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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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황유나[1]
생년월일
1977년[2] 5월 3일
신체
170cm, 48kg
학력
메릴랜드 대학교 중퇴
데뷔
2003년 1집 앨범 [Lexury]
가족
부모님, 남동생, 남편
소속사
없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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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가수, 래퍼.
본명은 황효숙이었으며 이후 황유나로 개명했다. 애송이, 하늘 위로 등으로 히트했다. 보컬과 랩이 모두 능하다고 평가를 받았던 여자 솔로가수.
1999년도 YG패밀리의 1집 앨범에 양현석의 솔로곡 "서둘러"와 단체곡인 "흑과 백"에서 YG 패밀리 내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했다. 후에 지누션 3집, 페리 1집 등 같은 YG소속 가수들의 음반에 화려하게 랩 피쳐링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다가YG 패밀리 2집에도 참여. 후에 소속사인 YG에서도 SE7EN, 마스타 우와 함께 솔로 데뷔를 홍보하는 등의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를 이어갔다. 여담으로 이 때[3] 까지만 해도 여성래퍼를 꼽는다치면 렉시를 내세우는 YG팬들이 상당히 많았을 정도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과 비교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
후에 솔로 1집을 발매해 "애송이"를 발표했을 때 반응은 크게 두가지였다.[4] 이래봤자 어차피 다른 YG 소속 1~2세대 가수들이 으레 그렇듯 "처음 접하는 인간"과 "YG패밀리 코어팬" 두가지. YG패밀리의 코어팬들은 가사도 컨셉도 이전부터 렉시가 내세워오던 당당한 이미지를 내세우긴 했는데, 곡이 별로였다는 의견이 많았다. 렉시의 랩과 보컬은 초창기에 보여주던 그루브한 힙합 리듬에 더 잘 맞았다는 의견이 대다수. 사실 그때 마니아들의 인기도 상당하긴 했다. 단, 래퍼로 7년을 연습했다는데 랩은 커녕 왠 댄스곡으로만 가득찬 앨범이 나왔기 때문에 대체로 힙합 매니아들은 거의 부정적인 반응이 대세였다. 다만 지금 들어봐도 그럭저럭 준수한 퀄리티에 당시로서는 미국에서 유행하던 트렌드를 나름 충실히 가져왔기 때문에 '힙합 음반' 으로서는 별로였을지 언정, '댄스 음악' 으로서는 매우 괜찮은 앨범이었다. 앨범 참여진만 봐도 싸이, 이현도, 테디, 페리 등 당시 내로라하던 프로듀서들을 갈아넣어 만든 음반이었기 때문에 퀄리티가 나쁠래야 나쁠수가 없었다. 여담으로 활동 당시 함께 했던 백댄서가 훗날 애프터스쿨로 유명한 가희이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저 "오래 준비한 신인가수"정도로만 인식되어[5] 신인가수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솔직히 이 당시에 사정을 몰랐던 대중들은 렉시가 래퍼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냥 당시 유행했던 이효리류의 댄스 가수 정도의 인식.
그렇긴 해도 위에 서술된건 '힙합 가수'로써의 기대치였지 단순히 댄스 여가수로 놓고 보자면 2003년 연말에 큰 인기몰이를 한 여가수 중에 하나다. SBS 인기가요에서 2주 연속 뮤티즌 송 자리에 올랐고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오르는 등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했다.
비슷하게 YG패밀리 2집 참여 후 바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SE7EN의 성공가도와는 반대위치급.[6] 물론 YG출신이라는 점과 싸이가 작사하고 피쳐링했다는 부분 등으로 화제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대신 자기가 직접 작사/랩메이킹이 가능했지만 타이틀곡은 다른 사람이 작사했다는 것과 장점을 세울 수 있을 만한 곡이 타이틀로 많이 나오지 못한 것 등으로 미적지근한 데뷔였다는 것이 코어팬들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후에도 비슷비슷한 컨셉으로 계속 이어간 1집 'let me dance', 'girls'가 10~20위 권까지 가는 등 선전했으며 당시 YG 소속 신인 작곡가였던 용감한형제가 만든 2집 '눈물씻고 화장하고'를 타이틀로 내세워 활동했지만 이어진 YG 팬들의 세대교체 및 2집의 미적지근한 반응[7] 등으로 코어팬들은 거의 떨어져 나갔고 라이트한 팬들만 남아있었던터라 반쯤 잊혀진 가수가 되었다.
