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2.1. 국회 입성까지
1965년 2월 28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중학생 때 원주로 올라와 원주중학교,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공장노동자로 일했으며[1] 현역 판정을 받고 징집되었으나 손가락 절단 사유로 귀가조치된 뒤 면제 판정을 받았다.[2]
1988년 노무현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 보좌진이 되어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뒤 비서 및 참모로서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좌희정 - 우광재' 라는 타이틀로 노무현의 최측근이 되었고 지금도 친노의 핵심으로 분류된다.[3]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되었으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에 출마,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용학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다.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참패하였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하지만, 2009년 민주당을 덮친 박연차 게이트로 인하여 수사를 받게 되었다. 정치활동에 있어 '''시한폭탄'''을 안게 된 셈이다.
2.2. 강원도지사 당선
-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여,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계진[5] 의원과 대결하게 되었다. 사실 강원도는 전반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어 민주당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낮은데다 그동안 민주당에서 강원도지사 후보로 공천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버리는 카드였기 때문에 이광재의 강원도지사 당선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더군다나 박연차 게이트로 인하여 정치활동에 큰 부담을 진 상황이다보니 매우 불안한 승부였다.
하지만, 강원도는 야심차게 준비하던 의료단지를 대구광역시에 빼앗기는 등 이명박 정부로부터 홀대를 받으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는 시점이었다.[6] 그런 상황에서 이광재가 강원도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데 대한 믿음에다가[7] 강원도 출신 거물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는 도민들의 열망이 표로 결집되면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서도 대권주자급 거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강원도에서도 대권주자급 거물이 나와야 한다."'''라는 인물론을 평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민주당 후보 이광재가 한나라당을 제치고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53%대의 여유있는 득표율로 말이다.'''
특이하게도 북한과 인접한 접경지역을 제외하고는 영서-영동 가릴것 없이 득표수가 앞서는 양상을 보였는데 강원도 빅3인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8] 모두에서 이광재가 앞서면서 사실상 강원도 전역에서 승리한거나 마찬가지. 그리하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와 함께 친노의 화려한 부활을 장식했다.
2.3. 터져버린 시한폭탄과 그 이후
앞서 서술했다시피 의원시절 박연차 게이트로 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물론 철도 사업 등등 현안이 산더미같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도지사 직무가 정지된다면, 강원도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재보선이라도 실시된다면 이에 따른 정치, 경제적 파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국 당선된지 불과 1개월 뒤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도지사 직무가 정지되었다. 직무정지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헌법불합치가 나와 잠시 업무에 복귀하였으나, 이듬해 초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되면서 결국 취임 7달 만에 '''지사직을 상실'''하게 되었다.[9] #[10]
3개월 뒤 치러진 강원도지사 재선거에서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한나라당 엄기영[11]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이광재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분석도 제기되었으나, 이후 강원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점을 들어 그냥 엄기영이 불법 선거운동 등으로 자폭한 결과라는 반론도 있다. 어쨌든 최문순 지사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역대 두 번째 3선 강원도지사'''가 되면서 강원도지사 자리를 계속 지켜냈다. 이광재가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던 의미는 있는 셈.
