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제퍼슨
1. 소개
미국의 前 농구선수. 별명은 '''RJ'''.
2. NBA입성전
제퍼슨은 LA 에서 태어나 피닉스 애리조나에서 자란다. 양친은 모두 크리스천 선교사들이었다. 애리조나 대학교로 진학을 결정한 리차드 제퍼슨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루트 올슨 감독 밑에서 플레이했다. 84경기동안(77경기 선발) 평균 11.2점, 5.0개의 리바운드와 2.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교 3학년 때, 듀크 대학교[2] 와의 NCAA토너먼트 결승전에서는 후반에만 15득점을 넣는 등, All Final 4 team에 발탁되었지만, 아쉽게도 우승에 실패했다. 대학 동기에는 길버트 아리나스, 루크 월튼 등이 있다.
3. NBA입성후
제퍼슨은 대학교 3학년 재학중에 1라운드 13번째로 휴스턴 로케츠에 지명되지만,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후 처음에는 스몰 포워드인 Keith Van Horn의 교체 선수로 경험을 쌓으면서 좋은 수비 능력과 올어라운드 능력을 선보였다. Keith Van Horn과 파워포워드 Kenyon Martin과의 불화와 제퍼슨의 잠재력을 본,네츠는 Van Horn을 필라델피아 76ers로 트레이드 시킨 후 제퍼슨을 믿고 선발로 기용한다. 제퍼슨은 능력이 만개하게 되어 좋은 미드, 롱 레인지 슈터이자 뛰어난 슬래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리매김한다. 네츠는 2년동안 동부 컨퍼런스 결승 진출을 경험을 했지만[3] , 모두 NBA 결승전 우승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01-02 시즌에는 코비와 오닐이 있는 LA 레이커스, 02-03 시즌에선 완전체 괴물이었던[4] 팀 던컨이 버티고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맞붙어 패한다. 제퍼슨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 남자 농구팀에 발탁되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또 1년 전인 2003년에는 NBA 슬램 덩크 콘테스트에도 참가했다.
2004년 8월 13일, 제퍼슨은 6년 7800만 달러의 계약 연장을 체결한다.
2008년, 6년간 뛴 네츠를 떠나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가 된 제퍼슨은 마이클 레드와 듀오 멤버로써 주목을 끌었지만, 레드가 부상으로 대부분의 시즌에서 아웃되어 고군분투를 강요당한 것 외에, 팀은 디비젼리그 최하위로 내려갔다.
2009년부터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하였다. 이적한 뒤에 첫 시즌 때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데뷔 이래 두번째로 안 좋은 평균득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0년 오프 시즌 때, 자유 계약 신분이 되어, 스퍼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보도하는 등, 타 팀의 이적은 결정적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4년3900만 달러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image]
2012년 3월 15일, 제퍼슨은 시즌종료까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을 하였다.
2013-14시즌에는 유타 재즈와 계약을 하였다. 팀이 침체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82시합에 나갔다.
2014-15시즌에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계약을 하였다.
[image]
2015시즌부터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 워리어스와의 2016시즌 결승전 3차전에서 케빈 러브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33분을 소화해 득점 9점과 8개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120–90으로 승리했다. 그 후, 1-3에서 기적같은 4-3의 역전드라마를 만들어 팀을 52년만의 우승에 이끌었다. 생애 처음으로 우승한 제퍼슨은, 우승 세레모니 인터뷰에서 현역을 은퇴한다고 선언했지만, 더 뛰고 싶다는 강한 의지도 있어, 2년 계약 500만달러로 캐벌리어스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다.
2017년 1월 2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홈 경기에서 3점 필드 골 1000개를 기록했다.
2016-17 시즌에는 준우승으로 머무르게 되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 되었으나 곧바로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방출되었다. 그 후 덴버 너기츠와 230만 달러(약 26억 원)에 1년 계약을 맺고 플레이 한 뒤, 현역을 은퇴했다.
2018년 10월 16일, 브루클린 네츠의 지역방송국 Yes Network에서 중계진을 맡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시절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녔고, 공격과 수비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올 라운더.
전성기에는 평균 19득점 이상, 5개의 리바운드가 보장되는 꽤나 쏠쏠한 자원이었으며 덩크 등 화려한 플레이도 잘소화했다. 또한 운동능력도 매우 뛰어나서 인게임 덩커로써 멋진 장면을 수 없이 연출했고 수비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다만 볼핸들링이나 드리블이 너무 평범했으며 밀집된 수비에서 상대를 비집고 들어가는 능력은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1옵션에서 점차 내려와서 2옵션, 식스맨 역할이 많아지게 된다.
뉴저지 네츠 시절엔 주전과 식스맨을 오갔으나 스퍼스로 이적하는 09-10시즌 부터는 확실히 한정된 역할만하는 롤플레이어가 된다. 이후엔 다시는 12득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게 된다.
네츠 시절에는 확실한 주전이었다. 키드, 마틴과 함께 네츠를 파이널로 이끌었고 마틴 이적 후 에도 카터와 함께 키드의 어시스트를 받았다.
그런 그가 운동능력을 점점 잃어가면서도 꾸준히 NBA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통산 37.7%의 3점슛의 옵션 때문이다.
40%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한 시즌이 4번이나 있을 정도로 3점 슛이 좋은 선수였다. 10-11시즌 스퍼스에선 무려 44%의 성공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비록 팀내 1옵션을 한 적은 거의 없지만 성실한 성격과 팀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 그 동안 뛰었던 모든 팀에서 평가되고 있다.
2017년 파이널에서 듀란트(!)를 블락하고 속공득점을 올렸다. 2017 파이널에서 가끔 분위기를 전환시키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
[1] 트레이드 입단 후 곧바로 방출되었다[2] 나중에 같이 뛰게 된 카이리 어빙이 다녔던 곳이다[3] 컨퍼런스 파이널은 우승했다. 제퍼슨은 키드와 더불어 백투백 파이널에 올라가는데 핵심 선수였다[4] 파이널 6차전에서 21득점, 20리바, 10어시, 8블락을 기록했다. 이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