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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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좌완 투수.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해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와이번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10] 이며, 최정과 함께 와이번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 후보이다.[11] 또한 한때 KBO 시절 류현진의 유일한 라이벌로 꼽히며 2000년대 후반 류현진, 윤석민와 함께 대한민국 야구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선발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또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이닝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해 프리미어 12 우승,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하는 등 10년 넘게 국가대표팀의 원투펀치로 활약하기도 했다. 08 올림픽에서는 2선발, 14 아시안 게임과 15 프리미어 12에서는 1선발로 대한민국의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2019년 12월 18일 2년간 최대 11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면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KBO에서 MLB로 직행한 역대 4번째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12][13] 그리고 역대 11번째로 MLB에서 승리투수가 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됐다.[14]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3.1. 피칭 스타일
188cm 큰 신장에서 내리꽂는 평균 147.2km/h[15] , 최고 156km/h의 포심 패스트볼과 평균 136.5km/h, 최고 147km/h의 각이 큰 고속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는 좌완 파이어볼러이다. 포심과 고속 슬라이더 외에도 최저 120km 중반대에도 형성되는 느린 슬라이더, 매년 9~10% 정도의 비율로 던지는 느린 커브와 2019시즌 새로 장착한 스플리터[16] 를 구사한다.
빠른 공이 김광현의 트레이드 마크인 만큼 빠른 공의 구사 비율이 높다. 초구나 상대 초반에는 속구, 그 다음은 웬만한 국내 투수들의 속구 스피드에 맞먹는 슬라이더를 던져 카운트를 잡는 패턴으로 피칭한다. 이 고속 슬라이더는 특히 결정구로 많이 쓰이는데, 앞서 적었듯 KBO 기준 광속 슬라이더일 뿐만 아니라 각도 굉장하기에 타자들은 그 슬라이더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kt wiz의 강백호는 이 슬라이더를 보고 변화구가 괴랄하기로 유명한 게임인 마구마구에서 나오는 공 같다며 놀라워했다. 빠른 공 즉, 고속 슬라이더와 포심의 구사 비율이 높은 만큼 다른 대부분의 변화구들은 속도가 리그 평균보다도 느리다. 대표적인 예로 커브와 느린 슬라이더가 있는데, 140km/h 후반대~150km/h 초반의 빠른 공을 던지다가 갑자기 30-40km/h, 최대 50km/h까지도 차이나는 100-110km/h 대의 저속 커브를 던져버려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아 카운트를 잡는 경우와 120km 중반~130km 초반의 저속 슬라이더로 고속 슬라이더를 노리는 타자들의 변화구 타이밍 판단에 착각을 주는 방식으로 카운트를 잡는다. 완급조절을 크게 하지는 않지만 빠른 공과 느린 공의 속도 차가 어마어마하기에 변화구로 타이밍을 뺏어 타자를 잡아낸다. 완급조절의 의미는 체력에서의 완급조절도 있지만 타이밍의 의미에서의 완급조절도 있기에 정확히 김광현은 '''체력적인 완급조절'''은 크게 하지 않으나 변화구를 이용한 '''타이밍의 완급조절'''은 다른 여타 선수들에 비해 더욱 철저히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19 시즌에는 스스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속구의 스피드를 145~148 정도로 일정 수준만 유지시키고[17] 일부러 더 빠른 공은 던지지 않는 등 '''체력적인 완급조절'''을 보였다.[18]
김광현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봐왔다면 알겠지만, 김광현의 투구 동작은 투구폼 교정이나 부상으로 인해 크게 네 번 정도 변화했고 조금씩 다른 폼으로 투구를 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스트라이드가 짧아지기도 하고, 릴리스 포인트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기도 하고, 와인드업 시 다리 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국내에선 드물었던 극단적인 오버핸드 폼 또한 유연해졌지만 다소 평범한 오버핸드 폼으로 변했다. 2007년 데뷔 시절부터 부상 회복에 성공한 2014시즌 전까지는 높은 키킹과 리그 최정상급의 릴리즈포인트를 가지고 있었고 2018시즌에는 KBO 리그 평균보다 더 긴 익스텐션과, 낮은 릴리스 포인트를 가진 투수이다.#
11년~13년의 부상 이전과 이후로 플레이 스타일이 어느 정도 나뉘는 편인데, 11년 이전까지는 보통 야구팬들이 흔히 '김광현'하면 떠올리는 스타일이자 여기에도 그 시절을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좌완 파워 피처였다. 빠르고 구위가 묵직하지만 다소 거친 제구[19] 와 슬라이더 하나뿐인 단순한 구종과 기복이 심한 투수로,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인상을 주었으나, 그런 원석 상태에서도 MVP를 수상할 만한 탑급의 지표를 보여주었다. 11년부터 13년까지는 09시즌 부상 이후 10시즌의 무리한 복귀와 뇌경색으로 인한 안면 마비 등으로 본인의 기량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 류현진과 함께 활약한 07년~12년 사이에는 08, 09시즌을 제외하면 확실히 밀리는 양상이었고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10시즌에도 류현진보다 한 수 아래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류현진의 라이벌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리그에 류현진에게 그나마 비벼볼 만한 동시대의 젊은 좌완 투수로서는 유일하다는 점과 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커맨드나 구위 모두 더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어 보였던 류현진에 비해, 성적은 한 수 아래일지언정 다듬어지지 않아 포텐셜이 무궁무진해 보였던 김광현이기에 라이벌로서 엮일 수 있었던 것. 정확히 말해 류현진의 라이벌로 기대했던 김광현은 제구가 잡혀서 완성형이 된 미래의 김광현이었던 것이다.
11년 어깨 부상 이후 13년까지 방황하다 14년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플레이 스타일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스터프가 크게 죽었다. 슬라이더의 평균 구속이 132~3km/h 정도로 떨어져 버렸고, 빠른 공의 구속 자체는 오히려 재활 운동 중 어깨 강화로 인해 더 빨라졌으나[20] 릴리즈 포인트가 낮아져 구위가 떨어진 탓에 피홈런이 늘어났고, 매년 1위를 다투던 탈삼진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으나 15년에는 제구력이 한결 나아졌고, 커브와 체인지업, 포크도 던지는 등 구종도 몇 가지 추가되어 레퍼토리가 다양해졌다. 윽박지르는 투구 대신 안정성을 추구한 셈. 그러나 본인의 가장 큰 무기인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지면서 샌디에이고가 불펜으로 200만 불 포스팅을 요청한 이후로는 해외에서의 관심은 끊겼었다. 사실 200만불 포스팅에 줄 수 있는 연봉이라면 마이너 오락가락하는 수준의 선수가 받는 연봉에 불과하다.[21] 샌디에이고도 이 시절의 김광현을 그렇게 평가했다는 이야기. 패전~추격조 정도의 불펜투수. 미국보다도 오히려 일본에서 탐을 많이 냈던 투수였는데, 피지컬이 약한 좌타 교타자가 많은 일본 리그, 특히 세리그 특성상 좌완 파워 피처면 거의 성공이 보장되는 카드여서 2010년에 한신이 벌써 6년을 들여 김광현 FA를 사겠다는 초특급 설레발을 칠 정도로 탐냈었는데, 이 구위가 없어지자 일본에서도 관심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일각에서는 지녔던 포텐셜에 비해 만개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실제로 그 평가가 맞다. 실제로 1차 부상 복귀(14-16) 시절엔 KBO에서조차 리그를 지배했다고 평할만한 성적은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떨어진 구위도 예전처럼 MVP 컨텐더급이나, 탈삼진왕을 다툴 정도가 아닐 뿐이다. KBO 수준에서는 프런트라인 선발급으로 충분히 통하는 구위인데다가 구위가 떨어진것뿐이지 구속은 오히려 어깨 강화 훈련으로 인해 더 빨라졌다. 또한 컨트롤도 15년 이후로 더 좋아져서 이닝도 많이 먹는 KBO내에서는 1선발에 적합한 더 솔리드한 투수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김광현은 예전과는 크게 다른 투수가 되었다. 나쁘게 말하면 장점을 깎아먹고 포텐을 터뜨리지 못한 크보 상급 투수가 된 것이고, 좋게 말하면 좀 더 솔리드한 완성형 투수가 된 것.
