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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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충청남도지사를 안정적으로 역임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차세대 대권주자로 주목받았으나 2018년 안희정 성폭력 사건으로 제37대(민선 6기) 충청남도지사를 사퇴하고 정치 활동을 전면 중단하였다.
그리고 2018년 3월 6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위원회에서 전원 일치로 제명 및 출당 조치되었다. 소명 기회를 주었으나 안희정이 스스로 소명 기회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후 2018년 8월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판결받았으나, 2019년 2월 1일 2심 재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고 2019년 9월 9일 대법원에서도 2심 판결이 확정됐다. 이로써 정치생명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2. 일생
3. 정치인 안희정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알려져 있다. 절친이었던 이광재와 더불어 '좌희정-우광재'로 불렸을 정도이며 참여정부 말기, 모두가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릴 때에도 '참여정부 평가표'와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들어 끝까지 노무현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노무현의 사망 직후엔 유시민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상주노릇을 자처하며 조문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 말 좋지 못한 범여권의 정치적 사정으로 인해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내주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함축해서 친노 진영을 '폐족'[8] 이라고 지칭한 바 있었다. 친노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 친노 진영을 향해 자조했던 발언이었던 만큼 당시에는 친노 정치세력의 패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해석되었다.#
대통령의 측근이나 징역살이로 그럴듯한 정치적 커리어도 없고 친노진영도 몰락하게 되면서 안희정도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글렀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 사분오열 되는 와중에도 항상 민주당을 지켰고 노무현의 비극적인 최후로 뭉쳐진 추모 여론, 정권 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연속적 실정에 따른 지지율 하락과 이로 인한 참여 정부에 대한 재평가 등의 반사효과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노무현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보이며 다소 보수색이 강하기로 알려져 있는 충청남도의 도정을 맡기에 이른다. 이로써 이렇다 할 정치적 커리어 없던 안희정은 광역자치단체의 행정가로 화려하게 거듭났다.
이명박이 이때의 선거 패배 때 왜 여권에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냐며 아쉬워했을 정도로 친노인사치고 보수진영 인사들에게도 호평받는 편. 아무래도 친노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엔 그나마 온건파적 성향인 것도 한 몫한다. 이러한 중도적인 성향을 통해 진보나 보수언론을 가리지 않고 광폭 행보를 보이며 중도층에게도 큰 호감을 얻었으며,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충남도지사 재선을 계기로 더이상 '친노'라는 수식어 없이도,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를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일부 민주당 강경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온건파적인 면모 때문에 약간의 비토 정서를 보이고 하지만 적어도 그 능력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정도이다.
중도적이고 새로운 정치를 강조하는 인물인 만큼 안철수와 간혹 비교되기도 하는데 약간 중도보수에 가까운 안철수와 달리 자신은 스스로 '진보' 정치인이라며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어 중도에서도 진보에 가깝다. 또 자신은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 물론 이뤄지지는 않았다. 안희정이 말하는 새정치는 새로운 진보와 보수의 틀을 만들자는거지 안철수처럼 그 제3지대를 구축하겠다는게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출중한 행정 능력과 대한민국 정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부활한 친노의 적통이고, 여야 동년배 정치인에 비해 돋보이는 수려한 외모[9] , 준수한 화술과 논리력, 인생역정은 연설이나 토론, 방송, 유세 등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19대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대중적 인지도를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본인의 말처럼 '지방 사또' 정도의 정치인으로 남아있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할 수는 없었어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주목받던 차세대 정치인임은 사실이며, 충청 대망론의 대표주자로 미는 분위기도 있었다. 실제 충남지역에서는 행정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행정능력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품에 대해 세대를 막론하고 안희정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여론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충청 민심을 증명하듯 2015년 9월에 '''충청인이 선호하는 '충청권' 정치인'''에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반기문'''(2위 - 11.4%)을 제치고 '''1위 - 26.6%'''를 기록했다. 도지사로 재임하고 있는 '''충남지역(39.6%)'''에선 무려 10명중 4명이나 안희정을 선호했다. 그 외에 '''대전(23.8%)''', '''세종(34.8%)'''로 각각 지역에서 1위이다. 한편으로 충북에선 상대적으로 약세였는데 10.8%로 반기문, 이시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 고무적인 것은 민주당의 취약점인 '''55세 이상'''의 장년층에서도 '''22.9%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30~54세'''의 선호도가 '''30.3%'''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19~29세에선 18.4%의 선호도를 보였고 전체적으로 남녀간 지지차이(남성 26.4%, 여성 27.0%)는 미미했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안희정이 '충청대망론'의 선두주자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대전광역시-충청남도-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권 새누리당과 무승부[10] 를 기록했고, 아울러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김종민 전 정무부지사(충남 논산-계룡-금산), 조승래 전 비서실장(대전 유성 갑), 정재호 전 정책특보(경기 고양 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안희정 마케팅'이 더민주 지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는 점까지 입증했다. 