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 풀리테

 


1. 개요
2. 상세
3. 영향
4. 한국에서
5. 같이보기


1. 개요


마니 풀리테(mani pulite)는 이탈리아어로 '깨끗한 손'을 뜻하며, 뜻의 이탈리아 부정부패 척결 작업을 말한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비리를 밝혀내면서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을 몰락시키는데 공헌시키고 공산당을 좌파민주당[1]으로 재편시키는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때 기독교민주당을 대체한 인물이 하필이면 베를루스코니였고 거기에 더해서 극우정당의 성장까지 이루워지면서, 이탈리아의 부패상을 척결하는데 실패, 용두사미에 그친 작전이라는 평가가 강하다.

2. 상세


1992년 2월 17일 이탈리아 검찰이 사회당 경리국장의 집을 수색해 700만 리라의 현금을 압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사회당에 정치 자금을 대던 밀라노의 한 청소 대행 업체가 사법당국에 사회당을 고소하면서 불거졌는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계와 재계가 총체적으로 연결된 부패 사건이었다. 이후로 1992년부터 1994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소환시켜나갔고 개중에 1000명을 구속시켰다. 1983년부터 1987년에 이르기까지 총리를 지낸 베티노 크락시는 마니폴리테 작전이 벌어지자 튀니지로 망명가서 다시는 이탈리아 땅을 밟지못하고 숨을 거두웠으며 줄리오 안드레오티 전 총리도 비리혐의가 드러났으며, 줄리아노 아마토도 총리에 등극했지만 비리혐의가 드러나서 결국 사임했을 정도이다. 이 작전은 디 피에트로(Antonio Di Pietro) 검사가 주도하여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3. 영향


하지만 이탈리아 정재계를 정화시킬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다르게 1994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자신을 성공한 사업가로써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2] 보수층이 대거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포르자 이탈리아로 쏠리면서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되었으며 이후로 베를루스코니가 비리에도 버텨내는데 성공을 거두웠고, 또한 검사들을 좌파라고 비하하는 선전도 했은데 이것도 먹혔다. 그러면서도 경제정책은 헛방을 지속한지라 결국 마니폴리테가 이탈리아의 개혁을 이루워낼것이라는 희망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렸고 또한 이 작전의 틈을 파고들면서 이탈리아 극우파[3]들을 성장시키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뒷 맛이 씁쓸한 결과를 낳았다.

4. 한국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 때문에 정권과 검찰간의 갈등이 심했다. 이때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이 이끄는 검찰 수사팀은 때마침 터진 대선자금사건을 기회로 노무현 정권의 안희정, 이광재 등 정권 실세까지 성역 없이 수사하였다. 이것을 한국판 마니 풀리테라고 하는 여론이 있었다.[4] 이때 검찰에 대한 국민적 인기와 지지는 상당히 강했고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검찰 개혁은 힘을 잃었다.

5. 같이보기


[1] 민주당의 전신[2] 당시까지만 해도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때문에 호감도가 매우 높았던 인물이었다. 물론 반은 언플능력 덕택이기는 했지만 여하튼 성공했기는 했다.[3] 가령 현재의 동맹당 전신이 북부동맹인데 1994년 총선을 기점으로 주요정당으로 떠올랐다. 물론 오성운동과 연합한것은 훗날의 일이지만 마니폴리테가 발단이 되었다는것은 부정못한다.[4] mt.co.kr'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의 추억 - 머니투데이 뉴스 [기자24시] `마니풀리테`와 대선자금 수사 - 매일경제 검찰 사정 칼날 伊 '마니 폴리테' 따라 하기? :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