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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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 《조커》의 등장인물.
깔끔한 양복 차림과 위트있는 언변의 베테랑 코미디언으로, 주인공 아서 플렉이 존경하는 롤모델이다. 고담 시에서 생중계로 방송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심야 라이브 토크쇼 'Live! with Murray Franklin'의 진행자로, 고담은 물론 전미에서 애청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그려진다.
2. 상세
초반부에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존경하는 코미디언으로 주로 티비 안에서 자신의 쇼를 진행하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아서는 머레이가 쇼에서 자신을 지목하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훌륭한 사람이다 인정하고 '자식같다'라 말 해주는 망상까지 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아서가 어머니 페니가 입원한 병원에 있을 무렵, 자신의 쇼에서 아서의 첫 코미디언 데뷔 영상을 '재미도 없는데 자기 혼자 웃는 웃긴 코미디언'이라면서 방송한다. 웃음 발작으로 인해 코미디에 실패한 그의 모습을 조롱거리로 삼는 모습을 보였지만, 후에 이 영상이 인기가 많아지자 아서를 자신의 쇼에 출연시키게 된다. 이하는 영화 줄거리 참고.
3. 평가
주인공 아서가 타락한 악인 조커로 완전히 각성하는 계기를 주는 인물. 작중에서는 토머스 웨인과 동일하게 ‘죽을 만하지는 않은 인간’으로 묘사되지만, 토머스 웨인 항목에서 나타나듯 악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이 많은 토머스 웨인에 비해 이쪽은 악인이 맞다는 반응이 더 많다.
본인의 동의 없이 누가 봐도 사회적 약자인 아서 플렉을 조롱거리로 삼은 후 생방송에서 정신과 의사까지 데려와서 직접 조롱하기 위해 출연시켰다는 점은 명백하다. 토머스 웨인의 경우에는 아들의 보호라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고 아서가 먼저 위협을 했다고 받아들일 여지도 다분했기에 그가 취한 행동에 옹호를 받지만, 머레이는 자신이 먼저 일방적으로 아서를 공격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머레이가 아서를 좋게 대우해 줄 생각이었다고 가정해도 작중 당사자인 아서 플렉이 자신의 영상을 보고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방송 토크쇼에서 자신에게 가하는 대우에 격분했다는 점에서 조커가 말한 '''‘배려심도, 예의도 없는 인간’'''이 머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1]
작중 가장 머레이가 상식적인 선에서 행동한 것은 자신이 살인범임을 고백한 아서에게 하는 대사이다. 머레이가 한 말인 ‘그 젊은이들을 죽인 것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 같다. 모두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는 말은 살인범인 아서 플렉에게 가하는 비난이자 사회 정의와 윤리에 부합하는 지탄이다. 실제로 작중 등장인물인 ‘개리’ 등 작중 선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사를 뱉은 이후 아서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지목되면서 그 이유[2] 가 까발려지고, 이를 아서 플렉의 시선에서 지켜본 관객에게 머레이는 설득력을 심각하게 잃는다. 메시지는 메신저에게 절대적으로 좌우되기에, 아서에게 상대적으로 몰입된 관객에게 머레이의 말은 위선으로 들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고담 시의 하류 계급과 상류 계급 중 아서에게 친절하게 대한 이가 몇이나 있었나 생각한다면, 머레이의 말은 허울만 좋은 이상론이자 기만이라는 아서의 심정은 감정적으로 높은 호소력을 가진다. 이는 토머스 웨인의 '광대 살인마를 미화하는 것은 비겁자들'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윤리적, 상식적으로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지만 사회 분위기와 타인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머레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죽을 만한 인간이었는가?’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으로 평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극단주의자들의 시각과 다르게 그 정도의 악인에게 가해지는 처벌이 죽음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 물론 머레이가 아서 플렉에게 악행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정도의 악행을 죽음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통상적인 윤리관과는 맞지 않는다. 당장 주인공 아서 플렉이 이런 저런 사정이 있다고 해도 여섯 건이나 되는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타인을 조롱한 머레이가 죽어 마땅하다면 그 머레이에게 죽어 마땅하다고 외치는 아서는 더더욱 죽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성립한다.[3]
머레이가 아서 플렉이 총을 가진 줄 모르고 아서에게 도발성 발언을 해서 죽음을 자초한 면이 있다. 아니 애초에 총이 없더라도 코앞에서 범인을 제압하기 어려우면 경찰이 오기 전까지 함부로 도발하면 안 되는데 분명히 머레이는 아서에게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최소한 머레이가 아서를 도발하지 않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차분히 대했으면 아서의 자살로 끝났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만약 아서의 자살이나 체포를 위해 신중했다면 머레이의 사회적 죽음까지는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지만 [4] 자신은 적어도 죽지 않을 수도 있었고 폭동까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니 최소한 범인을 체포하는 데 협조한 점에서 '''사회적 죽음'''은 피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명예회복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완전히 조커로 각성한 아서로인한 폭동은 분명 머레이 본인이 경솔한 도발로 살해당한 점이 결정타가 됐으니 말이다.