아직 포텐이 터지지 못한 마이너 선수들의 경우 한두 가지 요소는 상위 레벨에 근접할 수 있다. 널리고 널린 마이너리그 유망주들도 구속은 빅리거 못지않다. 여기서 단점을 개선해서 실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빅리거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장점 대신 낮은 수준에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으면 마이너리거로 NPB, KBO에 가게 되는 것인데, 모두가 더 이상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1차 복귀 시기의 김광현은 후자였던 것. 그가 만 20세 시즌에 리그 MVP급 성적을 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KBO의 수준이 AA~AAA 정도로 평가되는데,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아 입단해도 20살 정도면 보통 루키나 A에서 머문다. 투수가 20살에 AA 혹은 AAA에서 김광현의 08시즌 정도 성적을 냈다면 MLB에서도 특급 유망주 취급이다.[22][23] 보다 높은 수준으로 도약해야 할 시기에 한국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리그가 없었고 이미 정복이 끝난 수준의 리그에서 정체되어 있다가[24] 2009시즌 타구를 맞는 불의의 사고를 시작으로 2010시즌 무리한 복귀 후 이듬해 찾아온 부상으로, 이런저런 부상이 겹쳐 성장이 멈춰버린 케이스.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보였던 16년 FA때도 토미존이 겹쳐 진출하지 못할 뻔 했으나, 토미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2018시즌 이닝 제한 속에 전성기의 구위를 완전히 되찾는데 성공하면서, 이 시점부터는 상대적 약점이었던 제구력조차 완성형 투수가 되었다. 슬라이더의 구속은 구속대로, 그리고 포심의 평균 구속이 147.3km/h로 데뷔 이래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수술 여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2019시즌에는 염경엽 감독이 약속한 100구 이내 투구수 관리+100구 이상 5회 쿠폰이 지켜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147.1km/h의 빠른공을 앞세워 190이닝 180K 2.51이라는 매우 뛰어난 성적을 내며 MLB 진출에 결국 성공했다.
부상으로 인한 부진, 재활, 부활 등을 반복하며 어렸을 때 가졌던 구위와 포텐을 잃었'''었'''으나 토미존 수술 후 철저한 팀과 본인의 관리로 전성기 시절에 다 펼치지 못했던 구위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비록 늦은 나이일지라도 그동안 부상을 겪으며 다져온 제구력과 투구수 관리 능력, 기존보다 더 늘어난 변화구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어린 시절보다 더 완성된 모습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투구폼이 다이나믹한 탓에 도루 저지 면에서 조금 미묘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준수한 도루저지능력을 보여준다. 견제능력이 빼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슬라이드 스텝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주자가 정확한 타이밍에 스타트를 끊기 어려운 투수로 꼽힌다. 또, 좌완 투수라는 점도 한몫한다. 그래도 폼이 다이나믹한 것치고는 수비력이 준수하다. 운동신경이 워낙 좋아서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도 강습, 땅볼타구 처리나 베이스 커버가 상당히 좋다.
종합적인 운동능력이 굉장히 좋기로 유명하다.# KBO 투수 중 종합적으로는 역대 최고의 운동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MLB 스카우터나 관계자들의 발언에 따르면 유연성-민첩성-힘-점프력 등이 상위권 운동 지표를 찍는 흑인선수들과 비슷한 레벨이라고. 야구, 농구 등 여러 선수들을 압도하는 운동능력을 가진 미식축구 선수들 수준이라고 한다. 피지컬도 MLB에서는 평균 이하지만 아시아 선수들 중에서는 최상위권이다. 이 최상위권 운동능력과 피지컬덕분에 특유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오랜기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3.2. 강력한 투 피치
본인 특유의 역동적인 오버핸드 폼과,[25] 188cm의 장신에서 내리꽂는 최고 150km/h 중반의 패스트볼은 매우 강력하다. 역대 국내 좌완투수 기준으로 구속과 구위가 손에 꼽히는 투수 중 하나이다. 또, 데뷔때랑 비교해 구위가 떨어졌다는 평가와 달리 구속은 팔꿈치 문제가 있던 2016년 전까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깨 부상으로 인한 재활기간동안 어깨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의 결과.[26]
또한 그의 주력 변화구인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역시 매우 강력한데, 140km 내외의 빠른 구속이 오버핸드 투구폼과 시너지를 이루어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낸다.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스탯티즈가 제공하는 구종가치 14시즌 1위, 18시즌 2위, 19시즌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리그 최정상급 결정구이다. 투구를 보다보면 바닥에 박힐 정도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타자들이 포크볼마냥 헛스윙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27] 설령 공을 맞춰낸다 하더라도 타격 지점이 워낙 낮기 때문에 보통 땅볼이 된다.[28] 실제로 김광현은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뜬공 아웃보다 땅볼 아웃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숨겨진 땅볼 투수인 셈. 종합하면 타자를 압도하는 위력적인 구위가 장점으로 몸쪽-바깥쪽을 나누는 제구력보다는 압도적인 공의 위력과 존의 높낮이를 이용해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를 한다.[29]
1차 복귀 시기 중 한 시즌인 2016시즌에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단순한 패턴을 커브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가며 줄어든 구위의 문제점과 함께 극복해나가는 느낌이다. 개막전 시범 경기 넥센전에서는 그 슬라이더를 완전히 봉인하고 속구와 체인지업만으로 좋은 성과를 냈고 포피치 투수로 발전해가는 중이다. 그리고 실제로 2016년 5월 12일 두산과의 대결에서는 속구 44개, 슬라이더 26개, 커브 12개, 체인지업 20개를 던졌다. 특히 7회 2사 2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민병헌에게 던진 바깥쪽 꽉 찬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는 장면은 이 날의 백미.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쓸 정도로 활용도가 올라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실제로, 김광현은 시즌 개막 전 인터뷰에서 체인지업으로 피홈런 10개(...)라는 황당한 목표를 세울 정도로 다양한 구종을 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다만 체인지업은 2016년을 제외하고는 크게 사용한 시즌이 없다. 커브는 14시즌 이후부터 꾸준히 써드 피치로 사용하고 있다.
