 폐지하겠다는 얘기는 곧 왕실을 폐지하겠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으므로, 무슨 이유로든간에 영국이 공화정을 채택하지 않는 이상, 법이 폐지될 일은 절대로 없다. 무엇보다도 호주는 아직도 영국의 국왕을 자국의 군주로 인정하는 영연방 입헌군주제 국가다.[77]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78] 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Großbritannien und Irland를 추가했다.[79] 다만 의식이 불완전하여 이성을 잃고 마구 날뛰었다.[80] 하지만 근육 스구루와 이어져 근육 만타로를 낳은 비빔바 덕분에 모계로라도 왕위계승을 하게 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81] 두 사람이 공동으로 히데노부의 후견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서로 다른 내용의 유언장을 두 개를 쓴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여겨진 히데요시를 엿먹이기 위해서.[82] 원균의 대역이었던 카게무샤가 원균과 너무나도 닮았는데, 그의 시체를 원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원균은 죽은 것으로 처리되었다.[83] 애초에 진지왕이 폐위된 이유 자체가 불분명한 만큼 어떤 사극에서든 진지왕이 폐위되는 모습이 나올 땐 픽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다만 드라마 선덕여왕의 경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충실하기보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내용을 더 많이 참고했을 뿐더러 화랑세기 필사본에도 안 나오는 픽션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다.[스포일러1] 조프리 바라테온은 로버트 바라테온의 아들이 아니라, 왕비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근친+불륜으로 낳은 아이기 때문이다.[84] 에다드 스타크의 다른 적자들은 이 시점에서 모두 죽거나, 스스로 계승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85] 격아 이전에는 나이트 엘프의 수도인 다르나서스에 머물렀다.[86] 이로 인해 진짜 수신은 요정처럼 작은 크기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비의 창을 되찾고 원래 크기로 되돌아왔지만...[87] 사실상 그냥 왕이 되고 싶어서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다 생각하면 된다(...).[88] 존 말코비치가 역할을 맡았다.[89] 미스터 빈 시리즈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 경이 연기했다. 설정상 영국의 첩보기관인 MI7의 어리버리한 요원이다(...).[90] 전통적으로 영국의 국왕의 대관식을 집전하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소바주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순간에 쟈니 잉글리쉬가 소바주를 밀어내면서 얼떨결에 왕관을 쓰게 되었다(...). 덕분에 합법적인(?) 임시 국왕의 자격으로 그의 체포를 명령하는 바람에, 파스칼 소바주는 그대로 붙잡히면서 리타이어했다.[91] 현실의 교황도 이론적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 중에 추기경단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사람이면 아무나 입후보하여 당선될 수 있다지만, 실제로는 그런 정도인 신자는 이미 성직자의 길을 걷다가 추기경이 된지 오래인 터라 콘클라베에 추기경들만 입후보하여 교황으로 선출된다.[스포일러2] 사실 교황에게는 숨겨진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 그를 존경했던 카를로 벤트레스카가, 교황이 성직자로서 준수해야할 독신의 의무와 순결의 의무를 어겼다고 여겨 실망한 나머지, 그를 독살한 것이다.[스포일러3] 사실 교황에게는 사생아가 있었는데, 그가 아직 일개 신부이던 시절에 한 수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 순결의 의무를 어기지 않고서 아이를 갖고자 인공수정을 해서 얻은 아이가 그 사생아였던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과학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이고, 이를 교황에게 직접 전해들은 카를로 벤트레스카는 크게 실망해서 그를 죽여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사생아의 정체는 바로 벤트레스카 본인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에나 알게 되었고, 이런 엄청난 사실을 듣고 멘붕한 벤트레스카는 충격으로 분신자살했다.[92] 거란족이다.[93] 가령, 독일 제국이 본토를 상실하면 호엔촐레른 왕조는 아프리카 식민지로 도주한다. 이렇게 될 시 독일 황제는 '독일 황제위 요구자' 라고 볼 수 있지만...[94]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벨기에 왕실 또한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계다(...).[95] 가령, 상속권이 이리저리 꼬이면서 어떤 캐릭터가 어느 지역의 클레임을 얻게 된 다음, 해당 지역의 작위 보유자를 전쟁으로 축출하거나, 클레임 보유자를 자신의 궁정에 초대한 다음 그 클레임 보유자의 계승가능 작위를 명분으로 전쟁을 벌여서 승리하거나, 아니면 아예 작위에 대한 클레임을 날조해서 그걸로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아니면 다른 종교 보유자에게 성전을 걸든가. 이유는 다양하다.[96] 청나라 황제는 단순히 한 개의 황제위가 아니라, 일종의 동군연합 형식으로 다수의 작위를 보유하였다.[97] 작중에서는 실제 역사와 달리 21세기까지 이어져온 소련과 동맹을 맺고 터키를 침공하여 이스탄불을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