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일본군 전사자 사체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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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5월 22일 라이프매거진에 실린 금주의 사진. 애리조나에서 전쟁에 동원된 여성 노동자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선물로 보낸 일본인 두개골에 감사의 편지를 적고 있는 모습이다.
영어: American mutilation of Japanese war dead
일본어: 米軍兵による日本軍戦死者の遺体の切断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있었던 전쟁범죄 행위 중의 하나로, 미군이 태평양 전쟁 중 전사한 일본인 군인들의 시신을 훼손하여 두개골 등의 유골을 갈취한 사체훼손행위, 그리고 때론 살아있는 일본군 포로의 신체를 훼손하여 신체부위를 갈취한 고문 행위이다.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일례로 소개되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군 중 일부는 적의 신체 일부를 기념품으로 여겨 수집하기도 하였다.
이 중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진 행위는 금니를 취득하는 것이었는데 비교적 거부감도 적고 약간의 금전적 이득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신체를 훼손하고 그 일부를 전리품으로 간주하거나, 장식품 및 장난감으로 사용하였다.
그 중 가장 대중적으로 수집된 것은 일본군의 두개골인데, 이러한 두개골들은 ''' trophy skull''' 로 칭해졌으며, 이미 백골화된 유골을 취득하기도 하였으나 유체를 훼손, 절단하여 인위적으로 수집하기도 하였다. 목을 푹 삶아서 살점을 발라낸 뒤 유골만 떼가기도 할 정도였다.
이러한 '트로피' 수집행위는 의외로 널리, 공공연하게 행해졌는데, 이미 이러한 인체 수집 행위는 전쟁 중에도 미국과 일본 양쪽에 언론 매체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미 연방 하원의원이 일본군의 팔뼈로 만든 지칼을 선물로 보내기도 하였는데, 당연히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선물을 반환하였다.
물론 미군 측에서도 이러한 행위가 야만적인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1944년 미군 측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1929년 제정된 병자와 부상자에 대한 제네바 협약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하고, 해당 범죄를 저지른 미군 병사에 대하여 처벌하겠다고 공표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러한 행위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만연하던 시기였고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인종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부 백인은 황인종을 백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길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전쟁이 시작하면서 인종주의적 편견이 포함된 프로파간다가 적극적으로 행해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일본군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길 거부하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선제공격으로 일본에 대한 미국의 분노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본군은 미군에 절대 자비로운 군대가 아니었으며 일본군의 행위는 속속히 미국에 전달되어 보도되었다. 아버지의 깃발 도서 내용에서도 포로가 된 해병대를 죽이고 팔뚝에 있는 해병대 문신을 훼손한 이후 그 해병대의 성기를 잘라 입에다 쑤셔넣는 등 일본군의 끔찍한 시체훼손의 만행이 나온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 방법중 하나가 미군 역시 보복적 차원에서 일본군 전사자에 대한 시체훼손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당연히 일본군의 귀에도 들어갔고 일본군은 귀축영미의 만행을 보라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측 민간인들은 미국에 대하여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미군의 상륙작전 때 공포심에 사로잡힌 민간인들이 집단자살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도 이러한 일본군 전사자의 유해들은 미국내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미일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이러한 유골을 일본으로 송환하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Japanese trophy skull finally returning home
1944년 5월 22일 라이프매거진에 실린 금주의 사진. 애리조나에서 전쟁에 동원된 여성 노동자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선물로 보낸 일본인 두개골에 감사의 편지를 적고 있는 모습이다.
1. 개요
영어: American mutilation of Japanese war dead
일본어: 米軍兵による日本軍戦死者の遺体の切断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있었던 전쟁범죄 행위 중의 하나로, 미군이 태평양 전쟁 중 전사한 일본인 군인들의 시신을 훼손하여 두개골 등의 유골을 갈취한 사체훼손행위, 그리고 때론 살아있는 일본군 포로의 신체를 훼손하여 신체부위를 갈취한 고문 행위이다.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일례로 소개되고 있다.
2. 내용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군 중 일부는 적의 신체 일부를 기념품으로 여겨 수집하기도 하였다.
이 중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진 행위는 금니를 취득하는 것이었는데 비교적 거부감도 적고 약간의 금전적 이득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신체를 훼손하고 그 일부를 전리품으로 간주하거나, 장식품 및 장난감으로 사용하였다.