2019시즌에는 우타자의 바깥쪽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 스프링캠프에서 커브와 스플리터를 연마했다.# 지난 2018시즌에 포심과 슬라이더의 비율이 각각 45% 가량으로 두 개의 구종을 제외하면 다른 구종은 총 구사율이 10%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커브와 스플리터의 구사율을 20%까지만 늘려도 지금보다 나은 볼 배합이 가능해져 투구 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나름 커브와 스플리터[30] 를 잘 갈고 닦았는지 메이저리그 진출 후 시범경기에서 커브가 꽤나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스플리터 역시 메이져 기준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완전히 투피치 투수였던 것은 전성기였던 08-10 시절이고, 이후 부상과 재활을 거쳐 14시즌부터는 커브를 섞어던지면서 투피치~쓰리피치 투수 사이 정도였다.[31] 스스로 투피치 투수의 한계와 단점을 파악하고 커브-스플리터-체인지업 등을 장착하려고 노력했고, 이 구종을 활용하여 실전에서 꽤 괜찮은 질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강력한 극단적 투피치 투수에서 괜찮은 2, 3 변화구를 가진 강력한 투피치형 투수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2020시즌 시범경기 등판 후 인터뷰에서 그동안 자신이 ‘투 피치 투수’로 불린데 대해 아쉬운 심정을 나타냈다. 한국에서는 단순히 던지는 구종을 직구,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 정도로만 구분했으나 메이저리그에서는 같은 직구라 할지라도 구속을 조절하는 부분을 잡아내는데, 그동안 슬라이더라 할지라도 빠른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를 잡는 백도어 슬라이더 등 다양한 슬라이더를 구사하여 총 3가지 슬라이더를 던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직구와 커브를 합하면 파이브 피치이며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은 구종으로는 투 피치 투수이나 상대 타자에게는 파이브 피치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으로, 한국에서는 구종의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해 조금 속상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코칭스태프은 물론 선수들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으며, 캐스터나 해설자도 상황에 따라 다른 구속의 슬라이더를 던지는지 설명하는 것을 보고 설사 그런 말들이 립서비스라고 해도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20시즌부터 공인구 변화의 영향인지 김광현의 포심이 커터성을 띄는 내추럴 커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직구의 구속이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낮은 상황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이유로 이 구종이 지목될만큼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 김광현이 이 구종을 의도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만약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매우 매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미 인터뷰 유튜브 영상에서 내추럴 커터에 관한 본인 언급이 있었는데, 아예 직구와 느낌의 차이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추측컨대 한국의 로진과는 달리 미국의 로진은 찐득함이 있기도 하고, 자신의 공을 채는 방식이 타 선수들과는 다른 방식이라 좀 더 커터성을 띠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애초에 한국에서부터 몸쪽으로 직구를 던질 때 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컨디션이 안좋을때 나오는 실투성의 공이라 생각했다고. [32] 또 지금처럼의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33] 예전에는 컨트롤할 수 없었다면 지금은 5개 던지겠다고 하면 5개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느낌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의도하고 던진 적은 없으며, 자연스럽게 휘는 경우라고 한다.[34]
3.3. 내구성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을 어깨 부상에 시달렸다. 이런 사실은 김광현의 내구성을 낮게 평가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와일드한 투구폼 때문에 부상 위험이 높다는건 이미 어느정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시절 SK는 선발 키우기보다 쥐어짜내기 불펜야구에 매달리는 팀이라[35] 한 번에 8~9이닝을 던지고 5~6일 로테이션을 도는 것보다는 6~7이닝을 던지고 철벽 불펜에게 넘긴후 4일 로테이션을 지키며 보다 많은 승리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김광현이 이닝이터의 성격보단 6이닝, 많으면 7이닝을 전력으로 던지는 선수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실제로 나타나는 스타일이 이 시절에 만들어진 걸 수도 있다.[36] 이로 인해 이닝 수와 경기당 평균 이닝이 적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09시즌의 경우 부상 당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돌면서도 많은 이닝[37] 을 소화해 무려 전반기에만 규정이닝을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10시즌에는 포스트시즌 포함 200이닝을 넘기기도 했다. 다만 이때 무리한 복귀와 많은 이닝 소화로 이듬해부터 3년간 고생하고 이때의 구위를 오랜 시간 동안 되찾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
거기다 어깨 부상이 없는 2010년 이전과 2014년을 보면 조기강판 횟수도 적다. 특히 2009년에는 김성근 감독의 실수로 비롯된 조기강판[38] 과 시즌 아웃을 당한 손등 부상을 제외하면 부진해서 조기강판된 적도 없다. 본격 부활 시즌이였던, 2014년에는 4월 23일 NC전 4이닝 4실점(2자책) 단 1회 뿐이다. 심지어 19시즌엔 조기강판 당한 경기가 아예 없다.
2010시즌 역시 카도쿠라 켄과 함께 단 둘 뿐인 믿을 만한 선발투수로 그해 거의 모든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치뤄냄으로써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출장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시즌 이닝 1위 투수가 되었다. 아무리 리그가 다르다곤 하지만 그 류현진조차 메이저에서 4일 로테이션으로 고생한 것을 생각해보자. 200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2년간 4일 로테이션을 꾸준히 소화하면서 이만한 성적을 내려면 상당한 내구성이 있지 않고는 힘들다. 그 이후 2011시즌부터 부상으로 여러차례 2군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를 10시즌의 후유증 탓으로만 보기는 힘들다.[39] 따라서 몸이 건강하다면 내구성도 문제없다고 보며, 2014년에 이상 없이 풀타임 시즌을 치름으로써 내구성을 회복하였다. 또한 2015년에도 팔꿈치 부상으로 한 두경기만 빠졌기 때문에 내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의외로 롱런한 선발투수들이 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구성이 마냥 나쁘진 않은 선수다. 다만 데뷔 후 2019시즌까지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뛴 시즌은 다섯 시즌 뿐이란 점이[40] 약간의 아쉬운 포인트. 그러나 07년은 1~2군을 오가던 데뷔 시즌이었으며 09시즌은 막판 페이스를 끌어올렸다면 2점대-20승-200이닝[41] 으로 3관왕을 차지할 수도 있었던 엄청난 페이스로 전반기에만 규정이닝을 채우는 시즌을 달리다가 김현수의 타구에 맞아 아쉬운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고 10시즌의 무리[42] , 09시즌 타구에 맞은 손목부상여파[43] 2011~2013 3년간 09시즌 타구에 맞은 부상의 여파, 어깨 부상과 안면마비 등이 겹쳐 제대로 뛰지 못했으며 16시즌 후반 팔꿈치 문제로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18시즌 철저한 관리 하에 136이닝을 던지며 매우 좋은 성적을 낸 것을 감안하면 풀타임 소화 시즌이 적은 것은 다소 불운한 선수생활을 보내고 있는 탓도 크다. 그러나 큰 부상 없이 10년 이상 뛴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국가대표급 투수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44]
하지만 FA계약을 앞두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는데 이 수술은 투수에게 통과 의례 같은 수술이기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군더나 전병두 같이 회전근을 다친 경우도 아니고, 토미존 같은 경우에는 100%는 아니어도 수술 전 만큼의 구위를 되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재활에서 투구폼을 교정 및, 근육들의 휴식을 통해 더 강한 구위와 빠른 구속을 갖는 경우까지 생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에서 최전성기때도 못던졌던 160km/h을 토미존 수술 이후 일본에서 던진 임창용. 이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그 매우 드문 경우가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복귀 후 제대로 치르는 첫 시즌인 19시즌 190이닝을 소화하며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냈다.
즉 종합하자면, 내구성 면에서 평가절하될만한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커리어 내내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며 빌빌거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며, 다만 부상이 있었던 기간과 없었던 기간이 공존하며 부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기간에는 풀시즌을 압도적으로 이끄는 선발로서의 모습도 보여줬다고 보는 편이 맞다.
