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탄데스헤어
1. 개요
독 : Standesherr
영 : Mediatized Houses
한 : 등족영주가 (等族領主家)[1]
독일 연방(Deutsche Bund: 1815-66)의 최상급 귀족 가문을 구성하는 특수한 신분층을 지칭하는 말. 신성 로마 제국은 수백 개의 제후국으로 분립된 나라였으나,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키고 작은 제후국들을 이웃의 큰 나라들에 합병시켰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대(對)프랑스 동맹국들은 1815년 빈 회의를 열어 그 뒷수습을 했다. 이들을 (이웃 대국에) 합병된 왕가들(Mediatized Houses)이라고도 한다.
칭호는 공작(Herzog) 및 후작(Fürst)의 칭호를 가진 경우에는 "전하(독 : Durchlaucht / 영 : Serene Highness)", 백작(Graf)의 경우에는 "합하(독 : Erlaucht / 영 : Illustrious Highness)"였다. 슈탄데스헤어 공, 후, 백작가의 자녀들은 왕자, 왕녀들과 결혼할 수 있는 준왕족이었기에 주권국의 왕자, 왕녀와 마찬가지로 Prinz / Prinzessin 을 칭했다.[2]
이 가문 출신의 남자는 병역이 면제되었으나, 직업군인인 경우 보통 소위 계급부터 시작하는 특전이 있었다.
이들은 19세기에도 각자의 영지에 대한 사법권과 행정권을 유지, 사실상 나라 안의 나라 같은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1848년 혁명 이후에는 중앙집권화를 추구한 독일 각 영방국가들에 의해 이런 특권이 소멸되어 갔다. 그러나 이들 가문의 당주는 1918년까지 프로이센 귀족원(Preußisches Herrenhaus)이나 헤센 대공국 회의(Landstände des Großherzogtums Hessen)에 의석을 보유하였고, 영지가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 경우에는 두 나라의 의회에 의석을 가지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라이닝겐 후작령은 헤센 대공국과 바덴 대공국으로 분할되어 합병되었기 때문에 라이닝겐 가문의 당주이자 명목상의 라이닝겐의 후작 (Fürst)은 두 나라의 귀족원 의원을 겸함).
2. 귀천상혼
슈탄데스헤어 가문들에 대해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대국의 왕실과 귀천상혼이 아니라 동등한 결혼으로 인정(신분상응 身分相應: 독일어 Ebenbürtigkeit)받았다(법적이 아닌 관습적으로). 따라서, 작위가 백작가라 할지라도 슈탄데스헤어 가문이라면 명목상 귀천상혼이 아니게 된다.
명목상으로 이들 합병된 공실들이 외국 왕가와 동등한 결혼 자격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후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후계자 카를의 신부감으로 호엔로헤 가문의 영애를 맞는 것을 거부했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후처인 아우구스테 폰 하라흐(Auguste von Harrach) 여백작은 합병된 공실 출신이었지만 귀천상혼으로 간주되어 '리그니츠 여공이자 호엔촐레른 여백작'의 작위를 받았다[3] . 19세기 말경부터 유럽의 왕가·귀족가문에 대한 저명한 족보인 'Almanach de Gotha'[4] 는 "주권국의 지배가문", "합병된 지배가문", "일반 귀족가문" 이렇게 세 계층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일반 귀족가문보다는 격이 높지만 주권국의 왕실[5] 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정도로 생각되었던 듯.
