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 컨스텔레이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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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개발
3. 초기형
4. 생산 재개
5. 항속 거리 연장
6. 단종
7. 대한항공에서 사용 기록
8. 그 후
9. 참고 링크


1. 개요


미국 록히드에서 개발한 장거리용 협동체 4발 레시프로엔진 여객기. 별명은 코니. 익면구조 등은 록히드사의 명작 전투기 P-38 라이트닝과 크기만 확대된 거의 같은 설계로 전체적인 곡선이 아름답다.
참고로 이 친구의 엔진은 B-29에 사용되었던 2800마력 피스톤 공랭식 엔진이다.

2. 개발


1939년 트랜스 월드 항공의 대주주인 하워드 휴즈는 여압객실을 갖춘 상태로 미국을 무착륙 횡단할 수 있고 대서양 횡단도 가능한 장거리 비행기를 찾았다. 록히드 사는 스컹크 웍스 주임으로 유명한 켈리 존슨[1] 등을 투입하여 과거의 여객기 도전 실패를 만회할 신작 비행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개발된 시제기는 당시의 여객기로는 상당한 고속으로 시속 600km 정도를 내며 안정된 비행성능을 보여주었다.
여압기능에 있어서 최초의 객실여압장비 채용 상업기 보잉 307의 뒤를 이은 최초의 객실여압장비 채용 국제선 여객기 이기도 하다. 총 생산기 수는 민수용 여객기가 약 850기, 군용으로 생산된 수송기 버전으로 350기 정도가 더 생산되어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1,200기가 넘게 생산되었다.

3. 초기형


막 개발이 끝난 시점에 세계 2차대전으로 전시 체제였던 미국은 1943년 초도 납품된 L-049를 트랜스 월드 항공이 아닌 미군 수송기 C-69로 바꾸었고, 이를 개량한 L-749도 역시 군용 C-121로 사용되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전용기 또는 맥아더 원수 전용기 '바탄 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2차 생산분인 기체는 1944년 4월 17일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비행을 행했다. 이날 비행에는 하워드 휴즈가 직접 조종에 참여했으며,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워싱턴 D.C.까지 약 3700km 거리를 6시간 57분만에 주파했다. 또한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도중 라이트 비행장에 착륙해서 라이트 형제 중 한 명인 오빌 라이트가 탑승했고, 잠깐 조종간을 잡아보기도 했다. 오빌은 '비행기의 날개 길이가 내가 처음 날았던 거리보다 길어졌군.'이라는 감상을 남겼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할 당시 12초 동안 37미터를 비행했었다.

4. 생산 재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적 교류 증대는 민간 여객기의 붐을 불러왔다. 컨스텔레이션 시리즈도 트랜스 월드 항공 및 그 라이벌인 팬암 항공 등을 위한 납품을 개시하였다. 1947년에는 라이벌 격인 더글라스 DC-6에 대항하여 엔진을 바꾸고 순항속도를 개선한 L-749가 투입되어 대서양 횡단 노선에서 활약하는 등 모처럼 록히드 사의 여객기 사업도 순조로운 길을 걸었다.