3.4. 경기 운영
지금은 SK 뿐만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이지만 의외로 마운드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 그 때의 감정이 얼굴에 곧바로 드러나는 스타일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시 얼굴만 보고서도 심리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이며, 롤러코스터급은 아니더라도 한 경기 내에서 투구 내용의 기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45] 다만,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곧잘 이겨내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김광현은 기어를 올리며 더욱 강해진다는 평이 많을정도. [46] 장작을 쌓는거치고 생각보다 방어율이 좋았던데에는 이유가 있던 것.
구종을 추가하기 전까지는 150km대의 포심와 140km대의 고속 슬라이더 만으로 압도하는 스타일의 투수로, 모든 구종을 빠른 속도로 던졌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직구에 힘이 떨어지거나 고속 슬라이더를 잘 거르는 타자를 만나는 경우 투구 내용에 약점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 타자를 맞춰 잡을 방법이 부족해 삼진 혹은 볼넷 승부가 많아지는데 비슷한 파워 피쳐인 배영수[47] 의 경우에도 1450⅓이닝 531볼넷으로 부진했던 09시즌의 성적을 감안하면 김광현보다는 볼넷이 더 적다. 특히 이로 인해서 FIP가 늘 ERA와 큰 차이가 난다. 김광현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08~10시즌은 SK 야수진의 수비력이 정점을 찍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슬라이더의 구속을 구분해서 던지고 커브와 스플리터 등 추가 구종을 사용하며 다소 투박한 외곽 제구를 가다듬으면서 2015 시즌부터 볼넷의 비율이 낮추기 시작하며 옛날처럼 볼질을 하는 모습은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수술 후 복귀한 18시즌 이후부터는 9이닝당 볼넷이 2개 이하로 내주면서 리그 상위권 볼넷 허용률을 기록 중이다. 커리어 하이 시즌과 비슷한 성적을 낸 19시즌에도 작년과 같이 '볼넷 줄 바엔 안타를 맞겠다'는 마인드로 스트라이크 존으로 밀어 넣는 공격적인 투구를 해 18시즌과 동일하게 볼넷은 상당히 줄었으나 비슷한 피칭을 했던 18시즌과는 달리 피안타율이 상당히 올라갔다.[48]
ERA에 비해 FIP가 높은 편이라 이를 근거로 김광현을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있었지만, KBO의 탑급 레벨의 투수들은 FIP보다 ERA가 낮은 경향이 있는 등 FIP가 KBO 리그의 투수를 분석하기에는 잘 맞지 않는 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광현을 FIP를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49] 또한 김광현은 FIP-ERA 수치가 0.73으로, 150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다.[50] 2위 이강철이 0.44로 김광현의 F-E의 60% 수준이며, 공동 3위인 송진우와 장호연이 0.4, 그 밑으로는 8위까지 0.3대, 9위 밑으로는 0.2대로 FIP에 한해서는 KBO 리그의 김광현은 아웃라이어로 볼 여지가 크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DIPS 문서에도 나와있듯 FIP의 전제인 'BABIP 투수 통제불가론'이 무너진 이상[51] FIP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로 인하여 FIP가 가진 의미 자체를 많이 잃어버려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FIP의 위상이 크게 떨어진 이후로는 FIP를 토대로 한 비판이 상당수 줄어들었다.
4. 라이벌
야구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김광현의 라이벌은 KBO 리그 기준으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류현진'''과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양현종'''이다.
먼저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했던 류현진과의 라이벌리부터 살펴보면 류현진이 김광현보다 1년 빠른 2006년에 데뷔해서 첫 시즌부터 투수 트리플 크라운과 KBO MVP, 투수 골든글러브, 신인왕 수상 등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며 커리어 시작점부터 한국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고교 슈퍼루키인 김광현은 데뷔 시즌에 류현진에게 디스 아닌 디스 발언을 하면서 기대를 받았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2군으로 내려감과 동시에 오랄킴이라는 별명을 얻는 굴욕을 당했으나,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 다니엘 리오스와의 선발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팬들이 원하는 영건 에이스로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8년에 제대로 각성하면서 탈삼진과 다승 타이틀을 따내고, 투수 골든글러브와 KBO MVP를 석권하며 류현진에게 판정승을 거뒀다.[52] 또한 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준결승전에 등판한 김광현은 New 일본 킬러로, 결승전에 등판한 류현진은 대한민국 최고 좌완 에이스로 이미지를 굳혔고, 이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두 선수의 라이벌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2009년 시즌 중반까지는 두 선수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김광현이 8월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지만 규정이닝을 간신히 채워 RA9-WAR 5.75를 기록하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류현진은 RA9-WAR에서 투수 1위인 6.47을 기록하며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판정승을 거뒀고, 하필이면 2010년에 두 선수 다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두 선수의 커리어하이 스탯을 보면,
- 10 류현진: 25경기 192.2이닝 16승 4패 ERA 1.82 ERA+ 253.6 187삼진 sWAR 10.63
- 10 김광현: 31경기 193.2이닝 17승 7패 ERA 2.37 ERA+ 191.9 183삼진 sWAR 8.66
- 김광현(07~19/13시즌): 298경기 1673.2이닝 136승 77패 ERA 3.27 ERA+ 138.8 1456삼진 sWAR 50.32
- 류현진(06~12/7시즌): 190경기 1269.0이닝 98승 52패 ERA 2.80 ERA+ 151.5 1238삼진 sWAR 46.16
KBO리그에서의 성적을 비교해보자면 통산 RA9-WAR[54] 에서는 두 선수가 의미있는 차이가 없을 정도의 누적을 쌓았고,[55] 조정스탯에서는 김광현이 비교우위를 가져간 채 끝나게 된다.[56] 이후 2020년 김광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하고 첫 시즌부터 올해의 신인 TOP 25 중 13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야구 팬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반면 양현종은 최근 몇 년간보다 부진한 성적을 남겼고, 해마다 기복도 심한 편이다.
사실 애초에도 김광현은 11-16 시즌까지 겪은 각종 뇌경색 후유증 및 어깨 부상, 토미존 부상, 각종 잡부상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기였던 2008~2010(09년 불의의 타구 부상 전까지), 2018~2019 시즌엔 모두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이뤄내며 자신이 부상만 없다면 2점대 평균자책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물론 모든 운동선수들에겐 꾸준함이 그 선수의 실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지만 김광현은 부상이 공존하던 시기인 11~16 시즌의 기록들로 스텟에 손해를 본 부분이 있으며, 건강할 때의 기록을 본다면 앞서 말했듯이 비교가 되질 않는다. 애초에 김광현은 건강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기록이 각 시기를 기준으로 봐도 일정했고, 양현종은 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때에도, 자유롭지 못한 때에도 기복있는 시즌을 보내왔다.
이미 예전부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김광현이 상위 리그에서 통할 재목이라고 말해왔으며, 실제 단축 시즌이긴 하나 한 매체에서 뽑은 메이저리그 올해의 좌투 루키에 뽑힐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보이며 전문가들의 예측을 증명해낸 바 있다.
실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탑급 메이저리거들 중에서도 꽤 많은 수가 마이너에선 자신들보다 잘하는 선수가 있었으나 메이저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마이너에선 현 탑급 메이저 선수들보다 잘했다고 해서 그들을 더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내구성을 무기로 리그 탑급 투수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양현종이 운동선수로서의 최상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2021년 스토브리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게 되었기 때문에, 메이져리거로 승격되어 빅리그에서 실제로 경기를 치러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예나 지금이나 스카우터들의 평가 및 성공 여부에 관한 평가와 실제 계약 내용 역시 박했을 뿐더러 풀핏이 아닌 상태로도 메이저리그에서의 가능성까지 보인 김광현에게 선수 개인의 실력으로 보았을 땐 라이벌보단 한 수 아래의 상대라고 여겨진다.
