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호텔
community hotel
1. 개요
도시재생 방법론 중 하나로, 노후되거나 쇠락한 주거지역을 호텔화하는 재생활동을 통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인구유입을 유도하는 사업.
2. 상세
일본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영화제작소 '눈' 강경환 대표가 정선군 골목재생 컨셉으로 소개한 이래 2010년대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관련사업과 연계하여 중앙정부의 보조금이 들어간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로 전전긍긍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기사회생을 위한 핫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보다보면 심지어 서울특별시에서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업. #
일반적으로 호텔이라는 숙박시설의 개념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건물 안에 숙박공간, 취식공간, 휴게공간, 놀이공간, 소비공간, 안내소 등이 모두 모여 있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마을호텔이 추구하는 것은, 굳이 하나의 건물에 그 모든 기능들을 우겨넣지 말고, 어차피 그 지역이 기존에 갖고 있던 자원들이 있으니 그걸 활용해서 각 기능들을 길가 위에 늘어놓자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호텔은 흔히 "누워 있는 호텔" 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기존 자원들을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즉 기존에 그 지역에서 음식점을 하는 영세 점포가 있다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시설 및 위생 수준을 업그레이드하여 호텔 조식 서비스를 담당하게 하고, 비어 있는 감시초소는 관광안내소로 꾸미며, 주인 없는 빈집이 있다면 체크인 용도의 시설로 활용하고, 기존 상가건물 2층이 유휴 상태라면 그곳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호텔경영에 대해 회의하는 사무실로 쓰는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에서 건물 리모델링, 환경 정비, 도로 재포장 등은 필수이다. 단지 마을호텔의 방침은, 호텔 짓겠다고 이걸 전부 불도저로 밀어버리지 말고, 최대한 꾸미고 살려 보자는 것이다.
투숙객 입장에서는 엘리베이터 없는 호텔을 경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도로 초입의 건물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고, 골목 안쪽에 있는 노란 집의 방에 들어가서 짐을 푼 다음, 건너편 갈색 벽돌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식으로, 마치 호텔 건물 내부에서 엘리베이터로 여러 층을 돌아다니듯이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마을호텔의 철학은 도시재생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기에 마을호텔이 갖는 장점은 상당 부분 도시재생의 장점을 공유한다. 기존 마을경관을 가능한 한 유지할 수 있고, 리모델링을 통해 '인생샷 포토존' 같은 신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관 주도적 도시 재개발 사업과는 달리 주민들이 직접 뭉쳐서 개발을 주도하므로 마을공동체 활성화에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 염려 없이 마을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주민들이 직접 누릴 수 있다.
기존의 호텔과는 달리 폐쇄지향적 공간이 아닌 개방지향적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뭔가를 하려는 투숙객들이 자연히 골목으로 몰려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마을호텔은 이 과정에서 투숙객들이 서로 간에, 그리고 투숙객과 지역주민이 서로 간에 접촉하고 교류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을호텔 골목길을 살펴보면 종종 전통 바닥놀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다함께 어울려서 왁자지껄하게 놀라고 만들어 놓은 것. 마을호텔은 그 인간관으로서 사생활을 추구하는 개인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공동체적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많은 지자체들과 주민공동체들이 마을호텔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지만, # 사실 국내에서 마을호텔 1호점이라고 부를 만한 대표성 있는 모범사례로는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리를 들 수 있다. #1 #2 #3 이곳은 폐광 이후 강원랜드로도 좀체 활성화되지 않는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며 공무원들도 직접 설득해 가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례다. 2019년 6월에 개장했지만 이미 개장 이전부터 2018 국가균형발전위원장상, 2018 도시재생 한마당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는 등 일약 화제로 떠올랐다.
그 외에도 공주시 봉황동 역시 다크 투어리즘을 접목한 마을호텔을 운영 중이다. # 한편 연천군 백의리에서도 2020년 5월부터 공유경제와 융합한 마을호텔 사업에 착수했으며, 인근 열쇠부대 장병들의 외박 수요에 부응하는 기능도 수행한다고 한다. # 어느 사업이나 다 그렇지만 마을호텔 역시 후기로 갈수록 점차 '버전업' 이 되면서 다양한 키워드들이 함께 결합되고 비슷한 기존 사업들이 통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관련 도서로는 《공간은 경험이다》, 《골목길 자본론》 등을 참고할 수 있다.
3. 유의점
우선 마을호텔이 본디 주민주도적 도시재생사업의 한 방법으로 출발했음이 중요한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마을호텔 후발주자 지자체들일수록 점차 관 주도적으로 추진하려는 경향이 없잖아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마을호텔은 상당한 수준의 주민역량을 요구하며, 그런 역량 없이 마을호텔을 추진하려다가는 지자체가 주민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끌고 가는 상황(…)이 매우 쉽게 연출될 수 있다. 마을호텔을 조성한다면서 정작 관에서 지도 펴 놓고 선 쓱쓱 그으면서 여기다 조성하자, 이 건물은 이걸로 꾸미자, 하는 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결정해 버리면, 그건 마을호텔로서의 의미가 없다.
마을호텔이 추구하는 인간관이 과연 현대 대한민국 여행객들이 공유하는 문화에 잘 부합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마을호텔은 마치 남유럽 뒷골목 술집 거리에서처럼 낯선 사람들끼리 테이블 합석을 하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 를 나누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020년대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시작하고 있으며, 왁자하게 모여서 떠드는 여행은 점차 인기를 잃고 있다. 게다가 소위 호캉스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으며 침대 속에서 휴식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투숙문화도 떠오르는 중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을호텔에 대해 필연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슈에 관심이 많다면 눈치챘겠지만, 마을호텔은 전형적인 '하드웨어' 성 사업으로서 추진될 위험이 있다. 대개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성공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세간의 주목도 더 많이 받긴 하지만,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성공하기가 어려우면서도 관심도 잘 끌지 못한다. 실제로 대중이 마을호텔에 대해 호응을 보내는 것은 그저 "골목길이 예쁘다" 정도일 뿐, 마을호텔의 취지, 즉 '호텔에서 머무르는 동안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울린다' 는 경험 자체에까지 동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마을호텔은 단순히 동네를 꾸미고 건물을 정비하고 화분을 늘어놓고 페인트칠을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외지 투숙객들이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고민이 없다면 결국 기존의 그 진부하던 게스트하우스 건설 사업과 노후지역 도로경관 정비사업을 합쳐놓은 것과 똑같아진다.
같은 맥락에서, 과연 투숙객들이 마을호텔에 머무르는 동안에 '호텔급' 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마을 주민들 하나하나가 호텔 직원급의 접객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마을호텔 사업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산골짜기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중국집을 마을호텔 중식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히 시설만 현대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투숙객들은 호텔의 전문 요리사가 내놓는 수준의 요리를 기대할 것이기 때문. 그렇다고 그런 셰프를 외부에서 모셔오는 건 지역주민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니, 결국 지역주민을 그 정도 수준까지 훈련시키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마을호텔은 1~2년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오랜 준비를 거쳐야 하는 대규모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