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태양궁전
錦繡山太陽宮殿 / Kŭmsusan Thaeyang Kungjŏ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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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문자 그대로 사체)를 보존하고 있는 장소.
1973년 처음 착공되었으며, 2층에는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의 시체가, 1층에는 2011년에 사망한 김정일의 시체가 있다.
처음엔 무덤 목적의 건물이 아니라 김일성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금수산 의사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청와대와 유사한 역할인 국가주석 집무실 용도의 건물이었다. 그것을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이 무덤으로 개조하고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꿨는데, 이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형태의 무덤이 아니라 김일성 미라 전시장에 가깝다. 나중에 김정일도 죽은 뒤 곁에 합장되었다. 북한을 흔히 김씨 왕조에 빗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보면 종묘와 같이 역대 국왕을 추모하는 시설이 된 셈이다. 이후 김정일의 70회 생일인 2012년 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꿨다.
참고로 김일성 사후 김정일-김정은은 이 건물 대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관저 및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금수산이라는 명칭에서 금수는 짐승을 의미하는 禽獸가 아니라 '수를 놓은 비단'을 뜻하는 '''錦繡'''다. '삼천리 금수강산'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에도 쓰인다. 일반명사에 가까운 지명이므로 발음과 한자가 같은 지명이 몇 군데 더 있다.[2]
위 사진처럼 중앙 홀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전 유품과 색을 입힌 거대한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구글 위성 사진으로 보면 능라도 경기장을 제외하면 '''평양순안국제공항 청사보다도'''[6] 큰, 북한 최대 규모의 건축이다. 비교하자면 아이파크몰을 포함한 용산역 전체 규모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미암동에 있는 말 그대로 궁전. 예전 이름은 '금수산 의사당'으로 김일성이 거주하며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즉, 남한으로 치면 청와대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북한 관련 용어 가운데 '주석궁'이 바로 이곳을 가리키는 말이다.[7]
외교관 등 외국인 인사가 방북하면 여기로 데려가기 때문에 내부를 관람한 사람도 꽤 많고 방송에서도 종종 보여주는데 내부는 이름처럼 궁전 구조로 되어 있고 인테리어는 아름답다고 한다. 거기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말이다. 짓기는 화려하게 지었으나 북한의 현실 때문에 을씨년스러운 장소이다.
(애시당초 툭하면 민족이 어쩌고 주체가 어쩌고 하면서 왜 르네상스 양식인지는 의문)
상세 정보①, 상세 정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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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화되기 전에 임시 안치된 김일성의 시체. 과학동아에 따르면 유지비 절감을 위해 처음 부검을 할 때도 내장, 눈알 등 썩기 쉬운 부위는 다 제거했다고 한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엠버밍 처리한 김일성의 시체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목적으로 김일성이 생전에 생활하던 주석궁을 개조했다. 미라의 관리는 기술력이 있는 러시아에 큰 돈을 내면서 전담하게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입장자는 한 자리에 서서 관람할 수 없다. 지나가면서 보고 퇴실해야 한다. 이는 모스크바의 레닌 영묘에 안치되어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 베이징의 모주석기념당에 안치되어 있는 마오쩌둥의 시신,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 안치되어 있는 호찌민의 시신도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이들을 따라한 것이다. 단 일부 특권층은 서 있어도 상관없는 듯하다.
궁전 내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이나 열차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주석궁 개조 비용은 핵심계층이 '충성심 입증' 차원에서 바친 재산으로 충당되었다. 인력은 뭐,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그 재산과 노동력이 다 누굴 쥐어짜서 나온 것이냐'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여기에 더해 인민들을 상대로 외화 헌납 운동이란 것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인민들에게 건설 노동까지 시키면서 "수령님 궁전 좀 크고 반짝이게 짓게 돈 좀."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일성 시체를 보존작업하던 시기가 하필 북한이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고생하던 시기라서 상당수의 인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마당에 이 짓을 저질렀다. 결국 수많은 인민들의 고혈이 김일성의 시체 속으로 모조리 빨려들어간 것이다.
사실 김일성 본인은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우상화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생전의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이양 한 후에는 주석궁의 자기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대성산혁명렬사릉[8] 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게 주요 일과였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에게 '내가 죽으면 과거 함께 싸웠던 동지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고, 즉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자신을 묻어달라'라고 누누이 말했다지만 '''김정일은 권력 이양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언은 깔끔하게 무시해버리고 있는 예산 없는 예산 싸그리 다 끌어다 박제 후 궁전을 지었다.
