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리오 벨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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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어록
5. 관련 문서


1. 개요


Liborio Salvatore Bellomo
1957년 1월 8일 ~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
일명 바니(Barney)[1]
빈센트 지간테의 후계자로, 21세기 미국 마피아 세계의 실력자다.

2. 생애


리보리오 벨로모는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살바토레 벨로모의 아들로 뉴욕 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70년대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일찌감치 범죄의 길을 걸었던 리보리오 벨로모는 17세에 총기 소지 혐의로 기소되어 3개월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1977년 리보리오 벨로모는 약관 20세의 나이로 제노비스 패밀리에 정규조직원으로 입단했다. 이는 마피아 세계에서 이례적일 만큼 빠른 입단인데, 감비노 패밀리의 존 고티가 벨로모와 같은 해에 37세의 나이로 정규조직원이 되었다. 즉, 벨로모와 고티의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둘은 입단 동기인 셈이다.[2]
지부장 사베리오 산토라의 조직에 소속된 리보리오 벨로모는 훗날 산토라가 부두목으로 영전하자 그의 조직을 물려받아 25세에 지부장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벨로모.
1987년 패밀리의 부두목이자 리보리오 벨로모의 후견인이었던 사베리오 산토라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후 벨로모가 32세라는 어린 나이로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 겸 거리 책임자(Street Boss)를 맡으며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후계자로 낙점되었다. 이 시기 벨로모는 대부분의 패밀리 사업을 통제하게 되었고 엄청난 재산을 증식했다. 이렇게 이례적이고 빠른 출세 가도를 달리기 위해 벨로모가 뒷세계에서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훗날 케네스 맥카베 전 연방 마피아 수사관은 벨로모의 이른 출세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그는 진짜 물건입니다.(He's the real deal.)"'''라고 답변했다.
이 시기 리보리오 벨로모는 자신의 두목 빈센트 지간테처럼 대중의 관심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의상으로 한껏 멋을 부렸던 당대의 다른 마피아들과 달리 평범한 스웨터청바지 차림을 선호했다. 동시에 자신의 영향력으로 패밀리 내 큰 사업들을 도맡아 했는데, 항구에서의 이권을 포함해 뉴욕 시 맨해튼에 위치한 대형 전시장 제이콥 재비츠 센터의 노조를 통제했다. 여기에 전국구 헤로인 밀매상들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1996년 약 20년 넘게 암흑가에서 승승장구하던 39세의 리보리오 벨로모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 대행으로 지목되어 마피아를 겨냥해 제정된 RICO 법으로 기소된다. 벨로모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FBI의 브리핑 영상. 그는 갈취 혐의와 더불어 1988년 뒷마당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안토니오 디로렌조와 1991년 차량 트렁크에서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된 마약상 랠프 데시몬의 살인과 관련된 혐의가 제기되었다. 당시 연방정부는 제노비스 패밀리가 살해된 피해자들을 정보원으로 의심하여 처형한 것으로 파악했다. 법정싸움 끝에 살인 혐의는 취하되었고 벨로모가 갈취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3]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리보리오 벨로모였지만 수사기관에서 다시 그를 주목했다. 1997년에 FBI는 제노비스 패밀리 준조직원 다니엘 프로벤자노가 보험사 간부로부터 10만 달러 갈취를 시도하는 대화를 도청했는데, 프로벤자노는 피해자에게 "상관(벨로모)이 돈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또 협박 과정에서 벨로모를 '''‘12건이 넘는 암살을 수행한 냉혈한 킬러(Stone-cold killer with a dozen hits)’'''라고 묘사했다. 비록 그 육성을 토대로 벨로모를 겨냥한 기소는 없었지만, 암흑가에서 그의 평판을 나타내는 자료로 쓰였다.
