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1. 개요
상류층(신사)을 뜻하는 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낙후된 지역을 고급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선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몰리고(그러니까 그 지역을 젠트리투성이, gentry - fication이 되고) 지역이 발전하면서 기존에 거주 중이던 원주민을 밀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의 지리학자 R. Glass가 최초로 사용했다.
눈에 띄는 거대 건축사업은 없지만, 원주민 저소득층이 타 지역으로 밀려나고 토지 건물주와 고소득층 이주민으로 지역 주민 구성이 바뀌어간다는 점에서, 재개발하면서 소득 수준이 여의치 않은 원주민이 밀려나는 것과 비슷하다.
2. 원인
유명세를 타게 된 지역은 수요가 많다. 대규모 재건축이 되지 않는 이상 공급의 증대는 어렵고, 이루어지더라도 한계가 명확하다. 이렇듯 공급은 변함 없는데 수요는 끊임없이 늘어나니 임대료는 폭등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실제로 유명세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이 거리를 가꿔왔던 원주민이 이렇게 폭등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매출이 좋더라도 소상공인의 이윤에는 한계가 명확하고, 갑자기 폭증한 임대료를 지불할 목돈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결국 쫓겨난다. 이렇게 쫓겨난 원주민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다시 주변 거리를 가꿔나가는데, 거기서 '''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그곳에서마저 쫓겨나는 웃픈 일도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그 건물을 아예 매입해버리지 않는 이상 죽 쒀서 건물주에게만 주는 게 반복된다.
이렇게 비싸진 동네는 두가지 테크트리를 탄다. 근본적인 경쟁력이 있어서 흥한 지역은 원조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인 명동처럼 계속 성장하고, 일시적인 관심으로 인기를 끈 지역은 마치 주식의 테마주처럼 반짝 떴다가 다시 쇠락한다.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 온 신규 사업자는 임대료 지불 능력이 있는 사업자이며, 이 경우 상당수가 이미 대기업화된 프랜차이즈 사업자인 경우가 많다. 대다수 사람들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를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색 있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이런 것만 잔뜩 있는 거리는 '''개성도 없고 볼거리도 없으며 임대료는 감당 못할 수준으로 높아진 상태다.''' 지역의 입지가 근본적으로 변한 일부 지역이 아니라면 당연히 사람은 이전에 즐기던 즐길 거리가 사라지자 잘 오지 않고, 지역은 서서히 쇠퇴한다. 임대료를 올려받은 건물주도 일대가 쇠퇴하면서 함께 망하게 된다. 결국 모두가 손해만 보는 결말이다.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더니 모든 음식을 자기가 독차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
어찌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거주민이 지역을 지나치게 잘 가꿨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지대가 오르게 되고, 이를 뒷받침하듯 기존에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를 만들었던 공간이 오른 지대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렌차이즈에게 점점 밀려나는 동네는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불린다.
또한 이는 일반 주민 뿐만 아니라 주민과 어우러져서 독특한 문화를 가꾸던 힙스터 및 예술인에게도 해당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힙스터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이 되면 주민과 어우러지던 예술인도 친자본적인 예술인을 제외하면 보통 변두리로 밀려난다.
흔히 이렇게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이 새로운 거리를 가꾸면서 결과적으로 거리 발전의 영역이 확산되면서 사회 전체로는 이익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존재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쫓겨나는 사람이 충분한 보상을 받고 밀려나고 있느냐에 있다. 대부분 이렇게 쫓겨나는 사람은 자신이 지역을 가꿔놓은 노력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돈만을 받고 밀려나고 있다. 이는 이렇게 쫓겨난 사람이 지역 발전에 그만큼의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을 밀어낸 해당 지역의 지주가 이익을 상당히 많이 가져가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고, 결국 이는 계층 이동의 어려움을 증가시키면서 빈부격차의 확산에 영향을 준다.
게다가 주도적으로 자영업자가 지역 발전에 공헌해봤자 이득을 보는 건 해당 지역의 지주 뿐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 자영업자가 한데 모여서 주도적으로 지역 자체의 발전에 공헌하려는 노력을 덜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봐도 거리 발전이 확산되는 데에 있어서 저해요소가 된다.
즉 젠트리피케이션 자체를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주장하며 그 장점을 옹호하려 한다면, 적어도 쫓겨나는 이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에 대한 담론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부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고[1]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진짜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는 영역인 것이다.