매년 1월 1일 자정이 되면 김정일과 수뇌부 핵심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참배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공화국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참배를 다녀온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비정기적 참배도 간간히 있는데, 주로 북한과 사이가 좋은 국가의 대표급 인물이 방문했을 때[9] 와 뭔가 큰 일이 있을 때[10] 에도 참배 행사가 자주 개최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정은도 정기 참배에 참석한다고 한다.
2000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당시 하마터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길 가야 할 뻔했다고 한다. 회담 참석 조건으로 북한 측이 기념궁전 참배를 끈질기게 요구했다는데, 다행히도 결국 이 조건 자체가 폐기되고 참배 일정은 뺀 상태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엔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가 회담 4년 뒤인 2004년에야 공개했다고. 간단한 이유를 말하자면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려던 시기였는데, 이를 공개할 경우 위에 서술했듯이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당시 어렵게 조성해 놓은 남북 화해 무드를 깨뜨릴까 봐 우려했던 것이기 때문에 회담 4년 뒤에 이 사실을 밝혔다.
그 외에도 유럽이나 북미 쪽 인사가 방북하면 이쪽으로 끌고 가려고 시도한다고 한다. 또한, 북한 주재 외국 대사는 부임할 때마다 이쪽으로 최소 한번씩은 끌려가서 참배하게 된다. 대사 본인은 가고 싶지 않아도 다른 일정 소화 중 갑자기 차를 꺾어서 이쪽으로 끌고 가므로 대사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러시아 대사, 영국 대사, 스웨덴 대사는 꽤 자주 끌려가고 그 참배 광경이 북한의 지상파를 타는데, 이런 강대국 대사들도 우리의 위대한 수령에게 참배를 한다는 선전용으로 삼기 위함이다.
2011년 12월 17일 공식적으로는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김정일도 이곳으로 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김정일을 김일성과 동급으로 보겠다[11] 는 소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2011년 12월 20일 사실이 되었다. 관련 기사
김정일의 사체. 사체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꽃은 일본의 식물학자 카모 모토테루가 1988년 김정일의 생일 선물로 보낸 베고니아#s-1의 인공 개량종인 '''김정일화(花)'''[12] 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임시 상태지만 궁전 자체가 결국 김씨 일가를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장소인 큼 단순한 무덤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차후 김정일 신격화 작업의 밑거름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김정일 장례식과 뒤이은 조선인민군 장병 결의대회 등의 공식 일정 뒤 대규모 개축 공사가 진행되었고, 김정일 사후 1주기였던 2012년 12월 17일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치권과 군부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재개관했다. 김정일 사체의 엠버밍 작업도 완료되었다고 하며, 김일성 조각상만 있던 중앙홀에 김정일 조각상이 추가되고 김정일의 '유품'이 전시된 전시실도 새로 개관하는 등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공식적인 묘소가 되었다.
김정은도 개인숭배 체계를 만드는 것을 보면 김정은 역시 사후 여기에 안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세습이 계속되어 역대 수령들이 계속 입주하면 김일성 우상화 장소를 벗어나서 북한판 판테온, 주체사상의 파르테논, 김씨조선판 종묘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만일 남한 주도의 자유통일이 된 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체제 경쟁의 승리 + 정복 기념'''의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그런 고로 전쟁기념관 같은 국가안보박물관이나[13] 역사박물관 또는 국립대학교 도서관 등의 크고 아름다운 시설물로 탈바꿈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14] 예를 들어 강명도는 철거하지 않고 남겨둬서 독재자의 패악을 알리는 국립민주주의교육관으로 쓰는 것을 제안했다. 남북으로 나뉘었다 북베트남 주도로 통일한 베트남의 경우도 남베트남의 옛 대통령 집무실 통일궁을 분단시대 관련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진자료나 처음 통일궁에 진입한 북베트남 탱크 실물 등 북베트남의 우위를 선전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단순히 다른 세력의 상징을 넘어 나쁜 의도로 사용되었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건축되었을지라도 보존할 가치는 있다. 지금은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의 경우도 역사적 가치 이외에도 학문적인 가치가 있었다. 보존할 가치가 있었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환경이나 대중의 심리 등 철거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과거에 지어진 큰 물건들 가운데에는 만리장성이나 대원군의 경복궁처럼 백성들을 강제로 혹사시켜 지은 것들이 제법 많지만 랜드마크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인권을 기념한다고 때려 부수지 않는다. 