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1. 개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 규정짓는 추상적이면서도 이념적인 의식의 형태를 가리킨다. 정치경제학적으로는 상부구조의 하나라고 정의된다. 사회학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사회 내의 '상식적' 관념 및 널리 퍼진 신념으로서, 많은 경우 간접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그들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1] 이를 검증하는 행위는 사상검증이라고 한다.
2. 상세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종교적인 교설이나 신조가 가진 위계적이고 독단적인 입장을 사회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만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다원주의적 사회가 형성될 필요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로도,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 되었다. 먼저 부정적인 의미로는 비현실적이며 현실을 왜곡하는 일종의 '허위 의식'이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그릇된 사상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현대에도 통용되는 용법이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가 다른 여러가지 관념들, 사상들, 종교들의 사고를 합리적으로 탐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라는 의미로 쓰인 적이 있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낯선 의미.
현대에 주로 활용되는 용법으로 보자면,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틀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두고도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것이 좋은 태도인지, 이데올로기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태도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프롤레탈리아 이데올로기를 지향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즉 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대로 우익들의 경우에도 자유주의에 맞서 보수적인 스탠스를 적극적으로 지켜내야한다는 입장을 갖기도 했다.
또 탈이데올로기가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도 있다. 한 개인이 이데올로기를 떨쳐내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한 사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냐는 것. 대체로 우파적인 입장에서는 현실의 시장자본주의 체제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을 반영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기반을 둔 스탠스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학, 사회학의 행태주의나 실증주의같은 사조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기술하자는 입장이다. 행태주의나 실증주의는 결국 역사적으로 중첩된 의미나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태도를 지향하게 되며, 이런 입장에서는 이를 '중립적인 태도'로 본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중립적인 것인지, 현실적으로 중립적인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은 주로 좌파적인 입장에서 제기되는데, 행태주의나 실증주의가 스스로 현실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태도 역시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런 태도를 '현상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면, 어떤 사회에서 상류층들의 고기 소비 비중이 중하류층의 고기 소비 비중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자. 이에 대해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태도는 '부자는 잘 사니까 당연히 고기 많이 먹어도 된다'라는 입장과 '빈부에 따라 고기 소비량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는 입장 모두를 배제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관찰자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이 관찰결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현실을 용인하는 전자의 입장의 손을 들어주는 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그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이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긴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실제로 잠재되어 있는 내용은 많이 다른 경우도 있다. 자기들이 스스로도 왜 그러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나치즘 같은 경우는 '독일민족의 재생과 영광'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러한 목적이 이면적으로 불안하고 분열된 국민들을 통합하고, 개인적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국민들의 역량을 짜내어 먹는 역할만 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이면적인 본 목적은 이데올로기 집단 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각하기도 어렵고, 외부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많은 논쟁이 생기게 된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는 탈이데올로기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주장하였다.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사고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부터 <<독일 이데올로기>>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적인 과정에서만 이데올로기의 형성 원인을 구한 데 반해, 사회의 가지각색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발견해 낸 것이다. 알튀세에 의하면, 인간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세계와 관계하는 이상, 이데올로기의 존재는 불가결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의식과 관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함으로써 발생하는 상상적인 표상이자 그 상상적 표상을 형성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개인(주체)을 형성해내는 사회구조 그 자체도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알튀세에 의하면, 이데올로기 장치는 개인(주체)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기능하는 사회 공간 그 자체이다."[2] 즉 단순하게 억압적인 법과 정치제도 등의 국가장치나 프로파간다 매체 등 직접적으로 개인의 사상에 개입하는 사회요소들 뿐만아니라,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제도들(학교, 종교단체, 매스미디어, 각종 조합 등)이 모두 이데올로기 장치이며 개인은 이런 제도 속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스스로에게 이데올로기를 각인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자신들의 목적이 있고 그것을 자각한다고 믿는 경우,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사람들 혹은 집단들은 이데올로기적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방법론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물론 그 이데올로기 안에 결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실현할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적지만, 그 이후의 이데올로그들이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여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등등의 하부적인 이데올로기를 새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 이러한 이데올로기 집단 내에 속한 사람들을 결속하기 위해 독특한 상징이나 의식, 제도 등이 마련되기도 한다. 소련의 낫과 망치,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등등의 상징도 그러한 역할을 한다.