따라서 머레이가 가지는 상징성은 '무관심'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는 아서와 같은 일반인들의 사정에 무관심하다. 심각한 문제인 쓰레기 범람 문제와 그에 따라온 거대 쥐의 출현을 '거대 고양이가 해결책이다' 라는 농담으로 바꿔버린다. 그들이 사람들이 광대살인자를 자신의 상징으로 만들어 시위하는 이유에는 관심이 없으며, 유망한 청년 셋의 죽음에만 관심을 가진다. 조커의 적대자를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악을 위해 태어난 틀에 박힌 악당이 아닌, '절대적인 악인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관심도 없는 놈들'로 설정한 것이다. 현실 세계에 흔히 있는 일반 시민들이 가지는 현실적인 고난은 알지도 못하며 관심조차 없는 머레이가 총을 맞을 때, 영화는 있을 수 없는 픽션이 아닌 현실적인 설득력을 얻게 되며, 이것에 공감하는 관객에게 위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사실 머레이의 이런 애매한 포지션이 이 영화만의 독특한 성격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5] 보통의 경우 악역, 적대자를 부도덕하고 탐욕스럽게 그려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아서 플렉은 엄연히 극악무도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슈퍼 빌런 조커'''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이며 머레이를 완전한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았기에 대다수의 관객에겐 아서 쪽이 사정은 있지만 그래도 빌런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서의 적대자 포지션에 머레이를 배치함으로서 조커는 일반적인 영화와 다른 느낌을 가진다. 즉, 자칫하면 단순하게 흘러갈 플롯을 중화시킨 주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는 토머스 웨인과 동일선상에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머레이와 토머스 웨인 둘 다 악한은 결코 아니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무신경함과 무관심이 대척점에 위치한 자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아서의 영상을 보고 비웃은 머레이도, 편견섞인 발언을 했을 뿐인 웨인도 총살까지 당할 잘못을 저지른 건 결코 아니지만, 안 그래도 힘들고 괴롭고 억울한 자들에겐 울고 싶던 차에 뺨까지 때려준 격으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성향에 따라 그들이 다르게 보이도록[6] 일부러 양면성을 넣었을 수도 있다.
토머스 웨인과 함께 공유하는 또 다른 공통점은 주인공 아서 플렉이 바라던 유사 '아버지' 역할을 대행했다는 점이다. 아서가 초반 머레이쇼를 TV로 보면서 머레이가 "너 같은 아들이 있다면 바랄 게 없다" 라고 말하는 망상을 했던 것처럼, 머레이는 아서에게 코미디언의 대부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는 머레이 쇼를 애청하며 머레이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광팬이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머레이가 아서를 허락없이 방송에서 비웃음거리로 삼으면서 아서는 아버지로부터 배신받은 아들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 이는 토머스 웨인에게서 자식임을 냉정하게 부정받는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아서가 진료기록을 확인함으로서 친부가 아니라고 믿게 되었고 따라서 그 분노가 어머니에게 대신 향했던 토머스 웨인과 달리, 머레이는 대신 분노를 받아줄 사람이 전무했다. 결국 아서는 머레이의 앞에서 자식이 아버지에게 가하는 '온건한' 폭력인 자살로 망가지고 타락해가는 자신을 끝마치려 했지만,[7] 머레이의 지속적인 공격에 감정이 고조되며 '아버지 살해'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아서를 머레이쇼에 초대한 건 아서를 방송에서 이용해먹으려고 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명의 코미디언 후배인 아서에게 '웃기지 않는 코미디언'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걸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머레이가 아서를 그저 자기 쇼를 위해 조롱당하는 역할로 부른 거라고 할지라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TV 영향력은 엄청났기 때문에 작중 최고 인기 TV 프로로 묘사되는 머레이의 쇼에 출연하 는건 무명 코미디언에겐 엄청난 이득이고 기회다. 또한 대기실에서 프로듀서는 아서에게 까탈스럽게 대하지만 머레이는 잘해주었고, 방송에서 아서를 공격적으로 대한 건 방송 컨셉(예능에서의 악역롤)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아서가 쇼에 나와서 머레이에게 조롱당하면서도 대중에게 웃기는 캐릭터만 제대로 어필했다면 코미디언으로 성공할 수도 있었던 큰 기회를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머레이는 아서가 정신병을 앓는다는 것을 아서의 방송 출연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마냥 머레이의 호의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반박도 있다.