5. 여담
- 지금은 키가 큰 선수이지만,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150cm대 초반의 키로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 다니는 동안 키가 33cm나 커서 고등학교 들어갈때는 18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장통이 심해서 어떤 날은 무릎이 아파 달리기도 제대로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할 때 키가 많이 자란 비결은 부모님이 자주 해준 보양식과 본인이 즐겨 먹던 초코우유라고 한다. 컴퓨터 게임하면서 작은 종이팩 초코우유를 14개나 먹었다고.
- 2010년 9월 19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해서 은퇴식을 치르는 양준혁과 정면 승부를 했다. 양신의 은퇴식 전의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이 대선배에 대한 예우라며 삼진 3개를 잡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 시즌 최고의 투구와 함께 그 약속을 지켰다.[57] 솩갤에서는 언행일치갑이라며 찬양받는 중. 양신과의 대결에서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실어 던졌다.[58] 재미있는 점은, 김광현의 프로 통산 첫 피홈런을 안겨준 상대가 양준혁이었다.[59] 매우 드라마틱한 일. 하지만 구설수를 조심하려는지 패기있을 젊은 나이임에도 인터뷰를 예전처럼 자신감 있는 발언보다는 틀에 박힌 교과서적인 대답만 해서 아쉽다는 팬도 있다.
- SK 와이번스의 최전성기[60] 에는 1위팀의 No.1 에이스로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 듯. 1위팀의 선수이기에 타선과 든든한 불펜의 도움이 있지만, 1위팀이기에 모든 경기를 이기려고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1위팀의 에이스로 자신이 나가면 반드시 승리를 챙겨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 SK 와이번스 팀 동료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은 귀공자였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에이스 역할을 맡아 선배들에게 이쁨을 많이 받아서이기도 하고 때문에 야구에만 집중하라고 다른 동료들이 놀 때도 같이 놀지 못하게 막는 일이 잦았다고. 그러다보니 SK 텔레콤 CF에도 나올만큼 인지도가 있음에도 시구 외에 연예인을 처음 본게 데뷔하고 만 13년이 된 아는형님 촬영이었다고 한다.[61] 구단에서도, 선수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다.
- 웹툰 만화가 이말년이 김광현의 팬이라고 한다. 이말년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본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으나, 쌍방울이 해체된 뒤 옛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SK의 팬이 된 것.[62] 이후 이말년이 안산에서 오래 살면서 안산사람인 김광현에 애착을 가진 듯. 류현진에 비해 김광현은 저평가받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트위터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 또래의 팀 선수들과 훈훈한 장면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 실실 웃는 모습 등등 뭔가 모자라 보인다고 해서 모지리라는 별명도 있다. 워낙에 오랄이 강렬한 별명이라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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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현의 또 다른 별명으로는 베테랑 막내라는 별명이 있었다. 김광현이 데뷔 7년차가 되어서야 그나마 한 살 어린 한동민이 나와서 전체 선수 중 막내였다가 투수조 막내가 됐다는 점에서 SK 마운드의 노인정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13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백인식조차 87년생으로 김광현보다 형이니... 이때문인지 대형 신인 투수가 SK에 지명되면 과연 김광현이 이번엔 막내를 탈출할 것인가가 관심사였을 정도. 하지만 얼마 후 박종훈과 서진용이 꾸준히 1군 엔트리에 올라와 투수조 막내도 역시 벗어났다. 2019시즌 이후로는 투수조 최고참 수준으로, 2019시즌 투수조 조장을 맡기도 했다.
- 어렸을 때는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로 꼽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극도의 부진에 빠진 2011년 이후로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김광현의 영입을 바라는 팬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다만 김광현이 등번호 47번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하냐 말아야 하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64] 다만 김광현이 2016년 FA 때도 SK에 잔류하고 2019 시즌 후에는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게 되면서 SK 종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65] 메이저 리그 선수 중에서는 랜디 존슨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를 '우리 형'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 축구선수 기성용과 닮은 꼴로 유명하다. 기성용의 빠른 생일로 보면 동갑 취급해도 될 정도, 서로가 닮은 꼴임을 잘 알며 의식하는 듯하다. 상대 종목이 인기를 끌 때 팬들에게 오해 받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참고로 기성용은 광주광역시 출신답게 KIA 타이거즈의 팬이다.
- 애프터스쿨의 유이와의 소개팅을 거절했었다고 한다. 물론 유이가 애프터스쿨 멤버가 되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당시 김광현에게는 이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즉,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소개팅을 신청한 것 부터가 미스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야구인임을 생각해볼 때 유이의 언행은 상당히 의외다. 현역 선수와 루머에 엮이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없을텐데.[66]
-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과 닮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기사로 떴다. 이미 김광현의 여자친구도 인정했으며 SK 선수들도 "탁구야" 하고 부르기도 하며, 이에 한술 더떠 김광현은 "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 목소리가 굉장히 남자답고 멋지다.
- 2013년 양준혁 재단이 주최한 자선경기에서 홈스틸에 1루 라인드라이브 수비에 번트안타까지 만들어내면서 해설자들에게까지 극찬을 받았다.
- NC 다이노스에게 창단 초창기엔 약했다. 등판하면 꼭 패전을 떠안고 내려갔다. 2013년에 선발 2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모두 패전을 떠안았고, 2014년에도 1경기 등판해 패전을 떠안았다. 2015년에는 선발 1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1승 1홀드를 기록했으나, 평균자책점이 10.13으로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16시즌 첫 맞대결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타선을 틀어막으며 통산 100승째를 기록하였다. 2019년 기록은 NC 상대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다.
- kt wiz에게도 약하다. 2015년 시즌 kt에게 2승을 기록했지만 23이닝 23실점 방어율 9.00로 NC 다이노스에 이어서 방어율이 제일 좋지 않았고 16시즌 또한 kt와의 개막전에 등판했으나 4와 2/3이닝 7실점을 기록하면서 징크스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2019년 거의 커리어하이급 성적을 내고 어떤 팀을 상대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나마 kt를 상대로 4.1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상대한 팀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 이선희 - 구대성 등으로 이어져 온 좌완 일본 킬러의 대를 잇는 투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두 차례 등판해 5.1이닝 1실점, 8이닝 2실점을 찍으며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WBC 때는 반대로 털리긴 했지만 이 것은 일본이 김광현한테 당하는 것이 두려워 분석을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전력분석 자료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김광현의 공은 높게 보고 쳐야 한다. 높으면 직구 확률이 높다. 직구마저 낮게 제구되면... 칠 수 없다." 당시 김광현의 위력과 일본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볼 수 있다.
- 부모님이 안산시 고잔동 주공아파트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했다.[67] 100승을 하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오면 직접 기념 떡을 해왔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 별명도 떡광현이었다고 한다.[68][69]
- 2남 1녀 중 장남[70] 이다. 2014년 시즌 끝나고 결혼해서 2018년 현재는 1남 1녀, 두 아이의 아빠.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거주하다가 청라국제도시로 이사갔다고 한다.