서울 연남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거주민이 쫓겨나고 건물이 리모델링되어 가게가 입점한다. 그리고 그 가게는 소음과 주차 문제, 흡연 문제 등등 주변의 기존 거주민과 충돌을 일으키며 돈을 벌고, 남아있는 거주민은 돈 대신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가 발생할 때는 '''약자 코스프레'''를 행한다.
일반적으로 빈 자리에는 소위 '백종원 식당'으로 대표되는 중대형 프랜차이즈가 상권을 장악하지만, 그 중대형 프랜차이즈조차 언젠가는 임대료를 감당 못해서 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그 시기 전에 입점 목적인 홍보 효과는 끝난다. 그리고 소규모 점포가 점차 주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상권도 같이 이동하고,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임대인이 줄다 보니 공실률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한다. #
주택의 경우에는 재개발이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의 일부 동네, 즉 강북구 미아동, 관악구 봉천동, 신림동, 노원구 상계3~4동, 동작구 노량진동, 성북구 장위동, 양천구 신월6동, 영등포구 신길동 등은 낙후되고 오래된 주택가가 많다. 6.25 전쟁 직후 이촌향도 현상이 많이 발생한 데다, 당시에는 아파트를 짓는 기술도 부족해서 대체로 단독주택을 많이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허가 불법 주택도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 등의 많은 대도시에서는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를 많이 짓는데, 큰 평수의 아파트, 고급 브랜드 아파트가 세워져 집값이 큰 폭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낮다고 한다.
이에 지자체 정부에서는 지역 활성화를 통한 도시의 번영과 세수 확보를 위해 아예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 이화 벽화마을과 광주 펭귄마을 관트리피케이션 참고.
3. 불가피한 현실
젠트리피케이션은 어쩔 수 없는면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어원에서 볼 수 있듯 민간 주도로 도심을 개발하는 현상이다. 기존에 있던 핫플레이스의 집값이 오르면, 자연스레 원주민은 그 주변부로 몰리거나, 다른 교통은 좋으나 개발은 안 된 곳으로 이주하기 마련이다. 정부 주도이긴 하지만, 강남이 개발되었던 원동력도 강북에 있었던 각종 편의 시설과 기업이 이주해서 그렇다. 만약 이런 이동이 없었더라면 강남이 개발이 되었을까?
어느 곳을 가든지 변화는 불가피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고 반드시 거리가 몰개성해지는 건 아니다. 특색 있는 거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기 때문에, 한 구역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특색을 잃어도 곧 다른 특색 있는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4. 보완책
4.1. 재개발 및 재건축을 통한 부동산 공급량 증대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재개발, 재건축을 통한 지역 공급 확대이다. 재개발, 재건축은 '''필연적으로''' 해당 건물에 대한 '''전면 철거를 동반'''한다. 실제로도 재개발, 재건축은 모든 이해 관계자를 한 차례 지역에서 쫓아냈다가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통해 새로운 이해 관계자를 통해 다시 지역을 리셋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일단 해결된다. 아예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던 주체(건물주, 임차인)가 한 차례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이해 관계자의 의견 충돌, 지역에서 쫓겨난 이에 대한 보상 문제 등 때문에 무작정 시행하기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정책 외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다. 다름아닌 '''수요공급 법칙에 따른 도태'''. 제 아무리 부흥하는 상권이라고 해도 한정된 인구수 안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유동인구에는 한계가 있고, 임대료 상승으로 해당 지역을 부흥시킨 원 요소가[2] 다른 곳으로 이주해버리면 소비자도 발길을 돌린다. 대개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원주민을 쫓아낸 자리에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카페나 로드샵이 채워지고 지역 고유의 개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른 상권으로 쉬이 대체된다는 것도 방문객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요인. 그러면 결국 해당 지역의 경제성이 사라지며 임대료는 다시 하락하게 된다. 해결이라기 보다는 '''몰락'''이지만, 자본주의로 흥한 자가 자본주의 때문에 망한다는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다. '○○단길' 유행을 만들어낸 원조인 경리단길이 실시간으로 이런 쇠퇴의 길을 걷는 중. 문제는 임차인이 폐업해도 한국 부동산의 고질적 악습인 권리금이나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값이 떨어진다''''며 임대료를 안 내리고 버티는 건물주 때문에 높은 공실률로 지역 자체가 유령도시화된다는 것.