사면복권이 없는 이상 형 확정일로부터 10년 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으므로, 2021년 2월까지는 정계에서 사실상 강퇴된 상태. 현재는 강원도 내에서 강연을 여는 등 소소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2015년 광복 70주년 광복절 특사 대상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불발되었다. #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9년 3·1절 특별사면 대상으로 또 한번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아예 정치인 전체가 특사 대상에서 빠지면서 또 다시 불발됐다. #
강연과 동시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이끄는 싱크탱크인 여시재에서 원장직도 맡고 있다. 여시재 원장을 맡기 이전에는 한국에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중국으로 건너가 칭화대학에 2년 머물렀다고. #
2019년 6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송인배의 1심 판결에서 이름이 재등장했는데,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소유의 골프장에 양정철, 안희정 등과 함께 고문으로 '''이름만''' 올려놓은 채 돈을 받아왔음이 이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송인배와 달리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소시효인 7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검찰에서는 관련 자료만 확보한 채 수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1, #2
2.4. 특별사면 이후
2019년 12월 30일,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선임되어 강원 권역을 맡게 되었다. 이로써 9년만에 공식적인 정계 복귀를 했다. 그리고 원주시 갑 선거구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본래 선거구는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 이었지만 해당 선거구에서 원경환 前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다 지역구가 너무 넓어 오랜 기간 정계를 떠나있던 입장에서 부담이 큰 탓으로 보인다. 한편, 20대 총선에서 원주 갑에 출마하여 134표 차이로 아깝게 패배하였던 권성중이 이광재 전략공천설에 반발해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우순 전 의원과 경선을 치러 승리하면서, 2010년 강원도지사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한지 10년만에 국회 재입성에 도전하게 되었다. 결국 본선에서 당선되면서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다만 생각보다 표차가 크지 않았던데다,[12] 춘천에서 재도전하여 승리한 허영이 의석을 추가하고 송기헌이 옆동네를 지킨 것 외에는 다른 지역구를 민주당이 가져오지도 못하는 등 생각보다 이광재 바람이 불지는 않았다. 특히 그의 옛 지역구였던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에서 여권의 분열로 인해 승리를 놓친 게 컸다. 다만 고성군수와 횡성군수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는 그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다음 지방선거때 강원도지사 후보로 다시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3선을 한 관계로 더 이상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선된다면 재선이며, 3기 연임 초과 금지 규정에 따라 이론적으로 4선까지 가능하다.
당선 인사에서 강원도지사 출마설에 대해 원주시의 발전을 이뤄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정치신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겠다면서[13] 여야 모두가 함께하는 공부 모임을 만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
제21대 국회 전반기 알짜 상임위라 불리는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배정받았다.
3. 이야깃거리
- 최재성 전 국회의원과 매우 닮았다. 같은 당에다가 불교 믿고 군 면제 받은 같은 65년생 정치인이라서 더 그런 듯.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자신이 최재성으로 착각당하기보단 최재성이 자신으로 더 착각당하는 편이다. 2004년 두 사람 모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초선 의원을 지낼 때는 어떤 네티즌이 최재성 의원의 홈페이지에 대놓고 이광재 의원과 쌍둥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올리자 최 의원이 직접 그런 얘기가 많은 걸로 알지만 잘생긴 최재성에게 이광재 의원이라고 하는건 좀 실례가 아닌가 싶다는 답글을 올린 바 있다. 구별법은 오른손 검지의 절단 유무. 얼굴만 보면 최재성의 얼굴이 좀 더 하얗고, 이광재는 피부가 좀 더 매끄러운 편. 또한 최재성은 눈썹이 약간 처졌지만 이광재는 그렇지 않다. 요새는 두사람 다 나이가 들면서 인상이 달라지기도 했고, 접점도 그렇게 많지 않은 관계로 닮았다는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 강원도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했기에 강원도에서 여전히 인망이 좋다. 강원도민의 글 그리고 댓글에 따르면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이광재 사무실에 보내고 봤을 때도 있었다고 하며, 강릉시에서도 도내 타 지역만큼은 아니지만 여론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 다만 긍정적인 여론과 달리 부정적인 여론도 매우 많다. 아무래도 도지사에 당선된지 1년도 안 돼서 비리혐의로 갈려버리는 바람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강원도 정계의 아이콘이란 점을 이용해 타 지역 민주당 후보들의 지원유세도 다녔다. # 그리고 총선 직전에는 72시간 논스톱 유세를 하기도 했다.
