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 개요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2. 상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여가수'''이다.[1] 또한 유일하게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주인공으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하나'''이며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하나이다. 영화계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미국 대중문화의 전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배우로서도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며, 1968년 영화 데뷔작인 퍼니걸에서 명연기를 보여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퍼니걸은 걸작 뮤지컬 영화로 손꼽히며 영화 수록곡인 people은 뮤지컬 역사상 최고의 명곡 중 하나라는 평을 가지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출연한 영화 추억 또한 수작 멜로영화로 평가를 받으며 본인이 부른 주제가곡인 The way we were은 바브라에게 첫 빌보드 1위를 가져다 주었다. 주디 갈란드의 스타 탄생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작품 또한 바브라의 대표작이며 본인이 작곡한 evergreen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로 스타 이즈 본의 전신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감독으로서도 재능이 있어 골든글로브상에서 본인이 주연이자 감독한 옌틀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유대인으로 원래 이름은 바버라 스트라이샌드(Babara Streisand)이지만 18세 무렵에 이름 중간의 'a' 자를 뺐다. 유대계 성을 바꾸고 활동하란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 반항하는 의미에서 이름을 살짝 바꿨다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로, 유대계 연예인치고는 거의 본명으로 활동하는 인물. 주로 1960-7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음악 장르는 AOR 같은 성인 취향의 발라드나 팝. 의외로 이런 쪽 수집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콘서트 푯값이 제일 비싼 가수로 손꼽힌다. 누가 왜 그렇게 티켓값이 비싸냐고 불평하자 '''"내 공연에 나의 가수인생 수십 년이 녹아 있는데 그 정도면 얼마 안되는 가격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스트라이샌드의 주요 팬층은 미국의 중장년층 유대인들이다. 중상류층이 많은 유대인들 특성상 그들은 푯값 정도는 거뜬히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일부러 비싸게 받는 것도 있다.
좀 더 실감나게 설명하자면, 미국 현지에서는 미국 대통령급 인지도를 가진 '''미국판 국민가수'''이며 한국으로 인기와 인지도로 치자면 이미자, 패티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빌보드 기록과 영화계에서의 성공 등 세계적으로 따지면 비교도 안되게 어마어마 하지만 말이다. 물론 보컬 실력도 넘사벽. 스트라이샌드 보컬로 부른 곡들은 그 어떤 누가 커버해서 불러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드라마 글리 주인공들의 우상이 바로 스트라이샌드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웬만한 중노년을 제외하고는 인지도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스트라이샌드 효과가 신문에서의 인용 등을 통해 더 잘 알려져 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설명하면서 유래를 설명할 때 곁다리로 나오는 수준. 그리하여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괜히 뭐라하다 역풍 맞은 미국 여자(...)
스트라이샌드는 유달리 까다롭고 거만하다는 말이 많다. 한 사례를 들자면, 2003년 스트라이샌드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면서 자기 의상으로 입고 나온 풀오버와 마이크 색상을 맞추려고 오프라쇼의 마이크를 멋대로 흰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70년대 여성들이 좋아했던 영화 추억 《The way we were》에서 곱슬머리에 개성 강한 여주인공을 연기했는데, 이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로 흡사해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이 영화 속 스트라이샌드 캐릭터를 언급하며 '곱슬머리에 까다로운 여성'과 '생머리에 단순한 여성' 유형에 대해 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유튜브영상 스트라이샌드 효과가 괜히 일어난 일은 아닌 듯.
코가 큰편인 유대인 중에서도 유달리 코가 크기로 유명한데 미국에선 이걸로 자주 까인다. 특히 연예인 까는 맛으로 먹고사는 매체일 경우 노골적이다. 패밀리 가이에선 돈이 콧구멍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까며, 사우스 파크에서는 아예 코 큰 괴물이나 악마화(...) 한다.
미국에서 진보 성향이 강한 인구 집단인 유대계 여성 중에서도 진보적이기에 베트남 전쟁을 무척이나 반대했고 이라크 전쟁이나 미국이 벌이는 전쟁을 무척 비난하기로 유명하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미국 민주당 골수 지지자로도 유명하다. 물론 그녀도 탈레반을 뭉개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만은 반대하지 않았으나 장기전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기껏해야 더 많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을 죽였을 뿐이니 미국의 복수는 진작에 끝났다. 그러니 더 증오를 남기지 말고 이젠 철수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래서 미국 극우들에게 증오와 멸시를 받는다.
여담이지만 배우 조시 브롤린의 계모이기도 하다. 물론 조시 브롤린의 아버지 제임스 브롤린과의 결혼은 조시 브롤린이 장성하고 나서 했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새어머니 같은 존재는 아니다.
2018년, 황우석이 운영 중인 수암생명공학연구원 랩에서 애완견을 복제했다고 한다. 비용은 5만 달러였다고. 기사
3. 특징
3.1. 창법 및 발성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들어보면 발표 시기에 따라 발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녹음은 대부분 1960년도 초의 것들이다. 1961년에 녹음한 "Moon River"가 그 예시이다.
