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
[clearfix]
1. 개요
프랑스의 역사학자 겸 철학자. 과학철학의 창시자[1] 로서, 가장 중요한 현대 철학자 중 한명이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평생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으로, 진정한 엄친아라고도 한다(...)
현재 프랑스 및 유럽 철학의 주된 두 가지 흐름인 현상학과 과학철학 중 과학철학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서, 그의 과학철학은 기존의 실증주의적 과학철학이나 라캉철학식의 소위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철학과는 다르다. 그의 철학은 지금까지 인간이 해 온 '과학'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억압되어왔던 인간의 상상력이 오히려 인류(또는 과학)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특히 인터넷)에서는 라캉철학 등의 등쌀에 밀려 듣보잡 취급 내지는 들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가 프랑스 철학의 선구자인것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단 연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다가 거의 모든 이들이 미학자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
오히려 그의 철학의 일부분을 이용한 것에 불과한 포스트모더니즘 계통의 철학자들만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대표자인 양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것을 프랑스 현대 철학의 주류인 줄 알고 공부한 학생들이 프랑스에 가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생애
프랑스 바르쉬르오브에서 출생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파리의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며 28세 되는 해에 수학 학사 자격증을 독학으로 취득한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제대한 후 35세에 고향 마을 중학교의 물리·화학 교사로 재직한다. 36세에는 역시 독학으로 철학 학사 자격증을 얻고 38세 되는 1922년에는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같은 중학교에서 철학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43세가 되던 해인 1927년에 소르본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해에 디종 대학에서 문과대 교수로 임용되어 철학(과학철학)을 가르치게 된다. 1940년 소르본 대학에 초빙되어 과학사·과학철학을 강의하는 한편 부속 과학기술사연구소장을 지냈으며, 1954년 명예교수가 되었다. 1962년 사망할 때까지 과학철학과 미학(상상력)연구에 대한 많은 업적을 남겼다.
3. 사상
국내에서는 일명 '몽상의 미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미학자 및 시학자, 문학비평가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그는 프랑스 특유의 과학철학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의 초기 저작인 "새로운 과학적 정신" ''Le nouvel esprit scientifique,1934''이나 "과학적 정신의 형성" ''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상은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목격한 그가 새로운 과학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을 모색하게 된 것에서 시작한다. 그의 첫 시도는 미학적 탐구와는 거리가 있는, '과학적이지 않은 사항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철학자로서 그는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과학에서 전혀 잘못되었거나 극히 일부분에서만 인정하고 있는 학설(천동설, 용불용설, 등)들이 소위 '과학적'인 이론으로 신봉되었던 역사에 주목하여, '왜 이렇게 잘못 생각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오류를 빚어내는 원인이 인간 심리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그에 따라 인간의 주관성에 의심을 던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과학적 탐구의 역사에는 현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수많은 오류들이 발견되고 있다. 바슐라르는 이 오류들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그러한 오류를 낳게 되며, 그러한 오류의 교정은 가능한가 하는 화두를 던지게 된다. 그 의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순수 사고'는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그의 입장은 앙리 베르그송 같은 선대 철학자가 주장한 '''시간의 연속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의 저작인 "불의 정신분석" ''La psychanalyse du feu'' 에서 그는 '''인간의 시간이란 비연속적'''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계속적으로 연결되어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이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세계에 대항하여 싸우는 존재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한 대결을 통하여 순간순간 창조해가는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시'''와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의 과학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인 '인식론적 단절'이란 이러한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과학사가 흔히 생각하듯 인간의 지식의 축적에서 그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실증주의의 입장에 반대하여, 과학사에서 나타나는 커다란 혁명들은 불연속적인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기존의 이론들이 발전한 결과로 새로운 과학 정신이 연속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계에는 단절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혀 다른 새 패러다임 안에서 세계를 바라봄으로 다른 과학이 탄생하였다고 보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과학 정신이 이전의 과학 정신을 일정한 조건 안에서만 옳다는 부분적 진리로 포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등장이 이러한 '감싸기'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과학 정신에 포용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또한 과학 지식 자체가 객관적이며 절대적이라는 사항에 반대하여, 소위 객관적인 사실로 믿어지던 과학적 지식에 대해 앞서 설명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 따라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더욱 객관성에 근접한 과학 지식이 탄생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객관성은 목표이지 현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과학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객관성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합리론과 유물론의 통합을 가져왔으며, 인간의 이성이란 존재하지만, 또한 그러한 이성과 만나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도 없다.[2] 하지만 이성 또한 순수한 형태란 없고 항상 대상과 관련을 맺는 능동적인 것이라고 설정하는 응용합리주의의 태도를 세우게 된다.
이러한 과학 정신을 단절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하는 것에 대한 탐구에서, 바슐라르는 인간의 원초적 경험, 친숙한 이미지나 언어의 친숙한 의미, 역사적 상황이나 정서에 뿌리를 둔 확실치 않은 사고 등을 '인식론적 방해물'로 설정한다. 이러한 경향과 태도들에 의해 인간은 오류를 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방해물의 원흉은 '몽상에서 비롯된 시적인 이미지'이다.
이러한 시적인 이미지를 연구함으로써, 그것을 제거한 말 그대로의 '순수한 과학정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겠다는 과정에서 나온 저작이 앞서 언급된 "불의 정신분석" ''La psychanalyse du feu''으로, 인간의 의식 내면에서 과학 정신(합리적인 사고, 또는 사고의 객관성)이 아닌 인간의 주관성을 탐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의식 활동으로서의 상상력의 가치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상상력을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의식 활동의 중요한 면으로 보았으며, 인간 의식의 고유한 자율적 활동으로 보았다. 상상력은 창조적 현실성을 가진 인간 심리의 또 다른 활동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객관성이라는 인간 의식의 한 측면과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행복과의 사이에서 조율하는 중요한 존재로서, 인간의 합리화/객관화/과학화만을 중심으로 달려온 서구의 문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4. 영향
현대 프랑스 철학계의 선구자로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난 수준이다.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 개념은 이후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미셸 푸코 등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 역시도 그의 인식론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있다. 라캉철학에서도 그의 몇 가지 개념을 가져다가 재해석을 하여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상상력에 대한 연구 유산은 질베르 뒤랑에 의해 새롭게 정립되어 상상계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대학생 시절 바슐라르에게 사사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