이 중에서 김종민 후보는 그 '''피닉제'''의 독주를 꺾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그 특유의 안정감으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과 사분오열된 보수 정당으로 길 잃은 중도 ~ 중도 보수 지지층들이 안 지사에게 몰려 중도 - 보수 외연 확장성을 보여주며 대선 후보 선호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유력 정치인들의 연령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은편인 만큼[11] 지금처럼 계속해서 순탄한 행보와 결정적인 성과 몇 가지를 내준다면 충분히 2022년 대권주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였'''다.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권 지지자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로 안희정이 꼭 거론될 정도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비록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비서 성폭행으로 '''그가 바라던 대통령의 꿈과 정치 인생이 한 줌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12][13]
2019년 2월 1일 이뤄진 2심에서 10개의 혐의 중 9개가 인정되면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9일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한때 유력한 미래권력에서 이렇게 짧은 찰나에 나락으로 추락한 정치인은 사실상 안희정이 유일'''했었다.'''
3.1. 성향
오랜기간 민주당에서 헌신한 정치인이지만, 현재 민주당의 주류와 거리가 있는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친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주류는 가능한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고, 의회를 다소 불신하여 의원 내각제와 같은 분권형 정치 체계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 중심의 확고한 체계를 선호한다. 하지만 안희정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을 자주 강조하며 전문적인 정치인들을 통한 의회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달려있는 것이 문제라고 발언하며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벗어나 대통령과 의회가 권력을 나누어 갖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적폐청산이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안희정이 다소 뜨뜻미지근한 평가를 받은 것도, 전당 대회를 통해 선출된 원내대표, 당대표가 있기 때문에 탄핵국면에서 전락지침은 그분들이 나서야하며 대통령 후보는 선출된 공식적인 공직이 아니기 때문에 나서서 발언하는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철새처럼 정당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매우 싫어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대로인데 정당 간판만 바꿔서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는 정당들의 자세도 '회사가 물건 잘 안팔린다고 회사 이름 바꾸는 것 보았냐'는 비유를 들며 강하게 비판한다. 즉, 안희정이 보는 바람직한 정치는 정당이 회사와 같이 이른바 '정책 생산자'로서 정책을 구상하면, 국민은 '정책 소비자'로서 마음에 드는 정당을 지지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실현되기 위해서 정당은 신뢰가 가는 회사가 되기 위해 뚜렷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일관된 정책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강조하며 민주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소신을 보여주고 있다.#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안희정 본인의 비유에 따르면 밥을 먹을 때 진수성찬이 없더라도 김치에 국만 한 그릇 있으면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듯이, 복지정책도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4대보험과 같이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인간답게, 어느정도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핵심적인 제도만 튼튼하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선시즌 당시 이재명의 기본소득제를 비판하고 공방을 벌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성향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이재명 지사와 거의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19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복지 분야를 두고 여러차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4. 논란과 비판
4.1. 성폭력 사건
5. 여담
- 유죄판결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성범죄자 이용 불가 규정에 따라 소유하고 있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이 비활성화 되었으며 평생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 2014년 2년 연속으로, 시사저널에서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정치인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종합순위는 4위.
- 2016년 4년 연속으로, 시사저널에서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정치인 분야 1위를 기록하였다.# 게다가 종합 순위도 1위를 기록하였다!
- 노무현이 선거법 위반으로 2007년 6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게 경고를 받자 나라의 왕인 대통령이 경고를 받았다면서 # 선출직 공무원만이 권력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독재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임명직이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바 있다.
- 노무현 사망 당시 분노에 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당시 노무현 사망에 관한 의견과 감정을 매우 격하게 표현하였다.[14] 그 이후 김영삼이 이명박에게 노무현을 국민장으로 치뤄 준 것은 큰 실수고, 가족장으로 충분했다며 노무현은 내가 정치에 입문시켰건만 의리가 없다고 폄하하자, 김영삼에게 "노무현 대통령님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빚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김영삼씨가 노무현 대통령께 빚을 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과하십시오." 라고 하면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
- 충남도청이 대전광역시에 있을 시절에 민선 5기 이자 36대 충남도지사로 선거에 당선되었으므로 역대 충남도지사 중 마지막으로 대전에서 근무했던 지사이다. 당연히, 내포신도시에서 근무하는 첫 번째 지사이기도 했다.