3. 가문 목록
(취소선은 현재 단절된 가문)
'''공작가(Herzog):'''
- 아렌베르크(Arenberg)
- 크로이(Croÿ)
- 로츠 운트 코르스바렘(Looz und Corswarem)
- 아우에르스페르크(Auersperg)
- 콜로레도(Colloredo)
- 콜로레도-만스펠트(Colloredo-Mansfeld)
- 에르바흐-쇤베르크(Erbach-Schönberg)
- 에스테라지(Esterházy)[6]
- 푸거-바벤하우젠(Fugger-Babenhausen)
- 퓌르스텐베르크(Fürstenberg)
- 퓌르스텐베르크-퓌르글리츠(Fürstenberg-Pürglitz)
- 호엔로헤(Hohenlohe)
- 케벤휠러-메치(Khevenhüller-Metsch)
- 라이닝겐(Leiningen) 본가[10]
- 라이엔(Leyen)[11]
- 로브코비츠(Lobkowicz)
- 뢰벤슈타인(Löwenstein)
- 뢰벤슈타인-베르트하임-프로이덴베르크(Löwenstein-Wertheim-Freudenberg)
- 뢰벤슈타인-베르트하임-로젠베르크(Löwenstein-Wertheim-Rosenberg)
- [12]
- 잘름(Salm)
- 잘름-호르스트마르(Salm-Horstmar) (1817년 이전까지는 백작가)
- 잘름-키르부르크(Salm-Kyrburg)
- 잘름-잘름(Salm-Salm)
- 잘름-라이페르샤이트-크라우테임(Salm-Reifferscheid-Krautheim) (1804년 이전까지는 백작가)
- 잘름-라이페르샤이트-디크(Salm-Reifferscheid-Dyck) (1816년 이전까지는 백작가)
- 잘름-라이페르샤이트-하인스바흐(Salm-Reifferscheid-Hainsbach)
- 오르시니 운트 로젠베르크(Orsini und Rosenberg)
- 외팅겐(Öttingen)
- 외팅겐-발러슈타인(Öttingen-Wallerstein)
- 외팅겐-슈피엘베르크(Öttingen-Spielberg)
-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13]
- 슈타르헴베르크(Starhemberg)[14]
- 투른 운트 탁시스(Thurn und Taxis)
- 트라우트만스도르프-바인스베르크(Trauttmansdorff-Weinsberg)
- 발트부르크(Waldburg)
- 발트부르크-발트제(Waldburg-Waldsee)
- 발트부르크-부르차흐(Waldburg-Wurzach)
- 발트부르크-차일(Waldburg-Zeil)
- 비드(-노이비드)(Wied(-Neuwied))
- 빈트시-그레츠(Windisch-Grätz)
- 벤트하임(Bentheim)
- 벤팅크(Bentinck) (영국 포클랜드 백작)
- 카스텔(Castell)
- 카스텔-카스텔(Castell-Castell) (1901년 후작가 승격)
- 카스텔-뤼덴하우젠(Castell-Rüdenhausen) (1901년 후작가 승격)[15]
- 에르바흐(Erbach)
- 에르바흐-에르바흐(Erbach-Erbach)
- 에르바흐-퓌르스테나우(Erbach-Fürstenau)
- 푸거(Fugger)[16]
- 하라흐 추 탄하우젠(Harrach zu Thannhausen)
- 이젠부르크(Isenburg)
- 이젠부르크(-비르슈타인)(Isenburg(-Birstein))
- 이젠부르크-뷔딩겐(Isenburg-Büdingen) (이후 후작가 승격)
- 이젠부르크-메르홀츠(Isenburg-Meerholz)
- 이젠부르크-베흐테르스바흐(Isenburg-Wächtersbach)
- 쾨니히제그-아울렌도르프(Königsegg-Aulendorf)
- 쿠에프슈타인-그라일렌슈타인(Kuefstein-Greillenstein)
- 라이닝겐 분가들
- 라이닝겐-알트-베스터부르크(Leiningen-Alt-Westerburg)
- 라이닝겐-빌링하임(Leiningen-Billigheim)
- 라이닝겐-노이데나우(Leiningen-Neudenau)
- 라이닝겐-노이-베스터부르크(Leiningen-Neu-Westerburg)
- 네이페르크(Neipperg)[17]
- 네셀로데(Nesselrode)
- 오르텐부르크-노이오르텐부르크(Ortenburg-Neuortenburg)
- 파펜하임(Pappenheim)[18]
- 플라텐-할레르문트(Platen-Hallermund)
- 플레텐베르크-비템(Plettenberg-Wittem)
- 퓌클러 운트 림푸르크(Pückler und Limpurg)[19]
- 크바트-이스니(Quadt-Isny)
- 레흐베르크 운트 로텐로벤(Rechberg und Rothenlöwen)
- 레흐테렌(Rechteren)
- 자인-비트겐슈타인(Sayn-Wittgenstein)
-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Sayn-Wittgenstein-Berleburg) (후작가 승격) [20]