또 제도나 의식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군국주의 사회에서 군인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단체에서 군대식 계급을 적용하고 그에 의한 차별적 대우를 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의미일 수 있다.
지식인에게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3. 이데올로기 개념의 형성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20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서양에서 산업 혁명 이후의 사회적, 정치적, 이론적 격변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철학사적으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우상론을 이데올로기 개념의 출발점으로 평가하곤 한다. 베이컨 본인이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주장하는 4대 우상은 자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가로막는 편견이나 장애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 개념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드 트라시라는 사람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다. 드 트라시는 이데올로기를 종교나 형이상학적 선입견에서 벗어나서 관념들의 기원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라고 보았고, 이러한 연구가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즉 '형이상학'에 대비되는 과학이론으로서의 '관념학'이라는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뉘앙스를 띤 개념이었다.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개념이 된 것은 칼 마르크스의 영향이 크다. [3] 마르크스는 먼저 자기 이전의 독일 사회주의를 이데올로기라 비판했다. (아예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의 부제가 '포이어바흐, 바우어, 슈티르너에 의해서 대표되는 근대 독일 철학과 다양한 예언자들이 포함된 독일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공상적 사회주의는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는 관념론적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이데올로기 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의 용법에서 '이데올로기'란 관념론적 사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관점과 대비되는 관념론적 관점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했다. 힘 있는 집단은 사회 내에서 통용되는 지배적 관념을 통제할 수 있으며, 자신의 특권적 위치를 정당화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대에서 지배적 관념은 지배계급을 지지하는 관념이다. 이데올로기는 평등의 장애물인 것이다. 그 덕에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울 것인지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진 허위와 왜곡을 폭로함으로써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자 했다는 것. 마르크스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반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설명했는데, 이렇게 보면 부르주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프롤레탈리아의 저항 이데올로기도 존재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아예 '자의적인 이데올로기'와 '역사와 유기적인 이데올로기'를 구분했는데, 자의적인 이데올로기는 곧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뜻하고, 역사와 유기적인 이데올로기는 대중 조직의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했다.
1,2차 세계대전 즈음에는 비합리적이고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었던 제국주의,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스탈린주의 등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유행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독일의 비판 이론이 있겠다. 독일 출신 유태인이었던 한나 아렌트 역시도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여러 저서에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분석했다.
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실상 세계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서게 된다. 이는 세계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리적 이해관계가 아닌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세계가 분열되고 또 끼리끼리 뭉쳤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유일하고 예외적인 상황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냉전 시기에는 자유 진영의 우방국인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상관없이 이데올로기상 우방국인 남한에게 경제적인 원조를 제공해 온 것이 이 때문.
1990년대에 이르러 사실상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하게 되면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화두가 되게 된다. 대표적으로 프란시스 후쿠야마, 다니엘 벨 등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공산주의가 몰락했다고 이데올로기 전체가 끝장났다고 보는 건 무리라는 주장도 많다.[4]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는 개요에 서술해 놓은 이데올로기장치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면서 이데올로기가 단순히 한 시대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확실히 하였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의 결과로 어떤 형식으로든 전 세계의 제도와 미디어를 접하며 살아가게 되었으므로 전보다 더 자주, 사실 거의 매 순간 이데올로기를 접하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며 살아간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4. 종류
4.1. 철학·지식 분야
4.2. 정치·경제 분야
4.2.1. 좌익 이데올로기
4.2.2. 중도적 이데올로기
4.2.3. 우익 이데올로기
- 자유주의 계열
- 우파적 자유지상주의 계열
- 신-고전적 자유주의
- 신자유지상주의
- 고자유지상주의
-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
- 재산주의(propertarianism)
- 최소국가주의(minimal statism)
-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 (핑크 자본주의)
- 호페주의
- 보수주의 계열
- 우익대중주의
- 종교 이데올로기[20]
- 파시즘[21]
4.2.4. 그외 이데올로기
좌우 모두와 결합되곤 한다.