- 지역 농민과의 대화 같은 자리에서 도지사석만 가죽이 입혀진 나무 의자가 놓여진 일이 있었는데, 도지사 의전실에서 사전 점검을 와서는 전부 치우게 하고 다른 의자와 같은 접이식 철제 의자를 놓았다. 아마도 본인의 적은 나이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있어서 특별히 더 조심하는 듯 하다.
- 병역은 이행하지 않았는데 병역 비리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학생 운동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기 때문이었다. 관련 링크 80년대 중후반에는 20대들 중에서 사상범으로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병역 대상이 아니었다. 사상범을 군대에 보내면 오히려 더 위험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15] 1984년까지 80년대 초반에는 녹화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징집시켰는데 문서에 적혀있는 대로, 그야말로 사람을 죽이려고 군대에 가둬놓는 방식이라 그에 따른 문제가 심각했다. 심지어, 공식으로 확인된 녹화 사업 관련 의문사 피해자만 무려 6명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녹화 사업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그 엄혹한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 강제 입대와 녹화 사업을 1984년 9월에 폐지했을 정도다. 그 이후부터는 안희정의 사례처럼, 감옥으로 보내서 군대에 아예 못 가도록 막았다.
-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잠룡으로 손꼽히는 박원순, 손학규가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듯한 발언을 하며 관심을 모으던 와중에 같은 대권 잠룡이기도 한 안희정도 '불펜투수로서 몸을 풀겠다'며 대권에 도전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안희정의 이러한 말에 당시 더불어민주당 최강의 실세였던 문재인은 "안희정 지사 같은 훌륭한 후배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영광스런 일이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 대선의 승리는 대통령 개인의 승리가 아닌 정당의 승리가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국민의 승리가 되어야 하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정치에서 정당들이 불리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정당명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는 점을 지적하고, 아직 정당 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한 점을 강연 때마다 언급하고 비판한다. 미국의 뿌리 깊은 의회 정당 정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16년 5월 25일, 헌정 팟캐스트가 생겼다.
- 2016년 11월 4일, 팬들이 운영하는 안희정 News 텔레그램 채널이 열렸다.
- 팬이 운영하는 안희정의 잘생긴 모험이라는 트위터가 있었다. 안희정의 사진으로 적절히 드립을 치는데 주로 사진과 함께"~하는 잘생긴 안희정"이라고 트윗이 올라왔다. 트윗 모음 심지어 안희정 본인이 팔로우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행 폭로 이후에는 안욕정의 이쁜이 모험이라는 계정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 상술했듯이 부친의 영향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 적도 있었다는데 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함께 친노무현계의 대표적인 대권 잠룡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인생사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을 보고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정치 일선에서 은퇴해달라"고 비판하였다. 민주주의의 근본 중 하나인 정당 정치 원칙을 훼손했다는 점을 지적하여 비판했다. 매번 대선 때마다 동지가 바뀌고 하는 떴다방식 정치를 그만두고 젊은 후배 정치인에게 다음을 맡겨 달라고 했다.#
- 의외로 보수 정당에 속한 남경필, 원희룡과도 막역한 사이이다. 특히 동갑내기인 남경필과 절친으로 유명한데, 이 두 사람이 공동 정책과 공약도 내놓았을 정도로 친했다. 어느 정도로 친하냐 하면 양세형의 숏터뷰에서 남경필이 유승민과 안희정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잠시 고민하다 안희정을 고를 정도다. 과거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공조가 매우 빨랐던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 두 사람이 각각 도정을 맡고 있었기 때문. 이러한 관계로 향후 두 사람 중 한 명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면, 다른 한 사람은 국무총리 겸 정부 수반이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다. 실제 남경필은 공약으로 대통령이 되면 안희정을 책임 총리에 임명해 내치를 맡기겠다고 내세웠었기 때문.[16]
- 발음이 좀 꼬이고 버벅거리는데 5.18 민주화운동 이후 전개되었던 학생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을 때 자살하려고 혀를 깨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동권에 있었기 때문인지 이미지와는 다르게 비속어도 꽤 유창하게 사용하는데 노무현입니다에서 했던 인터뷰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 주갤에 인증을 했다. 중앙일보 , 안희정 도지사의 유튜브
- 만약 당선된다면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청와대에 농구 코트를 만들어 청와대 근무자들과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농구광인 미국 대통령이 있기도 했다.
