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

 


'''고사성어'''
'''孟'''
'''母'''
'''三'''
'''遷'''
'''之'''
'''敎'''
맏 맹
어미 모
석 삼
옮길 천
어조사 지
가르칠 교
1. 개요
2. 실체
3. 현대 사례
4. 기타


1. 개요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곳을 이사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야기. 전한 때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에 등장한다.
맹자의 집은 원래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는데 어린 맹자는 상여 흉내만 내고, 다음에 시장 근처에 가니 장사치 흉내만 내서,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 가자 관원들의 예절을 배우자 거기에 거주하였다는 유래의 고사성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이사를 한 횟수는 사실 두 번이다. 따라서 세 번 이사했다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현대에서 전하는 판본에서는 푸줏간을 추가하거나 아니면 공동묘지 근처를 처음으로 이사를 간 곳으로[1] 설정하기도 하고, 좀 더 교육적인 의미를 지니기 위해 문묘를 서당이라고 고치기도 한다. 다만 이 고사에서는 옮긴 횟수보다는 어린 맹자가 영향을 받은 동네의 숫자가 더 중요한 요소다 보니 글자 자체의 의미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삼천이라고 해놓고 맹자가 영향을 받은 동네가 4곳이 되는게 더 어색해보인다.

2. 실체


이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별로 없다. 원래 열녀전이 쓰여진 시기는 맹자의 시대보다 몇백년이나 뒤이며, 그 사이의 기록에는 딱히 비슷한 일화가 나오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의 문헌에는 이런 이야기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그저 세간에 떠도는 전설이거나 유향의 창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학문 경력에 대해서 '사숙(私淑, 사적으로 혼자 배웠다)했다'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일화에 나오는 문화는 춘추전국시대보다는 전한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유가에서 장례식을 흉내내는 것은 딱히 이상하거나 해괴할 것이 없다. 원래 춘추전국시대 유가의 사회적 업무는 "관혼상제의 전문가"였다. 오히려 공자에는 이런 관혼상제 의식을 어릴 때부터 흉내내서 놀이로 삼았으니 그야말로 '예'를 아는 성인다운 일이었다는 식의 일화가 전해진다. 심지어 공자는 자신이 여러 재주를 가진 이유가 어릴 적에는 천한 신분이라 갖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2]이라는 발언도 했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의 세부사항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주된 요점은 맹자의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와 어떤 이라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인 것이다.

3. 현대 사례


현대에는 열악한 학군의 학부모가 교육을 위해 근처에 나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위장전입을 시도하여 자녀를 전학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보통은 초등학생 때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지원할 때 지역제한을 우회하기 위해 시도하기도 한다. 정치인, 특히 국무위원 후보자의 자녀 전학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 전력이 발각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중국 교육열 관련 포스트
물론 교육에 주변환경은 중요하다. 다만 현대 한국에선 이 풍조가 극심하다보니 유명 학군 일대의 부동산 거품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멕시코, 브라질과 같이 나라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치안이 매우 불안한 곳도 맹모삼천지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들은 불량 학생 외에는 안보에 위협을 줄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나쁠 경우 그대로 자녀에게 영향이 간다고 보면 된다. 멕시코와 브라질 같은 곳은 나라 자체는 어느 정도 건실하지만 불량 학생들이 강도 같은 행동을 하고 다니고, 그 불량 학생들의 부모를 보면 막 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려 사항이 되기도 한다.

4. 기타


맹꽁이 서당 13권에서는 한 학동이 이를 두고 '''3천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드립을 쳐서 훈장님이 3번이라고 혼내는 내용이 나왔다. 주석으로 삼천의 천은 '일천 천(千)'이 아니라 '옮길 천(遷)'[3]임을 표기하였다.
만화가 윤서인이 위의 내용처럼 트위터에 '맹모는 자식교육을 위해 '''삼천번'''이나 이사를 했다니 포장이사 서비스 모델로는 역시 맹자엄마가 제격인듯'이라고 썼다가 개망신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윤서인 논란 문서 참고.
맹자 어머니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맹모단기지교로 이어졌다.
국내에는 제목만 패러디한 '맹부삼천지교'라는 영화도 있다. 여기서는 아버지의 눈물 겨운 강남 분투기를 그려냈다.
맹자가 두 번째로 이사한 곳이 시장에 맹자가 상인 흉내를 낸 것을 보고 오히려 여기에 터를 잡았으면 맹자가 거상이 되지 않았겠나는 의견도 있다. 유교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기업가로 성공하는 걸 최상으로 치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게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맹자보다 조금 후대에 살았던 여불위도 다름아닌 거상으로 시작해서 권력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1] 이 경우 최초 거주지는 그냥 평범한 마을 정도로[2]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기술을 많이 알고 있다.[3] 국부천대(國府'''遷'''臺) 또는 천도의 그 "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