- 개인주의
-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 자유주의
- 경찰국가주의
- 군국주의
- 계몽주의
- 공화주의
- 공동체주의
- 국가주의
- 권위주의
- 극단주의
- 급진주의
- 영웅주의
- 내셔널리즘
- 탈민족주의
- 민주주의
- 자본주의
- 반전주의
- 농본주의
- 법치주의
- 엄벌주의
- 북한의 이데올로기
- 분리주의
- 봉건주의
- 사대주의
- 소중화
- 사회계약설
- 사회유기체설
- 세계주의
- 전제군주정
- 입헌군주정
- 정치적 무관심
- 전체주의
- 전체주의적 우익이념
- 전체주의적 좌익이념
- 패권주의
- 포퓰리즘
- 편의주의
- 제3의 로마
- 제3의 위치[23]
- 제3의 길[24]
- 혼합정치
- 무정부주의적 원시주의
- 조지주의
- 녹색정치
- 인종우월주의
4.3. 사회·문화 분야
4.4. 종교 분야
마르크스식으로 이야기하면 종교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다.
- 급진적 신권정치
- 신권군주정
4.5. 창작물 속의 이데올로기
- 기동전사 건담 - 지온 줌 다이쿤의 엘레즘 지오니즘
- 기동전사 건담 F91 - 코스모 바빌로니아 제국의 귀족주의
- 피를 마시는 새 - 타이모의 분리주의(피를 마시는 새)
5. 역사
6. 어록
"독일 관념론은 다른 민족들의 이데올로기와 특별한 차이점이 없다. 또한 이것은 세계를 이념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념과 개념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원리로 간주하며, 특정한 사상들을 철학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물질적 세계의 신비로 간주한다."
사람들은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고서 경멸하는 나머지 대중에게 그것을 강요하고자 한다.
7. 각종 오해와 통념들
- 민주주의는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반대말이다.
-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 권위주의, 독재다. 다만 의외로 '민주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라는 법칙이 널리 통용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00년대 이후 민주주의&자본주의 세력과 독재&사회주의 세력이 서로 치열하게 맞붙어 가히 화약고처럼 불안한 시대였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등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국민들의 주권이 크게 상승하자 이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자본주의 세력과 독재&사회주의 세력이 서로 치열하게 맞붙는 화약고에 속한 나라들인 구 독일(서독, 동독 시절), 구 일본(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절), 남한, 북한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친민&반공 내지는 반민&친공과 같은 사상싸움에 강제로 휘말리게 되다보니 그러한 것도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민주주의는 무조건 좋고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쁘다!"라고 주장하는 연세 지긋하신 노인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노인분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신 분들이고 학교와 군대에서 교육을 받으셨을 때 친민&반공 교육으로 인해 세뇌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지금 학교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친민&반공 교육으로 학생들을 대놓고 세뇌시키지는 않지만, 군대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친민&반공 교육으로 장병들을 세뇌시키기도 한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자신이 병사로써 정훈교육을 받다 보면 '민주주의의 좋은 점과 공산주의의 나쁜 점'을 설명하는 정훈장교들도 많이 존재하며, 정훈장교들이 국방부와 병무청에서 제공받은 각종 자료들을 보여주며 교육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애초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 체제다. 민주주의의 반대를 공산주의/사회주의라 하는 건 남자와 여자의 반대말은 빨간색/분홍색과 파란색이라는 수준의 헛소리다. 실제로 북유럽에서는 사회 민주주의가 대세고 우리나라에도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있다. 뭐 같은 사민주의라고 해도 마르크스주의는 독재로 빠질 위험이 높고, 실제로도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그렇게 되긴 했지만.
