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피터슨
1. 개요
NFL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러닝백으로, '''21세기 최고의 러닝백'''이자 데뷔와 전성기를 보냈던 미네소타 바이킹스시대에는 의문의 여지 없이 NFL의 모든 러닝백 중에서 가장 최고의 실력을 보였던 선수다. 덧붙여 러닝백으로 MVP도 차지해 본 선수.[1][2]
2. 고등학교
텍사스 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그는 팔레스타인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농구, 육상 등 다양한 종목에서 활약했다. 그 중 미식축구에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냈는데 11학년때부터 대학미식축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졸업반(12학년)때는 상대팀 선수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는 등 기량이 절정에 달했다. 고졸 선수의 NFL 직행[3] 을 허용해야 하는지 논쟁이 붙었을 때 프로 입단에 가장 가까운 기량의 선수로 모두들 피터슨을 지목했다.
3. 대학교
전문가들로부터 별 다섯개를 받으며 일찌감찌 주목받은 그는 텍사스, 텍사스 A&M, UCLA, 아칸소, 마이애미(플로리다) 등의 학교로부터 입학 요청을 받았고 내셔널 챔프전에 나갈 수 있는 전력인 USC, 오클라호마로 눈을 돌렸다.
오클라호마를 택한 그는 1학년 때 NCAA 1학년 한 시즌 러싱야드(1925) 및 캐리(339) 기록을 경신했고 하이즈먼 트로피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2위로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1학년 정규시즌을 12승 무패로 마치고 2005년 USC와의 내셔널 챔피언전[4] 에 진출했으나 상대 수비진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당하며 19-55로 완패했다.
2학년이 된 그는 발 골절상으로 시즌 초반을 날려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약했으나 팀은 1999년 이후 최저 성적인 8승 4패에 그쳤다.
3학년 때는 시즌 말미에 쇄골 골절상을 당하며 학교 통산 최다 러싱 기록(4,245야드)에 단 73야드 모자란 채 시즌을 마쳤고 보이시 주립대와의 Fiesta Bowl에서 극적인 연장전 패배를 당했다. 피터슨은 4학년을 다니는 대신 NFL 진출을 선언한다.
4. 프로경력
고등학교, 대학교(Big-12) 무대를 전부 평정하고 프로에 입성한 피터슨은 루키시즌부터 한 경기 최다 러싱기록[5] 도 갈아치우는 등 불과 데뷔 몇 주 만에 리그 정상급 러닝백으로 자리잡는다. 당연히 공격부문 신인상은 그의 몫이었고, 이후 바이킹스 부동의 주전 러닝백이 된다. 이 당시 그저 그런 팀이었던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중심으로서 간혹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해 보이는 등 나름 활약했었지만, 2011시즌에는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며 실려나간다. 다름 아닌 Torn ACL. 즉 '''전방십자인대파열'''인데 대수술을 하고도 1년 이상의 재활기간이 필요한 엄청난 부상이다. 당연히 팬들이나 전문가들은 피터슨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수술한지 1년도 안지났는데 재활 다 끝내고 돌아와서 너무 급히 복귀한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피터슨은 이전보다 훨씬 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시기 바이킹스는 쿼터백 크리스티안 폰더가 안습인지라 러싱, 즉 피터슨 몰빵으로 공격을 풀어나갔고, 상대팀들도 이걸 잘 알고있어서 오직 피터슨만 막았는데, 피터슨은 이걸 다 뚫어버리거나 수비수들을 작살내가면서 무쌍을 시전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어 끝내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이때의 피터슨은 그야말로 헐크를 연상시켰다나 뭐라나... 2012시즌 최종성적은 러싱 '''2097야드 전진''', 게임평균 131.1러싱야드 전진, 12 러싱TD 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긴다. 특히 러싱 2097야드는 예전 에릭 디커슨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장 러싱야드 기록에 아쉽게 '''9야드''' 모자란 기록이다. 이런 활약 덕택에 MVP 투표에서 총 50표 중 30.5표를 받으며 덴버 브롱코스에서 대활약한 페이튼 매닝을 제치고 러닝백으로는 수상하기 힘든 MVP 자리에 오른다.[6]
2014년에는 1경기만 뛰고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하는데, 어린 아들을 학대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피터슨은 "훈육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 방법은 피터슨 가문 대대로 내려져왔으며, 자기도 그렇게 컸다"라고 했는데, 가뜩이나 NFL 선수들이 대내외적으로 사고를 쳐대서[7] NFL 선수가 가정폭력으로 체포되면 무조건 6경기 이상의 징계를 때리겠다는 NFL의 강경대응의 시범케이스로 걸려든 꼴. 하지만 이 처벌건은 논란을 빨리 묻으려고 섣불리 발표한 NFL측에 대한 비판도 있는 편이다.[8]
2015시즌엔 다시 돌아와서 공백이 무색하게 활약을 하며 러싱야드 1위를 차지하고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2016 시즌에는 오른쪽 무릎 부상의 여파로 3경기 출전에 72야드 전진에 그치고 만다. 게다가 32세에 가까운 나이와 엄청나게 비싼 몸값도 감안되어, 결국 그가 10년간 몸담았던 바이킹스는 그와의 계약을 해지한다.
