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
萬景臺 / Mangyongdae
북한산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 800m, 북한산의 봉우리 중 콩라인이고 딸린 봉우리로 용암봉이 있으며, 주변의 면적으로는 가장 크다. 도선사가 이 봉우리 바로 밑에 있으며, 이 일대는 무당골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곳을 지나가는 정규탐방로는 도선사-용암문, 용암문-만경대 허릿길-위문-백운대, 백운대 탐방지원센터-하루재-백운산장-백운대가 있다. 낭만길이라 부르는 백운산장-용암문 구간의 비정규탐방로가 있으며, 명물 '입술바위'도 무당골 안에 있고, 지봉, 곰바위능선이 있다. 위문-만경대-용암봉-용암문의 릿지코스가 있다.
도선사 뒷편 무당골은 절경이 많으나, 그만큼 위험한 곳도 많으며, 1960~1970년대 쓰여진 정규탐방로 안내판과, 한독 훼스탈 안내판도 있으며, 북한산에서 가장 외진 장소 중의 하나.
전체적인 면적은 도선사-용암문-만경대 허릿길-위문-백운대-백운산장-하루재-백운대 탐방지원센터-도선사를 이루는 곡선 안에 있는 지형이 모두 포함된다. 이 곡선을 모두 이으면 하나의 거대한 탐방로가 되며, 전체길이 6.4km.
'무당골'인 이유는 1710~1980년대, 무당들이 이곳에 와서 푸닥거리를 많이 벌이던 장소이고, 2020년 평일에도 가끔 무당들이 푸닥거리나,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용암문으로 정규탐방로 초입 오른쪽으로, 도선사에서 1873년 타계한 승려의 비석인 '김상궁바위'라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링크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1] 에 위치한 사적지(?).
보통 사적이나 명승지 정도로 오해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는데, 이곳의 정체는 바로 '''김일성의 생가'''[2] 다. 김일성이 태어났을 당시의 주소는 평안남도 평양부 고순화면 남동.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에도 평양에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에서는 당연히 이곳을 절대 성역으로 여기고 깨끗하게 복원, 단장하고 초가집 그대로 복원해놓았다. 금수산태양궁전과 함께 김씨 가문 우상화의 상징이며,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무조건 이곳을 관람해야 했다. 한국 NL 통일운동 인사 중에 방문 사례도 있었는데, 2001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방북 당시 이곳을 방문 후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식의 문구를 써서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는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었다. 결국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일성 생가 인근에는 '천석식당'이라고 해서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이 있다. "내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국수 한끼라도 대접할 곳은 있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72년에 만들어진 식당이라고 하며, 옥류관과 함께 잘 알려진 평양의 식당이다.
북한에는 이곳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나 조직이 많이 있다. 유명한 것만도 평양의 행정구역인 만경대구역부터 시작해서 평양 지하철도 만경대선, 만경대혁명학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만경대 유희장 등이 있다. 그 밖에 "만경대OO공장" 따위는 워낙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
왜성, 청태종공덕비 등 유적 보존이 꼭 역사에 긍정적인 부분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므로 통일 후에는 그래도 한국사에 좋든 나쁘든 한 획을 그은 김일성이란 인간의 생가라는 특성상 일단 유적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있다. 강원도 화진포에도 김일성 별장이 관광용으로 남아 있으니.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에 위치해 있다. 1번 항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조선 양식의 누각으로 광해군 대에 세워졌으며, 허목이 이곳을 방문한 뒤 이름을 만경(萬景)으로 붙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43년 후손들이 중수한 것이다.
1. 북한산의 봉우리
북한산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 800m, 북한산의 봉우리 중 콩라인이고 딸린 봉우리로 용암봉이 있으며, 주변의 면적으로는 가장 크다. 도선사가 이 봉우리 바로 밑에 있으며, 이 일대는 무당골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곳을 지나가는 정규탐방로는 도선사-용암문, 용암문-만경대 허릿길-위문-백운대, 백운대 탐방지원센터-하루재-백운산장-백운대가 있다. 낭만길이라 부르는 백운산장-용암문 구간의 비정규탐방로가 있으며, 명물 '입술바위'도 무당골 안에 있고, 지봉, 곰바위능선이 있다. 위문-만경대-용암봉-용암문의 릿지코스가 있다.
도선사 뒷편 무당골은 절경이 많으나, 그만큼 위험한 곳도 많으며, 1960~1970년대 쓰여진 정규탐방로 안내판과, 한독 훼스탈 안내판도 있으며, 북한산에서 가장 외진 장소 중의 하나.
전체적인 면적은 도선사-용암문-만경대 허릿길-위문-백운대-백운산장-하루재-백운대 탐방지원센터-도선사를 이루는 곡선 안에 있는 지형이 모두 포함된다. 이 곡선을 모두 이으면 하나의 거대한 탐방로가 되며, 전체길이 6.4km.
'무당골'인 이유는 1710~1980년대, 무당들이 이곳에 와서 푸닥거리를 많이 벌이던 장소이고, 2020년 평일에도 가끔 무당들이 푸닥거리나,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용암문으로 정규탐방로 초입 오른쪽으로, 도선사에서 1873년 타계한 승려의 비석인 '김상궁바위'라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2. 평양직할시에 소재한 지역
링크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1] 에 위치한 사적지(?).
보통 사적이나 명승지 정도로 오해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는데, 이곳의 정체는 바로 '''김일성의 생가'''[2] 다. 김일성이 태어났을 당시의 주소는 평안남도 평양부 고순화면 남동.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에도 평양에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에서는 당연히 이곳을 절대 성역으로 여기고 깨끗하게 복원, 단장하고 초가집 그대로 복원해놓았다. 금수산태양궁전과 함께 김씨 가문 우상화의 상징이며,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무조건 이곳을 관람해야 했다. 한국 NL 통일운동 인사 중에 방문 사례도 있었는데, 2001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방북 당시 이곳을 방문 후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식의 문구를 써서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는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었다. 결국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일성 생가 인근에는 '천석식당'이라고 해서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이 있다. "내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국수 한끼라도 대접할 곳은 있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72년에 만들어진 식당이라고 하며, 옥류관과 함께 잘 알려진 평양의 식당이다.
북한에는 이곳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나 조직이 많이 있다. 유명한 것만도 평양의 행정구역인 만경대구역부터 시작해서 평양 지하철도 만경대선, 만경대혁명학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만경대 유희장 등이 있다. 그 밖에 "만경대OO공장" 따위는 워낙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
왜성, 청태종공덕비 등 유적 보존이 꼭 역사에 긍정적인 부분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므로 통일 후에는 그래도 한국사에 좋든 나쁘든 한 획을 그은 김일성이란 인간의 생가라는 특성상 일단 유적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있다. 강원도 화진포에도 김일성 별장이 관광용으로 남아 있으니.
3. 강원도 동해시의 건물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에 위치해 있다. 1번 항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조선 양식의 누각으로 광해군 대에 세워졌으며, 허목이 이곳을 방문한 뒤 이름을 만경(萬景)으로 붙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43년 후손들이 중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