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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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대십국시대 후촉의 초대 황제. 자는 보윤(保胤).
2. 생애
2.1. 초기 생애~후량 멸망
874년에 형주(邢州) 용강(龍岡)[1] 에서 맹도[2] 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극용은 젊은 시절의 맹지상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딸[3] 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908년에 이극용이 죽고, 아들인 이존욱이 진왕을 습봉하면서 맹지상을 중문사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맹지상 이전에 중문사를 맡은 인물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맹지상은 바로 다른 사람을 천거하고, 마보군도우후로 임명되었다. 이존욱이 923년에 후량을 멸망시키고, 후당을 건국한 이후 맹지상은 북경 유수 겸 태원윤(太原尹)으로 임명되었다.
2.2. 후당 시절
후촉 건국 이전에 사천 지방은 전촉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전촉은 내부의 부패로 혼란에 빠져 결국 925년에 후당에 의해 멸망하였다. 전촉을 멸망시킨 이존욱은 맹지상을 성도윤(成都尹)으로 삼아 사천 지방의 통치를 맡겼다. 얼마 후인 926년에 이존욱이 살해당하고, 이사원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바로 후당의 명군 명종이다.
이사원이 즉위한 이후 후당 조정은 맹지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의 세력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이에 맹지상은 930년에 동장(董璋)과 함께 후당에 맞서 거병하였고, 사천 지역을 장악하였다. 이에 후당 조정은 맹지상에 대한 회유책으로 그를 촉왕으로 책봉하였다.
2.3. 후당으로부터의 독립과 사망
후당은 933년에 이사원이 죽은 후 혼란이 일어났다. 이미 촉왕으로 책봉되었던 맹지상은 934년에 후당의 혼란을 틈타 후촉을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했으나, 재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사망하였다. 후촉의 후사는 3남인 맹창이 이었는데, 2대째에 후촉이 멸망하였다.
맹지상은 사후에 즉위한 맹창에 의해 고조(高祖) 문무성덕영렬명효황제(文武聖德英烈明孝皇帝)로 추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