- 지지리 못 먹고 못 사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념보다는 당장 입에 들어갈 밥을 더 갈구한다. 즉 당장 배고파 굶어죽을 것처럼 사회가 경제적으로 침체되어 있거나 개발이 안 되어 있을 경우 "나랏님이 누가 되든, 독재를 하든 무슨 상관이냐, 당장 일자리 만들고 경제 일으키면 장땡이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인식. 또는, 민주화를 먼저 달성하게 되면 국론이 분열되어 국가주도적, 집약적 경제성장이 어려워지게 된다.
-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그런 인식으로는 쉽게 설명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4.19 혁명과 새마을운동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시기상 먼저의 일인지 생각해 보자.
- 후자의 경우 흔히 "민주화와 산업화는 상충관계에 있다."고 알려진 주장으로, 생각보다 의견이 분분한 사안이다. 일단 이에 동의하는 쪽에서는 앨빈 토플러도 있고 리콴유 역시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유교 문화가 자본주의라면 몰라도 민주주의와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울 거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반면 김대중의 경우 "이러한 논리가 경제발전의 이면에서 모순을 축적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시 리콴유를 정면으로 반박한 적도 있다.
-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미묘한 사안으로, 어느 특정 주장이 옳다고 고정관념을 갖기보다는 다른 각도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더 건설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셰보르스키(A.Przeworski)[25] 와 리몽기(F.Limongi)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발전에 성공하면 민주주의가 잘 붕괴하지 않지만, 경제발전이 너무 지체되거나 어떤 '벽' 을 넘지 못하면 붕괴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배로(R.J.Barro)는 "초기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를 신장하여 투자를 증진, 경제성장을 촉진시키지만, 이행과정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견들로 인해 성장동력이 저해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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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편견이라기보다는 좋게 말해서 오보… 개인의 건강과 체격을 가지고 섣불리 정치성향과 상관관계를 만들면서 발생한 편견. 좌파를 두고 백면서생에 여리여리한 체격의 안경 쓴 샌님(?)처럼 생각하거나, 우파들은 스포츠를 즐기며 적극적이고 활달하며 자신감 넘치는 호방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그 어떤 유의한 상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 단, 해당 문서에서도 설명되듯이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약간 복잡한 설명이 가능하다. 뚱뚱하게 찐 진보주의자는 빼빼하게 마른 진보주의자보다 더 강경하게 자신의 이념을 주장하고, 뚱뚱하게 찐 보수주의자도 빼빼하게 마른 보수주의자보다 더 강경하게 더 자신의 이념을 주장한다. 진화론에 입각할 경우, 이는 개인의 신체적 특성이 정치적 판단을 관철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수렵채집 시절의 원시 인류의 특성이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전부 친일반민족행위자다.
- 해방 이후 일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정권이나 기득권을 장악하면서 보수를 참칭하고 있어서 그렇지, 정작 제대로 된 정통 보수 성향 사람들은 일본 제국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좌파라고 친일파의 후예가 없지도 않고. 다만, 보수우파가 모두 국가주의자인 것은 아니지만, 보수주의와 국가주의는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보수는 기본적으로 자국민을 걱정하고 자신을 희생해서 지키려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가진다. 진보주의나 보수주의나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것에 따라 성향이 다 천차만별인데 김영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반일주의자이다. 오히려 대한민국 역대 정부실제로도 김영삼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전히 철거함으로서 민족 정기를 되살리는 데에 노력했고 일본에 대한 극렬한 적대감을 표명했다. 오히려 다음 진보 정부인 국민의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 같은 대일 협력을 더 중요시했다. 다만 일본 제국을 비판하지만 현 일본 정권에는 경제,군사적으로 중국,북한 견제를 위해 일본에 협력적인 성향도 많다.