- 2017년 1월 23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 자리에서 홍석천과 함께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그들의 인권을 지지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화제를 모았다.기사영상[17] 이에 앞선 1월 18일에는 팟캐스트 "이이제이"에 출연하여 받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종교적인 교리이든 이념이든 우리가 상식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손가락질을 할 권리가 없다", "종교, 이념, 국가 그 어떤 논리로도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정체성과 그들의 개성에 대해 재단하거나 뭐라고 할 권리가 없다. 그 문제에 대해 나는 철저히 리버럴"이라는 답변을 한 바 있는데 그에 관하여 홍석천이 표 계산에서 전혀 유리할 것 없으니 입 다물어도 이해하겠다는 말을 하자 다시 확고한 지지 의사를, 그것도 젠더 이분법 같은 이반 커뮤니티에서도 소수자 담론에 그치는 소재까지 끌어와서 강조했다.
-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차별금지법 관련 논란에 대한 제정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반대 의사를 표함으로써 그에게 감동했던 성 소수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기사 영상 덕분에 2월 16일 문재인이 연설 중 고성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던 성 소수자들이 그보다 몇 시간 전에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가진 차별금지법 반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도 문재인과 함께 쌍으로 까였다. 근데 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성 소수자의 의견을 대표하는 집단이 아니라 파장은 크지 않았다.
- 안희정의 아들 안정균은 19대 대선때 더불어민주당의 청년유세단에서 활동했으며,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었다. #인터뷰 영상 이후 아버지의 성폭력 사건 때에 SNS에서 경솔한 발언을 해 지탄과 비난을 받았고, 피해자 김지은에게 직접 전화를 걸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나 상당히 논란이 되기도 했다.
- 나이에 비해 밥을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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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 선거가 문재인의 승리로 돌아가자 5월 10일 새벽 광화문에서 문재인의 볼에 기습키스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자 발음이 꼬이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가는 행동이 전형적인 주사를 연상시키면서 충남주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리고 10일 낮 트위터에 이불킥을 언급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사진이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 확정 때 사진이라 한국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이 사진을 싣기 시작해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즈가 신문 1면에다 실어버리며 삽시간에 월드스타가 되었다.# 결국 안희정도 포기했는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쨌든 이 주사는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문재인과 안희정 간의 앙금을 깔끔히 털어냈음과 동시에 노무현 이후 정권 재창출을 갈망해온 친노의 승리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현재는 이런 반응을 즐기고 있는지 페이스북에 팬아트까지 올렸다! # 아울러 인터뷰에서도 "국민에게 웃음을 줬으니 그걸로 된 거다."란 말을 남겼다. 사실 정치적으로도 안희정에게 신의 한 수가 됐던 게 경선 과정에서 생겼던 친문과 안희정의 거리감을 뽀뽀 한 방으로 해소해 버린 셈이다. 김어준의 파파 이스 145화에서 김어준이 밝힌 바에 의하면 저날 안희정 지사 본인은 치맥하다가 불려 나갔다고 한다. 결국 몇몇 네티즌들이 술 취한 거 아니냐고 했던 것이 현실인 셈이다. 영상 잘 보면 얼굴도 벌그레하고 혀도 많이 꼬이는게 취기가 좀 있었던 것은 거의 맞는 듯.