2001년 정부 증인이 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조지 바론은 자신이 1990년대에 플로리다 항구에서 패밀리 사업을 주관하며 당시 두목 대행이었던 리보리오 벨로모를 위한 수표 현금화 회사를 설립하고 벨로모 애인의 남동생에게 연봉 16만 달러를 받는 운송회사 사무원 자리를 주선했었다는 비화를 밝혔다. 같은 해 벨로모는 교도소에서 대리인을 통해 국제항만노동자협회(International Longshoremen's Association)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1년의 형량이 추가되었다.
2006년 제노비스 패밀리의 전속 변호사였던 피터 펠루소는 자신의 비위행위가 발각되자 정부 측 증인이 되었다. 그는 1998년에 리보리오 벨로모의 교도소 접견을 간 어느 날, 그로부터 부하 조직원 랠프 코폴라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패밀리에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아 본인이 수행했다는 증언을 했다. 실제로 코폴라는 같은 해 실종되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그의 처형 사유로는 수감된 벨로모에 대한 무례한 태도라는 설과 패밀리의 돈을 횡령했다는 두 가지 설이 공존한다. 이에 벨로모는 다시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혐의 입증에는 실패했다. 다만 함께 진행한 우편 사기 혐의는 인정되어 1년의 형량이 추가되었다.
2008년 약 12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리보리오 벨로모는 빈센트 지간테가 사망한 뒤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던 패밀리 내에서 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 당시 제노비스 패밀리는 21세기를 맞아 노동 공갈 같은 기존의 전통적인 범죄 사업을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수법들을 도입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바카라스포츠 배팅 같은 도박업의 영역을 해외 사이트를 이용한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시켰고 기존에 시칠리아 마피아와 함께하던 국제 마약 사업을 은드랑게타 같은 본토 조직과의 연계로 대체했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잘 알려진 신종 모기지저당증권 사기도 적극 활용했다. 여기에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 새롭게 생겨난 대마초 시장을 통제했고 펌프 앤드 덤프(Pump and Dump) 주식 사기도 감행했다. 몇 년 뒤 '''변화된 암흑가에서 입지를 다진 벨로모는 정당성과 지도력을 인정받아 패밀리의 두목이 되었다.'''
2016년 익명의 수사기관 관계자가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리보리오 벨로모)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걸 입증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패밀리의 두목인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브루클린브롱스의 주요 인사들이 맨해튼 남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다."라고 밝혔다. 한 익명의 소식통 역시 "벨로모는 똑똑하고, 터프하고, 조심스럽고, 모두가 존경한다."라고 전했다.
역대 제노비스 패밀리의 다른 두목들처럼, 리보리오 벨로모 역시 상담역(Consigliere) 피터 디키아라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법으로 배후에 남는 전략을 사용한다고 알려졌다.[4] 수사기관에 의하면 다니엘 파가노 같은 패밀리 지부장들이 벨로모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지시를 받기 위해 디키아라를 찾아간다고 한다.
이후 취재에 따르면, 리보리오 벨로모는 뉴욕 시 브롱스뉴욕 주 교외 지역에 자신이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수백만 달러 가치의 수많은 아파트로부터 매달 상당한 임대료를 받고 있으며 그의 공식적인 거주지는 뉴욕 주 펠햄 마너의 한 주택이지만 주로 뉴욕 시내에 위치한 자신 소유의 아파트 중 한곳에 머무른다고 한다. 또한 마이애미 해변가에 위치한 맨션도 소유 중이며 브롱스를 기반으로 한 폐기물처리 업체를 운영하면서 여러 건설사와 사업•투자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해졌다.
같은 해 제노비스 패밀리에 준조직원으로 잠입해 수년간 위장수사를 펼친 익명의 FBI 요원은 뉴욕 마피아와 필라델피아 마피아 간 범죄 공모를 밝혀 총 46명을 기소하는 뛰어난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작전 기간 동안 "리보리오 벨로모는 단 한차례도 만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5]