재미있는 건 이렇게 유령도시화하면 세입자를 다 쫓아낸 건물주는 '''재개발을 추진한다!''' 위에서 건물주도 결국은 손해보게 된다고 썼는데, 좀더 교활한 자들은 이런 식으로 손을 쓴다. 세입자가 재개발, 재건축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러 임대료를 올려서 세입자를 다 쫓아내고''' 건물주끼리 모여서 재개발 조합을 설립, 엄청난 속도로 재개발을 추진하는 것이다. 게다가 건물주도 할 말이 있는데, 이른바 '''대형 상권에서는 건물주조차 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마름 정도밖에 일을 못한다. 대형 상권이 형성되면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데, 이런 대형 상권의 건물은 건물주조차 시세 폭등과 그에 따른 세금 및 각종 수수료 상승 등 제반비용을 못 버틴다. 그럼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을 이른바 '''부동산 펀드(리츠, 사모펀드)에 매각해버린다!''' 덕분에 건물주조차 실권을 박탈당하고 실질 소유주는 금융회사가 된 경우가 태반이다.
부동산 펀드는 금융업계이므로, 금융업계 입장에서 세입자는 '''무조건 다 쫓아내고''' 재개발 이익을 노리는 게 더 합리적이다. 고작 월세 수천만원 받자고 금융업계가 부동산하는 게 아니다. 금융업계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하여 '''최소 수천억원, 최대 10조 원'''에 달하는 개발차익을 노린다. 돈 벌 곳을 찾아다니는 금융업계에 의해, 부동산 개발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2014년 28조 원에서 2019년 100조 원을 돌파하여 사상 최대치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기사 게다가 이런 부동산 펀드 진입을 완화하겠다고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캐피탈사 진입 허용이라는 규제 완화책을 들고 나온다. 당연히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는 더 많은 규제완화를 해달라고 한다. 덕분에 자산운용사는 주식, 채권 대신 부동산 펀드에 올인하는 실정이다. 기사
4.2. 부동산 가치 상승에 기여한 임차인에 대한 보호법
정치권에서는 임차인이 투자한 만큼 그 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는 독점 권한을 부여하는 쪽으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임차인이 동네를 가꿔서 부동산의 가치를 올린 만큼 일정 기간 동안은 그 이익을 보장해주자는 취지.
구체적으로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여 임대료 인상 5% 내 억제, 계약 갱신 청구권 10년 연장 등의 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
5. 사례
5.1. 한국
'''가나다순'''으로 배열. 현재진행형이 있고, 이미 상권이 갈아엎어진 경우가 섞여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상권 격변이 확실히 자리 매김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볼드 처리함.
- 서울특별시
- 개포동 -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철거되기 이전의 개포동 주공아파트에 거주하던 사람들과 기존의 상가 상인들은 서울의 다른 구나 경기도로 밀려났다.
- 공덕시장 - 공덕역 벨트: 이쪽은 홍대거리 재개발-임대료 상승으로 밀려나는 이들과 인근 아현동 재개발 철거민들의 이해 관계, 그리고 공덕역 개발 주체(구청/이랜드)가 얽혀있다. 상세는 공덕역의 경의선 공유지 문서 참조. 2020년 4월 시민단체가 마포구의 최후통첩에 의해 물러남으로써[3] 재개발 확정.
- 대림동 차이나타운: 본격 한국판 신오쿠보. 원래 평범한 서민 주택가와 재래시장이 있던 곳이었으나 1990년대 조선족의 유입과 함께 분위기가 변하더니 2010년대 와서 중국 한족 자본이 유입되어 임대료가 급등하는 등, 다른 의미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 대학로: 본래 대학생과 연극인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대학로 상권의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흔한 번화가로 탈바꿈했다. 연극 극장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나 연극 연습장 등 연극인의 공간은 이미 인근의 성북구 등으로 많이 이전하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력은 2010년대에는 낙산 인근이나 이화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하단 참조.