후술하겠지만 1970년대 당시엔 비음 섞인 유려한 창법이었다면 1960년대 초중반까지는 끌어모으며 내지르는 시원한 창법을 사용했다. 이 당시 창법은 1976년 스타 탄생의 Woman in the moon에서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시대마다 창법이 굉장히 다양하게 변하는데 무엇하나 위화감 없으니 그야말로 거장이라 불릴만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점점 소리가 열리고 경험이 늘어나면서 보다 풍부한 소리를 보여준다. 예시로 1969년에 라스 베가스에서 콘서트를 한 영상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대부분 비슷한 발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점차 시간이 흘러갈 수록 음색과 표현력, 연륜 등은 물론 계속 성숙하게 발전한다. 1975년 "How lucky can you get?" 공연. 아직까지 쫄깃쫄깃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목소리에서 탄력이 점차 줄어들면서, 빠릿빠릿했던 예전에서 허스키한 느낌으로 변한다. 대신 발성은 훨씬 편해지고 콧소리가 조금씩 줄어든다. 1986년에 캘리포니아 자신의 저택에서 한 콘서트 중 "Over the rainbow"를 보면 알 수 있다. 1990년대부터는 콧소리의 사용이 더 줄어들고 소리가 완전히 위쪽으로 올라가 두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더욱 편한 노래를 들려준다. 1994년에 한 콘서트 중 "As if we never said goodbye"을 예시로 들 수 있다.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나이가 들면서에 따라 음색이 점차 거칠어지는 것과 음역대가 점차 낮아지는 것 빼고는 큰 차이가 없다. 발성의 본좌. 2000년에 한 콘서트 Timeless 중 "The way we were"과 2013년에 한 콘서트 Back to Brooklyn 중 "Evergreen"을 보면 그녀의 초지일관성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참고로 이 노래(Evergreen)는 바브라 자신이 작곡했으며 "스타 탄생"이란 영화의 주제가로 오스카 상을 받은 곡이다.
3.2.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3.2.1. 사우스 파크에서
그리고 사우스 파크에서 제일 욕을 많이 먹는 아주머니이다. (...) 한국에서 스트라이샌드의 인지도는 60-70년대를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면[2] 대부분 사우스 파크에서 기인한다.수많은 팬들이 저희한테 '사우스 파크에서 조롱하는 연예인들은 진짜로 미워서 그러는거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당연히 절대 아니죠. 그냥 재밌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 뿐이에요.
(몇초간 정적이 흐른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경우를 제외하고요. 우린 그녀를 미워해요.
사우스 파크 시즌1 보너스 영상에서
시즌1의 마의 삼각형 에피소드에서는 합성기계수로 변신해서 깽판을 부리지만 마침 괴수들로 변한 몇몇 마을사람들에 의해 격퇴되고, 시즌 2 할로윈 특집 때에는 이 아줌마의 얼굴이 스크린 꼭짓점에 계속 붙어 있는 에피소드도 있는등 잊을 만하면 등장해서 까인다. 덕분에 사우스 파크에서 제일 많이 까인 인물 1위를 차지한다.
심지어 극장판에서 에릭 카트먼이 마무리 공격으로 한 욕의 마지막 단어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였다. (...) 카트먼은 이 때 몸에 심어졌던 V-칩이 오류를 일으켜 욕을 할 때마다 전격을 방출하는 능력을 지녔고, 욕의 강도가 강할수록 전격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다가 200회 특집 에피소드에서 업그레이드해서 재등장. 13년이 지났다보니 그래픽이 엄청나게 상향돼서 돌아왔다.
해당 편(Mecha-streisand)의 DVD 코멘터리에 의하면, 제작자들이 그녀를 혐오하는 주된 이유는 제작 당시 콜로라도 주법 개종안의 통과로 동성애자가 보호받는 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서, 스트라이샌드가 콜로라도 주와 그의 모든 시민들을 상대로 "시골뜨기 무리들(bunch of hicks)"이라 비하하며 절대로 다시 콜로라도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담이지만 스트라이샌드 본인은 사우스 파크를 보고 "이런 쇼들이 사르카즘(sarcasm, 비꼬기)식 관점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라고 평했는데, 파커와 스톤은 ''''"스트라이샌드가 어떻게든 화를 내게 만들어서 너무 좋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
3.2.2. 심슨 가족에서
심슨 가족에서도 사우스 파크만큼은 아니지만 언급되는 편이다. 허리케인 바바라를 이 사람의 입김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3.3. 게이들이 좋아합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게이들이 좋아하는 여배우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그녀가 뮤지컬계의 전설이기 때문이다.[3] 미국에선 뮤지컬은 게이, 유대인만 본다고 할 정도로 게이 스테레오이다. 그러니 뮤지컬 덕후인 게이들이 바브라를 칭송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녀의 브로드웨이 데뷔였던 퍼니 걸은 대박을 쳤고 그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져 레전드급 명성을 얻었다. 주연을 맡았던 영화 헬로 도돌리도 뮤지컬의 영화화이다.