다만, 2집이후 1년반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7년에 출시한 3집은 지은이 피쳐링으로 함께한 <하늘 위로>[8]가 당시 2007년초에 엄청난 인기를 끌며 2집 실패에 대한 설움을 어느정도 떨쳤다.당시 클럽에 가면 하늘위로를 엄청 틀어줬다 카더라.
이후 솔로활동을 이어 나가다가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홀로서기에 도전했지만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지는 못했다.[9]
레드라인 엔터테인먼트로 2008년에 이적해 낸 정규 4집을 냈다. Ma People을 타이틀곡으로 밀었는데 지금까지 렉시의 노선에 큰 어긋남이 없고 곡도 썩 나쁘진 않았으나 신생 회사의 한계로 대중들이 낸 지도 모르게 실패했다.
그리고 2012년, 렉시는 1인 기획사로 홀로서기하며 디지털 싱글 NOLZA를 발매하는데 대형기획사 출신으로 모든걸 관리받다가 혼자서 저예산으로 발품팔며 스스로 자신을 홍보하는 모습이 네티즌들에게 화제였는데, 인터넷 커뮤니티 SLR클럽에 가입하여 회원임을 인증하는 등 열심히 홍보했으며 결국 2012년의 온라인 사건 중 하나인 T24 텐트치기 행사에도 참여해 무료 축하무대를 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활동했었다. 다만 디싱 자체는 지상파 활동도 부진했고 음원 차트에서도 실패해서 그녀의 노력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10]
그리고 2013년, 쇼미더머니2에 출연했으나 커리어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여러 가지 정황상 본인은 좋은 방송 복귀 기회로 생각한 모양이나, 실력 검증에서나 이미지 관리 면에서도 모두 망했다. 좀 심하게 말해 1차 예선 탈락한 사람보다 못한 입장. 1차 경연의 퀄리티가 정말 절망적인 수준이었고 , 심사위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차까지 계속해서 패배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당장 다른 심사위원들과 비교해 보면, 같은 크루의 배치기는 광탈하긴 했지만 경연들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크루원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웃사이더는 개인주의가 강했고 메타와 언쟁도 잦았으며 4차 경연에서 이십사이더라는 폭망 무대를 만들긴 했으나 그전까지의 승리 기록이나 랩은 속사포가 다라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렉시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소울 다이브는 쇼미더머니2의 주인공 포지션이었던 스윙스에게 1패한 후 연승을 달리면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말이 필요없다.
사실 렉시 역시 99년 데뷔인 만큼 년식만으로 따지면 힙합 1세대에 속한다. 거기에 커리어는 댄스에 랩을 양념 치고 사운드나 스타일을 중시하는 수준으로 이어가고 있었으니 2013년에 후배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라이브를 그렇게 잘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실력만으로 까이는 것이라면 허인창이나 원썬처럼 개그 이미지라도 만들 수 있었으나 그녀는 센 언니 컨셉을 크루 내에서도 이어가면서 이현도에게 출전 순서에 불만을 표했고[11] 크루 모임에도 여러 번 불참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많은 래퍼들이 지금까지 엠넷의 악마의 편집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지만, 렉시는 편집 소스를 스스로 제공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영 좋지 않았고, 이현도 역시 2차 경연 이후 멤버 트레이드에서 그녀를 반대편으로 보내버리면서 방점을 찍었다. 결정적으로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였던 3차 경연조차 자진 하차하면서 날아갔다.
쇼미더머니2가 끝난 후 이현도는 인터뷰에서 크루원 겸 초기 심사위원이었던 래퍼들을 '낙하산'이었다고 굉장히 부정적으로 표현했는데[12], 배치기에 대해서는 실력이 검증되어 있고 면식도 있어 괜찮았다고 바로 덧붙였다. 결국 남은 사람만 한번 더 까인 셈이다.
2016년도 5월에 결혼 발표 기사가 났다.#

