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
1. 개요
'''천도'''(遷都)는 국가의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한 국가에 있어서 수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수도가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의 중대사이다.
오늘날에는 'A를 옮기다'라는 의미의 '遷A' 류의 한자어가 거의 없고 遷(옮길 천)의 빈도 자체가 많이 줄었기 때문인지 '천도'라는 말보다는 같은 의미로 '수도 이전(首都移轉)'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 그래서인지 '천도'라는 단어는 전근대 시절의 수도 이전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2. 천도의 이유
2.1. 외적의 침략
대부분의 경우 본래 있던 수도가 외적에 의해 침략당해 수도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거나 수도를 포함한 영역이 외적에게 침탈당할 경우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는 외부적인 요인이라 볼 수 있다.
한국사에서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공을 받아 개국이래 수도였던 한강 유역의 위례성이 함락되고 한강 유역을 상실하면서 웅진성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 사례가 있다. 고려 왕조는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개성 본궐을 떠나 강화도 고려궁지로 천도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때 북한의 침공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부산으로 임시 천도를 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 서울이 북한과 가깝기에 공주시 일대로의 수도 이전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10.26사태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정권 때 행정중심복합도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충청권 일각에서 세종특별자치시로의 수도 이전론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중국사에선 춘추전국시대에 주나라가 호경에서 낙양으로 천도하거나 초나라가 진나라(秦)의 위협을 피해 네 차례 수도를 옮긴 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2.2. 국가 발전이나 정치적 목적
외적의 침략이 없어도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한 나라의 통치자가 국가 발전의 전략차원에서 현재의 수도 입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그러한 국가 발전 전략에 알맞는 입지로 천도를 단행할 수 있다.
또한 국가 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현 수도에 영향력이 큰 정치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수도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한 목적에서 천도를 단행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해당 정치세력은 살아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이런 목적이 있더라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으며, 결국 정치세력의 반대로 실패하는 경우도 역사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한국사에서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 - 환도성에서 안학궁 - 대성산성으로 천도한 것이나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1]
다른 경우는 새로운 왕조가 창건되거나 왕위 찬탈로 인해 기존의 세력이나 정통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도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사엔 고려의 태봉국 철원성에서 개경 본궐으로 천도나 조선의 한양 천도를 들 수 있다. 중국사에선 조조가 자신의 본거지를 진류에서 허창을 거쳐서 업으로, 다시 그의 아들인 조비가 후한의 제위를 찬탈하여 위나라를 세우면서 낙양으로 천도한 것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명의 북경 천도가 주 예로 볼 수 있겠다. 일본사에도 이런 식의 천도를 계획한 바 있었다. 총 두 번을 시도하여 두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다. 메이지 유신 직전에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천황이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무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다시 천황의 시대가 돌아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수도를 교토에서 에도로 이전하였고, 이것이 오늘날의 도쿄다.
근현대 들어서는 외적 침략 대비 이외에 국가 균형발전을 주된 목적으로 천도를 논의하는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 때나 노무현 정부 때에 외적 침략 대비 이외에 위와 같이 국가 균형발전을 근거로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로 천도를 시도했으며,[2] 캐나다나 호주는 양대 인구 밀집 지역의 가운데 지점에 가까운 위치에 수도를 정했다. 뉴질랜드나 브라질은 균형발전을 위해 과거 저개발 지역이었던 곳 근처에 수도를 두었고 최근의 균형발전 목적으로 이뤄진 천도는 카자흐스탄이 1997년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긴 것이다. 알마티가 남동부에 쏠려있고, 카자흐스탄 소수민족의 대부분인 러시아인은 북부에 몰려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1997년 러시아계에 대한 통제와 국토 한쪽에 쏠린 수도를 옮겨서 균형 발전하겠다는 목적으로 수도를 누르술탄(당시 아스타나)로 옮겼다.
2.3. 자연재해
꼭 외적의 침입없이도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 수도가 타격을 받아 천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연재해이다. 홍수, 지진 등으로 수도가 큰 타격을 받아 수도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더이상 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수도를 옮기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중미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벨리즈. 허리케인으로 수도가 타격을 받아 1972년 벨리즈시티에서 벨모판으로 천도를 했다.[3] 또한 독립국은 아니지만 카리브 해에 위치한 영국령 섬인 몬트세랫도 수프리에르 화산의 분화로 인해 원래의 수도인 플리머스에서 브라데스로 천도했다.
인도네시아는 현 수도 자카르타의 만성적인 지반 침하, 그리고 아직 일어나진 않았지만 불의 고리에 있어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칼리만탄 섬의 북 프나잠 파세르 군(Penajam Paser Utara)으로 천도를 계획 중이다.
