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미누스 다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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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Gaius Valerius Galerius Maximinus Daia)
'''생몰 년도'''
270년 11월 20일 ~ 313년 8월
'''재위 기간'''
305년 5월 1일[1] / 311년 5월 5일[2] ~ 313년 8월
로마 제국의 황제. 전대에 군인 황제 시대를 열어젖혔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같은 막시미누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므로 거기에 연이어서 막시미누스 2세라고 하기도 한다.[3]
로마시대 갈레리우스 황제의 외조카로 305년 외삼촌인 갈레리우스에 의해 동방 부제의 자리에 올라 이집트와 시리아의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308년 자신의 외삼촌에 의해 리키니우스라는 무명의 군인이, 전현직 여러 황제들을 소집한 회동에서 서방의 정제[4]에 오르게 되자 불만을 품게 된다. 그래서였는지, 동방 정제인 삼촌이 멀쩡히 살아있던 310년에, 자신에게도 정제 지위를 달라고 삼촌에게 요구했지만, 삼촌 갈레리우스는 정제의 희소성을 생각해서 딱 잘라 거절하고 대신 Filius Augusti(아들 황제)라는 칭호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막시미누스는 정제의 복장과 상징을 자기 멋대로 그냥 썼다고 한다.
기독교를 싫어해서, 외삼촌 갈레리우스가 사후 한 달 전쯤(311.4) 발표했던 기독교 관용령(Edict of Toleration by Galerius)를 그냥 무시하고 자신의 지배 영역에서 유혈 탄압을 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병사들이 기독교인들을 쫓다가 어느새 '''아르메니아 국경을 그냥 넘어가서'''(...) 아르메니아 쪽에서 크게 항의를 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사가 락탄티우스의 <박해자의 최후>(De Mortibus Persecutorum)에 의하면, 그의 최후에 대한 묘사는 삼촌 갈레리우스처럼 최대한 리얼하게 나와 있는데, 잘 죽었다고 비꼬는 것으로 보인다.[5]
311년 외삼촌 갈레리우스 사후 서방 정제의 직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방으로 오게 된[6] 리키니우스와는 관할권을 두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고, 2:2 구도가 되니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의 원리로 막센티우스[7]와 동맹을 맺게 된다. 하지만 막센티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패해 죽어서 먼저 떨어져 나갔고, 결국 313년 4월 30일 트라키아치랄룸(Tzirallum)에서 리키니우스에게 패하게 되면서[8] 결국 몰락하고 후퇴하면서[9] 니코메디아를 거쳐 그 해 8월, 소아시아 남동부의 타르수스에서 향년 만 42세로 죽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독(Poison)이 확실히 언급되었으므로, 독살이었거나 독으로 자살했을 것으로 보인다.[10] 당대의 자료인 위에 언급했던 <박해자의 최후>에서도 '그는 독을 삼켰다'고 하고 있다.

[1] 부제로서[2] 갈레리우스의 죽음 이후 정제로서, 하지만 이미 4두정치가 망가져서 2년 내내 정제위를 두고 리키니우스와 경쟁했기 때문에 애매하다.[3] 영어 위키백과에는 항목명이 막시미누스 2세로 되어 있다.[4] 저 회동 자체가, 4두정치를 지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스스로 4두정치를 파괴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제를 부제에서 올려야지, 웬 듣보잡을 자기 친구라고 해서 바로 정제로 올렸기 때문이다.[5] 음독 후 며칠에 걸쳐서 정신착란, 발작, 흙 집어 먹기, 맨벽에 이마 찧기, 안구에서 빠져나온 눈알 등등... [6] 서방에는 경쟁자가 콘스탄티누스, 막센티우스 둘인데 동방에는 경쟁자가 다이아 하나인 점 때문으로 보인다.[7] 원래 리키니우스는 서방 정제로, 서방에서 가장 중요한, 즉 정제가 영유할 땅은 당연히 로마 시가 있는 이탈리아고, 그런 이탈리아는 식량 안보 및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북아프리카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원래라면 리키니우스의 땅이었을 곳을 막센티우스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8]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 근교라, 이 전투가 역사상 여러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 전투 목록의 처음을 장식한다.[9] <비잔티움 연대기>에 의하면 노예로 위장하고 달아났다고 한다.(...)[10] His death was variously ascribed "to despair, '''to poison''', and to the divine jus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