- 자인-비트겐슈타인-혼슈타인(Sayn-Wittgenstein-Hohnstein) (후작가 승격)
- 자인-비트겐슈타인-자인(Sayn-Wittgenstein-Sayn)
- 샤에스베르크-탄하임(Schaesberg-Thannheim)
- 슐리츠 게난트 폰 괴르츠(Schlitz genannt von Görtz)
- 숀보른-비젠테이트(Schönborn-Wiesentheid)
- 숀부르크(Schönburg)
- 숀부르크-글라우샤우(Schönburg-Glauchau)
- 숀부르크-발덴부르크(Schönburg-Waldenburg) (후작가 승격)
- 숀부르크-하르덴슈타인(Schönburg-Hardenstein) (후작가 승격)
- 지킹겐(Sickingen)
- 졸름스(Solms)
- 졸름스-바루트(Solms-Baruth)
- 졸름스-라우바흐(Solms-Laubach)
- 졸름스-뢰델하임-아센하임(Solms-Rödelheim-Assenheim)
- 졸름스-뢰델하임 운트 아센하임(Solms-Rödelheim und Assenheim)
- 졸름스-빌덴펠스(Solms-Wildenfels)
- 졸름스-브라운펠스(Solms-Braunfels) (후작가 승격)
- 졸름스-호헨졸름스-리흐(Solms-Hohensolms-Lich) (후작가 승격)
-
- 슈테른베르크-만데르샤이트(Sternberg-Manderscheid)
- 슈톨베르크(Stolberg)[22]
- 슈톨베르크-로슬라(Stolberg-Rossla)
- 슈톨베르크-슈톨베르크(Stolberg-Stolberg)
- 슈톨베르크-베르니게로데(Stolberg-Wernigerode)[21]
- 퇴링-예텐바흐(Törring-Jettenbach)
- 발트보트 폰 바센하임(Waldbott von Bassenheim)
- 발모덴-김보른(Wallmoden-Gimborn)[23]
- 부름브란트-슈툽파흐(Wurmbrand-Stuppach)
4. 슈탄데스헤어 가문 출신의 저명인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빈 회의를 주도한 오스트리아의 재상.
- 클로트비히 추 호엔로헤실링스퓌르스트 - 독일 제국의 재상.
- 하인리히 프린츠 추 자인 비트겐슈타인 - 자인-뷔트겐슈타인-자인(Sayn-Wittgenstein-Sayn) 백작가 출신, 2차대전 독일 야간전투기 에이스(격추 83기, 독일 야간전투 3위)
- 필기류 굴지의 명품 기업인 Faber-Castell은 신생 남작 가문이던 파버 가문의 딸이 슈탄데스헤어 가문 중 하나인 카스텔-뤼덴하우젠 가문의 아들과 귀천상혼을 한 결과 탄생한 백작가이다. 다만 약간 애매한게 원래부터 카스텔-뤼덴하우젠 가문은 가문의 수장만 퓌르스트 작위를 갖고 나머지 가문의 일원들은 백작 작위만 가지고 있는 가문이었기때문에 파버 가문의 딸과 결혼한 카스텔-뤼덴하우젠 백작은 애초에 백작위만 가지고 있었다. 단, 파버-카스텔 백작은 일반 귀족 가문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카스텔-뤼덴하우젠 백작위와 파버-카스텔 백작위는 엄청난 격의 차이가 있었다. 유럽의 작위는 오등작으로 번역되긴 하지만 동양의 오등작처럼 무조건 공-후-백-자-남으로 서열이 갈리는 것이 아니다. 같은 백작이라도 카스텔-뤼덴하우젠 백작은 제후, 파버-카스텔 백작은 일개 가신으로 취급 받았다. 같은 백작위이라도 두 백작위의 격은 한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격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5. 관련항목
[1] 한국어 위키백과의 표기.[2] 영어의 Prince가 주권자의 아들, 소국의 제후를 모두 의미하는 것과 달리 독일어에서 Prinz는 오로지 주권자의 아들이라는 의미만 갖는다. 영어로 Prince로 번역되면서 소국의 제후를 의미하는 작위로 Fürst라는 작위도 있지만 해당 작위는 후작에 해당하는 작위이다.[3] 자기의 두 번째 왕비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개인적 소망이 작용하기도 했다.[4] 현재는 공식 웹사이트로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5] 왕실이라고는 하지만 대공국이나 공국도 포함된다.[6] 헝가리 계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후작 가문이다. 하이든 등 여러 유명 예술가들의 고용주이기도 했다.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이었던 독일 주재무관 에스테라지 중령의 그 에스테라지 가문이다.