승리 등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과거 나라가 분단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반민주적인 정부가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이 건물을 철거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철거되겠지만 김씨 왕조를 우상화했던 건물이라는 까닭으로 반드시 철거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우선 그 전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도 처분하고 우상화 기념물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 특히 김일성 부자 시신은 아돌프 히틀러나 도조 히데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례에서 보듯 무덤을 만들면 통일 한국에 잔존하는 극소수의 김씨 정권 추종자들의 '성지'로 계속 역할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우선 공식적으로 -화장 처리 발표 후 화장한 과정까지는 보여준 다음 그 후에 비공개로 폐기 처분하거나 바다에 뿌리거나 해야 할 것이다.'''[15] 또한, 아돌프 히틀러의 사례처럼 대한민국이 김정은의 추종자의 힘을 배기 위해서 한 동안 훼이크를 쳐야 할 것이다. 기념궁전 건물 자체는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처럼 안보박물관이나 통일기념관 등의 박물관/기념관 건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말로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쓰이게 된다면 개장 전에 우상화를 위한 장식물을 모두 제거하고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리모델링을 당연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그 외에도 통일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이 국립평양대학교로 전환되고 나면 이 건물을 추가 캠퍼스나 부속 건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바로 옆은 아니고 1.2km 정도 떨어져 있긴 한데, 어차피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소수의 노후 주택과 건물들뿐이라 딱히 땅값 들어갈 것도 아니다. 애초에 사회주의 국가라 국유지일 확률이 높기도 하다. 사실 지금 김대는 주로 인문학쪽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시설이나 면적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립종합대의 위상에 걸맞지도 않아 이 정도 확장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강의실 등으로는 이용하기 힘들다고 해도 원래 집무실 건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박물관이나 컨벤션센터, 도서관 등으로 재개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평양대학교 도서관이나 국립평양도서관으로 재활용된다면 국회도서관에 맞먹는 상당량의 장서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도서관 기능을 하자니 인민대학습당과 기능이 겹친다. 인민대학습당 쪽이 기능으로나 취지로나 건전성으로나 도서관 기능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둘 다 도서관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가깝다. 고작 7.8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대한민국 주도의 흡수통일 또는 멸공통일이면 당연히 리모델링되겠지만 북한 기득권 세력에 권력을 일부 인정해 주는 수준의 국가 연합이나 연방 형태의 통일이라면 당분간 그대로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금수산의 폐기물은 처음에는 정부 청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현재는 결국 순수하게 '주체사상의 홍보'와 '김일성, 김정일 박제 보관용' 인지라 위에서 우려하던 '주체사상의 성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우셰스쿠의 인민궁전은 정부 청사로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에, 이후 루마니아 정부가 그대로 쓸 수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해방 직후에도 조선신궁과는 다르게 서대문형무소나 조선총독부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비슷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는 1995년 해체되기 전까진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인 적이 있었다.
즉, 조선총독부 청사처럼[16] 흑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므로 폭파 및 해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대가 옛 고구려의 유적지로써 일대가 청암리토성과 청암리사지[17] 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헐릴 가능성도 높다. 이런 문화재 발굴을 위한 취지를 근거로, 기념궁전 건물을 철거한다면 철거하면서 부지의 정원과 부속 토지 일대를 싹 갈아엎으면서 발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아예 유적지 복원을 명분으로 헐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미 건설 전후부터 유구까지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와 권역은 모른다.
