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난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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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난대학 (嶺南大學, 영남대학, Lingna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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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의 8개의 국립대학 중 유일한 공립 리버럴 아츠 칼리지. 포브스가 2015년에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링난대학은 아시아의 10대 리버럴 아츠 대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의 영남대학교와 한자까지 똑같은 이름을 보유 중인 학교이나 그 분위기와 학풍은 아주 많이 다르다, 그 예로 거대한 캠퍼스를 지닌 한국의 영남대학교의 미친 사이즈와 달리 홍콩의 홍콩영남대학은 학생 수가 3000명에 불과하고 캠퍼스도 조그마한 아기자기한 학교다.
소규모 리버럴 아츠 칼리지로서의 장점들을 보면 학생들에 대한 탄탄한 케어로 약 15:1의 낮은 Faculty Ratio를 유지하고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4년간 학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약 80%의 학생들에게 해외 교환학생 기회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소규모 학교이지만 2020년 QS World University Ranking 기준 세계대학순위 500위권에 위치해 있다. 국제적으로 한국의 서강대학교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홍콩의 다른 공립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수준 높은 명문대 중 하나이다.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한다.
2. 역사
사연이 깊은 학교이다. 링난대학은 미국의 장로회 신자들에 의해 1889년에 중국 광저우[1] 에 설립되었으나 1900년에 청나라를 강타한 의화단 운동으로 인해 인근의 마카오로 캠퍼스를 잠시 옮겼다가 1904년에 다시 광저우에 돌아와 대학을 재설립했다. 그러나, 1938년 광저우가 일본군에게 함락되어 이번에는 홍콩으로 잠시 캠퍼스를 옮겼으나 홍콩마저 4년후에 일본군에게 점령당해(...) 광둥성과 후난성의 중간에 위치해있는 사오관시로 다시 피난을 가게 된다. 드디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링난대학은 광저우에 돌아올수 있게 된다.
물론, 링난대학의 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49년,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전투에 승리를 거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하고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그러나 링난대학은 그대로 광저우에 남아 버티다가 장렬히 현재 중국의 명문대 중 하나인 중산대학에 편입되고 만다[2] (단, 캠퍼스는 링난대학 자리로 이전).
빅엿을 먹은 링난대학의 임원들은 공산당의 손길이 닿지 않는 홍콩에 대학을 설립할 계획을 짜게 되고 홍콩식민정부가 1978년에 제시한 요구를 받아들여 홍콩에 링난칼리지를 세우게 된다.
발전을 거듭하던 링난대학은 1991년에 정식으로 홍콩 자치정부의 지원을 받는 八大의 일원이 된다.
[1] 학교명인 "영남"은 남령산맥 남쪽, 즉 광동성, 광서성과 해남성을 동시에 일컷는 지명이다. 이거마저 한국의 영남대랑 똑같다. 거기다가 각 국가 제3의 도시에 세워진 것까지...[2] 1952년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전국 대학 개편으로 링난대학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들의 역사가 단절된다. 중국인에 의해 세워진 가장 오래된 베이양대학이 이 시절 사라진 대학 중 하나. 중산대학 또한 기존 캠퍼스를 화난이공대학에 내주고 링난대학 캠퍼스로 이전한다. 베이징대학도 단과대 해체 흡수 과정을 거치며 캠퍼스를 강제로 이전한다. 칭화대학의 경우 문과 계열은 베이징대학, 베이징농업대학 등 7개 고등교육기관으로 갈갈이 찢겨 해체되고 이공전문대학이 된다. 중산대학의 경우에도 원래 개교했던 캠퍼스에 다른 학교가 들어오는 수난을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