한편, 아서가 살인을 고백하고 머레이가 상황을 되묻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장면에서 아서는 자기에게 장애가 있었고 살인은 우발적이었다는 등의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머레이를 공격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자 터닝포인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머레이 역시 살인이 일어난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소상하게 물어보지 않고 토머스 웨인에게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냐는 식으로 몰아간다. 아서가 머레이의 유도를 교묘하게 받아쳐서 폭동의 단초가 된 것을 본다면, 머레이는 훗날 조커가 숱하게 일으킬 지능형 범죄의 첫 번째 제물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4. 기타
- 머레이 역의 로버트 드 니로는 1983년 출연했던 영화, 코미디의 왕에서 베테랑 코미디언을 총을 겨누며 협박하는 신참 코미디언 루퍼트 역을 맡았었다. 조커에서는 상황이 바뀌어 베테랑 코미디언 역이 되어 총구를 바라보는 포지션이 되었다. 총만 겨누었던 코미디의 왕과는 달리, 여기서는 진짜로 총을 맞고 사망한다.
- 영화 전체에서 "사회적 약자인 일반인이 무관심에 분노하여 미쳐가는 과정" 이라는, 드 니로가 출연했던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분위기가 있다. 상기한 코미디의 왕의 레퍼런스를 생각해 보면, 드 니로를 캐스팅한 건 이를 노린 게 맞을 것이다.
- 아서 플렉에게 조커라는 이름을 지어준 장본인이다. 아서의 엉망진창인 스탠드업 코미디 동영상을 조롱하며 '정말 광대(joker)가 따로 없군요'라고 스쳐 지나가듯 말한 것. 하지만 아서가 자신을 조커라고 소개해달라 말했을 때, 정작 머레이는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머레이 입장에서는 단순히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지만, 아서에게는 큰 상처였음을 나타낸다.
[1] 당장 아서의 원래 계획은 머레이 쇼에서 ‘똑-똑 농담’을 한 후 권총으로 자살하는 것이었다. 만약 머레이가 완전히 무고하다고 가정한다면, 머레이 쇼에서 아서가 계획대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도 계속 아서를 조롱한 머레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이 성립한다. 그 계획조차 머레이의 지속적인 비웃음에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자업자득의 요소도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 한국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례로 서세원쇼의 폐지 사건이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출연자를 지나치게 조롱하며 인격적 모독을 가했고, 그로 인한 비판으로 폐지되었다.[2] 아서 플렉을 방송에서 조롱하고, 다시 조롱하기 위해 생방송에 초대한 것.[3] 백보 양보해서 머레이에게 죄가 있다해도 총살이 아니라 사회적 비판 속에서 몰락하는 '사회적 죽음'이 더 어울리는 종류의 악인인 반면 조커 본인의 악행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법률에 따라선 사형도 충분히 나올 만한 악인인 것이다. 조커 본인은 사람을 죽이고도 해방감에 혼자 춤추고 이후엔 폭도들의 환호를 즐기는 짓도 저질렀으니 머레이가 죽어 마땅하다면 조커 본인은 반드시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4] 아서가 머레이를 죽이는 게 이슈가 돼서 방송되는 화면에서 머레이가 아서를 조롱했던 영상도 같이 공개가 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머레이는 살해당하는 것도 모자라 사회적 죽음도 같이 당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5] 정확하게는 머레이만이 아닌, 아서를 조커로 만들었던 거의 모든 인물. 대부분 죽을 죄는 아니더라도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인간들이었다. 랜달이나 페니도 마찬가지.[6] 보는 사람에 따라서 타인의 고통에 관심없는 위선자로 보이기 쉽지만, 달리 보면 억울하게 살해된 상식인으로 보이기 쉽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다.[7] 아예 질식사시킨 페니 플렉과 다르게 처음부터 머레이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 것은, 머레이가 가지는 유사 아버지 관계가 아서 본인만의 망상에 가까웠다는 점을 아서 본인도 어느 정도는 인식했던 듯하다. 머레이는 자식격으로 아서를 소유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아서를 버린 적도 없다. 오로지 아서 혼자서 망상으로 머레이에게 집착하고 그에게 조롱당하자 절망한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