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오대십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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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대십국시대에 후진(後晉)이 거란에게 멸망하고, 세워진 국가. 호한(胡漢), 북한(北漢)이라고도 칭하며 이때는 지방 정권 북한이랑 일체로 본다.
2. 역사
건국자는 사타족 출신의 유지원(劉知遠). 그는 후진 왕조가 거란에게 멸망할 때 후진을 섬기며 절도사로서 진양(晋陽)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후진을 돕지 않고, 형세를 관망하다가 요나라 군대가 돌아간 뒤 무주공산이 된 카이펑에 입성해 948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나라 이름을 한(漢)이라 칭하고 후진을 대신해 왕조를 새로이 열었다. 그 후 유지원은 낙양(洛陽)을 점령하고 거란을 축출한 뒤 중원을 지배하여 오대(五代) 왕조의 명맥을 이어간다.
거란군이 개봉을 함락시키고 후진을 멸망시켰음에도 유지원과 전투를 벌이지 않은 이유는 거란이 카이펑의 통치에 실패하여 거란인 병사들이 북쪽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고, 또한 거란의 남진은 후진에 대한 징벌과 약탈이 목적이었기에 유지원의 군대와 싸울 의미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고 있다.
그 후 유지원이 10개월 만에 붕어하고, 차남 유승우(劉承祐)가 황제가 되었다. 유승우가 재위한 기간에는 내분이 잇따라 일어나서 국가가 어지러웠다. 이에 노장 곽위(郭威)가 반란을 모두 진압하였다.
하지만 유승우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중신들을 제거하였고, 자신에게도 위험이 닥치는 것을 느낀 곽위는 분노하여 위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유승우를 공격했다. 곽위의 군대가 카이펑에 육박하던 도중 950년 유승우는 곽윤명(郭允明)에게 살해당한다.
그 때 중원 근처에서는 유지원(劉知遠)의 두 동생 유숭(劉崇)과 유신(劉信), 그리고 유숭의 아들 유빈(劉贇)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곽위는 일단 유빈을 옹립하였으나, 부하들의 추대로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주(後周)를 건국했다. '''이로써 후한은 4년이란 오대(五代)를 넘어 중국 최단명 왕조로써 막을 내렸다.'''(...)
하지만 후한의 잔여 세력인 유숭이 산서 지역에서 북한(北漢)을 창건하고 지역에 할거하였으며,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후한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천명하였고 거란의 도움을 받아 송의 태종에게 망할 때까지 버텼기 때문에 일부 사서에서는 후한과 북한을 동일 국가로 본다. '''이럴 경우 후한은 오대 십국의 오대중 가장 오래 존속한 국가가 된다.''' 어떻게 본다면 아이러니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