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빅
1. 개요
인생이 거의 소설과도 같은 천재 흑인 왼손잡이 쿼터백. 버지니아 주 뉴포트뉴스의 슬럼가에서 미혼모의 4남매중 둘째로 태어나 주변에 마약상, 강도들이 즐비한 환경에서 운동선수로 성공해 NFL에서 가장 유명하고 돈 많이 받는 쿼터백의 입지까지 올랐다가, 한순간에 범죄자의 나락으로 떨어진뒤 재기에 성공한 선수이다.
2. 커리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장하던 과거가 있었는데 교내 풋볼코치였던 토니 래먼 선생님과 학교폐쇄로 워익 하이스쿨[1] 로 옮겨 졸업한 뒤, 1998년 버지니아 공대에 쿼터백으로 입학해 맹활약을 펼쳤다. 그 뒤 200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픽으로 애틀랜타 팰컨스에 입단하여, 주전 쿼터백으로서 넘사벽의 아름다운 플레이로 돈방석에 앉는다. 당시의 플레이는 TV 광고로도 쓰였으며, 보노라면 저것이 인간의 플레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특히나 쿼터백이지만 러닝백처럼 보이는 러싱 플레이는, 예전의 랜달 커닝햄 같은 그냥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NBA 선수의 화려한 드리블을 보는듯한 플레이[2] 로 하이라이트 필름을 양산했다. 이를 토대로 러닝백 부럽지 않은 러싱야드를 매시즌 찍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전설적인 쿼터백으로 될 수도 '''있었으나'''...
지나치게 그의 발재간에만 의존하는 공격때문에 그의 퍼포먼스에 따라 팀 성적이 오르락내리락 했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대 수비의 거친 태클로 인한 부상, 이로 인한 경기 결장[3] 및 성적 부진으로 점차 팀에서도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거기다가 사생활도 문제가 많아서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키다가 결정적으로 2007년 개싸움 도박집단에 가세, 투견장을 제공하는등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걸려서 NFL 자격정지는 물론 징역 1년의 실형을 최종 판결받으면서 감옥행.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냥 투견에 돈을 건 수준이 아니라 집에서 투견판을 벌이고 직접 개를 키우기까지 했다!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쳤을때 여러마리의 학대된 핏불들이 발견되고 뒷마당에서는 싸움에 져서 죽은 핏불 시체들이 발견되었다고. 미디어 노출이 엄청난 NFL 쿼터백의 특성상 각종 매체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저 짤방마냥 완전히 인간말종으로 전락할 뻔했지만, 감옥에서 형기를 채우고 나와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원 소속팀 애틀랜타 팰컨스 대신 NFC를 대표하는 명 헤드코치 앤디 리드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이글스에 입단해서, 듀얼 스렛 쿼터백을 다루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앤디 리드의 전술적 지도와 본인 스스로의 재기 노력이 받쳐진 결과로 NFL 쿼터백 레이팅 전체 4위를 포함해서 개인 시즌 기록을 전부 갈아치우며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2년 이후부터는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와 느려진 발로 인해 이전만큼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패스 기술과 팀 지휘능력에선 처음부터 발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점점 실력이 내려앉고 있으며, 결국 2013년 시즌 중반부터는 닉 폴스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2014년 3월 21일. 뉴욕 제츠와 1년 5m에 계약을 한다. 지노 스미스의 사수역할을 맡을걸로 본다. 리그초반에는 지노 스미스의 백업역할로 나오긴했지만 8라운드서부터는 지노 스미스가 워낙 삽질을 많이해서 주전으로 나오고있다. 그러나 빅도 그닥 좋은활약을 하는건 아니라서 언제든지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는셈. 분발이 요구된다
2014년 11월 9일 일요일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경기서 통산 6,000 러싱야드를 돌파한다. NFL 쿼터백 포지션에서는 최초의 기록. 아울러 터치다운패스도 2개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공헌하면서 연패를 끝낸다. 그러나 바로 다음경기에서 부진하며 다시 지노 스미스한테 주전 쿼터백자리를 넘긴다... 그리고 시즌 종료뒤 당연히 재계약은 없었고, 한동안 팀도 못찾고 이적 루머도 안나온지라 이대로 은퇴하는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1년 계약을 하며 선수생활을 이어간다. 당연히 주전은 벤 로슬리스버거인지라 그냥 후보 쿼터백으로써 경기 막판 가비지타임이나 와일드캣 전술상황에서 볼듯했는데.. 벤 로슬리스버거가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기회를 잡게된다. 주전으로 나온 첫경기에서는 졌고, 특기인 러싱도 많이 막히긴 했는데 의외로 패스는 괜찮게했다.[4] 하지만 이후에도 한번 경기를 말아먹자마자 교체를 당했고 백업의 백업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2015년 시즌 후 계약 종료 후 팀은 재계약하지 않았다.
