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흐 카친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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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알렉산데르 카친스키(Lech Aleksander Kaczynski, 1949년 6월 18일 ~ 2010년 4월 10일)는 폴란드의 제 4대 대통령이다. 2005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퇴임을 몇 달 앞두고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로 숨졌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일란성 쌍둥이 형과 정치적으로 동행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많지 않은데, 형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보다 15분 늦게 태어났었으므로 레흐는 동생이 되겠다.
1949년 6월 18일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대학 법대를 졸업했으며 폴란드 인민 공화국정권기인 1970년대부터 형 야로스와프와 함께 반일당독재 투쟁을 시작했다. 1980년 여름 솔리다르노시치가 창립되자 조언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1981년 12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에 의해 폴란드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투옥되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1989년 동유럽 혁명 기간 중 레흐 바웬사와 다시 손을 잡고 공산당 - 솔리다르노시치간 원탁 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민주화를 이뤄낸 이후에는 바웬사와 틀어졌다. 이에 형제는 정의당을 창당하였고 곧바로 당대표로 취임했으나 후에 형에게 이양했다. 이후 200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무난히 당선되었으며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2010년 4월 10일 러시아 스몰렌스크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부인 마리아 카친스키와 함께 숨졌다. 향년 60세.
레흐 카친스키는 '친(親)서방, 반(反)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우파 정치인으로 미국으로부터 폴란드의 군사 현대화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자국 내에 건설하는 데 동의했다. 반면 러시아와는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빚어왔다.
한국과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는데, 2008년 12월에는 양국 수교 20주년을 맞아 방한하기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로부터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을 방문할 때면 늘 밝은 표정으로 한-폴 사이의 경제협력 강화에 관심을 보이던 대통령이기도 했다.
한편, 임기 8개월을 남겨둔 카친스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 비밀경찰(NKVD)에 의해 2만여 명의 폴란드인이 학살당한 '카틴 숲 학살사건'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던 중 타고 있던 비행기가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공항 활주로 부근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이 사고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동행했던 폴란드 주요 고위 정부 인사 등 '''탑승자 96명 전원이 숨졌다'''. 정확히 이틀 후 대통령의 시신이 발견됐다. 카친스키 전 대통령 부부의 유해는 현지 시간 기준 2016년 11월 14일 재조사를 위해 발굴됐다.
폴란드의 김영삼, 김대중 같은 존재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대통령이 된 '민주 운동가'이기 때문.
한국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소재 계명대학교 총장 신일희에 의해 교내에 그의 빈소가 마련되었으며,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