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켈리/선수 경력
1. 개요
메릴 켈리의 선수경력을 담은 문서이다.
2. 마이너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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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07년 드래프트 37라운드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으나 야바파이 컬리지 진학을 선택했고, 그후 2009년에는 22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다시 애리조나 주립대에 진학해버리면서 다시 입단을 미루었다. 결국 드래프트 삼수를 감수한 끝에 2010년 드래프트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레이스 입단 후 유망주로서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다. 싱글 A부터 더블 A까지 빠르게 통과하고 2013년 트리플 A로 승격되어 8승 4패 ERA 3.19로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14년에도 트리플 A에서 9승 4패 ERA 2.76으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다만 선발로 등판한 경기가 28경기 중 15경기로 보직이 다소 애매했고, 리그 자체가 투고타저 성향이 강했다.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은 좋은 기록을 찍었으나 빅리그 콜업을 받지 못 했는데, 빅리그 기준 느린 구속과, 당시 마이너 내에 켈리보다 상위권 유망주인 테일러 게리어리, 네이선 칸스, 맷 안드리스 등등에 가로막혀서 승격이 막혔다는 게 현실적. 탬파베이는 어지간한 노답제구재능이 아닌 이상 홈런공장장이 될 지언정, 좋은 제구를 갖추게 하는 시스템인데 여기서 켈리는 다른 유망주들과 달리 뚜렷한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 했다. 마이너에서도 불펜과 선발을 오가면서 고통을 받기도 했다.
3. SK 와이번스
12월 18일 SK 와이번스가 켈리와 총액 35만 달러에 계약했으며, 탬파베이 레이스의 40인 로스터에 있었기 때문에 이적료를 지급했다. 최악의 용병 농사를 거둔 2014 시즌에 이름값 높던 선수들이[1][2] 전부 먹튀로 전락하자, 구단 관계자는 '''"경력보다 내실 있는 성적과 좋은 인성을 영입의 중요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으며,[3]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되었으며 이 영입은 SK 와이번스 선발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입단 당시 지적됐던 패스트볼 구속이 느리다는 약점은 어디까지나 빅리그 기준이고 KBO리그에서 뛰기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이런 상황을 잘 노려서 SK 와이번스가 비교적 커리어 수치가 부족함에도 미래를 보고 접촉해 계약을 성사시켰고, KBO에서 활동하는동안 평균구속을 147km, 약 92마일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빅리그 선발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셈.
3.1. 2015 시즌
시즌 내내 크게 기복없는 모습을 보였으나 투타의 엇박이 심해 켈크라이로 불렸다. 시즌 후 75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으며, 2016년에도 SK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3.2. 2016 시즌
선수 본인 능력은 리그 최상위권이었으나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많이 얻지 못한 역대 3번째 200이닝 넘게 던지고도 10승도 못한 투수로 기록되었다.[4]
3.3. 2017 시즌
작년과 달리 SK 타선이 대폭발과 동시에 자신 역시 닥터 K, 리그 최고의 이닝 이터로 각성했다. 동시에 본인의 노력과 실력으로 개인 타이틀 홀더 획득했다.
SK와의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구단의 오피셜 글이 떴다. 이로써 3시즌 째 SK에서 뛰게 됐으며, SK 역대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오랫동안 한 팀에서 뛰는 선수가 되었다. 그것도 특급 외인치곤 저렴한 금액인 85만달러에 계약했다. 팬들의 반응은 대환영. 우스갯소리로 부모님이 호텔 경영인이라 취미로 야구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다만, 15시즌 종료 후 체결한 계약이 1+1년 계약이었다는 것이 대부분의 예측[5]
3.4. 2018 시즌
전반기에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후반기 부활을 하면서 김광현에 이은 2선발로 활약했고 결국 우승반지까지 얻으며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4.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4년간 KBO리그 SK에서 뛰던 켈리는 본인의 꿈인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고, SK 와이번스 역시 그 의사를 존중해서 보류권을 풀어줬고 약 한 달 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년 550만 달러(한화 61억)에 계약했다고 제프 파산을 포함 복수의 미국 언론이 전했다. 2010년 탬파베이 레이스 마이너리그에서 뛴 켈리는 KBO리그에서 우승을 한 후에 9년만에 MLB에서 뛰게 되었다. 여기에 마이너 거부권 삽입은 덤. 후에 밝혀진 사항에 의하면 켈리는 이미 2월에 결혼을 염두에 두고 애리조나에 집을 산 상태였다고 한다.[7]
이적 이후에 스프링캠프 때 대니얼 김과 영상통화 인터뷰를 가졌는데, 집[8] 에서 전지훈련지까지 통근을 할 수 있다보니 기분이 좀 의아했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디백스와 계약하던 같은 날 SK 와이번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던 트레이 힐만 감독이 마이애미 말린스 1루 코치로 오게 되어 상대팀으로 상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9]
4.1. 2019 시즌
4.2. 2020 시즌
[1] 그나마 울프는 어린 아들의 간병을 위해 떠났다는 점에서 동정하는 팬들도 많다. 운동선수들도 선수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라는 점을 생각하자. 떠나기 전 프런트에게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까지 말하기도 했고. 그러나 앞의 둘은 어떻게 쉴드를 치고 싶어도 도통 칠 수가 없다. [2] 또한 앞의 두 선수는 야구 외적 측면에서도 SK 팬을 분노하게 했는데 루크 스캇은 감독과 대놓고 싸웠고 조조 레이예스는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SK 와이번스 로고에 '''총질'''을 했다.[3] 이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수영입시 워크에씩을 중시하는 기준과도 유사하다.[4] 나머지 2명은 83년 최동원, 89년 김청수[5] 16시즌 새로 갱신된 계약이면 적어도 1백만 달러는 기본일테니... 다만 외인과의 다년 계약이 불법인지라 쉬쉬하는 것일 뿐이다.[6] 켈리 뒤에 있는건 애리조나의 주기이다. 괜히 욱일기라고 우기지 말자.[7] 켈리로써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과 팀에서 뛰게 되어 일석이조를 이룸으로서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8] 엄밀히 말하면 부모님 댁[9] 여담으로 현 마이애미 말린스의 감독은 돈 매팅리. 두 사람은 뉴욕 양키스 시절부터 절친으로, 2011년부터 2013년 시즌까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감독과 벤치코치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