- 망원동
- 명동: 한국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조. 명동이 일제강점기 때[4] 번화했던 거리였고, 지금이야 생각하기 힘들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각종 미술, 음악 등 예술 분야의 중심지였다. 음악 감상실, 화구점, 화랑, 소극장 등 예술 관련 시설이 많이 있었고, 중국 대사관 근처에는 수입 서점도 많아서 외국물이 든 이들이나 1세대 오덕을 매료시켰다. 1970년대 이후 명동 땅값이 더욱 상승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인들이 대학로, 홍대거리 등으로 이전하게 된 것. 이후의 빈자리는 아시다시피 음식점, 각종 패션몰, 옷가게, 화장품 가게 등으로 상업 시설이 채워진 지 오래. 2000년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공시지가 1위는 항상 네이처 리퍼블릭 명동월드점 부지이다. 딱 젠트리피케이션의 형태가 된 것이다.
- 문래동 예술촌: 원래 문래동의 가난한 공장거리였으나,[5] 홍대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발한 이들이 흩어진 곳 중 하나로, 지하 공연장 등이 간혹 있다. 다만 상권의 흥행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상업화 재개발은 시간 문제가 될 수도 있다.
- 신사동 가로수길: 아이러니한 점은 가로수길 또한 처음에는 압구정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새로이 발달한 동네였다는 것이다.
- 샤로수길: 서울대학교 앞 거리로 서울대+가로수길이란 뜻.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많이 진행되었다.
- 삼청동
- 서촌
- 성수동 카페거리
- 신촌 상권: 대학로와 비슷한 양상이다. 지금도 대학생 상권으로서의 기능은 충실하나, 대부분은 먹자골목화.
- 압구정로데오역 로데오거리
- 연남동
- 용산 전자상가: 용산 상권 지형도 역시 복사 단속 등의 풍파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6] , 근래에는 용산 재개발 계획이 일부나마 부활된 탓에 빌딩과 호텔 등 신용산역 권역은 어느 정도 재개발이 되었다.
- 을지로: 복고를 지향하는 힙스터 워너비가 을지로에 익선동과 비슷한 개조한옥/인더스트리얼 카페 등의 공간을 내는 추세. 대표적으로 라이브 공연 술집인 '신도시'[7] 등이 있다. 익선동과 을지로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실제로 카페 주인이 같은 사례도 많다. 관련 기사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자(힙스터 수요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 내지는 해결사를 자처하며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이동하고 확장해 가는 모습을 2018년 현재 인스타그램과 패션 잡지, 그외 힙스터 SNS 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지역.
- 이태원동 경리단길: 예전에 유명세를 탔던 아기자기한 집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힙'한 상권은 해방촌으로 물러나면서 확장.
- 이화동 벽화마을: 2006년 정부가 2억5,000만원을 들여 마을 곳곳에 70여개 벽화를 그려 관광지로 조성한 이화동 벽화마을. 폭발적으로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과 쓰레기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던 주민이 벽화를 훼손하여 공동재물손괴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2,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주거 환경의 악화가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원 제기도 소용 없는 끝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 기사 관광객이 적으면 지역 부흥이 안 되고, 관광객이 몰리면 지역민이 피해를 받는 아이러니를 드러내준 사건이다.
- 익선동 한옥마을
- 인사동: 본래 화방이나 공예품점 등 전통 예술과 관련된 가게가 있는 문화 예술의 거리의 성격을 가졌으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이런 성격은 많이 사라진 번화가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샘플로 쌈지길이 있다. 그럼에도 전통 예술의 산실 이미지는 형식적으로는 남아있는 탓인지 외국인 관광객을 지금도 끌어모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 중림동: 서울역 7017 프로젝트로 인해 근년 내로 젠트리피케이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떠올랐다. 관련 기사 실제로 7017 주변의 빌딩 일부에선 고급 식당과 카페가 입점하기 시작했다.
- 피맛골
- 한남동
- 해방촌
- 홍대거리: 2010년대에는 반쯤 농담처럼 비교되었던 도쿄 시부야처럼 상업 중심화가 완료된 걸로 보인다.
- 홍대 두리반 분쟁
- 후암동
- 부산광역시
- 남포동
- 전포동 카페거리
- 광주광역시
- 경기도
- 전라북도
- 경상북도
-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
- 제주특별자치도
- 대부분 지역이 박물관 등의 관광 자원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되었다. 2010년대는 중국 자본으로 인한 친트리피케이션 소리도 곳곳에서 나오는 중.