또한, 진보 정당의 정치인들 역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심상정- 북한 고립의 길김종대- 북한 함정 격파김종철 - 북한은 사태 악화시키는 행동 중단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화 정책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그렇다고 대화를 주장하는 측 전체를 종북주의자로 몰아가선 안 될 것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 정교분리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근거를 제공한다.
- 이 자체로는 맞는 말이지만, 정교분리는 여기에 더하여 거꾸로 "정치가 종교처럼 변질되는 상태" 도 막아야 하는 헌법학적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반례는 바로 호치민의 베트남민주공화국. 공산주의자였으되 민족주의에도 호의적이었고 이념과 명분을 배제한 실용주의적이기도 해서 종교의 자유뿐만 아니라 사적 소유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 중도주의는 무조건 온건하며 폭력을 쓰지 않는다.
- '느린 소도 성낼 수 있다'란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 좌/우파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
- 국가가 "망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국가가 행정력과 통치력을 잃는 것은 굉장히 복합적인 내외부의 문제가 상호작용하며 발생한다. 좌파가 득세해서, 우파가 득세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망할 만한 나라라서 망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며, 삶의 기본적 여건이 저하되었다고 여기면 반대 성향의 정당에도 표를 주기 때문에 특정 정치세력의 득세로 인해 국가가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가 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 사실 이때의 "망한다."는 말은 "내가 지지하지 않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우리나라의 정통성과 적법성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극단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다. 망한다 망한다 하지만, 그러는 한편으로는 그들도 하루하루의 삶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국가의 행정력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면 나라가 망한다.
- 사상의 자유를 제한해서 그 나라가 얻을 것은 전체주의적인 독재 권력뿐이다. 나와 너의 "생각과 가치의 다름" 은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수용할 인식론적 여력이 없는 사람들의 심리적 편안함에나 위협이 될 뿐이다.[27] 생각과 가치의 다양성이 유발하는 끊임없는 논쟁과 비판의식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한다. 적어도 정치에 있어서는,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보다는, 어떤 하나의 미친 사공이 다른 모든 반대하는 사공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배를 산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논쟁이 있으면 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10노트씩 나아가겠지만, 논쟁이 없으면 배가 제 아무리 50노트로 신나게 달려도 그 목적지가 산꼭대기인 이상에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
8. 유명한 이데올로기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기도 다카요시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 베니토 무솔리니
- 블라디미르 레닌
- 사카모토 료마
- 아돌프 히틀러
-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 요시다 쇼인
- 장 자크 루소
- 존 로크
- 체 게바라
- 카를 마르크스
- 토머스 제퍼슨
- 토머스 홉스
- 플라톤
- 호찌민
- 후쿠자와 유키치
[1] 만약 이 의식의 형태를 거부할 경우 사상범으로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2]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발리스 듀스 지음, 개마고원 출판, p.191 중[3] 마르크스 이전에 나폴레옹도 이데올로기를 '안개 속의 형이상학'이라고 비판하긴 했다. 역사적이거나 합리적 지식에 근거해서 정의나 법을 세우는 대신 비현실적이고 애매한 개념으로 정의나 법을 세우려는 게 이데올로기라면서 말이다.[4] 일단 저런 주장자체는 헤겔의 철학에서 비롯된 사고방식 때문이다. 헤겔은 정신이 모순에 직면하게 되면, 모순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세계가 움직이는데, 그러한 움직임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5] Critical liberalism.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관짓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6] 모든 지공주의가 이 부분은 아니다.[7] 아래의 무정부주의와 좌파공산주의도 들어간다.[8] 자유시장 아나키즘이라고도 한다. 중공이 주장하는 국가자본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9] 실질적으로 남미에서 운영된 것은 좌익 포퓰리즘 독재에 가깝기에, 민주사회주의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사회민주주의보다 왼쪽은 맞다.