그 중 가장 대중적으로 수집된 것은 일본군의 두개골인데, 이러한 두개골들은 ''' trophy skull''' 로 칭해졌으며, 이미 백골화된 유골을 취득하기도 하였으나 유체를 훼손, 절단하여 인위적으로 수집하기도 하였다. 목을 푹 삶아서 살점을 발라낸 뒤 유골만 떼가기도 할 정도였다.
이러한 '트로피' 수집행위는 의외로 널리, 공공연하게 행해졌는데, 이미 이러한 인체 수집 행위는 전쟁 중에도 미국과 일본 양쪽에 언론 매체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미 연방 하원의원이 일본군의 팔뼈로 만든 지칼을 선물로 보내기도 하였는데, 당연히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선물을 반환하였다.
심지어는 '''살아있는 일본군 포로'''를 묶어놓고 금니를 빼거나, 입을 찢거나, 귀 등을 자르는 등 신체를 훼손하여 '기념품'을 챙기기도 한 고문 행위도 이루어졌다."...하지만 그 일본인은 죽지 않았다. 그는 등을 심하게 다쳤으며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을테지. 일본인의 입은 커다란 금니로 빛났고, 그를 생포한 놈의 목표는 그것이었다. 그는 케이바 나이프를 이뿌리에 고정시키고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일본인이 발길질을 하고 버둥거리며 고통스러워했기에 칼날은 그의 입 깊숙히 파고 들고 말았다. 해병은 욕설을 내뱉고는 칼로 귀 끝까지 일본인의 입을 찢었고, 그의 발을 일본인 아래턱에 받히고 다시 이를 뽑는 걸 시도했다. 피가 일본군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그는 끄르륵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나는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라'고 소리쳤으나 내가 대답으로 들은 것은 욕설 뿐이었다. 다른 해병이 달려와 그 적군의 뇌에 총알을 박아넣어 그의 고통을 끝내주었다. 그 수집가는 툴툴거리고는 개의치 않게 그의 기념품을 뽑아내려 했다."
But the Japanese wasn't dead. He had been wounded severely in the back and couldn't move his arms; otherwise he would have resisted to his last breath. The Japanese's mouth glowed with huge gold-crowned teeth, and his captor wanted them. He put the point of his kabar on the base of a tooth and hit the handle with the palm of his hand. Because the Japanese was kicking his feet and thrashing about, the knife point glanced off the tooth and sank deeply into the victim's mouth. The Marine cursed him and with a slash cut his cheeks open to each ear. He put his foot on the sufferer's lower jaw and tried again. Blood poured out of the soldier's mouth. He made a gurgling noise and thrashed wildly. I shouted, "Put the man out of his misery." All I got for an answer was a cussing out. Another Marine ran up, put a bullet in the enemy soldier's brain, and ended his agony. The scavenger grumbled and continued extracting his prizes undistur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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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미군 해병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에서
물론 미군 측에서도 이러한 행위가 야만적인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1944년 미군 측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1929년 제정된 병자와 부상자에 대한 제네바 협약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하고, 해당 범죄를 저지른 미군 병사에 대하여 처벌하겠다고 공표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러한 행위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3. 원인
당시는 세계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만연하던 시기였고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인종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부 백인은 황인종을 백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길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전쟁이 시작하면서 인종주의적 편견이 포함된 프로파간다가 적극적으로 행해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일본군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길 거부하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선제공격으로 일본에 대한 미국의 분노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본군은 미군에 절대 자비로운 군대가 아니었으며 일본군의 행위는 속속히 미국에 전달되어 보도되었다. 아버지의 깃발 도서 내용에서도 포로가 된 해병대를 죽이고 팔뚝에 있는 해병대 문신을 훼손한 이후 그 해병대의 성기를 잘라 입에다 쑤셔넣는 등 일본군의 끔찍한 시체훼손의 만행이 나온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 방법중 하나가 미군 역시 보복적 차원에서 일본군 전사자에 대한 시체훼손이었다.
4. 후폭풍
이러한 행위는 당연히 일본군의 귀에도 들어갔고 일본군은 귀축영미의 만행을 보라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측 민간인들은 미국에 대하여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미군의 상륙작전 때 공포심에 사로잡힌 민간인들이 집단자살을 하기도 하였다.
5. 기타
현재도 이러한 일본군 전사자의 유해들은 미국내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미일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이러한 유골을 일본으로 송환하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Japanese trophy skull finally returning home