-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구마구와 프로야구 매니저를 하는 모습도 찍힌적이 있고 리그 오브 레전드도 좋아한다고 한다.[71] PC방 같은 곳에서도 가끔 발견되기도 했고.[72] 동창의 증언으로는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모으다가 전종 컴플릿을 바라볼 시점 스타크래프트에 눈을 떴다고.[73] 게다가 미국에 올 때 한국에서 가장 먼저 챙긴 물건이 노트북과 키보드, 마우스였는데 고국의 향수를 게임으로 달래려고(...) 가져왔다고 한다.
- 이사만루2015 KBO에서는 10김광현은 구종이 좋지 못하다. 체인지업 F, 컷패스트 E, 나머지 D. 애당초 이거 말고 문제가 더 있긴 하지만...
- 소속팀 모기업인 SK텔레콤 TV 광고를 간판 에이스답게 두 번이나 출연하였다. 2008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한 번 찍었고, 2016년에는 생활플랫폼 광고를 촬영했다. 이후 스폰서인 미즈노의 지면, 영상광고도 찍었다.
- 2016년 tvN 드라마 안투라지에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팬들은 기대했는데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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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에 100승을 달성한 후 기념 글로브 29개를 제작해 개당 100만원에 판매, 판매수익금 전액을 야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해당 글러브에는 번호가 기입되어 있으며 1번은 김광현이 실착용으로 사용한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의견도 간혹 나오는데 위의 글러브는 미즈노 포 프로 글러브, 즉 프로 선수용으로 맞춤 제작되는 글러브로 현역 선수가 아니면 얼마를 줘도 구할 수가 없는 모델이다. 거기에다 한정판으로 29개만 있다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그다지 비싼 가격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 의외로 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다고 하며 위의 자선 글러브 이벤트도 본인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고. 만약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게 된다면 구단 마케팅 직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 2017년 마무리 캠프 이후 귀국하는 모습의 사진이 찍혔는데 2017년 항목을 보듯이 재활기간동안 기른 장발모습이 기존의 이미지와 갭이 너무 크다. 근데 기자가 하필 그 제목을 멋쟁이 테리우스로 변신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결국 김광현 팬과 모든 야구팬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이발하라고 댓글이 달렸다. 머리를 기른 이유는 소아암 어린이에게 모발 기부를 하기 위해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김광현이 장발로 18시즌에 복귀전을 가졌을 때 의외의 장발간지투구를 보이자 팬들 사이에서도 이발하라는 여론이 잠잠해졌고 이발할 때에는 아쉬워하는 팬도 꽤 생겼다. 김광현이 존경하는 투수인 이상훈이 생각났다는 팬들도 제법 있는 편.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복귀한 후 깔끔하게 이발하였다.
- 이사만루2019까지는 김광현이 와이번스에서 뛰고있던지라 라이선스가 제대로 붙어있었는데, 이사만루 3에서는 김광현이 MLB로 넘어가서 라이선스 취득을 못하고 김기혁이라고 개명 당했다.
- 차량은 2020년 미국에서 닷지 듀랑고를 몰고 다닌다.
-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밝힌 일화로, 처음 카디널스에서 훈련할 때 예상보다 일찍 끝나 당황한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선배 류현진에게 훈련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류현진의 답변은 ''그냥 가~''[74]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식에서 존 모젤리악 단장이 김광현을 KK라고 부르고,# 카디널스 SNS에서도 KK라고 부르는 등 미국에서 KK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계진도 이름을 빠르게 말하기 어려웠는지 중계할 때 KK라고 부른다. MLB.com의 선수 프로필에서도 닉네임으로 KK가 작성되었다.#
-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웃는 얼굴을 보여주어 현지에서는 '스마일 K'라는 별명도 생겼다고 한다. 사실 국내에 있을때도 데뷔때부터 잘 웃는 모습을 보여줘서 소수의 기자들과 팬들이 '스마일 K'라고 불렀다.
- 등판할 때마다 호수비가 많이 나와서 운광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75] 하지만 김광현의 2020년 타구 데이터에 따르면 하드힛%, xwOBA, 배럴%, xSLG, 타구 속도까지 리그 평균보다 좋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하드힛%과 배럴%는 투수 상위 16%를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시범경기보다도 낮은 구속으로도 나름대로 효과적인 투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2020년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마치고 귀국해서 자가격리를 마친 뒤 여러 인터뷰와 예능에 출연한다. 유튜브 인터뷰로는 이랜드뮤지엄의 "윤태진의 9회말앵콜"[76] 과 이영미TV "이영미의 셀픽쇼"[77] 에 출연했으며 TV 예능으로는 11월 21일 아는 형님과 11월 25일 라디오스타와 12월 20일 런닝맨에 출연했다.
- 숫자 88과 연관이 많은데, 1988년생이며, 네이버 프로필 기준 키는 188cm, 몸무게는 88kg이다. 다만 현재는 몸무게가 88kg보다는 적게 나간다.
6. 연도별 성적
[1] 영어 별칭은 본명에서 딴 '''KK'''[2] 초등학교 2학년 때 안산으로 이사했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부친 김인갑 씨(1957년 생)의 고향이다. #[3] 2010학년도 건국대학교 체육교육과 수시 전형에 합격하였다. 다만 학사학위를 받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다음 프로필에서는 학사가 아닌 건대 체교과로만, 네이버, KBO 프로필에서는 안산공고 졸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KBO 프로필은 데뷔 전 학력만 기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4] 메이저리그 프로필에는 185lbs(84kg)로 등재되어 있으며 #, KBO 등록상으론 데뷔때부터 쭉 88kg였으나, 2019년 인터뷰에서 몸이 최대 87kg밖에 찌지 않는다고 인터뷰했다. 몸무게 관련 2019년 기사. 하지만 네이버 프로필 기준으로는 88kg로 적혀있다.[5] KBO 리그 통산 298경기 중 276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데뷔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이후 코로나 19로 아웃당한 카를로스 마르티네즈를 대체해서 선발로 보직을 변경했다. 선발진에 합류한 이후 좋은 활약을 펼쳐 21시즌에는 쉴트 감독피셜 3선발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6]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오른손잡이다. 다만 이 쪽은 교정을 통해 좌투가 된 류현진과 달리 선천적인 좌투좌타이다. 야구를 할 때만 왼손을 쓰는 것이므로, 다른손잡이라 보는게 적절하다.[Option] Annual Incentives $1.5M[7] 2020년 11월 21일 아는형님에서 메이저리그 진출하여 평소 좋아하는 팝송으로 정했으나 부적절한 표현들이 들어가 반려되자 '''아무 노래'''나 골라보자고 했다가 정말로 '''아무 노래'''로 정하게 되었다고 말했다.김광현이 언급한 "평소 좋아하는 팝송"은 아래 나와있는 SK시절 등장곡인 "Why Don't You Get A Job"일 확률이 높다. 