민간에 토지를 매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평양 시내에 본사 내지 지사를 두고 싶어할 기업은 많을 테니 말이다. 이 경우 통일 이후 모자라는 세수를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북한 민중의 인식이 정말 정확하게 어떤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조사가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만 단편적으로 의존하고 있을 뿐, 체계적인 여론조사나 심층연구는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말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이후 이 장소를 때려 부셔도 되는지 현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대한민국에서 정부 기관이나 정부의 의뢰에 의한 민간 조사기관의 공식적인 연구 발표가 하나도 안 되어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들 증언에만 의존하지 말고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철거시 어떤 파급 효과가 있을 지 면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은 대한민국이 주도해야겠지만 대신에 정복자가 피지배민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주도해서는 안된다.'''[18]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경우 사전 조사할 시간이 충분한데도 대한민국의 여론에만 의지해 성급하게, 멋대로 철거한다면 화합이 중요한 시점에서 북한 민중의 반발을 일으킬 불씨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 철거 시점에서 딱히 드러나는 동요가 없었다고 해도 이 건이 북한 민중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멋대로 군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면 이후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에서 심리적으로 신뢰와 호응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장을 바꿔서 대한민국의 가치관대로 따지면 북측의 여론조사 없이 철거할 경우 이 궁전도 용도가 어찌됐든 북한 주민의 혈세로 지은 건물인데 대한민국이 북측 여론을 조사하지도 않고 멋대로 부수는 꼴이 된다. 일제의 상징이기도 했던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에도 1991년 서울 주민을 상대로 사전 여론조사를 했고, 35%나 되는 시민이 다양한 이유로 철거를 반대했던 사례도 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치욕의 상징을 부수는데도 35%나 되는 시민이 반대했는데, 70년 넘게 교류가 단절된데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완전히 동떨어진 체제 속에 살아오면서 가치관이 천지차이로 다를 게 뻔한 북측 민중의 여론을 하나도 조사하지 않고 대한민국 여론만 생각해서 철거하는 것은 반발의 위험이 너무나 크다. 분단된 민족의 화합은 어렵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통일 과정에서 민주주의 진영인 서독에 대해 민중의 호응이 높았고 반발도 적었던 동독조차 2010년 시점에서도 25%의 동독 주민이 동독 시절이 그립다고 밝힌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을 정도.
다만, 대한민국과 북한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한국군이 이곳까지 점령하는 형태로 통일될 경우 현장 지휘관의 독단이나 교전 중 유탄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북한 정권의 상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당장 베틀린 전투 당시 독일 제국의사당이 최후까지도 전투가 벌어져 철저히 파손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금수산태양궁전 때문에 평양 지하철도 혁신선의 광명역이 폐역되었다. 대신 삼흥역에서 이곳까지 금성거리 궤도전차 혹은 금수산선이라는 이름의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전용 노면전차[19] 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김씨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곳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린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는데, 실제 위성 사진으로 보면 광명역에서 입구까지 4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넓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입장 전 수속과 안내, 이전의 내부 전시물 관람 등으로 인해 쓸데없이 시간이 지체되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김정은 시대 북한 최고지도자의 관저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1호 청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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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문자 그대로 사체)를 보존하고 있는 장소.
1973년 처음 착공되었으며, 2층에는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의 시체가, 1층에는 2011년에 사망한 김정일의 시체가 있다.
처음엔 무덤 목적의 건물이 아니라 김일성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금수산 의사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청와대와 유사한 역할인 국가주석 집무실 용도의 건물이었다. 그것을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이 무덤으로 개조하고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꿨는데, 이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형태의 무덤이 아니라 김일성 미라 전시장에 가깝다. 나중에 김정일도 죽은 뒤 곁에 합장되었다. 북한을 흔히 김씨 왕조에 빗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보면 종묘와 같이 역대 국왕을 추모하는 시설이 된 셈이다. 이후 김정일의 70회 생일인 2012년 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꿨다.
참고로 김일성 사후 김정일-김정은은 이 건물 대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관저 및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금수산이라는 명칭에서 금수는 짐승을 의미하는 禽獸가 아니라 '수를 놓은 비단'을 뜻하는 '''錦繡'''다. '삼천리 금수강산'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에도 쓰인다. 일반명사에 가까운 지명이므로 발음과 한자가 같은 지명이 몇 군데 더 있다.[2]
위 사진처럼 중앙 홀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전 유품과 색을 입힌 거대한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구글 위성 사진으로 보면 능라도 경기장을 제외하면 '''평양순안국제공항 청사보다도'''[6] 큰, 북한 최대 규모의 건축이다. 비교하자면 아이파크몰을 포함한 용산역 전체 규모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2. 역사
2.1. 주석궁 시절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미암동에 있는 말 그대로 궁전. 예전 이름은 '금수산 의사당'으로 김일성이 거주하며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즉, 남한으로 치면 청와대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북한 관련 용어 가운데 '주석궁'이 바로 이곳을 가리키는 말이다.[7]
외교관 등 외국인 인사가 방북하면 여기로 데려가기 때문에 내부를 관람한 사람도 꽤 많고 방송에서도 종종 보여주는데 내부는 이름처럼 궁전 구조로 되어 있고 인테리어는 아름답다고 한다. 거기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말이다. 짓기는 화려하게 지었으나 북한의 현실 때문에 을씨년스러운 장소이다.
