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깁
1. 개요
로빈 깁(Robin Gibb)은 영국의 가수로, 디스코 음악 밴드 비 지스의 멤버이다. 1955년, 형 배리 깁,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과 함께 영국에서 The Rattlesnakes를 결성했다. 1958년 호주에 가서 비 지스로 이름을 바꿨고, 1967년부터는 다시 영국에 돌아와서 활동했다.
2. 상세
1968년 매니저였던 로버트 스틱우드의 비서인 몰리 헐리스(Molly Hullies)와 19살의 나이로 결혼했다. 슬하에 2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1980년 이혼한다.
1969년 그룹의 주도권 문제로 형 배리 깁과 갈등하다 잠시 팀을 떠나 솔로 데뷔 앨범 Robin's Reign을 발표하고[5] 1970년 그룹에 복귀하였다.
1975년 비 지스가 Main Course 앨범으로 재미를 볼 때쯤, 동생 앤디 깁을 형제들과 함께 전폭적으로 지지해줘 스타 가수로 데뷔시켰다.
1980년, 몰리 헐리스와 이혼 후 작가 겸 아티스트인 드위나 머피(Dwina Murphy)와 결혼한다. 같은 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히트곡 Woman in Love를 배리 깁과 같이 작사/작곡했다.
1981년 그룹의 Living Eyes 앨범 실패 이후 다시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1983년 How Old Are You? 성공 이후 연달아 두 장을 더냈다.
1987년, E.S.P. 앨범으로 다시 비 지스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솔로활동하던 동생 앤디 깁이 갑자기 심근염으로 급사한다.
2003년 모리스 깁이 병사(病死)해서 자동으로 그룹이 해체되자 솔로로 활동하다 2009년 재결합했다.
2010년 8월 14일, 벨기에에서 공연 중 복부에 통증을 느꼈고, 4일 뒤 긴급 수술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했고 뭔지 모를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투어를 계속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27일, 런던 콘서트를 몇분 앞두고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해 버렸고 그해 11월 간암 판정을 받아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간 뿐만 아니라 결장과 콩팥도 안 좋은 상태였다.
2012년 3월, 전이된 암을 제거하기 위해서 장 수술을 진행했지만 회복 기간 중인 4월 15일에 폐렴까지 겹쳐 혼수상태에 빠졌고 4월말 다시 깨어났지만 결국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깨어나고 죽기 한달전 동안의 기간, 로빈은 누운채로 말도 하지 못하고 눈 깜박임만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평소 술, 담배도 안했지만 건강 악화로 62세(70 ~ 80세인 평균수명에 못 미침)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 한 달전인 4월 10일, 첫 클래식 앨범이자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 추모 음반인 Titanic Requiem[6] 을 아들 로빈 존 깁(Robin John Gibb)과 작업해 발표했지만 그는 건강상 참석하지 못했다. 이때 공개된 Don't Cry Alone이 생전 발표된 마지막 노래가 되었다. 생전 녹음한 마지막 노래는 50 St. Catherine's Drive에 수록된 마지막곡 Sydney이다.[7]
2005년 8월 31일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서울 코엑스에서 내한공연을 했고, 3500여명의 관객들이 찾아왔다. 당시 형 배리 깁은 성대 결절로 프로듀싱만 하고 노래는 하지 않아서 오지 않았다. 로빈은 다음에는 형과 같이 오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못 지켜지게 되었다. 현재 비 지스 멤버중 유일하게 한국 땅을 밟은 멤버이고 추후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2008년에는 중국계 가정부 클레어 양(Claire Yang)과의 사이에서 8년 동안 불륜을 저질러 아이까지 낳았다. 깁 부부는 결혼할 때 부터, 다른 파트너와 연애까지 할수있는 개방결혼을 약속하고 하였기에 불륜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가정파탄이 났다.
2007년, 국제저작권관리협회연맹(CISAC)의 회장에 만장일치로 당선되어 사망전까지 5년간 맡았다.
사망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내 드위나에게 한 '''''Dwina, I want to go home.''''' 이다.[8]
사망 직전까지도 2003년에 요절한 쌍둥이 동생 모리스를 그리워했고, 배리와 계속해서 투어를 할 수 있을거라고 혼수상태를 오가며 얘기했다. 아들 스펜서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연주되는 곡이 '''"How Deep Is Your Love"'''이길 바랬다.