이전에 사용하던 노래라면 좋아하던 곡일 것이고, 가사에도 "bitch"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8] 두 동생은 쌍둥이라고 한다. 그 중 여동생 김나현은 전직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100승 기념 행사 날 시구도 했다.[9]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10]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KBO MVP &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이며, 구단 역대 최다승,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 투수 통산 WAR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1] 영구결번 후보라고는 하지만 선수생활 말년에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최정과 김광현 두 명은 거의 영구결번 확정자라고 봐도 무방하다.[12] 김광현 이전에 포스팅으로 메이저 리그에 직행한 선수로는 2012년 류현진, 2014년 강정호, 2015년 박병호가 있다.[13] 또한 원래 아메리칸 리그에서 활약하던 추신수와 최지만에 이어 류현진까지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면서 유일한 내셔널 리그 소속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되었다.[14] 1호 박찬호, 2호 조진호, 3호 김병현, 4호 서재응, 5호 김선우, 6호 봉중근, 7호 , 8호 류제국, 9호 류현진, 10호 오승환. 이들 중에서 류제국과 오승환은 구원승이고 나머지는 선발승 경험이 1승 이상씩 있다. 선발승으로만 친다면 김광현은 한국인 9번째 MLB 선발승 경험자가 된다.[15] 토미 존 서저리 이후 복귀한 18~19시즌 기준[16] 2019시즌 15%의 구사율을 보였다. 기록엔 투심으로 기록된다. 2019시즌 평균 127.8km/h를 기록한 구속과 본인 언급에도 그렇고 스플리터지만, 투심성으로 휘는 무브먼트를 보여 기록원은 투심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2020시즌 메이저리그에서는 8.5%의 구사율을 보였으며, 다른 투수들이 던지는 스플릿 체인지업과 마찬가지로 체인지업과 스플리터가 구분되지 않은 피치 타입에서는 체인지업으로, 체인지업과 스플리터가 구분된 피치 타입에서는 스플리터로 기록되었다.[17] 물론, 그 정도의 공을 꾸준히 뿌린 덕에 시즌 끝나고 봤을때 포심평속은 커리어 최고인 147km가 나왔다.[18] 그 결과 이닝소화력이 상승하여 2010시즌에 이어 커리어 2번째로 190이닝을 돌파했다.[19] 물론, 이미 완성형이었던 류현진에 비해 거칠었다는거지 실제로 리그 전체로 보면 빠른공 투수 답지 않게 준수한 제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해설위원들도 입을 모아 쓰리볼에서도 얼마든지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투수라고 입을 모아 평할 정도.[20] 이 당시 최고 156km/h까지 찍혔을정도의 광속구를 곧잘 뿌렸다. 곧잘 얻어맞아서 문제였지(...)[21] 실제로도 당시 김광현에게 제시한 계약조건은 연평균 100만달러에, 보장 2년+구단우선 2년옵션(옵션 발동시 연 2백만 달러), 즉 최대 4년 600만달러수준의 계약이었다. 최대 4년을 서비스타임에 준하는 계약으로 써먹는 것이다.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의 3~4년 제의를 거절하고 2년계약을 체결한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다는게 중론.[22] 실제로 2009년 WBC 유망주 랭킹에서 9위에 올랐으며, 10년 뒤인 2019시즌 기준으로 10위 내에 포함된 선수 중 김광현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9시즌 이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하여 2020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되면서 10위 내에 포함된 선수 중 가장 늦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23] 당시 유망주들 순위를 보면 그 라인업이 꽤나 후덜덜하다. 1위 다르빗슈 유, 2위 아롤디스 채프먼, 3위 이와쿠마 히사시, 4위가 다나카 마사히로고 5위가 바로 류현진이었다. [24] 실제로 김광현의 커리어에서 08시즌 성적에 비벼볼만한 시기는 커하였던 10시즌, 그리고 한참 뒤인 19시즌 정도뿐이다. 14, 18시즌 역시 08시즌 못지 않은 성적을 내긴 했으나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기에는 허점들이 있었다.[25] 팔 동작만 보고 릴리스 포인트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생각보다 공을 낮은 위치에서 뿌린다. 투구하면서 팔을 스윙하게 되는데, 이 때 팔 스윙하는 궤적의 처음 부분이 높아서 릴리스 포인트가 굉장히 높아보이는 원리다. 사실 신인 시절에는 릴리스 포인트가 높았지만 투구폼 교정을 받으면서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졌다고 한다.[26]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152km/h을 기록했고, 2015년에도 최고구속 155km/h를 기록하였다. 2019년엔 156km/h를 기록하며 자신의 최고구속을 갱신했다.[27] 그도 그럴 것이 140km 전후 구속의 공이 직구처럼 오다가 미끄러져 떨어진다. 순간적 판단으로 스윙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알고도 당할 만 하다. 더군다나, 김광현은 슬라이더 궤적이 2개 이상이기 때문에 슬라이더 하나만 노려치기도 쉽지 않다.[28] 때문에 타자들이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안타로 연결시키려면 높게 제구된 실투성 슬라이더를 노려야 한다. 이 실투성 공의 비율이 다소 높다는건, 김광현이 데뷔시즌 때부터 지적되어온 약점. 실제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 김광현한테 된통 당한 일본은 특별 편성까지 해가며 김광현 분석에 나섰고 여기서 나온 공략법인 '''"철저하게 낮은 슬라이더 버리기"'''를 실천하며 2009년 WBC때는 박살난 전적이 있다.[29] 그래서 김광현이 저지르는 폭투는 대부분 홈플레이트 앞에서 패대기 치듯이 떨어지는 바운드볼이다. 포수 키를 넘기거나 바깥쪽으로 빠지는 폭투는 어지간하면 저지르지 않는다.[30] 실제로 이 노력이 빛을 발해서, 2019년 김광현은 슬라이더 구종가치 2위와 더불어 스플리터 구종가치 3위를 기록했다.[31] 투피치 투수에 대해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보통 직구-제1변화구를 합친 구사율이 90% 이상이면 투피치 투수로 본다. 메이저리그 통계사이트 팬그래프의 칼럼에서는 두 구종 구사율이 85% 이상일 경우 투피치 투수로 널널하게 본 경우도 있다.참고 칼럼 김광현은 14시즌부터 직구-슬라이더 구사율의 합이 90%를 넘은 적은 없고, 85%를 넘은 것도 18시즌 한 번 뿐이다. 14~16시즌동안은 80% 초반대, 19시즌은 7월까지 75%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14시즌 이후부터는 투피치 투수에 가깝기는 하지만 완전히 극단적인 투피치 투수라고 보기는 힘들다. 투피치 유형에 속하지만 질 좋은 3, 4 구종을 장착한 투수로 보는 것이 맞다.[32] 바깥쪽으로 던질 때에는 10번 중 1번, 몸쪽으로 던질 때에는 10번 중 3번 꼴로 발생했다고 한다.[33] 참고로 2019년 김광현의 포심패스트볼 피안타율은 0.342, 피 OPS는 0.842로 강력한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김광현답지 않게 많이 높았다. [34] 투구시 그립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으나 순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고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35] 김성근 감독 시절 선발진은 프론트인 1~2는 매우 강력했고, 잘쳐줘서 3선발까지는 준수했지만 4~5선발은 항상 큰 약점으로 꼽는 인터뷰를 많이 했다.[36] 19시즌부터는 예전과 달리 투구 수(100개 언저리)에 대한 제한이 다소 있었어도 완급 조절과 18시즌에 다져놓은 투구 수 관리 능력으로 보다 적은 투구 수로 실속있게, 팔에도 부담이 없게, 그리고 많은 이닝인 190이닝을 소화해내 기존 이미지, 스타일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37] 부상 전 평균 이닝이 거의 7이닝에 육박했다.