(애시당초 툭하면 민족이 어쩌고 주체가 어쩌고 하면서 왜 르네상스 양식인지는 의문)
상세 정보①, 상세 정보②
2.2. 김일성 시체 전시
[image]
미라화되기 전에 임시 안치된 김일성의 시체. 과학동아에 따르면 유지비 절감을 위해 처음 부검을 할 때도 내장, 눈알 등 썩기 쉬운 부위는 다 제거했다고 한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엠버밍 처리한 김일성의 시체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목적으로 김일성이 생전에 생활하던 주석궁을 개조했다. 미라의 관리는 기술력이 있는 러시아에 큰 돈을 내면서 전담하게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입장자는 한 자리에 서서 관람할 수 없다. 지나가면서 보고 퇴실해야 한다. 이는 모스크바의 레닌 영묘에 안치되어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 베이징의 모주석기념당에 안치되어 있는 마오쩌둥의 시신,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 안치되어 있는 호찌민의 시신도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이들을 따라한 것이다. 단 일부 특권층은 서 있어도 상관없는 듯하다.
궁전 내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이나 열차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주석궁 개조 비용은 핵심계층이 '충성심 입증' 차원에서 바친 재산으로 충당되었다. 인력은 뭐,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그 재산과 노동력이 다 누굴 쥐어짜서 나온 것이냐'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여기에 더해 인민들을 상대로 외화 헌납 운동이란 것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인민들에게 건설 노동까지 시키면서 "수령님 궁전 좀 크고 반짝이게 짓게 돈 좀."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일성 시체를 보존작업하던 시기가 하필 북한이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고생하던 시기라서 상당수의 인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마당에 이 짓을 저질렀다. 결국 수많은 인민들의 고혈이 김일성의 시체 속으로 모조리 빨려들어간 것이다.
사실 김일성 본인은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우상화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생전의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이양 한 후에는 주석궁의 자기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대성산혁명렬사릉[8] 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게 주요 일과였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에게 '내가 죽으면 과거 함께 싸웠던 동지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고, 즉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자신을 묻어달라'라고 누누이 말했다지만 '''김정일은 권력 이양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언은 깔끔하게 무시해버리고 있는 예산 없는 예산 싸그리 다 끌어다 박제 후 궁전을 지었다.
매년 1월 1일 자정이 되면 김정일과 수뇌부 핵심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참배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공화국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참배를 다녀온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비정기적 참배도 간간히 있는데, 주로 북한과 사이가 좋은 국가의 대표급 인물이 방문했을 때[9] 와 뭔가 큰 일이 있을 때[10] 에도 참배 행사가 자주 개최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정은도 정기 참배에 참석한다고 한다.
2000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당시 하마터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길 가야 할 뻔했다고 한다. 회담 참석 조건으로 북한 측이 기념궁전 참배를 끈질기게 요구했다는데, 다행히도 결국 이 조건 자체가 폐기되고 참배 일정은 뺀 상태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엔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가 회담 4년 뒤인 2004년에야 공개했다고. 간단한 이유를 말하자면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려던 시기였는데, 이를 공개할 경우 위에 서술했듯이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당시 어렵게 조성해 놓은 남북 화해 무드를 깨뜨릴까 봐 우려했던 것이기 때문에 회담 4년 뒤에 이 사실을 밝혔다.
그 외에도 유럽이나 북미 쪽 인사가 방북하면 이쪽으로 끌고 가려고 시도한다고 한다. 또한, 북한 주재 외국 대사는 부임할 때마다 이쪽으로 최소 한번씩은 끌려가서 참배하게 된다. 대사 본인은 가고 싶지 않아도 다른 일정 소화 중 갑자기 차를 꺾어서 이쪽으로 끌고 가므로 대사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러시아 대사, 영국 대사, 스웨덴 대사는 꽤 자주 끌려가고 그 참배 광경이 북한의 지상파를 타는데, 이런 강대국 대사들도 우리의 위대한 수령에게 참배를 한다는 선전용으로 삼기 위함이다.