일본도 간토지역의 수도직하지진에 대바하자는 차원에서 수도 도쿄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는 천도론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제국 시절 간토 대지진을 당한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된 떡밥으로, 1940년대에는 경기도 용인시로의 천도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이 당시 황궁 터도 확보해 놓았으나 각계각층의 반대와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끝내 무산되었고 황궁 예정지에는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가 들어섰다. 다만 이 경우는 위에서 소개된 국가 발전의 목적도 있었다. 이후 1990년대, 2010년대 들어서도 계속되는 지진으로 교토나 오사카로의 천도론이 제기되고 있다.[4]
3. 장단점
천도는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인만큼 간단하지 않으며 그만큼 천도 과정에서 나라안에 극심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소지를 안게 된다.
구 수도에 오랫동안 터전을 내린 기득권층이나 일반 백성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을 꺼려하게 되기 때문에 당연히 반발하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정치적 변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반면 천도를 단행하여 나라의 체제를 새롭게 하여 새로운 중흥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보통 천도 = 새 궁궐 = 노역 = 민심 붕괴 테크를 타기 때문에 나라 기반이 튼튼하지 않으면 훌륭한 국가 막장 테크가 된다. 고려3대 정종이 대표적이다. 나라가 망했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무리한 궁궐 공사로 욕을 많이 먹었으며, 더 명확한 예시라면 궁예.
한국사에서는 왕조가 교체될 때나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천도한 사례가 대부분이라, 나라 기반이 튼튼하면 천도를 할 이유가 별로 없잖아? 안될거야 아마.... 라는 식으로 천도를 하면 나라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천도를 한 경력이 있는 고구려와 백제, 태봉 등은 삼국통일을 못하고 멸망한 반면, 천도를 하지 않은 신라가 삼국통일에다가 천년 가까이 번영해서 그런걸로 보인다.
중국의 열국지에서도 초나라가 진나라의 위협을 피해 여러 번 수도를 옮긴 일을 주나라의 동천(東遷)과 싸잡아서 적을 피해 달아나면 그만큼 적을 불러들이는 일이라고 까는 시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중앙집권국가면 모를까 봉건제에 가까운 국가에서는 수도를 옮긴 정부의 권위가 매우 위축된다. 주나라의 경우에도 호경에서 낙읍으로 천도했고 그 이후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물론 이는 천도 자체라기보다는 서융의 침입을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옮겼기에 그랬다고 볼 수 있지만
4. 사례 목록
5. 같이 보기
[1] 신라와 고려, 조선 역시 이 목표를 위해 천도를 시도한 사례가 있지만 모두 실패했다.[2] 그 외의 목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것과 더불어 기존 토착화된 정치세력 제거, 일부 좌파적 시각으론 서울이 일제 식민지 시절, 독재정권 때 집권 세력의 계획도시로 만들어졌기에 과거사 잔재 청산을 목적으로 수도이전을 언급하기도 한다.[3] https://ko.m.wikipedia.org/wiki/벨리즈시티 [4] 오사카와 교토 일대도 여러 활단층이 교차하므로 지진 안전지대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3개의 판이 맞물리는 도쿄 일대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간사이가 미세지진도 간토보다 훨씬 적고 대지진의 주기도 훨씬 길며 지진의 최대 규모 역시 간토(최대 M8 이상)가 간사이(최대 M7 초중반대)를 크게 상회한다. 이는 1923년 관동대지진과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격차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사이에서 가장 걱정하는 대지진은 오사카 시내를 관통하는 우에마치 단층대인데 이 단층의 활동 간격은 약 8천~1만년이다. 그러나 마지막 활동으로부터 약 9천~2만 8천년이 지났기 때문에(이마저도 약 2500년 전에 활동했다는 이견이 존재한다.) 지진 조사본부에서는 위험성을 높게 평가하나 원래 활단층의 주기는 판경계의 주기보다 훨씬 들쭉날쭉하기에 이 단층이 현세대에 활동할 가능성은 간토에서의 사가미트로프 위험성보다 훨씬 낮게 평가된다. 사가미트로프는 약 100년 간격으로 M7과 M8급 대지진이 교차하고 다행히(?) 21세기에는 M7의 발생 가능성이 높으나 그 역시 우에마치단층대의 활동 가능성보다 훨씬 높으며 1703년에 비해 1923년에 응력이 덜 풀렸기에 M8급의 21세기 내 발생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정도가 아니다. 참고로 난카이트로프의 경우 와카야마와 미에현이 큰 타격을 입지 케이한신과는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으므로 오사카-교토 지역에서의 궤멸적인 피해가 예상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