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데니언 톰린슨

 



'''로스앤젤레스 차저스 No. 21[1]'''
'''이름'''
'''르데이니언 트라메인 톰린슨
(LaDainian Tramayne Tomlinson)'''
'''생년월일'''
1979년 6월 23일
'''국적'''
미국
'''출신지'''
텍사스 주 로즈버드
'''신체'''
178cm, 98kg
'''포지션'''
러닝백
'''출신대학'''
TCU
'''프로입단'''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위
샌디에이고 차저스 지명
'''소속팀'''
'''샌디에이고 차저스 (2001~2009)'''
뉴욕 제츠 (2010~2011)
'''수상 경력'''
'''NFL Most Valuable Player (2006)
NFL Offensive Player of the Year (2006)
Walter Payton NFL Man of the Year (2006)'''
3× First-team All-Pro (2004, 2006, 2007)
3× Second-team All-Pro (2002, 2003, 2005)
5× Pro Bowl (2002, 2004–2007)
Bert Bell Award (2006)
2× NFL rushing yards leader (2006, 2007)
3× NFL rushing touchdowns leader (2004, 2006, 2007)
NFL 2000s All-Decade Team

1. 개요
2. 커리어


1. 개요


샌디에이고 차저스, 뉴욕 제츠에서 뛰었던 러닝백.
등번호 21번에, 현란한 플레이, 상징인 블랙 아이실드로 유명했던 선수이며, '''NFL 역사상 최고의 러닝백을 꼽을때 아드리안 피터슨과 함께 21세기를 대표할 러닝백 후보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플레이 스타일은 마샬 포크를 잇는 21세기형 만능 러닝백. 패스캐치에도 능숙해 다방면에 활용 가능하며 전술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오픈 필드에서의 폭발력이 강력해 공을 잡기만 해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21세기형 스캣백의 표준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로지 파워러싱과 내구성으로 다른 단점을 덮었던 아드리안 피터슨과는 다른 유형이다.

2. 커리어


1979년 6월 텍사스에서 태어나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4년간 선수생활을 하며 입지를 굳혔다. 특히 마지막 시즌에는 무려 2,158 러싱야드에 22개 터치타운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NCAA의 최고의 러닝백에게 수여하는 독 워커 상(Doak Walker Award)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에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되었다. 당시 샌디에이고는 원래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을 쥐고 있었는데[2], 애틀랜타 팰컨스와 트레이드를 감행하여[3] 얻은 전체 5번 픽을 톰린슨을 지명하는 데 썼다.[4] 그렇게 당해 드래프트 최대어 쿼터백인 마이클 빅을 홈타운 팀인 팰컨스의 강력한 요청으로 포기하고 1번픽을 넘긴 차저스는 심각한 문제아 라이언 리프를 쫓아낸뒤 여전히 짐 하보(현 미시간 대학교 헤드코치),모제스 모레노등 백업 쿼터백등으로 굴리던 쿼터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톰린슨 다음의 2라운드 지명권으로 당시 쿼터백 유망주 랭킹 2위였던 퍼듀대학교 출신 키 작은 쿼터백을 지명하는데 그 선수가 드류 브리스이다.
톰린슨은 입단 즉시 차저스의 주전 러닝백으로 기용되어, 프로 첫 7시즌동안 매년 1,200야드 이상 러싱에 패스 50개 이상을 받아내는 등 무시무시한 공격 스탯을 찍으며 리그 최고 공격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06년 시즌에는 '''4경기 동안 터치다운 14개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공격력을 과시하며 샌디에이고의 14승 2패 시즌을 견인했으며[5][6], 그 공적을 인정받아 리그 MVP, 시즌 최우수 공격수 상, 리그 올프로 1진, 월터 페이튼 상 등 공격수가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2007년 시즌 플레이오프 도중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입은 걸 기점으로 해서, 점점 들어가는 나이와 맞물려 기량의 저하를 피할 수는 없어 2008년 시즌에는 처음으로 1,200야드에 못미치는 러싱야드를 기록하더니(1,110 야드), 그 다음 해에는 730야드로까지 러싱야드가 떨어져버렸다. 러싱보다는 필립 리버스를 앞세운 패싱 위주의 전술을 펼치고자 한 차저스 수뇌부는 이 때문에 톰린슨이 몸값만한 가치를 하지 못하리라고 판단, 결국 그를 방출했다. FA로 풀린 톰린슨은 2010, 2011년 두 시즌 동안 뉴욕 제츠와 계약하여 제츠가 2010년에 AFC 챔피언십에 오를 수 있도록 공헌했다.
제츠와의 2년 계약이 만료된 2012년, 톰린슨은 11년 커리어를 매듭짓고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당시 역대 러싱야드 5위, 러싱 터치다운 수 2위, 총 터치다운 수[7] 3위라는 대단한 경력을 남겼다. 그간의 노고를 인정하여 샌디에이고는 톰린슨의 등번호 2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은퇴 5년 뒤인 2017년에는 자격을 얻은 첫 해에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NFL 전설로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여담으로 변칙 플레이에서 패스를 하게 시키면 기가 막히게 잘 던지는 것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커리어에서 패싱 터치다운을 총 7개 기록했으며 커리어 패싱 점수가 무려 154.4점[8]이다.
[1] 차저스의 영구결번[2] NFL 희대의 드래프트 버스트인 1998년 전체 2번 픽인 QB 라이언 리프(즉 명 쿼터백 페이튼 매닝 바로 다음 순번으로 지명된 양반이다. 해서 더욱 대조되어 끔찍함이 돋보인다)의 대삽질이 전체 1번 픽을 받는 데 공헌했다. 톰린슨이 지명될 때 리프는 이미 진작에 팀에서 방출된 뒤였다.[3] 전체 1번 픽을 팰컨스에 주는 대신, 팰컨스의 전체 5번 픽과 전체 67번 픽, 다음 해 드래프트의 2라운드 픽, 그리고 와이드 리시버 한 명을 받아오는 대형 트레이드였다.[4] 한편, 차저스의 전체 1번 픽을 쥐게 된 팰컨스는 이를 쿼터백 마이클 빅을 지명하는 데 썼다. 간혹 '르데니언 톰린슨과 마이클 빅은 서로 트레이드되어 각자의 소속팀을 간 것이다'라는 말이 나올 경우가 있는데, 내막인즉 두 선수가 서로 직접 트레이드된 게 아니라 두 팀 간의 드래프트 픽 트레이드가 일어난 것.[5] 이 한 해 동안 톰린슨이 기록한 러싱 터치다운은 무려 '''28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 하면, 그 이후 러싱 터치다운 20개를 기록한 선수도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6] 다만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서는 첫 경기에서 톰 브래디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석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해당 경기에서도 톰린슨은 123 러싱야드, 64 리시빙야드, 터치다운 2개 등 괴물같은 스탯을 찍었으나 역부족이었다.[7] 러싱과 리시빙을 합친 수 의미. 즉, 패싱은 제외.[8] 만점은 158.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