- 애월읍 한담마을
- 우도
5.2. 미국
특히 2020년경에는 실리콘밸리의 부유층이 샌프란시스코의 집을 사기 시작하면서[8] 집값 폭등이 일어나 노숙자가 8000명 넘게 늘어났다. 이들이 용변을 보는 바람에 길거리가 인분으로 가득 차 도시 환경이 엉망이 되고, 마약에 취해 주사기를 돌려쓰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에이즈 공포가 확산되고 있고, 여성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및 절도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 밀려 비교적 조용하고 백악관, 미국 국회의사당, 박물관, 워싱턴 기념탑 빼면 볼 것 없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아주 오랜 기간 유지하였으나, 결국 사업체가 몰려들고 일자리 공급이 늘어나 도시가 매우 커졌다. 젊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거주 수요는 늘어났는데 공급은 부족하니, 중심가에 방 하나 딸린 아파트 월세는 평균 2천 달러를 훌쩍 넘는다. 이에 디씨 시내를 감당할 수 없는 인구가 버지니아, 메릴랜드, 디씨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다만 버지니아는 인프라가 원래부터 잘 구축되어 있어 빠른 속도로 집값이 올랐고, 결국 흑인 인구는 포토맥 강을 건너 디씨 SE 지역 외곽과 그 밑의 메릴랜드 Oxon Hill 등지로 밀려나 새로운 게토를 건설한다.
위 두 지역은 수도 워싱턴 DC와 인접한 지역이다. 정부 기관이 많이 위치해 있어 공무원과 정치인 등 유동인구는 원래 많았으나, 대부분 인근 버지니아 주, 메릴랜드 주 교외의 조용한 곳을 주요 거주지로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DC가 발전함에 따라 수많은 사업체기 오기 시작하고, 값비싼 디씨 시내의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젊은 직장인이 자가용 없이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이 두 지역을 선호하기 시작하고 몰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많은 흑인 인구가 밀려나고, 대대적인 재개발과 재건축이 일어나 주택 매매값과 월세, 물가가 폭등했다. 디씨 중심가보다는 덜 복잡한 데다 쇼핑하기도 좋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집값이 폭등. 심지어 최근 아마존이 알링턴 인근의 '크리스탈 시티'에 오기로 하면서 부동산의 거품이 거의 최고조에 달했다.
개판 오분전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젠트리피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다가, 최근에 성소수자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원동력으로 떠오르자 성소수자를 타깃으로 시도 중이다. 그 결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 물론 여전히 막장이어서 갈 길은 멀지만 재건 계획의 상징인 리틀 시저스 아레나가 개장하는 등 점차 할렘처럼 나아지고 있다는 게 천만 다행.
5.3. 영국
- 텔레토비 집(토비트로닉 슈퍼둠)
전세계 팬들의 사유지 침입으로 골머리를 앓던 땅주가 결국 철거시키고 호수를 조성했다.
6. 관련 문서
- 재개발
- 힙스터
- 도심 공동화
-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의 목표인 맛집 발굴 및 기존 음식점의 개선을 통한 상권의 부흥과 방송 홍보 효과는 결론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직결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홍은동 포방터시장이 좋은 예로, 방송 후에 모 돈까스집에 손님이 폭주하면서 전날 밤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대기줄 때문에 주변 주민 및 상인과 마찰을 빚게 되었으며, 방송 이후 시장이 뜨면서 부동산 임대료 상승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지역민이 피해를 입고 부동산에 거품이 끼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예가 되었다. 결국 이 돈까스집은 제주도로 이전하게 되었다.
[1] 대한민국 또한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2] 젊은 예술가나 소호점포 등.[3] 점거하고 있던 시민단체에서 마지막 순간에도 쫑페스티벌을 해서 빈축을 산거 빼면 별다른 충돌은 없었던듯 하다.[4] '혼마치'로 불렸다. 야인시대에 나오는 야쿠자파 이름이기도 하다.[5] 다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다.[6] 80년대부터 게임 장사를 해오던 이들 중 살아남은 가게는 그야말로 한 손에 꼽는다.[7] 원래는 성소수자 게이바였으나,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끝에 술집으로서의 신도시 소유주가 간판은 그대로 두고 인수. 술집 주인은 신도시가 게이바(?)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힙스터 수요의 음악 공연도 자주 벌어지는 편이며, 술집 주인도 권용만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8] 아이러니하게도 맨해튼이랑 맞먹는다는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조차 실리콘밸리에는 못 비비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임금 IT 종사자 중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집을 구하는 경우도 많아서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심화시키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