2.3. 김정일 시체 추가 전시
2011년 12월 17일 공식적으로는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김정일도 이곳으로 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김정일을 김일성과 동급으로 보겠다[11] 는 소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2011년 12월 20일 사실이 되었다. 관련 기사
김정일의 사체. 사체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꽃은 일본의 식물학자 카모 모토테루가 1988년 김정일의 생일 선물로 보낸 베고니아#s-1의 인공 개량종인 '''김정일화(花)'''[12] 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임시 상태지만 궁전 자체가 결국 김씨 일가를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장소인 큼 단순한 무덤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차후 김정일 신격화 작업의 밑거름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김정일 장례식과 뒤이은 조선인민군 장병 결의대회 등의 공식 일정 뒤 대규모 개축 공사가 진행되었고, 김정일 사후 1주기였던 2012년 12월 17일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치권과 군부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재개관했다. 김정일 사체의 엠버밍 작업도 완료되었다고 하며, 김일성 조각상만 있던 중앙홀에 김정일 조각상이 추가되고 김정일의 '유품'이 전시된 전시실도 새로 개관하는 등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공식적인 묘소가 되었다.
김정은도 개인숭배 체계를 만드는 것을 보면 김정은 역시 사후 여기에 안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세습이 계속되어 역대 수령들이 계속 입주하면 김일성 우상화 장소를 벗어나서 북한판 판테온, 주체사상의 파르테논, 김씨조선판 종묘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3. 현 북한정권 붕괴 이후에는
3.1. 재활용할 것인가
만일 남한 주도의 자유통일이 된 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체제 경쟁의 승리 + 정복 기념'''의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그런 고로 전쟁기념관 같은 국가안보박물관이나[13] 역사박물관 또는 국립대학교 도서관 등의 크고 아름다운 시설물로 탈바꿈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14] 예를 들어 강명도는 철거하지 않고 남겨둬서 독재자의 패악을 알리는 국립민주주의교육관으로 쓰는 것을 제안했다. 남북으로 나뉘었다 북베트남 주도로 통일한 베트남의 경우도 남베트남의 옛 대통령 집무실 통일궁을 분단시대 관련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진자료나 처음 통일궁에 진입한 북베트남 탱크 실물 등 북베트남의 우위를 선전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단순히 다른 세력의 상징을 넘어 나쁜 의도로 사용되었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건축되었을지라도 보존할 가치는 있다. 지금은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의 경우도 역사적 가치 이외에도 학문적인 가치가 있었다. 보존할 가치가 있었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환경이나 대중의 심리 등 철거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과거에 지어진 큰 물건들 가운데에는 만리장성이나 대원군의 경복궁처럼 백성들을 강제로 혹사시켜 지은 것들이 제법 많지만 랜드마크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인권을 기념한다고 때려 부수지 않는다. 승리 등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과거 나라가 분단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반민주적인 정부가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이 건물을 철거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철거되겠지만 김씨 왕조를 우상화했던 건물이라는 까닭으로 반드시 철거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우선 그 전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도 처분하고 우상화 기념물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 특히 김일성 부자 시신은 아돌프 히틀러나 도조 히데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례에서 보듯 무덤을 만들면 통일 한국에 잔존하는 극소수의 김씨 정권 추종자들의 '성지'로 계속 역할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우선 공식적으로 -화장 처리 발표 후 화장한 과정까지는 보여준 다음 그 후에 비공개로 폐기 처분하거나 바다에 뿌리거나 해야 할 것이다.'''[15] 또한, 아돌프 히틀러의 사례처럼 대한민국이 김정은의 추종자의 힘을 배기 위해서 한 동안 훼이크를 쳐야 할 것이다. 기념궁전 건물 자체는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처럼 안보박물관이나 통일기념관 등의 박물관/기념관 건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말로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쓰이게 된다면 개장 전에 우상화를 위한 장식물을 모두 제거하고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리모델링을 당연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그 외에도 통일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이 국립평양대학교로 전환되고 나면 이 건물을 추가 캠퍼스나 부속 건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바로 옆은 아니고 1.2km 정도 떨어져 있긴 한데, 어차피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소수의 노후 주택과 건물들뿐이라 딱히 땅값 들어갈 것도 아니다. 애초에 사회주의 국가라 국유지일 확률이 높기도 하다. 사실 지금 김대는 주로 인문학쪽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시설이나 면적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립종합대의 위상에 걸맞지도 않아 이 정도 확장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강의실 등으로는 이용하기 힘들다고 해도 원래 집무실 건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박물관이나 컨벤션센터, 도서관 등으로 재개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평양대학교 도서관이나 국립평양도서관으로 재활용된다면 국회도서관에 맞먹는 상당량의 장서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도서관 기능을 하자니 인민대학습당과 기능이 겹친다. 인민대학습당 쪽이 기능으로나 취지로나 건전성으로나 도서관 기능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둘 다 도서관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가깝다. 고작 7.8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대한민국 주도의 흡수통일 또는 멸공통일이면 당연히 리모델링되겠지만 북한 기득권 세력에 권력을 일부 인정해 주는 수준의 국가 연합이나 연방 형태의 통일이라면 당분간 그대로 있게 될지도 모른다.