자유계약선수가 된 피터슨은 몸값을 확 낮춘 뒤,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자신의 2017년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그가 예전 명성만큼의 활약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세인츠에선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스타팅보다는 교체멤버로 출전하였다. 결국 시즌 중 러닝백이 필요하던 애리조나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꾸준한 출전시간과 부상만 없다면 아직까지도 1000 러싱야드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후반 라운드에서 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카디널스로부터 방출됐다.
그리고 2018년 8월 20일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리기로 했다.
2018년 9월 9일, 애리조나 카디널스와의 정규시즌 오픈 경기에서 96야드 러시, 70야드 리시빙의 준수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 경기로 총 12,372 야드를 기록하며 짐 브라운을 제치고 역대 러닝백 러싱야드 10위에 랭크되었고, 100번째 러싱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역대 러닝백 러싱 터치다운 7위에 랭크되었다.
3주차의 그린베이 패커스와의 경기에선 120러시와 2개의 러싱 터치다운, 8주차엔 뉴욕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49야드 러시와 64야드 러싱 터치다운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NFC 금주의 오펜시브 플레이어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13주차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경기에선 90야드 터치다운을 기록하거나 16주차의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경기에선 119야드를 기록하는등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중. 2018 시즌에 1042 야드를 뛰었으며, 총 13,318 야드로 역대 러닝백 러싱야드 7위에 기록되었고, 역대 33살 이후 한 시즌에 1000야드 이상을 뛴 5명의 선수들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2019시즌 종료 후, 2010년대 All-Decade 팀에 '''만장일치'''로 선발되었다.
현지시각 2020년 9월 6일, 디트로이트 라이언스랑 FA 1년 계약을 맺었다.
5. 플레이스타일
전성기 시절엔 폭발적인 스피드와 황소같은 힘을 바탕으로 전설적인 러닝백 월터 페이튼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는 파워 러싱 스타일의 플레이를 보여줬었다. 적어도 '''러싱만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마지막 피쳐백'''[9] 이 바로 피터슨이다. 괜히 MVP를 먹는게 아니다.
다만 데뷔초에는 공격적인 볼핸들링때문에 펌블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후 이를 개선하면서 리그 MVP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잔부상이 많아지면서 펌블 수치가 다시 올라갔다. 또한, 현시대 NFL 러닝백의 필수요건이자, 베테랑 러닝백이 롱런하는 길인 패스캐치 능력발전없이 커리어가 흘러갔기 때문에, 세인츠 이적도 실패하고, 다시 이적한 카디널스와 계약종료인 2018년 이후 커리어 연장 가능성도 의외로 높지 않은 편. 이미 1옵션 러닝백으로 쓰기에는 약점이 너무 많다는걸 세인츠에서 증명했기 때문에....