모리스 사망 직후, 배리와는 관계가 틀어졌다. 모리스의 장례식 추모공연 문제로 약간의 언쟁 이후, 5년간 연락 한 번 주고 받지 않을 정도로 껄끄러운 관계로 남게 되었다. 배리가 말하길, 로빈은 여전히 비 지스로 남을 것이라고 하긴 했지만, 솔로가수로서의 열망과 자신에 대한 경쟁심이 강했다고 한다.
2009년 재결합 때 다시 만나 잠깐 같이 활동하긴 했지만, 둘 사이의 간격은 다시 함께 하기에는 너무 벌어져 있었고 또다시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 심지어 배리는 로빈이 죽기 1년전에야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로빈의 병에 대해 알았다고 한다. 배리는 병에 대해 알고나서 로빈이 2년이나 앓던 기간 동안,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별로 심각하지 않나보다 생각하고 자신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로빈이 죽기 6개월 전, 그의 아내 드위나로부터 로빈이 암에 걸렸으며 항암치료를 거부해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연락이 오게 되었다. 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신문 사진을 의사에게 보여주며 어느정도인지 물어보았고, 의사는 길어야 3~6개월 남았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만나보라고 권했다. 배리는 즉시 아내와 함께 마이애미에서 영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배리가 로빈을 다시 만났을 때, 조금 마른 것을 빼고는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고 한다. 둘은 과거 얘기를 하며 회상에 잠기며, 때때로 웃기도 했다. 그들이 떠날때,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로빈은 집밖으로 마중을 나왔고, 배리는 장난스레 "들어가, 넌 (감기에 대한) 면역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로빈의 가족들까지 나와 다같이 배웅해주었다고 한다. 배리는 가족들에게 "그를 데리고 들어가요, 그가 감기에 걸리면 그걸로 끝이라고요."라고 말하며 헤어졌다. 결국 로빈은 폐렴으로 사망하고 만다.
몇달 뒤, 로빈이 코마상태를 오갈때 배리는 한 번 더 그를 보러왔다. 그러나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더이상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 당시 로빈의 새앨범인 The Titanic Requiem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 첫선을 보이고 있었고 여기에 로빈의 아내 드위나와 아들 로빈 존 깁이 전부 참석하느라 배리와 로빈은 병실에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배리는 그를 위해 만든 곡인 The End Of The Rainbow[9] 를 침상 옆에서 불러주었다. 로빈은 배리에게 공식 석상등에서 항상 취하던 포즈인 엄지를 겨우 들어보이며 반응했다고 한다.
배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저히 동생 옆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로빈의 사망 이틀전, 배리의 아들 트래비스가 딸을 얻었고 어쩔수 없이 그는 아내와 함께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로빈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사망 두 달전까지만 해도, 배리는 로빈과 함께 다시 녹음을 할 수 있길 바랬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형 배리처럼[10] 영국 노동당을 지지하며, 유대인은 아니지만 시오니스트들도 지지했다.
3. 디스코그래피
3.1. 빌보드 성적
- Oh! Darling[14] (15위)[15] (1978)
- Help Me! (50위) (1980)
- Juliet (104위)[16] (1983)
- Boys Do Fall In Love (37위)[17] (1984)
[1] 깁 본인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2] 초기에는 오르간 등의 건반악기도 다뤘지만 악기 방면은 스스로 포기했다.[3] Rebecca. Secret Agent 수록.[4] Love me. Children Of The World 수록.[5] 이때 만들어진 비 지스의 앨범은 Cucumber Castle[6] 발매는 아들 이름으로 되어서 로빈 깁 솔로 디스코그래피에서는 제외[7] 2011년 녹음했으며, 데모 수준의 노래이다. 로빈이 마지막으로 작곡, 작사한 노래이기도 하다.[8] 기사마다 다르다. 다른 기사에서는 모리스에게 남긴 "I wish Mo was here, I can't believe he is gone.으로도 소개된다.[9] In The Now에 수록.[10] 이쪽은 아예 토니 블레어 총리와 함께 잼 세션까지 가졌을 정도로 사적으로 친하다.[11] 미공개 앨범, 팬들의 요청으로 2015년 공개.[12] 사후 앨범.[13] 2008년 완성했지만 미공개되었다.[14] 비틀즈 원곡이며 Sgt. pepper's 영화 주제가에 참여해서 불렀다.[15] 로빈 깁의 빌보드 최고 성적이다.[16] 유럽 본토와 아시아 등지에서는 메가히트를 기록했다.[17] 마지막 빌보드 차트 진입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