[38] 한 이닝에 코칭 스태프가 두 번 마운드에 올라오면 자동으로 투수가 강판된다.[39] 본인은 입단 이후 매년 겨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2010 시즌 직후 발생한 불의의 부상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40] 2008, 2010, 2014, 2015, 2019.[41] 부상 당시, 다승 1위, 이닝 1위, 방어율 1위, 탈삼진 3위였다.[42] 2009시즌 아무리 부상으로 시즌아웃당했다 쳐도 138이닝에서 193이닝으로 이닝이 폭증했다. 162이닝을 뛴 2008년이랑 비교해도 위험했던 수준.[43] 투수가 던지는 손을 다치는건 생각보다 많이 큰 부상이다. 신경이라든가 감각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 실제로 같은팀 선배였던 윤희상은 2014년 손 부상 이후, 기량이 뚝 떨어지며 은퇴까지 이 부상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44] 비교 가능한 투수인 양현종, 장원준, 윤성환 정도 모두 국가대표 급이다. 외국인까지 확대하면 니퍼트.[45] 대표 사례로는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이 있다. 4회까지는 완봉은 물론이고 노히터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구위의 공을 뿌리다가 급격한 흔들리면서 5회에 3실점을 기록하고 결국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갔다.[46] 실제로 김광현의 19시즌 득점권 피 OPS는 0.473으로 시즌 피OPS인 0.651보다 한참 낮았으며, 이 부분 독보적 1위였다. 잔루율은 79.2%로 역시 리그 1위를 기록했다.[47] 포심, 슬라이더, 스플리터를 던지는 쓰리피치 투수다.[48] 19시즌은 김광현의 커리어하이였던 10시즌과 대부분의 지표에서 비슷한 면을 보이는데, 실제 WHIP는 거의 동일하긴 하나 볼넷이 줄어든 수만큼 피안타 수에 더해졌다 보면 된다. 사실 공격적인 피칭을 하게 되면 당연히 자연스레 피안타율이 높아지긴 한다.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이 0.343으로 좀 많이 맞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18시즌은 적은 이닝, 적은 투구를 하는 동안 가장 위력적인 공만 뿌리고 내려와서 어떻게 보면 18시즌과 비교했을 땐 당연히 피안타율이 19시즌에 비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9시즌은 커리어에서 BABIP이 가장 높았던 시즌으로 커리어 평균과 19시즌 투수 평균보다도 훨씬 높은 BABIP을 기록하기도 했다.[49] 예를 들어 스탯티즈에서 09-18시즌 투수들의 성적을 종합 WAR 순으로 정렬하면 상위 30명 중 김광현을 포함한 27명이 FIP보다 ERA가 낮으며, ERA가 더 높은 3명 중 윤석민, 우규민도 차이가 거의 없는 수준이고(윤석민 0.05, 우규민 0.02 차이) 커리어 전체를 보면 이 2명 역시 FIP에 비해 ERA가 더 낮다. 실질적으로 FIP보다 ERA가 유의미하게 더 높은 선수는 소사 1명 뿐이다.[50] 1000이닝 이상으로 한정할 경우 1405.2이닝을 소화하면서 F-E 0.82를 기록한 성준에 이어서 2위,# 용병과 계투가 포함되기도 하는 500이닝 이상으로 한정해도 4위이다.#[51] 실제로 김광현의 시즌별 BABIP은 리그 평균에 비해 꾸준히 낮은 경향을 보인다.[52] 2008시즌 스탯티즈 RA9-WAR에서는 김광현이 6.16, 류현진이 4.93으로 sWAR에서도 류현진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다.[53] 하지만 2019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모두 두산 베어스가 우승을 차지하며 조쉬 린드블럼이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를 모두 가져가면서 두 선수 모두 커리어하이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다.[54] 스탯티즈에서 제공하는 투수 WAR은 15년부터 RA9을 기준으로 집계하므로 투수 WAR을 비교할때는 RA9 수치로 변경해서 보는 것이 옳다.[55] 스탯티즈 기준 2007년부터 2019년까지의 RA9-WAR은 김광현이 50.32, 양현종이 50.09이다.[56] 스탯티즈 기준 2007년부터 2019년까지의 조정 ERA(ERA+)는 김광현이 138.8, 양현종이 122.7로 큰 간격을 보인다. 류현진의 KBO리그 통산 ERA+는 151.5로, 류현진과 김광현의 ERA+ 차이보다 김광현과 양현종의 ERA+ 차이가 더 크다.[57] 그것도 3연타석 삼진을 잡았다. 최고구속은 무려 152km/h. 후에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야구 잘 할 땐 공이 느리게 보이는 정도였는데 그때 마지막 공은 뭐.. 공이 안보여" 참고로 이 날 양준혁의 마지막 타석은 송은범에게 2루수 앞 땅볼을 치고 1루까지 미친듯이 전력질주하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58] 이후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양준혁은 김광현 선발 경기마다 이 일화를 꺼내면서 셀프디스 시전. 심지어 이승엽 은퇴경기 때도 "제가 은퇴경기 할 땐 삼진 세 개를 먹었는데 이승엽 선수는 멋지게 안타라든지 홈런을 때려주면 좋겠네요." 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이루어진다.[59] 프로 데뷔전[60] 그러니까 08년부터 12년 사이.[61] 메이저리거 신분으로 나왔다. 즉, 국내 활동 때는 연예인을 만난 적도 없었던 것[62] 실제로 이말년은 마구마구에서도 쌍방울덱 사용했다.[63] 비슷한 사례로 "대물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조정훈이 뜬다. 모 롯데 팬의 김광현 목격담에 따르면 가운데 다리가 말의 그것이라고. 박희수도 장난이 아니라는 목격담이 있다. 오죽하면 하반신의 중심축이 잘 잡혀서 야구를 잘 하는구나 싶었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반대로 같은 팀에 최정은 작다는 소문이 있다. 과거 박재상이 직접 입으로 확인사살.[64] 그야 47번은 LG의 야생마인 이상훈의 등번호이기에...[65] 포스팅으로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 원 구단에 4년간 보류권이 생긴다.[66] SK 프런트 관계자가 처음에 주선을 하였는데, 유이의 의사를 일단 김성갑 감독에게 묻고, 이를 김성갑 감독이 딸 유이에게 물어본 것이라고 한다. 유이 본인은 아버지가 허락했다고 생각해서 소개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듯하다. 뭐 데뷔 전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릴 때라서 깊이 생각 안 하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67] 김광현이 분가하기 전 가족들과 살던 곳은 안산 성포동의 선경(SK)아파트로, 학교와도 가까웠다.[68] 선수들 사이에서 불렸던 또 다른 별명은 광팔이.[69] 비시즌에는 직접 떡을 배달하기도 했다고 한다.[70] 두 동생은 쌍둥이라고 한다. 그 중 여동생은 전직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100승 기념 행사 날 시구도 했다.[71] 그의 계정을 보면 시즌 4때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 흔적이 있다. 다만 티어는 실~골을 오간다.[72] 그래서 페이커의 시구 당시 페이커의 팬이라고 언급되었다. 실제로 시구 역시 본인이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후 실제로 T1 숙소에 찾아가 페이커 선수와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했다.[73] 종족은 저그란다. 페이커와 합동 방송에서 밝혔다.[74] 개인할당량이 끝나도 다 같이 끝나야 마치는 한국에서의 훈련과는 달리 미국에선 각자 할당량이 끝나면 언제 끝나든 바로바로 집에 갈 수 있다고. 루키다운 해프닝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75] 실제로 9월 2일 등판 수비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호스프레도 있었으나, 완벽한 호수비와 상당한 수준의 호수비도 있었다.[76] 1편, 2편[77] 1편, 2편, 3편, 4편[78] 선발 7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