3.2. 철거할 것인가
하지만 반대로 금수산의 폐기물은 처음에는 정부 청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현재는 결국 순수하게 '주체사상의 홍보'와 '김일성, 김정일 박제 보관용' 인지라 위에서 우려하던 '주체사상의 성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우셰스쿠의 인민궁전은 정부 청사로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에, 이후 루마니아 정부가 그대로 쓸 수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해방 직후에도 조선신궁과는 다르게 서대문형무소나 조선총독부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비슷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는 1995년 해체되기 전까진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인 적이 있었다.
즉, 조선총독부 청사처럼[16] 흑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므로 폭파 및 해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대가 옛 고구려의 유적지로써 일대가 청암리토성과 청암리사지[17] 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헐릴 가능성도 높다. 이런 문화재 발굴을 위한 취지를 근거로, 기념궁전 건물을 철거한다면 철거하면서 부지의 정원과 부속 토지 일대를 싹 갈아엎으면서 발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아예 유적지 복원을 명분으로 헐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미 건설 전후부터 유구까지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와 권역은 모른다.
민간에 토지를 매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평양 시내에 본사 내지 지사를 두고 싶어할 기업은 많을 테니 말이다. 이 경우 통일 이후 모자라는 세수를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북한 민중의 인식이 정말 정확하게 어떤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조사가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만 단편적으로 의존하고 있을 뿐, 체계적인 여론조사나 심층연구는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말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이후 이 장소를 때려 부셔도 되는지 현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대한민국에서 정부 기관이나 정부의 의뢰에 의한 민간 조사기관의 공식적인 연구 발표가 하나도 안 되어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들 증언에만 의존하지 말고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철거시 어떤 파급 효과가 있을 지 면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은 대한민국이 주도해야겠지만 대신에 정복자가 피지배민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주도해서는 안된다.'''[18]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경우 사전 조사할 시간이 충분한데도 대한민국의 여론에만 의지해 성급하게, 멋대로 철거한다면 화합이 중요한 시점에서 북한 민중의 반발을 일으킬 불씨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 철거 시점에서 딱히 드러나는 동요가 없었다고 해도 이 건이 북한 민중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멋대로 군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면 이후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에서 심리적으로 신뢰와 호응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장을 바꿔서 대한민국의 가치관대로 따지면 북측의 여론조사 없이 철거할 경우 이 궁전도 용도가 어찌됐든 북한 주민의 혈세로 지은 건물인데 대한민국이 북측 여론을 조사하지도 않고 멋대로 부수는 꼴이 된다. 일제의 상징이기도 했던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에도 1991년 서울 주민을 상대로 사전 여론조사를 했고, 35%나 되는 시민이 다양한 이유로 철거를 반대했던 사례도 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치욕의 상징을 부수는데도 35%나 되는 시민이 반대했는데, 70년 넘게 교류가 단절된데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완전히 동떨어진 체제 속에 살아오면서 가치관이 천지차이로 다를 게 뻔한 북측 민중의 여론을 하나도 조사하지 않고 대한민국 여론만 생각해서 철거하는 것은 반발의 위험이 너무나 크다. 분단된 민족의 화합은 어렵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통일 과정에서 민주주의 진영인 서독에 대해 민중의 호응이 높았고 반발도 적었던 동독조차 2010년 시점에서도 25%의 동독 주민이 동독 시절이 그립다고 밝힌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을 정도.