[10] 한국에서는 민주당 계열에서는 주로 중도개혁주의로 보수당 계열에서는 주로 중도실용주의로 많이 불렸다. 한편으로는 무이념으로 보일만큼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 그때 정책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이념이다. 이 때문에 이념적 지향성이 약하며 좌우익을 떠나 중도 회색지대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부정하는 이념이다.[11] 현대 국가들이 절대다수가 군주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정치적 이념으로서 의미를 잃어갔지만 Neo-republicanism이라는 이름의 현대적인 공화주의 조류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공화국 건설에 집중한 고전적 공화주의를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차별화된 이념을 만들어냈다. 현재 공화주의 문서에는 이런 신공화주의적인 사상과 고전적 공화주의적인 사상이 혼재되어있다.[12] 보통은 중도~중도좌파로 분류되지만 유럽권의 사회자유주의 정당들 중에서는 보수자유주의/자유보수주의/기독교민주주의와 동시 표방의 경우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예시: 자유당(스웨덴), 핀란드 국민연합당, 프랑스 민주운동 등)[13] 대체적으론 중도~중도우파로 분류된다.[14] 이러한 종교적 민주주의 이념의 경우 많은 경우 중도우파나 우파로 분류되지만 기독교 사회주의 성향을 보이는 네덜란드의 기독교연합당과 기독민주애원당, 노르웨이의 기독교민주당, (공산당과도 연정했었던)이탈리아의 기독교민주당, 파키스틴 정의운동, 인문성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일본의 공명당 같이 온건한 형태의 종교적 사회주의 + 온건한 형태의 사회적 보수주의가 결합한 중도, 중도~중도우파 정당도 존재한다.[15] 초기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 일부는 사회자유주의자나 진보주의자로 이동했고, 남은 자들은 대부분 자유보수주의 계열이다.[16] 경제적 자유주의 사상의 한 분파로서 사회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좌경화되던 자유주의 이념에 제동을 걸었던 상징적 이념이다. 시장경제의 자유시장화를 주장하면서 경제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다만 정부축소에 큰 부분을 할애했다. 신보수주의와 자주 헷갈려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에 중점을 둔 사상으로, 사회문화적으로도 자유주의를 추구하면 제3의 길이 될 수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주의를 추구하면 신보수주의가 된다. 또한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자체는 평균적으로 중도우파 정도지만 받아들이는 범위는 중도좌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다.[17] 보통 우파가 주장하긴 하지만, 좌파 자유방임주의도 있다.[18] 주류는 우파지만 중도나 일부 중도좌파도 받아들인다. 보통 중도우파나 우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전체주의 성향의 극우는 전체주의 성향의 극좌처럼 국가자본주의적인 경제를 추구한다.[19] 일국주의 또는 토리 민주주의라고도 부른다.[20] 종교적 이념은 보통 우파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종교사회주의나 기독교 좌파같이 좌파의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21] 전체주의 정치체제와 극우는 동의어가 아니다. 전체주의는 극좌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 전체주의적 좌익이념을 비난할 때 좌파 파시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비방을 위한 조어로써 많이 사용된다. 파시즘을 학술적으로도 극우의 이데올로기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22] 가부장적 보수주의[23] 극우를 베이스로 극좌 첨가[24] 중도좌파를 베이스로 중도우파 첨가[25] 제도적 민주주의 달성 이후 민주주의의 이행 및 공고화에 있어서의 권위자로, 우리나라의 유명한 정치학자 최장집이 바로 이 사람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26] 이런 식의 오해는 자본론을 저술한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였던 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 즉, '공산주의자니까 공산주의에 대한 책만 쓰겠지.' 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소리. 물론 자본론 자체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마지막에 '그래서 모든 것은 공산주의로 귀결된다.'는 식에 다소 기승전병스러운 식의 결론을 내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카를 마르크스 본인도 나중에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는 식으로 결론을 수정한 본을 내놓으려고 했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27] 실제로 사회심리학계에는 "너는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는 간단한 사실 자체를 도저히 심리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굴러가는 획일화된 사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