이미 명예의 전당 입성을 예약한 선수지만, 짐 브라운이나 월터 페이튼 같은 급의 러닝백으로 평가받는 길목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부상이다. 2014시즌이야 경기외적인 부분으로 인해 뛰지 못했으나, 이를 제하더라도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지난 두 시즌을 날렸다. 이런 점에서 커리어 초기에는 대단한 페이스를 보여줬으나 말년에는 부상으로 기량이 하락했던 에릭 디커슨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 여담
전성기 시절 임팩트가 대단했던 선수라 커리어가 끝날 때 즈음에는 러닝백 누적 러싱야드에서 최상위권에 안착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들이 많았다. 에밋 스미스나 월터 페이튼처럼 16,000+ 러싱야드는 몰라도 최소 배리 샌더스(15,269 야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전술된 2014년의 징계와 이후의 부상 등으로 2020-21 시즌이 끝난 현재 겨우 14,820 야드를 넘긴 상황이다. 물론 이 역시 역대 러닝백 러싱야드 기록에서 상위권(5위) 이지만, 바로 직전의 러닝백 스타였던 르데니언 톰린슨, 그리고 동시대의 전성기에는 클래스가 차이가 많이 났던 프랭크 고어(!)가 역시 5위권에 안착해 있다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프랭크 고어는 데뷔 이래 한번도 시즌 10경기 이하[10] 를 치룬적이 없으며, 톰린슨의 경우 매시즌 최소 14경기 이상을 뛰었다. 그래도 워싱턴에서 다시 안정적으로 출전 기회를 받게 되면서 한두시즌 더 뛴다면 배리 샌더스의 기록은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명한 별명은 AD이다. NFL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이름 이니셜이 AP라 잘못 들은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AD는 ALL DAY의 약자로 어렸을 시절에 하루종일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났던 그의 에너지와 실력에 빗대 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다.
형이 자전거를 타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숨지는 것을 눈 앞에서 본 후 충격을 잊기 위해 운동에 몰두했다는 아픈 사연이 있다.
7. 연도별 기록
[1] 보통 MVP는 아무래도 가장 팀성적에 비중이 높은 쿼터백들이 많이 차지한다. 다만 쿼터백 다음으로는 러닝백들이 가장 많이 수상했다.[2] 역대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이자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제리 라이스도 MVP는 수상해본 적이 없다.[3] NFL에 입성하려면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이 경과해야 한다. 대학미식축구에서 True Freshman의 경우 3학년, 1년 유급생인 Redshirted Freshman의 경우 2학년까지 마쳐야 드래프트 신청이 가능하다. [4] 오렌지 볼, 피에스타 볼, 슈거 볼, 로즈 볼이 돌아가면서 내셔널 챔피언전을 겸했으나 2년뒤부터 볼 게임과 챔피언전이 분리됐다. 참고로 USC는 레지 부시 리쿠르팅 과정에서 뇌물이 오고간 게 발각되어 2004년 정규시즌 마지막 승리였던 UCLA와의 경기, 오클라호마와의 내셔널 챔프전 승리 등 2승과 2005년 정규시즌 12전 전승이 모두 무효화됐다.[5] 296야드[6] 또한 NFL 기자들의 투표로 주는 재기상(PFW/PFWA Comeback Player of the Year award)과 스포팅 뉴스에서의 재기상을 수상한다. AP(협회 공식)로 주는 최고 권위의 재기상(Associated Press NFL Comeback Player of the Year Award)은 페이튼 매닝이 받아갔다.[7] 이 사건 바로 전에 볼티모어 레이븐스 러닝백 레이 라이스가 약혼녀 폭행건을 일으키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타이트엔드 애런 에르난데스가 살인사건을 일으키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8] NFL 선수들의 폭력사건을 접해본 위키러들은 저 떡대가 아동학대라니! 라고 경악할 수 있겠으나, 회초리로 허벅지를 체벌한 정도였으며,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강하다. 피터슨이 나고 자란 텍사스주에서는 대체로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한다. 피터슨 자신도 어린시절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언급한적도 있다.[9] feature-back. 러닝백 중에서도 확고한 팀내 서열 1위, 대표, 필두급 선수를 말한다.[10] 고어가 가장 적게 뛴 시즌은 2010년 시즌, 그 시즌도 11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고어는 현재 15,347 러싱야드를 기록하면서 에밋 스미스와 월터 페이튼의 뒤를 잇는 역대 러싱야드 3위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