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알튀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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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ouis Althusser
1918~ 1990
1970년대를 풍미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제리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고등사범학교 합격 후 바로 징집(…), 포로가 되어 5년간 독일 수용소에서 지냈다. 이후 가스통 바슐라르에게 수교하고 ENS에서 교수 자격 시험 강사 및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동안 자크 데리다를 위시하여 알랭 바디우, 피에르 마슈레,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등 후에 저명한 학자가 될 수많은 제자들을 지도했고, 좌파 학생 그룹들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고, 1970년대 말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 포기 등 당의 노선 전환을 비판했으나 죽을 때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던 1980년 정신 착란으로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하였고 이후 치료를 받다 1990년에 사망하였다.
2. 사상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 고의적으로 그 영향력을 간과해온 상부 구조의 '중층 결정' 개념과 이른바 '이론적 반인본주의'[1] 로써 특유의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독해를 제시하였다. 좌파 정치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이론 등에서 영향이 지대하지만, 정작 본인의 이론과 지향은 초기 구조주의자로서 주로 포스트구조주의 계열의 후배들과는 꽤 상이하다.
2.1. 이데올로기론
우선 이데올로기라는 개념''notion''은 알튀세르의 '''철학적''' 기획의 핵심을, 담론으로서의, 그리고 한 학문 분야로서의 '''철학'''에 대해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을 구성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철학으로 하여금 옳은 자기의식이든 그릇된 자기의식이든 간에 자신의 "자기의식"의 거울을 뚫고 나아가서, 자신의 물질적 가능성의 조건들과 관련해, '''자신이 아닌 것'''의 장, 즉 사회적 실천들의 장 안에, 그렇지만 자신을 폐지하거나 "반영물"로 축소하지는 않고서, 자리잡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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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1996년판 서문〉, 서관모 역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존재에 대한 의식이 아니다. 즉, 그것은 "물질적 존재 조건들"을 (거꾸로이기는 하지만) 반영하고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는"(즉 추상적ㆍ관념적인) 담론들로 번역되는, "사회적 의식 형태"가 아니다.[역주]
이데올로기는 그 속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존재 조건들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상상적으로 사는 의식 및 비의식'''의 형태(인지 및 오인의 형태)이다.--
같은 글, 서관모 역
3. 비판
… 역자 서문에서 한심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갑자기 톰슨(E. P. Thompson)의[2]
눈총이 따가워서다. 일찍이 톰슨은 알튀세르류의 '마르크스주의'를 겨냥하여 1960년대와 70년대 역사 유물론이 입은 상처는 경계가 분명한 부르주아 보수 진영의 공격보다 마르크스보다 훨씬 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선언했던 후방의 '진보 진영'으로부터 당한 기습 공격에서 더 컸다고 말하면서, 제대로 된 진보를 이루려면 이론의 유통 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톰슨의 이 지적은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심지어 '진보 진영'을 교란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론을 유통시킬 때는 상표가 아니라 내용을 보고 유통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변상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3]
, 〈역자 서문: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생각한다〉
[1] 인간 개개인의 성격적 특질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역할과 그 상징체계가 사회의 기능ㆍ모양을 핵심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주의. 반인륜적 사상 일반으로서 반인문주의anti-humanism와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지칭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중시했던 알튀세르의 단면을 잘 드러내는 부분.[역주] 이 "물질적 존재 조건들"과 "사회적 의식 형태들"은 마르크스의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1859)의 용어들이다.[2] 1924~1993, 저작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으로 유명한 영국의 사회주의자. 사회 운동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서 1956년 소련군의 헝가리 혁명 진압에 반대해 탈당했지만 50년대 말 ~ 60년대 초 영국 신좌익의 가장 중심인물이었다. 이후 활발한 저작 활동, 사회 운동을 벌인다. 마르크스가 프루동을 비꼰 저작 "철학의 빈곤"을 오마주해 알튀세르를 비판한 "이론의 빈곤Poverty of Theory"을 썼다.[3] 폴란드 인문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3권 2000쪽이 넘는 대작. 그는 한때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일찍이 스탈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당의 노선에 대해 짤막하지만 통렬했던 비판 '무엇이 사회주의인가?'라는 글을 썼다. 이후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