[7] 참고로 현재 이 집안의 당주인 10대 후작인 필리프(1970-)는 필립 마운트배튼의 종손이다. (큰 누나 마르가리타(1905~1981)의 장남의 아들)[8] 또한 이 가문의 후손들 중 스페인에 자리잡은 이들도 있는데 그 중 빅토리아 폰 호엔로헤-랑엔부르크라는 1997년생의 여성은 현재 제 20대 메디나셀리 공작(Duchess of Medinaceli)을 비롯해 총 43개 작위를 동시에 보유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으로 스페인의 대귀족 (Grandee)의 일원으로 있다.[9] 단, 카를 엠리히 공 본인은 가문명을 "라이닝겐-로마노프"(Лейнинген-Романов)로 칭한다.[10] 빅토리아 여왕의 이복 오빠인 엠리히 공이랑 전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3세로 자칭하는 카를 엠리히 공의 가문이다.[9] 그 덕에 이 가문은 영국 궁정에서 헤센, 뷔르템베르크 가의 방계와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11] 남계는 1970년 단절되고 준살리카법을 적용해서 대를 이었다. 원래는 프랑스 귀족이었는데, 프랑스 혁명 이후 프로이센 왕국으로 망명하는데.....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대패한 것을 생각하면.....[12] 그 유명한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가문. 1992년 단절. 호헨로헤 가문의 라티보르-코르베이(Ratibor and Corvey) 계통 당주가 지금도 메테르니히-산도르(Metternich-Sandor) 성씨를 달고 있긴 한데 이건 차남으로 태어난 4대 당주가 외할아버지 집안으로 입양가서 성씨만 단 거라 의미없다.[13] 나폴레옹과 대적한 오스트리아의 명장 슈바르첸베르크 장군의 가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군의 선배가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다. 12대 당주 카를(카렐)은 前 체코 외무장관.[14]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스페인 전역의 오스트리아 사령관인 기도 폰 슈타렘베르크 장군의 가문으로 이 장군은 프랑스의 루이 조제프 드 부르봉-방돔 장군에게 2번이나 털렸다[15] 이 가문의 방계가 만년필 회사인 파버카스텔社의 사주 가문이다.[16] 카를 5세가 어깨 펴고 다니던 시절 카를 5세의 물주였던 은행가 가문. 출신성분이 비슷한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과 숙적이었다. 카를 5세의 아들이던 펠리페 2세 역시 푸거 가문의 주요 고객이었다. 하지만 펠리페 2세가 4번이나 파산을 선언하는 바람에 몰락하고 말았다.[17] 여담이지만 이 집안의 나이페르크 백작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폴레옹 2세와 마리 루이즈 항목 참고.[18] 30년 전쟁 당시 카톨릭 최고의 기병대장인 고트프리트 하인리히 추 파펜하임의 가문[19] 프로이센 초기부터 호엔촐레른 왕가를 지지한 군인귀족으로 이 후손들이 프로이센이 치른 전쟁들애서 활약한다.[20] 2017년 타계한 6대 당주 리하르트(1934~2017)는 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첫째 동생 베네딕트 공주의 남편이다. 2020년 현재 7대 당주는 리하르트의 장남이자 외아들인 구스타프(1969년생)이 승계하였으나 미혼이고(2000년대 초반부터 동거중인 여자친구가 있다), 자녀가 없어서 이후 당주는 리하르트의 동생인 로빈(1939년생)과 그 자손(두번 결혼해서 얻은 1남 2녀와 3명의 손자, 1명의 손녀가 있다.)로 이어질 전망[21] 슐리펜 장군의 외할머니가 이 가문 출신이다. 이거 귀천상혼 아니냐는 경우도 있는데 슐리펜은 친가와 외가 모두 백작 집안이니 아니다.[22] 슈톨베르크 게데른도 있었는데 프라이부르크에서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에게 털린 장군이 이 가문 출신이고 그 손녀인 루이제는 재커바이트 왕위 계승권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영 프리텐더)의 아내었다[23] 조지 2세의 사생아 가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 귀족 작위가 없는데 찰스 2세가 자기 사생아 대부분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리치먼드, 세인트알반스, 그래프턴, 버클루)한 걸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