2. 음반 목록



2.1. 정규 앨범


  • 정규 1집 《Lexury》:
애송이》,《Let Me Dance》,《Girls》
  • 정규 2집 《Lextacy》:
눈물씻고 화장하고》,《Party》
  • 정규 3집 《RUSH》:
하늘위로[13]
  • 정규 4집 《the LEXY》:
《Ma People》

2.2. 비정규


  • 비정규 《놀자 (NOLZA)》

3. 여담


2016년 1월, 5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혼인신고는 11월에 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SLR 클럽 회원이였다고 한다.

[1] 개명한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황효숙.[2] 데뷔했을 때는 1979년생으로 나왔었다.[3] 2000년대 초중반.[4] 사실 1집 전에 진짜 1집으로 제작한 앨범이 있었는데 실수로 인해 통째로 날라가버렸고, 그 다음에 또 제작했었는데 앨범 전체를 들어본 렉시가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해서 전부 갈아 엎었다. 나름 초창기 멤버임에도 스위티나 휘성, 거미보다 데뷔 앨범이 느린 이유가 이것이다.[5] 제 아무리 YG 내에서 많은 곡에 참여했다 한들 YG패밀리 내에서도 양현석, 지누션, 원타임 등에 밀려 얼굴마담은 아니였다.[6] SE7EN의 1집 히트곡 중 하나인 "한번 단 한번"은 YG패밀리 2집으로 먼저 소개가 된 곡이다. 마스타 우 역시 1집에 수록된 "Sweet Love"또한 YG패밀리 2집으로 선공개된 곡. 1세대 YG 코어팬들이 이런 활동들까지 놓칠리 만무하다. 그나마 세븐과 마스타 우는 당시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나가 위화감이 덜했던 반면 렉시는 너무 많이 변한지라 변절자 소리까지 들으며 탈덕하는 팬들도 많았다. 원래 힙합이나 락음악 쪽이 장르나 스타일 바뀌면 변절했다는 소리들 많이 듣긴 하지만 말이다.[7] 참고로 이 날 첫 컴백무대가 하필 그 당시 뉴스란을 도배했던 카우치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었다. 게다가 렉시의 컴백 무대는 카우치 무대 바로 다음 순서(...). 안 그래도 노래도 별로 였는데 화제성까지 전부 빼앗기는 바람에 졸딱 망했어요가 되어버렸다.[8] 타이틀곡은 원곡이 아니라 REMIX버전으로 활동함.[9] 당시 팬카페에 남긴 글의 분위기로는 렉시 스스로 YG를 나오게끔 만든 분위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YG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단 식의 말을 했었기 때문에...한창 빅마마, 휘성 등 YG 자회사였던 엠보트 소속 가수들도 YG와 좋지 않게 나오는 수순이라 잠시 말이 있었다. 현재도 공민지, CL 등도 회사가 긴 공백으로 방치하며 관심을 주지 않는 등 비슷한 이유로 탈주하고 있다.[10] 사실 렉시의 노선은 이미 포미닛이나 2ne1이 다 먹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 대중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대중적인 반향을 노린다면 YG에 끝까지 머물러 있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11] 똑같이 탈락 위기에 몰렸을 때 화를 내기는커녕 시궁창인 분위기에 쫄아 있는 배치기의 모습과 대조적인 편집이었다.[12] 오히려 '할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언더 대변자 입장의 MC메타보다 표현 수위가 강했다.[13] 무대 활동은 리믹스 버전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