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이시
1. 개요
미국의 제 22대 노동부 장관, 대학교수이자 경제학자, 정치인이다.
2. 학창생활 및 커리어
- 아이비 리그 소속 대학인 다트머스 대학교를 수석졸업했고,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을 받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으며[4] ,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률학회지(Yale Law Journal) 편집장을 역임하며 졸업했다. 그야말로 학생으로서 초 엘리트였던 셈.
- 로스쿨 졸업 후 재판연구원(Law clerk)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제럴드 포드 재임 시절 법무부에서, 지미 카터 재임 시절에는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에서 일했다. 빌 클린턴 재임 시절의 노동부 장관 경력까지 합하면 3개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
- 1980년부터 1992년까지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이 시기에 『넥스트 프론티어(The Next American Frontier)』, 『국가의 일(The Work of Nations)』등의 책을 써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5]
3. 클린턴 행정부
3.1. 활동
3.2. 퇴임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출근할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날 아침에도 일찍 집을 나서기 전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막내 방에 갔다. 막내는 눈을 반쯤 뜬 상태에서, 그날 밤 퇴근하고 돌아오면 자기를 깨워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늦을 것 같아 내가 집에 올 때쯤이면 아마 곤히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보는 것이 더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내는 계속 졸라댔고,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막내는 단지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당시 내가 왜 그랬는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장관직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유한 노예(The Future of Success)』프롤로그 중에서
- 빌 클린턴 1기 행정부 끝까지 노동부 장관으로 자리를 지켰지만, 2기 행정부에는 함께 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모두를 위한 불평등(Inequality For All)』에서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밝혔는데, 하나는 위와 같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
-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지 않은 『Locked in the Cabinet』에서 클린턴 행정부에서의 경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고 한다.
4. 노동부 장관 퇴임 후 활동
4.1. 대침체 이전
-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기간은 당시 미국 역사상 최고의 경제적 호황기로 불렸다. 그는 이 시기를 단순 호황기가 아니라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시대, 신경제(The New Economy)라고 『부유한 노예』에서 명명하였다. 신경제 시대에서 일과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쓴 책이 『부유한 노예』라면, 신경제 시대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졌으며, 자본주의는 슈퍼자본주의가 되고, 민주주의는 이에 압도당하는지를 쓴 책이 『슈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이다.
경제적 사회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이념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기술과 조직의 현실적 요구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새로운 산업국가』
『슈퍼자본주의』 중에서
- 『부유한 노예』와 『슈퍼자본주의』에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의 현상에 대한 옳다 그르다와 같은 이념적 가치평가라고 볼 수 없다. 특히나 정치가, 기업가, 글로벌 기업 등 특정 주체에 대해서 세계화 등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며 편리한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위의 갤브레이스의 어록을 책 서두에서 인용한 것처럼, 1990년대[6] 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여 현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단일시장, 세계화라는 결과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 혹은 특정 세력이 의도한 결과가 아니며, 기술의 발전 등 사회의 하부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의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표현한 신경제 시대의 영향으로 소비자로서 압도적인 힘을 갖게 된 시민,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슈퍼자본주의에 의해 압도당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시민이라는 양면성을 갖게 된 우리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본주의(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불균형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4.2. 금융 위기 이후
불만족과 비판, 동요, 저항이 저변에 깔려 있는 사익(私益)의 시대는 모순을 낳는다. 인구의 상당수가 탐욕스런 취득 경쟁에서 뒤처지고... 방치된 문제들은 결국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긴급히 처방해야만 할 상황에 처하고 만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위협이 된 문제, 폭발성 현안은 마침내 획기적인 약진을 이끌어내고, 그리하여 새로운 정치의 신기원이 펼쳐진다.
아서 슐레진저 2세, 『미국 역사의 순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shock)』 중에서[7]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우선, 가난한 자가 부자를 약탈하는 것. 그것은 갑작스럽고 폭력적으로 진행된다.
또 하나,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약탈하는 것.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진행된다.
존 테일러, 『미국정부의 원칙과 정책에 관한 연구』
『자본주의를 구하라(Saving Capitalism)』 중에서[8]
- 대침체 이후 정치, 경제적 스탠스가 더욱 명확해졌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분배다. 아래 장면은 『모두를 위한 불평등』에서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대침체(Great Recession)[9] 직전에 얼마나 쌍둥이처럼 부의 분배가 최상위 계층에 집중되었는지를 비교하는 부분이다. 영상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20대 때부터 오랫동안 교제하였고,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아닌 버니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을 정도. 그의 명확해진 스탠스와 더불어 대중에 대한 접근 방식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변화했다.[10] 『부유한 노예』 이후의 그의 저서는 모두 대중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경제학에 대해 무지한 일반 독자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에 덧붙여, 2013년에는 『모두를 위한 불평등』, 2017년에는 『자본주의를 구하라』[11]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찍었다. 2015년에는 유튜브 계정도 개설하여 활발하게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12] 『1대99를 넘어(Beyond Outrage)』 무렵부터는 본인이 직접 그린 삽화도 대거 사용한다. 더 선명해지고, 더 시각적으로 심플해진 그의 주장은 한국에서도 짤막한 영상 등으로 편집되어 넷상에서 소개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래는 『What's the Real American Story?』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그가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장면
- 세계적인 석학이어서, 한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자주 갖는 편이다.관련링크1 관련링크2 가장 최근에는 2018년 5월 25일에 서울에서 열린 『내 삶을 바꾸는 혁신적 포용국가』(Inclusive Korea 2018)에서 기조연설을 했다.연설영상
5. 여담
- 키가 149cm 라는 단신이고, 때문에 베트남 전쟁 징병 신체검사에 통과하지 못했을 정도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 다발성 골단 이형성증(Multiple Epiphyseal Dysplasia)이라는 희귀병을 앓았기 때문.[13]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는『부유한 노예』를 읽다가 그의 체형이 소개되는 부분에서 깜짝 놀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모두를 위한 불평등』을 보면 초반에 미니 쿠퍼를 모는 장면에서 전혀 위화감이 없다.
- 한국에서도 여러 권의 저서가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부유한 노예』부터 주로 김영사에서 출간하고 있다. 『부유한 노예』 이후의 거의 모든 저서가 한국어판으로 나왔지만 『Reason』: Why Liberals Will Win the Battle for America(2004)만은 출간되지 않았는데, 미국 정치라는 특정 주제에 내용이 편중되어 있어서 출판하지 않는 방침이라는 김영사의 Q&A에서의 답변이 있었다.
- 이혼한 부인 클레어 달튼(Clare Dalton)은 전직 법학 교수이며, 장남 애덤 달튼 라이시(Adam Dalton Reich)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버지의 노동부 장관 퇴임을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적어도 『부유한 노예』의 프롤로그에 따르면 그렇다) 차남 샘 라이시(Sam Reich)는 영화, 방송 프로듀서다. 아버지에게 미디어를 활용한 대중에의 접근을 권유한 장본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