요새로 치자면 이디나 멘젤의 루트와 닮았다. 실제로 이디나 멘젤도 유대인이고 외모가 비슷하단 점에서 당시 제 2의 스트라이샌드로 불렸다. 최근엔 레아 미셸이 그 후계자로 명성을 이었다. 레아 미셸을 주인공으로 세워 화니걸의 리바이벌이 추진되었으나 엎어졌다. 또는 스트라이샌드가 살아온 삶의 굴곡이 성 소수자로 차별받는 게이들과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고는 한데 사실 그녀가 디바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아들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제이슨 굴드[4] 가 게이이기도 하다. 덕분에 바브라 본인은 동성결혼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4.2. 싱글
4.2.1. 빌보드 핫 100 1위
- The Way We Were (1974)
- Evergreen (Love Theme from A Star Is Born) (1977)
- You Don't Bring Me Flowers (Duet with Neil Diamond) (1978)
- No More Tears (Enough Is Enough) (Duet with Donna Summer) (1979)
- Woman in Love[5] (1980)
4.2.2. 빌보드 핫 100 3~10위
- People (1964)
- Stoney End (1971)
- My Heart Belongs to Me (1977)
- The Main Event/Fight (1979)
- Guilty (Duet with barry gibb) (1981)
- What Kind of Fool (Duet with barry gibb) (1981)
- I Finally Found Someone (Duet with Bryan Adams) (1996)
4.2.3. 빌보드 핫 100 11~20위
- Comin' In and Out of Your Life (1982)
5. 필모그래피
- 퍼니 걸 (Funny Girl, 1968) - 퍼니 브라이스
- 헬로 달리 (Hello, Dolly!, 1969) - 달리 리바이
- 올빼미와 새끼 고양이 (The Owl and the Pussycat, 1970) - 도리스
- 온 더 클리어 데이 유 캔 씨 포에버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 1970) - 데이지
- 왓츠 업 덕 (What's Up Doc, 1972) - 주디 맥스웰
- 업 더 샌드박스 (Up the Sandbox, 1972) - 마거릿
- 추억 (The Way We Were, 1973) - 케이티 모로스키
- 바브라 내 사랑 (For Pete's Sake, 1974) - 헨리에타 헨리 로빈스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갈채 (Funny Lady, 1975) - 화니 브라이스
- 스타 탄생 (A Star Is Born, 1976) - 에스더 호프먼
- 메인 이벤트 (The Main Event, 1979) - 힐러리 크레이머
- 꿈꾸는 야생마 (All Night Long, 1981) - 셰릴 기본스
- 옌틀 (Yentl, 1983) - 옌틀/안셸
- 최후의 판결 (Nuts) - 클라우디아
- 사랑과 추억 (The Prince of Tides, 1991) - 수전 로웬스타인
- 로즈 앤 그레고리 (The Mirror Has Two Faces, 1996) - 로스 모건
- 미트 페어런츠 2 (Meet the Fockers, 2004) - 로즈 퍼커
- 미트 페어런츠 3 (Little Fockers, 2010) - 로즈 퍼커
- 더 길트 트립 (The Guilt Trip, 2012) - 조이스 브루스터
6. 관련 문서
6.1. 스트라이샌드 효과
6.2. Duck Sauce의 싱글 'Barbra Streisand'
2010년에 발매한 하우스 싱글이다.
윗 인물과의 관계를 굳이 꼽자면 앨범아트가 1981년에 발매한 Guilty를 패러디한 것 정도이다. 훅라인을 보니엠의 Gotta Go Home에서 따온 것이[6] 특징이다.[7] 다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본인도 이 곡을 인지하고 있다. 더 길트 트립 TV 예고편에서 같이 출연한 세스 로건이랑 이 곡을 듣다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가사가 나오기 직전 음악 끊고 '나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 링크
어찌 되었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차트 1위도 하는 등 나름 2010년대 초반에 히트한 노래지만 그래미에서 수상하는 데는 실패했다. 동시대 경쟁자가 '''스크릴렉스''',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너무 쟁쟁했고 스크릴렉스가 몰고온 덥스텝 열풍 때문에 다소 묻혔다.
뮤직비디오 출연진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카녜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앙드레 3000, DJ 프리미어, 토드 테리, 디플로, 퀘스트러브와 더 루츠 멤버들, 뱀파이어 위켄드 리더인 에즈라 코에닉이 등장한다.
[1] RIAA 기준 685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해 머라이어 캐리와 공동 1위.[2] 워낙 미국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팝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소개해줘서 알게 된 한국 기성세대도 좀 있다.[3] 주디 갈란드도 바브라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 시대상의 게이의 아이콘이다.[4] 배우 엘리엇 굴드 사이에서 낳았다.[5] 비 지스의 배리 깁과 로빈 깁이 작곡했다. 이 곡이 수록된 Guilty 앨범 역시 배리 깁이 제작했다.[6] 이름은 몰라도 한번 들어보면 다들 왠지 알만한 유형의 노래이다.[7] 사실 Gotta Go Home도 훅라인과 벌스를 Nighttrain의 Hallo Bimmelbahn(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어로 된 노래다.)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