3. 여담


  • 빈센트 지간테의 뒤를 이은 리보리오 벨로모의 풀 네임은 '리보리오 살바토레 벨로모'다. 그에겐 '리보리오 토마스 벨로모'라는 이름의 2살 어린 사촌동생이 있다. 둘 다 이름이 '리보리오 벨로모'로 같고 별명 역시 '바니(Barney)'로 똑같다. 제노비스 패밀리에 가담한 것조차 똑같다. 심지어 둘의 아버지는 형제고 어머니는 자매다. 연방정부에서도 이 둘을 혼동해서 1997년에 동생 벨로모에게 제기해야 할 공소를 당시 수감되어 있던 형 벨로모에게 제기한 실수가 벌어졌다. 정부에서는 형 벨로모가 뉴욕 주 펠햄 마너와 플로리다 주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동생 벨로모는 뉴욕 시 퀸즈 베이 사이드에 주소지를 두고 있으며, 동생 벨로모가 자신이 공소를 감당한다는 진술서를 작성해 모용을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 리보리오 벨로모는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녀 사브리나 벨로모는 변호사가 되었다. 아버지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약 12년의 수감 생활을 겪은 탓에 딸의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2007년 아버지의 재판 때 변호인단에 속해있던 딸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변론을 했다. 벨로모 부녀의 관계는 2007년에 제작된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마지막 시즌에서, 원래 의사를 지망하던 주인공의 딸이 아버지를 돕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대로 진학하는 설정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보인다.
  • 2012년 어느 매체에서 세계의 15대 범죄조직 두목과 마약왕들(Top 15 Crime Bosses and Drug Lords) 순위를 선정했는데, 리보리오 벨로모가 미국 마피아 최대 파벌의 지도자라는 점을 고려해 6위로 지목했다.[6]
  • 2013년 리보리오 벨로모의 아내가 암으로 사망했다.
  • 2018년 리보리오 벨로모를 보좌하던 상담역(Consigliere) 피터 디키아라가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공갈죄로 약 5년간 복역한 뒤 2007년에 출소했다. 생전에 그가 소유했던 맨해튼 로어 이스트사이드 73번가의 회원 전용(Members Only)이라 적힌 사교클럽은 제노비스 패밀리의 아지트 중 한곳으로 여겨진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찾은 클럽 외관.[7]
  • 2019년 마이클 라구사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거리 책임자(Street Boss)로 확인되었다. 그는 2001년 국제항만노동자협회(International Longshoremen's Association) 갈취 재판의 피고인 명단에서 이름이 확인된다. 당시 패밀리 내 직책은 행동대원이었다. 라구사는 2005년에 출소했고 10년 넘게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나 리보리오 벨로모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하나로 추정된다.
  • 2020년 뉴욕 시의 스티비 웨스트사이드란 남자가 여자친구의 돈 2만 달러를 훔친 혐의로 고소당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자신이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고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프랭크 칼리와 마피아 정규조직원 입단 동기이며 매달 코스타리카를 기반으로 한 도박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상납 받는다는 거짓말들을 해왔다고 한다. 물론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은 리보리오 벨로모이며 고소 당한 남자는 마피아 조직원도 아니고 코스타리카의 도박 사업과도 일절 관계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남자는 불법 총기 소지•도박•스토킹 혐의로 입건되었다.

4. 어록


'''저는 공개 연설가 같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I'm not a public speaker or anything.

변호사 딸이 눈물을 흘리며 변론을 마치자 그녀에게 한마디 하라는 판사의 권유에 대한 답변.


5. 관련 문서



[1] 별다른 뜻 없이 '벨로모'의 애칭이다.[2] 단, 고티는 행동대원을 건너뛰고 바로 지부장이 되었다.[3] 당시 벨로모가 수감되자 도미닉 시릴로나 프랭크 서피코 같은 인물이 그의 빈자리를 채웠다.[4] 과거 필립 롬바르도는 토마스 에볼리와 프랭크 티에리를, 빈센트 지간테앤서니 살레르노와 벨로모를 전면에 내세웠다.[5] 당시 이 요원의 활약으로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 조셉 멀리노가 2년형,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유진 오노프리오가 2년 6개월형,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파스칼레 파레로가 7년형을 선고받았다.[6] 1위는 러시아 레드 마피아의 셰묜 모길레비치, 2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피아의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 3위는 멕시코 시날로아 마약 카르텔의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다.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구미의 시노다 겐이치는 7위로 지목되었다. 물론 이런 흥미 위주 순위들이 다 그렇듯 큰 공신력이나 의미는 없다.[7] 뉴욕 시에 거주하는 위키러들은 지나가다 이 장소를 발견하면 여길 드나드는 사람들은 마피아 관련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