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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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대십국시대 후촉의 제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2. 생애
맹창은 919년에 맹지상의 3남으로 태어났는데 처음 이름은 맹인찬이었다. 맹창의 아버지인 맹지상은 934년에 후당의 혼란을 틈타 후촉을 건국하였으나 바로 그 해에 사망하였다. 맹인찬은 위의 두 형이 요절하여 사실상 장남이었기 때문에 맹지상 사후 이름을 맹인찬에서 맹창으로 고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맹창은 후촉이 위치한 사천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군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으며, 관료 사회를 바로잡고 농업, 양잠, 방직업을 발전시켜 후촉에 번영을 가져왔다. 또한 맹창은 오대의 혼란을 틈타 진주(秦州), 성주(成州), 계주(階州), 봉주(鳳州) 일대를 공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후한이 멸망하고, 후주가 들어선 이후 후주의 명군 세종 시영에게 패배하여 사천 지역을 상실하였다.
후주가 960년에 멸망하고, 북송이 들어서자, 맹창은 남당, 북한과 손을 잡고 북송을 견제하였으나, 결국 965년에 북송 군대에게 패배하여 후촉이 멸망한다. 맹창은 개봉으로 압송되어 검교태사 겸 중서령으로 임명되었고, 진국공(秦國公)으로 책봉되었다가 얼마 안 있어 사망하였다. 맹창은 사후 초왕(楚王)으로 추봉되었고, 공효(恭孝)라는 시호를 받았다.
3. 사후
후촉은 경제력이 강했는데 북송에 의해 멸망한 이후 북송의 장수였던 왕전빈이 후촉의 투항병들을 학살하거나 직위를 이용하여 사천 지역을 착취하자 태조 조광윤이 그의 직위를 깎아내리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북송이 사천에서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수탈하였고, 이로 인해 촉에서는 북송에 대한 반감이 발생하여 태종 재위기에 왕계파와 이순이 중심이 되어 농민 반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