다만, 대한민국과 북한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한국군이 이곳까지 점령하는 형태로 통일될 경우 현장 지휘관의 독단이나 교전 중 유탄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북한 정권의 상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당장 베틀린 전투 당시 독일 제국의사당이 최후까지도 전투가 벌어져 철저히 파손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4. 기타
금수산태양궁전 때문에 평양 지하철도 혁신선의 광명역이 폐역되었다. 대신 삼흥역에서 이곳까지 금성거리 궤도전차 혹은 금수산선이라는 이름의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전용 노면전차[19] 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김씨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곳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린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는데, 실제 위성 사진으로 보면 광명역에서 입구까지 4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넓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입장 전 수속과 안내, 이전의 내부 전시물 관람 등으로 인해 쓸데없이 시간이 지체되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김정은 시대 북한 최고지도자의 관저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1호 청사)라고 한다.
[1] 대한민국식 표준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Geumsusan Taeyang Gungjeon'이다. 북한식 표기법에는 'ㅋ, ㅌ, ㅊ, ㅍ'을 각각 'kh, th, ch, ph'로 적는다.[2]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의 금수산, 남쪽의 어느 사이비 이단 단체 본거지 등.[3] 김일성 사후 주석궁에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경된 후의 모습이다. [4] 이 교체작업으로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이전보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머리 모양과 얼굴 형태, 복장 등을 김 부자의 생전 모습과 최대한 닮게 만들었다. 북한이 이처럼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핵심인 동상을 '컬러'로 꾸미는 것은, 젊은 김정은의 세련된 '감각'을 외부와 주민들에게 선전하려는 의도인 듯하다.[5] 광명성절, 태양절, 노동당 창건일 등 중요한 날이면 김정은과 당정군 고위급 간부들이 찾아가 참배를 한다. [6]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인천국제공항 개항 이전의 김포국제공항 정도 된다.[7] 현재는 룡성구역에 주석궁이 있다.[8] 북한판 국립현충원으로 항일 빨치산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6.25 전쟁 유공자(어디까지나 '''북한 입장'''에서)들이 묻혀 있다.[9]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10] 김일성 5년 주기 기념, 조선로동당 대표자 회의 개막전 등.[11] 비록 과장이 심하다지만 김일성은 틀림없이 항일 운동 경력이 있는 만큼, 단순히 아버지 잘 만나 자리를 물려받은 김정일보다 사회적인 인정이 컸다.[12] 정식 명칭은 김정일리아(Kimjongilia).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내용은 꽃과는 전혀 상관없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뤘다.[13] 만일 자유통일 후 기념궁전 건물을 어떻게 재활용하느냐 철거하느냐에 대한 여부는 학회나 정치계에서도 계속되는 토론 떡밥이다. 이 중에서는 전쟁기념관이나 국가안보 관련 박물관으로 재개관한다면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의 전시-소장물들을 이전 전시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용할 수 있기는 한데, 북한판 전쟁기념관인 인민군 무장장비관이 이미 평양에 있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용산 전쟁기념관과 무장장비관 소장물을 싹 긁어모아 전시해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14] 실제로 승전국이나 한 나라를 정복한 국가들의 경우 정복지나 적국의 랜드마크나 성소 등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략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쓰레기장 등으로 써서 모욕을 주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그 건물을 보존하되 경쟁의 승리를 위한 의미를 부여하여 개조하거나 자국의 우위를 표시할 수 있는 건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고대에 많이 쓴 방식이고 후자는 근대에 많이 쓴 방식이다.[15] 만일 뼛가루를 폐기 또는 뿌린 장소가 드러날 경우 히틀러의 무덤을 찾으려 하는 네오나치 사례처럼 김돼지 일가의 추종세력들 성지가 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만 화장 처리함을 발표하고, 처리 자체는 당연히 비공개로 집행할 것이다.[16] 실제로 조선총독부 청사가 헐린 이유는 상징성도 있겠지만 경복궁 훼손도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세종대로 지역에 일제강점기의 상징인데다가 주변 경관과도 잘 안어울리는 건물이 한국 건축과 부조화스럽게 세워져 있다는 점도 있다. 반면 금수산태양궁전은 딱히 주변경관에 비해 어색하지 않고 논밭을 제외한 평양의 가장자리에 있고 후술할 '터'를 제외하고는 부숴 날려먹은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17] 고구려 시절 금강사로 추정되는 지역이다.[18] 참고로 헌법상 북한 주민들은 피지배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19] 평양 노면전차는 1,435mm 표준궤를 사용하는데 이곳만 1,000mm 협궤를 사용한다. 이 궤도를 운영하는 차량은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인 스위스에서 구매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