5. 항속 거리 연장


라이벌 DC-6이 수송량을 증가한 화물수송용 DC-6A를 개발한 데 이어 여객용의 DC-6B를 판매하면서 록히드는 동체를 연장한 신형 L-1049를 발표한다. 컨스텔레이션 시리즈의 초기형인 L-1049모델은 탑승가능 인원이 비교적 적다는 경제적 문제점이 있었고 동체 연장은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원래 컨스텔레이션 시리즈가 개발된 목적인 북미 대륙횡단이나 대서양 횡단에 사용하기에는 항속거리 감소가 단점으로 작용해 버렸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나 캐나다 에서 중간기착을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1950년, 익단에 연료탱크를 추가한 신형 L-1049G 슈퍼 컨스텔래이션이 도입되어 트랜스 월드 항공만이 아니라 팬암[2], 에어 프랑스, 루프트한자, 브라질 항공 등의 세계 대형 항공사에 도입되었다.
라이벌인 DC-6과 컨스텔레이션의 도입은 대서양 횡단 항해를 위한 여객선의 입지를 흔들었고 전후 본격적인 여객기 시대를 가능케 하였다. 1956년에는 더글라스 사의 신예 DC-7C에 맞서 설계를 변경하고 각부를 개량하여 항속거리를 더욱 늘린 최종발전형 L-1649A 스타라이너가 개발되었으나 DC-7C가 그러하듯, 이미 DC-6이나 컨스텔레이션으로 충분히 대서양 횡단 노선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항공사들은 그다지 수주를 넣지 않아 생산은 44기에 불과했다. 이들은 보잉 377등과 함께 프로펠러 레시프로엔진 여객기 시대 황금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6. 단종


문제는 록히드 사가 제트 여객기 코메트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프로펠러 여객기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데 있었다. 신형 터보프로펠러기 L-188 엘렉트라의 생산이 예정되면서 1958년 컨스텔레이션 시리즈는 단종되었지만 이해에 도입된 보잉 707, 더글라스 DC-8 같은 제트 여객기는 프로펠러 기로는 따라갈 수 없는 성능을 보였다. L-188 개발은 좌초되고 시제기도 사고를 일으키면서 록히드는 L-1011 트라이스타가 개발되기 까지 여객기 사업을 접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L-1011은...

7. 대한항공에서 사용 기록


대한항공은 1945년부터 한진상사가 1969년에 인수전까지 사용하였다. 정석비행장에 보관되어있는 기종이 이 기종이다.[3] 자세한 내용은 대한항공/이전 보유 기종을 참고.

8. 그 후


이후에도 라이벌 DC-6이 그렇듯, 남미 지역의 중거리 노선과 전세기 운영사 등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화물기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만, 조종계통이 복잡해서 유지 보수가 어렵고 더글라스 사보다 부품 공급 면에서 어려웠기에 점차 외면을 받았다. 특히 화물용 데크가 높아서 화물기로는 비교적 불편한 독특한 동체구조가 문제되어 후기형인 L-1049는 사라져갔지만 터보 컴파운드가 없는 R-3350형 엔진을 장비한 초기 L-049는 좀 더 목숨을 유지했다.
군용으로는 미군이 C-121을 개조한 파생형 초계기 EC-121 을 1970년대 중반까지 활용하였다.
현재는 그 아름다운 기체 디자인이 인정받아 다수의 항공 박물관 에 보존되어있다. 기수가 가늘고 날개 부분이 도톰하면서 곡선으로 이어지는 끝부분은 P-38 라이트닝의 확대형 같은 느낌을 준다. 민간단체가 보존하고 있는 Save-a-Connie는 과거 트랜스 월드 항공 도장을 하고 촬영 세트로 사용하고 있다.

9. 참고 링크



[1] 참고로 컨스텔레이션 시리즈는 파생형이 10가지가 넘는데 전부 다 켈리 존슨이 개발에 관여했다.[2] 세계최초 세계일주 노선에 사용[3] 하지만 전시된 기체는 대한항공이 여객용으로 사용한 적이 전혀 없는 기체이다. 1948년에 C-121A형, 등록번호 48-0609번으로 미국 공군에 취역, 1950년 또는 그 이전에 귀빈 수송용으로 개수되어 활동하다 1968년 퇴역한 후 N9464, C-GXKO 등 등록번호 변경도 거치며 온갖 사람들의 손을 거치다 N494TW로 1984년에 최종 등록, 2005년에 대한항공에 기증되어 대한항공 극초기 도장으로 복원된 후 전시중이다. 4개의 엔진 중 #1과 #4는 네델란드의 다른 박물관 소속 컨스텔레이션 시리즈를 위해 떼어주고 모형으로 교체되어 있기 때문에 비행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