- 빌 클린턴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명문대를 졸업 후 정계 활동에 투신했으며,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젊은 나이에 자신의 고향이 속한 최고행정구역의 장(도지사/주지사)를 맡으며 보수적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매우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세부적 정치 이념이 제3의 길이라는 것까지 동일하며, 성추문으로 정치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안희정은 도지사 재직 중 성추문이 터졌고, 결국 몰락했으며,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재직 중 성추문이 터졌고, 간신히 탄핵을 면하는 데 성공해 둘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6. 약력
- 1989년 통일민주당 김덕룡 비서관
- 1990년 민주당 이철 사무총장 비서관
- 1994년 민주당 이수인 비서관
- 1997년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 비서
- 1998년 자치경영연구원 사무국 국장
-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비서실 정무팀장
-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비서실 정무팀장
- 2003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 2003년 열린우리당 논산계룡금산지구당 창당준비위원장
- 2005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 2007년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 2008년 민주당 논산계룡금산 지역위원장
- 2008년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 2010년 민주당 행복도시원안사수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 2010년 제36대 충청남도지사
- 2014년 제37대 충청남도지사
- 2015년 제9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감사
7. 소속 정당
8. 선거 이력
9. 저서
- 『담금질 :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 나남, 2008년 1월 4일 #
- 『247명의 대통령』, 나남, 2010년 3월 1일 #
-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안희정의 진심』, 위즈덤하우스, 2013년 11월 13일 #
- 『콜라보네이션 : 시민X안희정, 경험한 적 없는 나라』, 스리체어스, 2016년 10월 25일 #
- 『안희정의 함께, 혁명』, 웅진지식하우스, 2016년 11월 18일 #
- 『안희정의 길』, 한길사, 2017년 2월 20일 #
10. 관련 자료
-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 2017년 1월 14일 방송 251회 안희정의 눈물과 도전
11.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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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공공파는 부제학공파라고도 한다[2] 29세손 '희(熙)' 항렬[3] 문재인과 키가 비슷하지만 안희정의 키가 좀 더 크다. 문재인의 키는 172cm이다. 출처. 그와 친한 남경필 지사, 원희룡 지사보다도 큰 키다. 이 두 사람은 167~168cm 전후. 그나마 정병국과 그와 키가 비슷하다.[4] 현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자세한 사항은 이것과 논문 <티베리우스 황제 집권 초기 왕조 지배 이념 강조의 정치적 배경> 참고[5]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6] 계정 삭제됨.[7] 원래 법정구속 됐을 때인 2019년 2월 1일에는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으나 2월 8일 안양교도소로 이감됐고 2019년 9월 9일 대법원 유죄 확정 후에도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가 2020년 초 광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8] 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지어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집안[9] 특히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무술가인 견자단을 닮았다는 분들이 많다.[10] 대전 새누리 3 : 4 더민주, 충남 새누리 6 : 5 더민주, 합치면 새누리 9 : 9 더민주가 된다(거기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세종의 이해찬을 합치면 1석 앞선다).[11] 호적상 1965년 5월 1일생으로 2018년 3월 기준 만 52세.[12] 성폭행 사건과 별개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루킹이 한 때 안희정을 응원하는 댓글을 작성해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안희정은 정치적 확인사살까지 당해버렸다.[13] 비록 성추행에서 최종 무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불륜을 저지른 것 자체만으로도 신임도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도덕적으로는 무죄가 아닌 셈. 이것만으로도 정치생명의 불씨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14]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신 결과가 이겁니까! 대한민국 검찰,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조중동!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한없이 분노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15] 원래 수형 생활(징역이라 봐도 되지만 집행유예가 나와도 그 전까지 구치소에 있었으면 그 시간을 더하므로 정확히는 그냥 감옥에 있던 시간에 더 가깝다.)을 총 1년 6월 이상 했던 사람은 제2국민역 편입(일반적으로 말하는 군면제)이다. 지금도 그렇다. 안희정은 애학투 사건과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감옥에 있던 시간을 합치면 이 기간이 넘는다.(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인한 수형생활이 9~10월이고, 애학투 사건의 경우 그의 검거일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으나, 1986년 10월말에 발생한 사건인데, 1986년 10월 31일부터 천 명 이상의 인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검거가 시작되었던 사건이고 안희정 역시 86년에 검거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11월 안에 검거되었을 가능성이 많아,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시점이 1987년 9월이므로 대략 10월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사상범으로 면제였다기보다 범죄의 분류를 떠나서 법률상 군대를 못가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참고로, 수형생활 6월~1년 6월 사이는 공익근무요원이 된다.[16] 그나마 남경필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 정치 생명이 끝난 건 아니나, 안희정은 어떤 확정적 계기가 없다면 아직까지는 정치적 재기가 거의 불투명하다는게 중론. 그도 그럴것이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무죄가 나왔거나 누명이 벗겨진 사람들만해도 상황이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인들의 경우 어떤 큰 사건을 계기로 추락할 경우 회복하기가 비 정치인들보다 더 어려운 까닭이다. 게다가 미투로 대변되는 일련의 사례로 볼 때 성범죄에는 더욱 엄중하다.[17] 여담으로, 안희정 지사와 홍석천은 고교 동문이다.[18] 그런데 이후 성폭행 사건이 불거지면서 지지자 사이에 돌은 찌라시는, 이 둘은 15년 전부터 이미 별거 중이었던 쇼윈도 부부였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치적인 퍼포먼스. 분명한 것은 충남 지사 재직시 자녀들의 중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라며 분당에서 별거 중이었던 건 사실이란 점이다. 주말부부였다고는 하지만..[19]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20]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21]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22]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3]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24]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6] 2018.03.06: 더불어민주당 출당/ 2018.03.06: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