- 그의 슬로건인 강원의 아들은 사실 중의적 표현이다. 본인이 강원도 출신인 것도 있지만, 부친의 성함을 인용한 것이기도 하다. 부친의 성함이 나온 기사
- 허영과는 구면으로, 허영이 이광재의 강원도지사 선거 유세팀장이었다. 10년 뒤 이들은 21대 총선에서 함께 당선되어 국회에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 그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노무현이 험지 낙선의 아이콘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경상도 다음가는 진보진영의 험지인 강원도에서 전승을 거뒀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오히려 지난번 총선때보다 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지역구 관리를 매우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유명하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라도 의원 열명을 합쳐도 이광재 한명을 못 이긴다는 말도 있었고, 남들이 지하철 끌어올 때 이광재는 올림픽을 끌어왔다. 예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릿수를 끌어온다. ###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1] 이 과정에서 경찰에 끌려간 적이 많은데, 한 번은 취조받던 도중 형사가 탕수육과 소주를 시켜줘서 먹다가 '''"광재야, 내 아들이 고3인데 (너처럼) 명문대 가려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겠냐?"'''라는 말을 건넸다고. 이 때를 계기로 이광재는 자신을 악독하게 대한 독재정권 치하의 경찰들도 결국 '''누군가의 아버지'''임을 느꼈으며, 이런 경험 탓인지 국회의원 시절에 이념 논쟁보다는 자기 지역구를 챙기는 일에 더 집중했고 그 외에도 성향이 리버럴에 가깝다.[2] 밝혀질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고, 이광재를 공격하는 주요 사안 중 하나가 되었다. 군면제를 위한 고의성을 두고 논란이 되었는데, 이광재 본인이 해명을 했지만 일관성없는 해명 때문에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결국 학생운동 당시 보안사에 끌려가면 동지의 정보를 불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당시에는 '운동' 경력이 있는 학생은 입대 후 보안사에 끌려가기 십상이었다. 그런 역사적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지 않은 채 어느 언론은 이광재가 고의로 군을 기피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당시에는 군대 가고싶지 않으면 감옥에 가면 됐었다. 백만학도 핵심 지도부였던 그가 감옥가는건 일도 아니었다.[3] 다만 진보적인 친노 지지층에게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이광재가 참여정부를 삼성공화국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다.[4] 다만 노무현 정권의 평창올림픽 유치는 실패로 끝났고, 이명박 정부에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5] 강원도 원주와 KBS 앵커 출신으로서 원주시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었다. 훗날 이광재 도지사직 하야 후 재보궐선거에서도 공천제의를 받았다고 알려졌으나, 본인은 불출마를 결정.[6] 지역에서 당에 충성을 했음에도 그저 봉(?) 취급을 받아 불신하는 현상은 호남이 민주당계 정당을 대하는 현상이었다.[7] 당시 선거 분위기 자체가 '''이광재 vs 한나라당'''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세는 별로였지만 이광재 개인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호감은 매우 높았으며, 지방선거 직후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는 한나라당 당직자가 '''"강원도에서는 이광재가 '신'이더라."'''는 명언(?)을 남겼을 정도.[8] 보수성향이 가장 짙은 곳이라 가장 의외라는 결과가 발생한 지역이다. 그러나 영서-영동의 갈등으로 영동에서 영서권을 떨어뜨리기 위해 비 영서권 출신을 뽑는, 지역갈등의 혜택을 역으로 받았다는 분석이 있다. 이광재 본인도 평창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영서 출신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원주의 정체성이 강한 이계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9] 민주당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강원도 민심 또한 '이광재 죽이기'라며 반발하는 기류가 거셌다.[10] 그리고 이는 다름아닌 김진태의 정치 입문 계기가 되었다. 이광재의 일로 실망한 강원도민을 보고 환멸을 느껴서라고.# 그러나 김진태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제대로 흑화하여 온갖 트롤링을 저지르며 자신도 시민들을 대실망시켰고, 결국 보수 텃밭이라 불리던 춘천시를 통째로 더불어민주당에 갖다 바친 꼴이 되고 말았다.[11] MBC 뉴스데스크 최장수 앵커로 유명했던 그 사람 맞다[12] 권성중이 9.2%를 갈라먹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두자릿수 격차가 났다.[13] 이 말은 이광재보다 더 오래 원외를 떠돌다 복귀한 구 정치 아이돌도 얘기한 바 있다.[14] 2010.4.28. 사퇴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15] 2011.1.27. 자격상실 (정치자금 수수)[16] 10년 만에 원내 복귀[17] 10년 전 강원도지사 선거 당시 사용했던 사진을 재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