쿼터백으로서 패스 능력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은 편. 11시즌 통산 128경기(109경기 선발출장)를 뛰는 동안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이글스 시절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1경기 평균 200야드 이상을 던진 적이 없으며, 통산 터치다운패스도 128개밖에 안 되는 밋밋한 성적이다. 일반적으로 리그 정상급 쿼터백이라 하면 대략 3,000+ 패싱야드, 60퍼센트 이상의 패스-컴플리션, 그리고 90+ 패서레이팅을 기준으로 들 수 있는데 빅이 이를 달성한 시즌은 단 한번에 불과하고, 관대하게 봐줘도 두 시즌 정도이다.[5] 그러나 통산 6,109 러싱야드와 36 러싱 터치다운이라는 돌파력으로 이를 상쇄한다. 2006년의 경우 웬만한 팀의 주전 러닝백도 쉽게 못하는 1,000+ 야드 러싱(1,039 야드)을 기록했다.[6] 순수한 듀얼 스렛 쿼터백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듀얼 스렛 쿼터백이 NFL에서 뛸 경우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마이클 빅이라고 할 수 있다.[7] 그러나 애틀랜타 팰컨스 시절의 화려한 활약도 이제 이 선수의 등장으로 잊혀져가는 분위기. 아마 이대로 선수생활을 끝낼 듯 싶다. 그리고 2015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6년에는 무적 자유계약선수 상태에 있다가 2017년에 공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7년 8월 FOX Sports의 NFL 애널리스트로 출연했다. 현재 2019년에 출범할 AAF 팀 애틀랜타 레전즈의 오펜시브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3. 연도별 기록
[1] 참고로 동생인 마커스 빅 선수도 여기를 졸업했다.[2] 한마디로 前 NBA 스타 앨런 아이버슨의 현란한 드리블 돌파를 그대로 미식축구로 옮겨놓은 듯한 플레이. 아이버슨 역시 고등학교때는 빅처럼 미식축구 쿼터백 겸업을 하였다.[3] 쿼터백 항목에도 나오지만, 쿼터백은 팀의 공격을 통째로 책임지는 동시에, 나아가 공수 균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수라서 다쳐서 못 나오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된다.[4] 짧은패스 위주라서 아직은 판단금물이라는 평가도 있다.[5] 단 이 당시 팰컨스 리시버진이 타 팀에 비해 딸렸다는걸 감안해야한다. 괜히 빅이 있을때 리그 전체서 문제아 취급받던 터렐 오웬스, 랜디 모스를 영입하겠다고 난리친게 아니었고, 이것은 이글스 들어와서야 드션 잭슨, 제레미 맥클린으로 갈증을 풀게된다.[6] 이 기록은 뉴튼도 못세운 기록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 뒤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어떤 새롭게 뜨는 샛별이 1000+ 야드 러싱 신기록(1,206 야드)을 세웠다.[7] 이후 마이클 빅의 계보를 이은 러싱 위주의 듀얼 스렛 쿼터백으로는 캠 뉴튼, 라마 잭슨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2015년과 2019년 리그 MVP를 수상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