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더럼 아동 성착취 사건
1. 개요
Rotherham child sexual exploitation scandal
한국에선 흔히 '로더럼 사건'이라 부른다. 1997년부터 2013년까지 16년 동안 영국 사우스요크셔주 로더럼에서 11~25세 백인 소녀 1400명이 조직적으로 성적인 학대ㆍ착취를 당한 사건이다.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이 유괴ㆍ협박ㆍ강간ㆍ신체적 폭력 및 고문, 매춘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 등을 지속적이고 다발적으로 행하였다.
2. 전개
2010년, 파키스탄인 5명이 12세 소녀를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졌다. 타임즈지의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성적 학대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것이었으며, 이미 주 의회는 2002년부터 여러 차례 사건 보고를 받았다. 사우스요크셔주 경찰 및 의회는 이 때문에 강하게 비판받았다.
2013년에 알렉시스 제이 교수가 이끄는 독립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알렉시스 교수가 2014년 8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성적 착취는 이전까지 알려진 내용보다도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로더럼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소녀 1400명이 범죄에 노출되었고, 그러한 범죄가 16년 동안이나 이어진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인들은 피해자 소녀들과 접촉해 연애하는 척하면서 소녀들을 강간했고, 그렇게 그들은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되었다.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집단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으며, 버스에 실린 채 런던 등 대도시로 호송되어 성매매를 강요받기도 했다. 범죄조직은 대놓고 버스를 학교에 보내 아이들을 태우고 떠나고는 했는데, 학교 교장이 신고를 했음에도 묵살당한 일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범죄조직 아래에서 툭 하면 얻어맞고, 고문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당했다. 피의자들은 11세 소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고, 끔찍하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너.'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역 경찰은 사태를 방관했고,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 소녀들은 그런 성적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로더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이라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1] 진상이 밝혀지자 사건은 곧바로 공론화되어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고 도저히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장기간 이어진 가장 큰 이유는 공권력의 방관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11세 소녀가 파키스탄인 5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경찰은 피의자 2명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처벌을 끝냈다. 경찰들은 오히려 피해자를 '창녀'로 매도했으며, 피해자가 저소득층 출신에 마약과 술을 했고, 가정 환경이 비정상적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비행 청소년의 일탈로 치부했다. 파키스탄 갱들은 백인 소녀들을 '하얀 쓰레기들'이라 불렀고, 노동당계 정치인들은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히기 싫어 조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낙후된 공업지대에서 하층 계급 출신으로 태어난 백인 소녀들은 쉽게 범죄에 노출되었다. 지역 경찰은 인종차별 혐의를 받기를 두려워해서 사건을 방관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기인한 부담 역시 작용했을 것이다. 단순한 젠더 편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사건이 지나치게 지속적이고 규모가 컸다. 노동당 강세 지역에서 선출된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치인들은 인종 및 종교가 얽힌 문제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이런 저런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며, 이 조직적인 성적 착취는 16년이나 이어졌고, 어쩌면 그 이후로도 더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3. 사건의 여파
역설적이지만 이 사건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서양인들은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을 빙자한 언더도그마 현상의 부작용을 깨달았다. 2016년 브렉시트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인들 중 가장 주요한 사건으로 지목된다.[2] UKIP와 같은 극우 정당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조금씩 그 지지층을 늘렸다. 또한 서양이 일본에 비해 아동 성범죄 처벌을 강하게 한다는 편견도 사라졌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회의 역시 확산되었다. 그 이전까지 '이민 노동자'들은 사회적인 약자였고,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해서 본다면 무조건적으로 보호받아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바로 그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고통받아야만 했던 것은 실제로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이민자가 아닌 토박이 백인 소녀들이었다. 전통적인 노동당 강세 지역인 로더럼에서, 지역 정치인들은 단지 수사에 불과한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올바름'을 포기했던 것이다. 물론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히기 싫었다는 말은 궤변이라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이건 인종차별과 관련도 없는 게 그냥 조직범죄에 불과했고, 범인들의 배경이나 범행 동기도 종교적, 인종적 문제가 아니라 그냥 본인들의 인성이 썩어서 문제가 된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논점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강간범들이 '이슬람'. '이민 노동자'. '소수인종'이라는 언더도그마 방패가 없었다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없었다면, 이정도로 장기간 동안 다수의 피해자를 내기 전에 사회의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로더럼의 이슬람 공동체는 이 사건을 연고주의를 바탕으로 은폐한 방관자였고, 일반적인 무슬림들은 이 짓거리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지만 자정 노력 또한 기울이지 않았다. 로더럼의 성범죄자들은 대부분 30~40대로 10대 시절부터 범죄를 시작해 이어져 온 자들이 대부분이며 이전부터 사회의 쓰레기로 평가받던 자들로 영국 사회의 갱단, 조직범죄자들과 유사점이 많있다. 그러나 현지 이슬람 공동체는 무슬림 선민의식을 가지고 이들을 싸고 돌았으며, 해당 범죄자들은 자신들은 무죄라면서 법원에서 “알라후 아크바르”라는 말을 크게 외치기도 했다. 로더럼의 이슬람 사회가 이 강간범들을 내버려둔 게 오히려 반이슬람 감정만 키우는 꼴이 된 것이며 진짜 정치적 올바름에 충실했다면 이들을 적극 적발, 처벌하고 이슬람 교리와는 무관하며 영국 다른 곳에서도 흔한 조직범죄라는 점을 강조했어야 했다.
나아가 이슬람만이 아닌 모든 이민자들을 싸잡아서 욕하고, 그런 사건을 방관한 지역사회 전체를 감시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이슬람계 뿐만 아니라, 동유럽계 이민자들까지도 범죄자라 비하하며 당장 내쫓아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무슬림 전체 문제가 아니라 로더럼 지역의 파키스탄 무슬림 공동체 중에 악질 공동체가 있다는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즈 샤 노동당 하원의원은 "다양성을 위해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트윗을 리트윗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범인들은 징역 10년에서 30년 정도를 선고받는 등 나름 처벌을 받았으나, 무슬림 공동체 자체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무슬림은 아니지만 아동 인신매매를 주도한 갱단 범죄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어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이탈리아 각지에서 흑인 난민 출신 갱들이 이탈리아 토박이 소녀들에게 마약을 대가로 범죄와 성착취를 시킨 일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로더럼 사건과도 비교가 되고 있다.
[1]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배경인 존 쿳시의 소설 '추락'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직후의 시대, 표면적으로는 흑인 차별이 완전히 철폐되고, 주도권이 조금씩 뒤바뀌기 시작하는 시대에, 백인 중산층인 주인공의 딸은 지속적으로 흑인들에게 강간당하고 임신까지 하면서도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간당해 태어난 아이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제국주의가 붕괴하고, white guilt가 심어지고, 피식민지인들의 인권의식이 결여되고, 사회는 이를 교화하기보다 두둔하거나 방기하기 바쁜 상황에서 벌어지는 성적 착취라는 점에서 동형이다. 다만, 남아공의 백인 탄압은 서방인들의 태도를 바꾸어놓지 못한 반면, 로더럼 사건은 서방인들의 인식과 정치적 성향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는 차이가 있다. 남아공 백인들의 목소리는 서방의 태도 변화가 나타난 이후에야 서서히 서방 주류사회의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2] 로더럼 투표자의 67.9%가 탈퇴에 투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